도박장에 가보질 않아서 '잭팟'의 느낌이 어떤 건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번주 신간들을 보며 '이건 잭팟이야!'라고 혼자 중얼거렸다(분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최근 신간 제목을 빌려 조금 점잖게 말하면 '버스트'. 뭔가 터졌다는 것. 하루키의 <1Q84> 얘기가 아니다(물론 그건 하루키의 '잭팟'이다). 이번주 언론 리뷰에서는 다뤄지지 않을 듯싶은데, 일단 리처드 세넷의 <장인>(21세기북스, 2010)이 번역돼 나왔다(그러고 보면 나 혼자 느끼는 '손맛'일 수도 있겠다).  

 

작년에 <뉴캐피털리즘>(위즈덤하우스, 2009)이 나왔을 때부터 눈여겨본 타이틀인데, 예기찮게도 번역본이 빨리 나왔다. 전작들에서 그가 강조하던 '장인정신'이란 게 어떤 것인지 세계적 석학의 솜씨로 확실하게 보여줄 듯싶다. 맛보기 소개는 이렇다.  

저자는 장인의 모습을 단지 목공이 하는 육체적인 기능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주 편협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상고시대의 그리스 도공, 로마제국의 이름 없는 벽돌공, 거대한 성당을 지어 올렸던 중세 석공, 르네상스 예술가를 비롯해 근대의 노동자, 리눅스 프로그래머, 건축가, 의사 등 현대의 전문 직종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장인 분석을 통해 장인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정립하고, 장인의 신(新)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결국 저자의 목표는 별다른 보상 없이도 일 자체에서 깊은 보람을 느끼고 세심하고 까다롭게 일하는 인간, 즉 우리 안에 잊힌 장인의 원초적 정체성을 복원하는 일이다.

 

아, 그리고 사르트르의 <사르트르의 상상계>(기파랑, 2010). 번역서 제목이 그렇게 돼 있으니 사르트르를 두 번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책과 짝이 되는 <상상력>도 <사르트르의 상상력>(기파랑, 2008)으로 나왔었다. <변증법적 이성비판>(나남, 2009)이 완역된 마당이어서 더 바랄 게 없다 싶었는데, 그의 상상력 연구를 집대성한 책까지 번역돼 나오니 감지덕지다. 일단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질베르 뒤랑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문학동네, 2007)을 읽을 수 있겠다는 것. 전에 책을 좀 읽다가 사르트르의 상상력론과 대결하는 대목에서, 공정하게 읽자면 사르트르의 책을 먼저 봐야겠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는데, 마침내 때가 온 셈이다(빨리 다른 핑계를 찾아야겠다).  

 

혹 상상력이란 주제에 더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뒤랑의 제자이자 '전도사'이기도 한 진형준 교수의 <상상력혁명>(살림, 2010)과 <싫증주의 시대의 힘 상상력>(살림,2009)를 참조해도 좋겠다. 아무래도 번역서보다는 읽기가 편하니까. 역시나 뒤랑의 제자인 서정기 교수의 평론집 <신화와 상상력>(살림, 2010)도 소위 '신화비평'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문예학자 페터 지마의 신간 <모던/포스트모던>(문학과지성사, 2010). 책은 어제 신촌 홍익문고에서 사들었는데(다른 책들은 들어오질 않았었다), 지마의 책은 하도 오랜만이어서 '감회'까지 느껴진다. 번역은 그간에 지마를 거의 전담해서 번역해온 김태환 교수. 나는 가장 먼저 소개됐던 <문학 텍스트의 사회학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1987)를 비롯하여 지마의 책을 거의 대부분 읽은 듯싶다(오래전 읽이지만 그의 방한 강연도 들었다). <문예미학>(을유문화사, 1993) 같은 책은 대학원의 필독 세미나 교재이기도 했다.   

그런데, <데리다와 예일학파>(문학동네, 2001) 이후 거의 10년 만에야 번역서가 나온 셈이니 격세지감이 있다. 한때 서점을 '주름잡던' 그의 책들도 상당수가 절판되거나 품절된 상태이고. <모던/포스트모던>은 그런 가운데 나온 것인데, 원저는 1997년에 초판이 나오고 2001년에 2판이 나왔다. '생명력'이 있는 이론서라고 봐야겠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의 총결산'이 비록 요즘 유행과 맞는 건 아니지만 시류를 거슬러서 일독해봄직하다.   

그밖에도 네그리의 <예술과 다중>(갈무리, 2010), 캘리니코스의 <무너지는 환상>(책갈피, 2010),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문화과학사, 2010) 등 쟁쟁한 명망가의 책들이 이번주 신간이고 모두 보관함에 들어가 있다.  

