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의 뉴스메이커는 단연 '설화'로 방문진 이사장직을 사퇴한 김우룡 전 이사장이다. 고려대학생 김예슬씨의 대학 거부선언의 여파가 채 가라앉기 전에, 타이밍상 마치 대학사회의 문제제기를 무력화시키려는 '음모'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파괴력으로 모든 이슈를 잠식해버렸다. 아마 내주에도 여진은 계속될 듯싶은데, 어떤 사태였는지 잠시 짚어본다. 먼저 진원지인 '신동아'와의 인터뷰 내용.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전격 사퇴를 몰고 온 ‘신동아’ 4월호 인터뷰는 어떤 내용인가. 문제가 되는 대목은 “김재철 신임 MBC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이면서 ‘MBC 좌빨’을 척결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김 사장의 선임 이유를 묻는 신동아 기자의 질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방문진과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냐는 겁니다. 쉽게 말해, 말귀 잘 알아듣고 말 잘 듣는 사람이냐는 게 첫 번째 기준이었다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김 사장이 임명된 이후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에 “럭비공이 하나 들어와서…”라고 말끝을 흐린 뒤 관계회사 사장단, 임원 인사가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제(3월 8일)부터 대학살이 시작됐죠. 공정방송을 실현하고 무능한 사람을 정리하고, 특정 정권에 빌붙는 사람을 척결한다는 의미에서는 80점 정도는 되는 인사라고 평가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인사는 김재철 사장 (혼자 한) 인사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김 사장이 좌파들한테 얼마나 휘둘렸는데. 큰집도 (김 사장을) 불러다가 ‘조인트’ 까고 (김 사장이)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또 “김 사장이 큰집에 갔다 왔느냐”는 물음에 “큰집에 들어갈 수 있어? 밖으로 불러내서…(김 사장이) 좌파들 끌어안고 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번 인사로) MBC 좌파 대청소는 70~80% 정도 정리됐습니다”라고 밝혔다.

신동아 기자가 “김재철 사장이 청소부?”라고 재확인하자 김 이사장은 “(내가) 청소부 역할을 해라(하니까). 그러니까 김재철은 청소부 역할을 한 거야. 그 점은 인정을 해야 돼요. 물론 김재철이 안 하려고 했지, 그걸로 (김재철 사장은) 1차적인 소임을 한 거야”라고 전했다.

“언제 김 사장에게 그런 뜻을 전했나”라는 질문에는 “대체적인 그림은 만나서 그려줬지. 둘만 만난 일은 없지만, 사장으로 선임하자마자 바로 불러서 얘기했어요. 김 사장은 내 면전에서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고. MBC 내의 ‘좌빨’ 80%는 척결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인 건 임기가 1년이라는 것이고, 본인이 재선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엄기영 사장의 사퇴가 사실상 예정됐던 일이냐는 물음에 김 이사장은 “내가 사실 지난해 8월 27일 엄 사장을 해임하려 했어요. 하지만 정무적인 판단으로 미룬 겁니다. 전략이었죠. 솔직히 2월 말까지는 버틸 줄 알았어요. 그때까지도 안 나가면 해임하려고 했어요. 어차피 내보내려 했는데 자기 발로 걸어 나갔으니 120% 목표 달성한 거죠”라고 강조했다.(국민일보, 10. 03. 20)

이 문제에 대해선 야당이나 '정상적인' 언론의 시각보다 여당이나 수구언론의 반응이 더 궁금한데, 동아일보의 사설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김우룡 이사장이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김 이사장은 월간지 신동아 4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김재철 MBC 사장의 관계회사 인사에 대해 “큰집도 (김 사장을) 불러다가 ‘쪼인트’도 까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다). 김재철(사장)은 (내가) 청소부 역할을 해라 (하니까) 청소부 역할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의 발언을 담은 신동아 보도는 MBC 인사에 대한 방문진 관여의 적정성 여부, 외세의 압력 의혹 등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김 이사장은 발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이 때문에 이른바 ‘노영(勞營)방송’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MBC 개혁이 흔들려선 안 될 일이다. 그의 발언은 자신을 과시하느라 ‘오버’한 대목도 적잖아 보인다.

그의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방문진 이사장을 할 만한 인물이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애당초 방문진 이사장 선정이 잘못된 인사였던 셈이다. ‘쪼인트도 까고…’ ‘개망신’ ‘좌빨’ 같은 말은 대학교수 출신의 방문진 이사장이 한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천격(賤格)이다. 이런 사람에게 사회의 품격을 선도해야 할 공영방송의 경영을 감독하게 하고 인사권을 맡겼다니 이 정부 인사가 참으로 실망스럽다.

