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서 번역 문제에 대한 황현산 고려대 교수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현 한국번역비평학회장이기도 한 황교수는 번역 행위의 다층적 의의와 번역 비평/평가의 필요성에 대해서 짚어주고 있다. 안 그래도 개인적으론 번역의 바다에 '잠수'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눈길이 가는 칼럼이다.    

교수신문(10. 04. 26) 번역과 학문적 위선  

극렬한 찬성과 극렬한 반대는 많아도 비평은 없는 것이 우리 사회라는 말이 있다. 이 비평부재의 현상은 번역이 관련될 때 더욱 두드러진다. 몇 년 전에 외국문학을 전공한 어느 교수가 한 유명 번역가의 번역문에 나타나는 허점들을 격렬한 어조로 지적해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한 적이 있다. 내 친구이기도 한 번역가는 그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자신이 소홀한 번역가를 넘어서서 ‘나쁜 놈’으로까지 매도된 데에 깊은 불만을 표시했다. 여기서도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비평의 풍토이다.  

번역자는 신문·잡지의 단평을 벗어나서 자기 번역을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으며,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중요한 오류와 그 처방을 공개적으로 개진할 기회가 없었다. 말해야 하나 말하지 못한 말들은 상처가 되고, 그 상처에서 어느 날 화산이 폭발하듯 솟아나온 말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큼의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상처는 늘 비평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평 없는 사회의 분노에서 온다.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창립된 것은 4년 전이다. 그 동안 학회는 월례발표회와 춘하추동의 학술발표회를 통해 뛰어난 학문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어도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 언어로 실현된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인 번역은 그 텍스트에 담긴 진리성과 미적 효과를 다시 검토하는 매우 정교한 절차라는 점이 자주 논의 됐다. 인간사회에 어떤 절대적 언어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언어와 관련해 모든 언어는 하나의 방언일 터인데 한 방언의 역량을 토대 삼아 그 사용자들의 역사와 풍속과 주관성 안에서 성립된 텍스트를 다른 방언의 역량을 토대로 다른 주관성 안에서 다시 재현하는 번역 작업은 그 텍스트를 다른 문화에 비춰 객관화하는 한 방편이 된다. 이 객관화의 시련은 그 텍스트를 최초에 성립시킨 언어뿐만 아니라 그것을 번역으로 재현하는 언어에도 해당되는 것은 물론이다.

번역할 가치가 있는 텍스트라면 어떤 텍스트건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어휘적으로건 통사적으로건 논리적으로건 미학적으로건 우리말에 본래 내장된 힘을 밑바닥까지 동원해야 하며 그 텍스트를 둘러싼 문화와의 관계에서 우리의 역사와 풍속과 주관성을 다시 성찰해야 한다. 두 언어에서 말과 사물의, 생각과 표현의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이때이다. 따라서 진지한 번역자가 자기 작업에서 현대 인문학의 크고 작은 주제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학술 테스트나 문학 텍스트의 번역은 외국어 텍스트에 대한 우리말 텍스트를 마련하는 일에서보다도 언어에 미치는 이 번역 효과에서 더 중요하다. 번역비평은 궁극적으로 이 번역효과를 토론하는 데 이르러야 한다.

번역평가의 이론과 방법은 학술 테스트나 문학 텍스트보다도 외교문서, 계약서, 제품의 매뉴얼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실용번역에서 먼저 정립됐다. 이런 문서의 번역에는 한 국가나 기업의 운명, 때로는 개인의 생사가 걸려 있는 만큼, 그 평가도 오류의 지적에 치중하게 돼 있는 것이 당연하다. 문학 텍스트라 하더라도 오류의 지적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지만 현재 주로 사용하는 평가방법 곧 충실성과 가독성이라는 말로 환원되는 평가방법은 의미이해의 층위, 문체의 적합성, 낱말의 경제적 효과, 언어역량의 개발 등 숱한 문제를 섬세하게 다룰 수 없는 탓에 시비를 토론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평가방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번역 이를테면 번역시학이나 비교문체론 같은 좋은 비평을 촉발시킬 수 있는 번역이 드물다는 점도 말해야 한다. 질 높은 번역은 질 높은 비평의 토대가 된다.

늘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번역과 번역가의 낮은 위상도 문제가 된다. 정신적인 가치까지도 시장이 평가하는 사회에서 전문번역가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투는 말할 것도 없고, 생활이 안정된 대학교수들에게도 모든 업적이 양으로 평가되는 평가 체제에서는 정교한 번역을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 연구번역이 소논문 한 편의 대접을 받거나 받지 못하는 정황은 일종의 학문적 위선과 연결된다. 우리말 사전에는 번역서에만 나오거나 그 쓰임이 번역에서 특별한 어휘들이 등재돼 있지만 번역서의 문장이 용례로 소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번역비평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은 학문의 이런 위선과도 싸운다.(황현산 고려대·불어불문학과) 

10. 0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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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4-27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과 사전편찬을 무시하는 나라는 문화대국이 될 수 없습니다.

로쟈 2010-04-28 20:23   좋아요 0 | URL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부터 둘러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4-29 00:02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4-2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 말에 공감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29 00: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미지 2010-04-3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국역본 읽을 만한가요?...

로쟈 2010-05-01 09:48   좋아요 0 | URL
2종의 국역본을 같이 읽으시면 될 듯합니다. 국내에선 최고 권위자들의 번역입니다...

BonBon 2010-05-1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번역을 전공하는 대학생인데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