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길에 서점에 들렀지만 구하지 못한 책의 하나는 막스 베버에 관한 비판적 입문서로 출간된 키어러 앨런의 <막스 베버의 오만과 편견>(삼인, 2010)이다. (뒷담화들 덕분에) 입문서 가운데에서는 가장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다. 올해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새 번역본이 나올 예정인데, 뒤르켐, 마르크스와 함께 고전사회학의 3대 창시자로 불리는 베버에 대해서 본격적인 재평가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듯싶다.      

세계일보(10. 02. 27) ‘막스 베버’ 키드에게 보내는 편지 

먼저 상상을 해보자. 만일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하는 사람이 큰 사고를 치거나 엄청난 위선자로 밝혀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그럴 리가 없다고 부인하거나 외면하거나 침묵할 것이다. 물론 정치적, 혹은 종교적 추종자라면 그래도 맹목적으로 옹호할 수도 있다. 이번 주에 번역돼 나온 키어런 앨런 아일랜드 더블린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막스 베버의 오만과 편견’(박인용 옮김, 삼인)을 보면 딱 그런 상황에 빠진다.

막스 베버가 누군가. 고전 사회학의 초석을 다진 거두로 역작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자본주의 발전에서 청교도주의가 행한 역할을 탁월하게 밝힌 학자, 사회학 방법론과 정치 카리스마에 대한 정교한 논의로 후대 사회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 현대사회의 관료제 문제에 대한 냉정한 분석으로 위상이 퇴락한 마르크스를 대신해 오늘날 더욱 각광을 받는 학자가 아닌가.

저자는 책의 부제로 ‘독일의 승리를 꿈꾼 극우 제국주의자’라고 달았다. 저자에 의하면 고매하고 점잖을 것만 같은 베버는 “이 전쟁은 지도의 변화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를 위해 수행되어야 한다. 전쟁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독일이 필요로 한 것은 쉽사리 절망에 빠지기 쉬운 수사적 호언장담이 아니라 분명한 전략적 목표”라며 제1차 세계대전을 찬양하고 동양인과 흑인을 덜 떨어진 인종이라고 비웃었으며, 히틀러 못지않게 게르만의 영광을 꿈꾼 제국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베버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문화가 없으며, 식민지배를 받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봤다.

이쯤 해도 입이 떡 벌어지고, 머리를 저을 것이다. 그럴 리가…, 하면서 말이다. 나아가 베버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독일제국과 게르만민족의 패권을 내세우는 민족주의자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심지어 준(準)군사 전략가로 중부와 동부 유럽을 독일의 패권 아래 두면서 영국과는 협정을 맺고 벨기에는 볼모로 활용하면서, 주된 적국인 러시아에 대항할 것을 주장했고 ▲패전의 기운이 역력한데도 끊임없는 전국적 게릴라전을 역설했으며 ▲관료제와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이며, 우매한 대중은 오직 카리스마적 지도자만이 구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관료주의 문제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관주의적 전망을, 민족주의적 카리스마에 대한 호소로 돌파하려 한 대목에선, 나치 파시즘과 히틀러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의회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민주주의 제도에 불신을 드러내기도 한 베버는 또한 학문 연구의 궁극적 목표를 “독일의 정치교육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저자는 베버가 말하는 정치교육이란 “독일제국을 이끌어 나갈 사명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정치에 학문이 종속된다고 본 셈이다. 이는 분명 존경받을 학자의 태도는 아니다. 베버의 명성과 진실을 다시금 재고해야만 하는 이유다.(조정진 기자) 

10.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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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0-02-28 09:08   좋아요 0 | URL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와 비교 독해가 필요할 것 같네요. 아울러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참고는 막스 베버 본인의 글들이겠지만. 이른바 3대 고전 사회학자 중 맑스를 제외하곤 뒤르켐, 베버 모두 체계적이고 권위있는 한국어 번역이 없는 지라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사람에겐 다양한 측면이 있어서 일면적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많은 한계가 따르는 것 같습니다. 결국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구체적인 이해는 독자의 머리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겠지요...