김 이사장의 발언 가운데 사실 여부를 가려야 할 것도 있다. ‘큰집’에서 김 사장을 불러다가 인사를 지시했다는 내용은 권력 기관이 인사에 개입한 듯한 인상을 준다. 노무현 정부의 방송사에 대한 ‘코드 인사’를 비판했던 현 정부가 같은 전철을 밟았다면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김 이사장의 발언 중에는 엄기영 전 사장 등 당사자들의 말과 배치되는 내용도 있다.

노조가 좌지우지하는 MBC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방문진의 인사권 행사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김 이사장의 발언이 돌출했다. 김재철 사장을 압박해 황희만 보도본부장과 윤혁 TV제작본부장의 교체를 관철한 노조가 이번 사태로 힘을 받아 개혁을 저지하고 나설 소지가 있다. 김 사장이 자신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본부장 인사를 노조와 협상한 것은 인사권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에게 MBC의 제자리 찾기와 노영방송 탈피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MBC 개혁의 주체는 방문진이 될 수밖에 없다. 방문진 이사회는 MBC 바로 세우기 작업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될 것이다.(동아일보, 10. 03. 21)

핵심은 '큰집'과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한 '김우룡 잘라내기'인데, "그의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방문진 이사장을 할 만한 인물이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애당초 방문진 이사장 선정이 잘못된 인사였던 셈이다. ‘쪼인트도 까고…’ ‘개망신’ ‘좌빨’ 같은 말은 대학교수 출신의 방문진 이사장이 한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천격(賤格)이다. 이런 사람에게 사회의 품격을 선도해야 할 공영방송의 경영을 감독하게 하고 인사권을 맡겼다니 이 정부 인사가 참으로 실망스럽다."란 대목은 한겨레나 경향의 비판보다도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천격'의 인사가 사실은 동아일보 예찬론자였다.  

"나는 동아일보를 한국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더 타임스'가 곧 영국이라면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상징이다. 그 긴 역사에 왜 굴절과 파행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동아는 일제와 자유당 정부, 유신과 군사정권 동안 줄곧 민족의 표현기관으로서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문화주의를 제창해 왔다."  

또한 동아일보의 칼럼 기고자이기도 했다. 언론의 역할에 대한 김우룡 교수의 '원론'은 이랬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천격의 인사라는 건 동아일보 스스로도 '검증'을 못했던 모양이다.  

"언론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또 언론은 국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자유스러워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언론은 보도하고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이다. 비록 정부정책에 반하더라도 언론은 올바른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 비판과 반대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축이 아니던가." (동아일보, 04. 10. 21)

   

흥미로운 것은 원로 언론학자 김우룡 '교수'의 주저들이 미디어윤리에 관한 것이라는 점('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인 사례가 '쪼인트 까기'인 모양이다). 나는 '사회적 불의'를 냉철하게 보도(폭로)함으로써 '언론인의 직업윤리'를 지킨 신동아 기자가 올해의 기자상 후보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김우룡 교수가 생각하는 '언론인의 직업윤리'는 어떤 것인지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기자나 데스크는 무슨 생각(계산)을 했던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번 사태를 두고 '변듣보'란 별칭이 더 익숙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발행인은 이렇게 정리했다. '김재철 배신+김우룡 자폭 = 방문진 침몰'.(그러니까 문제는 '배신'과 '자폭'이다. 솔직하게도 그는 사건의 실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수습책은 무엇인가?  