 

체 게바라 평전의 결정판이라는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플래닛, 2010)도 이번주에 나온 책이고(무려 1176쪽 분량이다), 이미 화제가 되고 있는 <김대중 평전>(시대의창, 2010)도 이번주 신간이다, 라고 적고 보니 오류다. <김대중 자서전>(삼인, 2008)과 혼동했다. <평전>과 <자서전>이 동시에 나오는 바람에 같은 책으로 착각했다(<자서전>을 고른다면서 <평전>을 클릭했다).  

하여간에 이 정도면 '잭팟'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물론 '옆에서' 그런 게 터졌다는 얘기일 뿐이고, 그게 그냥 구경거리가 아니라 '나의 횡재'가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투자가 좀 필요하다. 대다수 직장인들의 휴가가 시작된다는 내주에 한두 권 정도 챙겨두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사르트르나 지마 같은 경우야 아무래도 전공자들 손에서나 대접받을 터이지만, 나머지 책들은 충분히 유혹적이다. 다년간의 경험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런 일이 흔치 않다... 

10.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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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각하는 손과 장인 예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8-04 14:04 
    리처드 세넷의 <장인>(21세기북스, 2010) 출간 소식의 반가움은 이미 지난주에 포스팅한 바 있는데, 언론리뷰는 이번주에 실리게 되는 듯하다. 가장 빨리 올라온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나는 번역본보다 원서를 미리 구했는데, 내주쯤에는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기사를 보니 저자의 3부작 중 하나라고 하는데, 나머지 책들도 기대된다.   연합뉴스(10. 08. 04) '생각하는 손' 장인정신을 찾아서 
 
 
미지 2010-07-31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알라딘 시스템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글 올리면 조회수가 급감하나요? 제가 좀 놀라운 걸 겪어서요...

로쟈 2010-07-31 08:29   좋아요 0 | URL
그 정도로 '정서적인' 시스템이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조회수가 갑자기 늘어나는 경우는 있어도 갑자기 주는 경우는 좀 드물고요. 어떤 착오인지는 모르겠지만요...

2010-07-31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1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10-07-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은 <김대중 평전>(시대의 창)이 아니라 삼인에서 나온 <김대중 자서전>이 아닐까요?^^ 물론 김삼웅 선생이 집필한 <김대중 평전>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고 김대중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김대중 자서전>에 새로운 정보가 더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에 대한 2권의 책이 동시에 출간되어 혼돈을 일으키는 듯 싶습니다.^^ <장인>이라는 책에 눈이 가는군요. 사르트르의 <상상계>는 두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마음에 듭니다.^^

로쟈 2010-07-31 19:0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제가 잘못 클릭했어요.^^; 그래도 표지는 <평전>이 더 낫네요. <상상계>는 저도 주문을 넣었는데, 저렴한 거야 고마운 일이죠.^^

푸른바다 2010-08-02 15:22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의 상상계와 라캉의 상상계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라캉은 사르트르보다 오히려 한 살이 많은데 실존주의 뒤에 유행한 구조주의의 대표주자로 알려지는 바람에 사르트르보다 후세대인 걸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사르트르와 동시대인 라캉은 알튀세르, 레비스트로스, 푸코보다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까마득한 선배인 셈인데 말입니다.^^ 라캉은 실존주의-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 전 시대에 걸쳐 유행을 누리는 드문 사상가인 것 같습니다. 라캉은 다른 구조주의자들에 비해 사르트르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로쟈 2010-08-03 10:07   좋아요 0 | URL
라캉이 1901년생이니까 네 살 더 많습니다. 저는 요즘 라캉-지젝의 주체와 사르트르(실존주의)의 주체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어요. 마땅한 책이 없나 찾아봐야겠습니다...

푸른바다 2010-08-03 13:14   좋아요 0 | URL
저도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주체를 넘어서 있는 구조가 인간의 훨씬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단 1%에 불과하더라도 '주체의 결단'이라는 부분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3종의 번역본과 영역본, <변증법적 이성비판> 번역본, 라캉 <에크리>와 <세미나> 번역본들과 영역본들을 갖추어 놓고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지만 우공이산이라고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는 믿음으로 천천히 나아가볼까 합니다.^^


로쟈 2010-08-03 13:34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와 라캉을 주제로 한 연구서가 몇 권 있는데, 모두 불어본이네요.^^;

푸른바다 2010-08-03 15:12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때 불어를 제 2외국어로 꽤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그를 살리지 못한게 좀 후회스럽군요.^^ 불어의 기억이 좀 남아있었던 대학시절 교보 문고에서 발췌본이긴 하지만 <에크리> 불어본을 구매한 적이 있어요. 이게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누가 관심을 가질 책도 아니었는데요.^^

개인적으론 독서모임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로쟈 2010-08-03 23:12   좋아요 0 | URL
저도 학부 졸업하기에 불어2 듣다가 흥미를 잃었는데(한 학기 동안 바둑, 장기만 뒀지요.^^;) 약간은 후회가 됩니다...

종이달 2022-05-05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