로쟈 2010-02-28 12:50   좋아요 0 | URL
베버 전공자라면 다 알 만한 내용일 텐데, '베버리언'들은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람 2010-02-28 11:15   좋아요 0 | URL
재미있을 것 같네요. 하긴 보수인 그가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일 여지는 다분히 있었겠지요.
그것이 일정 선을 넘어서면 위험하지만.
그 시절 엘리트 백인의 시각에서 흑인과 동양인에 대한 편견도 일면 이해가 갑니다.
지금 이런 얘기하면 완전 또라이 얘기 듣겠지만, 하지만
아직도 백인들 뇌 속엔 이런 생각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시절 교수인선에서 보인 그의 행동
(대학은 좌우파교수가 모두 필요하다며 좌파교수를 지지한 면)은 참 좋게 보였는데...

한 사람의 여러 모습을 보는 것은 대상을 입체적으로 보는 기쁨을 주겠죠.
저도 구입하여 읽어 볼 생각입니다.

로쟈 2010-02-28 12:51   좋아요 0 | URL
네, 다양한 시각이 '입체감'을 부여해주죠...

노이에자이트 2010-02-28 21:09   좋아요 0 | URL
베버가 제국주의의 옹호자라는 사실은 이미 80년대에 번역된 소련에서 나온 세계철학사 전 10권(중원문화사 번역) 중 제 9권에 나와 있었습니다.이 책에선 아예 베버의 가치자유의 개념을 사회과학에서의 매춘이라고 해버렸더군요.

로쟈 2010-03-01 23:25   좋아요 0 | URL
재간된 세계철학사는 너무 비싸던데요...

노이에자이트 2010-03-02 16:58   좋아요 0 | URL
중원은 재간했다 하면 너무 비싸게 오르죠.내용은 똑같으면서...헌책방에서 산 게 다행이에요.헤겔이나 마르크스 철학(소비에트 철학 포함)좋은 걸 꽤 많이 번역한 출판사지요.

푸른바다 2010-03-01 00:22   좋아요 0 | URL
아마 베버에게 그러한 측면들이 분명히 강하게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 서구 중심주의자였고 서구의 장점과 그 기원을 밝히는 데 그의 학문적 이력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그의 방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도 서구의 상대적인 우수성을 밝히는 데 그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로쟈님이 말했던 대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것이지요. 그를 제국주의자라거나 서구중심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건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막스 베버가 동양 사회에 대한 아마추어적인 지식을 가지고 구성한 내용을 아직도 제대로 논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는 서양중심주의에 대해 동양중심주의로 맞서자는 것도 아니요 서양 중심주의를 근본적으로 초극하는 내용이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는 아직 텅빈 기표일 뿐 아직 제대로 내용을 갖추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근대 사회, 관료제, 리더십, 정치 학문 등등에 대한 통찰은 분명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단순히 제국주의자로 규정하는 건 그를 단순히 정신병자(베버의 사이콜로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로 규정하는 것 만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로쟈 2010-03-01 23:26   좋아요 0 | URL
네, 목욕물과 함께 다 갖다 버릴 건 아니고, 갖다 쓸 건 갖다 써야겠죠...

노이에자이트 2010-03-01 15:07   좋아요 0 | URL
푸른바다 님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근대를 어떻게 넘어야 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지요.넘어서려면 기존의 사회과학의 고전에 대한 소화가 필요하지만 이것도 어렵고요.

로쟈 2010-03-01 23:27   좋아요 0 | URL
원초적으로 가능한지, 얼마나 가능한지 의문이기도 하지요...

노이에자이트 2010-03-02 16:59   좋아요 0 | URL
요즘은 우리나라도 근대성에 대한 탐구를 꽤 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