문제는 과연 김우룡 이사장의 폭탄 발언으로 시작된 MBC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일단 방송통신위는 곧바로 신임 이사장을 선임해야 한다. 김재철 사장이 방문진 무력화를 선언했고, MBC노조의 기세가 등등한 상황에서 새로운 이사장이 취임해도 손 쓸 방법은 전혀 없어 보인다.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신임 이사장 선임 직후, 자신이 약속한 공약을 모두 내평겨쳐버리고 MBC노조와 손을 잡아버린 김재철 사장에 대해 “사장의 인사권을 지키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즉각 해임시키는 방안이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을 임명한 뒤, 초상식적인 배신행보에도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했던 현재의 방문진 이사진의 구조 상 이를 시행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이대로 가게 되면, MBC노조는 김재철 사장을 꼭두각시처럼 부리며, 이미 모든 동력을 상실한 방문진을 무시한 채, 엄기영 사장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MBC를 장악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친노좌파 세력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지자체 선거 때, MBC는 특정 정파의 기관 방송으로 전락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방문진이 김재철 사장을 즉각 해임시키지 못한다면, 여권 성향의 이사 전원이 방문진 이사직을 사퇴하는 것이다. 방문진 이사들이 이사장의 과오 전체를 함께 책임져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애초에 지난 8월 방문진 이사진이 구성될 때, 김우룡 이상 및 여권 이사 6인은 한 팀으로 움직여왔다. 물론 김우룡 이사장의 수많은 문제점에 대해 방문진의 젊은 이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제동을 걸기도 하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사들은 이사장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인간적 책임마저 면책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방문진의 여권 성향 이사 6인이 물러나고, 새로운 이사 6인이 선임된다 하더라도, 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방문진과 MBC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이른바 중도우파 세력 내에서 지금과 같은 엄중한 상황에서 과감하게 국민을 설득하여 김재철 사장을 해임시키고, 공청회를 거쳐 새 신임 사장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 법한 실력과 용기를 갖춘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방문진에 들어가자마자 ‘조인트’와 ‘큰집’ 논란에 휘말리며, MBC노조와 친노좌파세력의 집중 공격을 받으며, 기존의 방문진 이사들과 같이 개혁의 칼을 모두 빼앗기고 무력화될 우려가 너무 크다.(뉴데일리, 10. 03. 21)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방문진이 김재철 사장을 즉각 해임시키지 못한다면, 여권 성향의 이사 전원이 방문진 이사직을 사퇴"하라는 것. 원래 방문진 이사직에 바짝 욕심을 내던 처지에서 보면, 여권 성향 6인이 물러나고 새로운 이사가 선임되는 '사태'는 그로선 한 자리 차지할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머리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데, 정말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다... 

10.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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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0-03-21 10:12   좋아요 0 | URL
신동아는 동아일보보다는 나름 자율성이 있는 모양입니다. 고등학교 때 신동아를 열심히 읽으며 정치의식을 키웠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나저나 변희재가 벌써 방문진 이사를 노릴만한 '짠밥'이 되는 모양이죠?^^ 그의 언행을 보면 가끔 '이해'보다는 정신분석학적 '해석'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들의 '말'들만 보면 김재철 사장이 마치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주교인양 보이는 군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 호들갑들을 떠는 걸 보면 그들 나름대로 불안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로쟈 2010-03-21 10:19   좋아요 0 | URL
'기존의 방문진 이사들' 같은 인사로는 안된다고 힌트를 주고 있지요. '짠밥' 말고 다른 고려가 필요하다는...

노이에자이트 2010-03-21 15:39   좋아요 0 | URL
경솔하게 입을 놀리는 성격은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드러나기 마련입니다.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한다고 하는 이들은 정말 곤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로쟈 2010-03-22 11:41   좋아요 0 | URL
아마도 술자리에서 실언을 한 듯싶은데, 결과적으론 당사자의 '자폭'이 국민에 대한 '헌신'이 됐습니다. 한겨레나 경향도 못하는 일을 신동아는 해냈구요...

mediocris 2010-03-22 09:27   좋아요 0 | URL
김우룡의 발언은 그쪽 집단(글이든 말이든 계몽하려고 대드는)의 뻔한 천격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김우룡 따위 가벼운 혓바닥이 물러나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하다 해도 왜 ‘야당이나 정상적인 언론’(이라니?)과 비교되는 수구언론의 반응까지 궁금하실까? 김우룡 같은 자들에게 핍박을 받기 때문에 정상적인 언론이란 말일까? 노조를 손보겠다고 약속하고서도 노조에게 항복했대서 조인트 까이는 김재철과 군림하는 노조가 있기 때문에 정상적 언론이란 말일까? 악의 희생으로 정화 의식만 치르면 모두가 선이 된다는 말인가?

로쟈 2010-03-22 11:39   좋아요 0 | URL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큰집'의 개입을 문제삼아야겠지요. '설화'를 문제삼을 게 아니라...

mediocris 2010-03-24 08:15   좋아요 0 | URL
혹시나, 그러나, 역시나...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

하영-이룰수없는아련한첫사랑- 2010-03-23 16:57   좋아요 0 | URL
신동아 기자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써줘서 고맙다면 그동안 다른 기자들은 만들고 꾸미고 정화하느라 애를 먹었던 걸까요?
본인의 저런 얘기가 기사화 될 것이라고 예상 못했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고(신동아 게재를 위한 인터뷰였으니까요) 어떻게 인터뷰 자리에서 저러한 발언을 할 수 있었는지~아무리 고민해 봐도 무슨 생각으로 발언한 건지(심지어는 실수인지, 혹시나 의도적인 건지마저도 혼란스럽네요)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건 저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