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역사서 가운데 눈길을 끄는 책은 나가미테 시게토시의 <독서국민의 탄생>(푸른역사, 2010). 관심분야의 책이라 바로 입수했는데(제목만으로도 책의 내용은 어림해볼 수 있다), 저자가 도서관 사서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구체적으론 '도쿄대학교 사료편찬소 도서실'에 근무하는 걸로 돼 있고, 이미 <잡지와 독자의 근대>(1997)란 책으로 일본출판학회상을, <모던도시의 독서 공간>(2001)이란 책으로 일본도서관정보학회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독서국민의 탄생>(2004)까지 '3부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의 경우와 비교도 해봄직한, 그런 자극을 던져주는 책이다. 소개기사를 챙겨놓는다.
국민일보(10. 01. 30) 100년전 일본엔 ‘책 읽는 국민’이 있었다… ‘독서국민의 탄생’
책에는 인류의 지혜와 각종 정보가 담겨 있다. 지식을 축적하고 전파하는 주요 수단이다. 따라서 책을 많이 읽을수록 그만큼 무형의 자산을 많이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국가적으로도 독서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독서는 다른 오락거리에 밀려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08년 국민 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3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대표적인 독서강국으로 꼽힌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 승객들이 무언가를 읽고 있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초등학생의 연간 도서관 대출 건수가 1인 평균 30권이 넘을 정도로 일본에서는 어려서부터 독서문화가 형성돼 있다. 이는 일본이 경제는 물론 문화에서도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기틀이 됐다. 일본의 독서문화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일본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독서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일까.
도쿄대학교 사료편찬소 도서실에서 근무하는 나가미네 시게토시가 쓴 ‘독서국민의 탄생’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독서국민’을 신문이나 잡지, 소설 등 활자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읽는 습관을 가진 국민으로 정의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근대 초기에 형성된 독서 문화에서 독서국민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당시 활자미디어의 전국 유통, 사람들의 이동성 증가, 다양한 독서 장치의 보급 등이 어우러지면서 독서문화는 광범위하게 형성됐다.
19세기 말 대량수송수단인 철도의 출현과 신문 판매업자나 서적·잡지 중개업자의 등장은 활자미디어의 전국 유통망을 구축했고, 이것이 독서의 대중화를 이끄는 기반이 됐다는 것이다. 철도망의 확대로 철도 여행자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차내 독자’라는 근대의 새로운 독자 유형과 여행 독서 시장이 생겨난 것도 특징이다. 일본의 철도 승객은 1880년대 수백만명에서 1907년 1억43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다. 독서는 철도 여행의 무료함을 해소하는 수단이어서 승객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됐다. 당시 차내에서 독서하는 모습은 문명국민의 상징이었다.
일본의 독서국민 탄생에는 정부의 역할도 컸다. 정부는 신문종람소와 도서관이라는 두 가지 장치를 통해 독서국민을 이끌었다. 신문종람소는 역 구내나 주변을 중심으로 여러 신문이나 잡지를 모아 무료나 혹은 싸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한 독서시설로 1880∼90년대 전국 각지에서 광범위하게 설치된다. 또 호텔이나 여관, 기차 대합실, 열차 안 등 곳곳에 독서공간을 마련해 독서 환경을 조성했다.
도서관의 활성화는 독서국민 탄생의 기폭제였다. 일본 정부는 전 국민의 의식 함양을 위해 일찍부터 지방에 작은 도서관을 설립했다. 그 결과 일본의 도서관은 1912년에 540개나 됐고, 총장서도 275만권에 달했다. 도서관은 이후 비약적으로 늘어나 26년에는 4000개에 달했다.
1880년대 도서관 이용자들은 주로 도시의 중산층 지식인과 그들의 자제인 학생들이었으나 1900년대로 들어서면서 도시의 하층계급 뿐 아니라 지방 군 지역 주민들로까지 확대됐다. 도서관 이용자는 도서관에서의 독서체험을 통해 근대적인 독서 습관을 몸에 익힌 독자로 성장해 독서국민의 중핵을 형성하게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912년 도서관 이용자는 전국적으로 연간 395만명에 달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독서국민을 형성하려면 읽고 쓰는 능력과 독서습관의 보급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독서 습관을 획득한 사람들에게 읽어야 할 독서 재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일을 독서국민 형성의 둘째 요건으로 꼽았다. 일본에서는 20세기로 넘어가는 그 즈음 이 두 가지 요건이 적절히 갖춰지면서 독서 습관이 몸에 밴 국민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독서는 국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독서가 개인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1세기 전 독서국민의 시대를 연 일본의 사례는 문화강국을 꿈꾸는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라동철 기자)
10. 01. 30.
P.S. 기사에도 일부 인용돼 있는데,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적은 내용을 조금 옮겨보면 이렇다(미리보기를 참고할 수 있다). 핵심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국민 의식의 형성에 '독서'가 담당한 역할의 중요성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전국 방방곡곡에 유통되는 신문이나 잡지, 서적 그리고 그것을 읽는 독자가 형성되지 않았을 경우 국민국가의 형성은 불가능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찍부터 지적되어 온 '식자율'의 문제, 즉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활자미디어를 읽을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독서 습관'의 문제, 즉 활자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읽는 독서습관을 가진 독자층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것이 곧 이 책에서 말하는 '독서국민의 탄생'입니다. <독서국민의 탄생>에선는 이 문제를 활자미디어의 유통, 사람들의 이동성 증가, 독서 장치의 보급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다뤘습니다.(5쪽)
요점은 독서국민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국민국가 형성도 불가능하다는 것. 중앙집권국가의 기반은 활자미디어의 중앙 집중체제였다는 주장이다. 일찍이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주장한 내용이기도 한데(저자가 머리말에서 가장 먼저 거명하고 있는 것도 앤더슨이다), 저자는 이를 일본의 경우는 어떠했던가란 사례를 통해 실증해보인다.
한편,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에서도 동일한 관점의 연구가 이뤄진다면"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각국의 사례를 비교해볼 수 있으리란 바람을 피력한다. 이미 천정환 교수의 <근대의 책읽기>(푸른역사, 2003)가 나와있다는 걸 알았다면 반가워했을 법하다. 비록 <근대의 책읽기>는 '독서국민의 탄생'이 아니라 '대중 독자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 거기에 <국민독자의 탄생>과 비교하자면, '독서 장치의 보급'이란 면도 자세히 다루어지진 않았다. 나가미네의 관점에서는 '무엇을' 읽었느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어디에서' 읽었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근대의 책읽기>와 더 닮은 책은 마에다 아이의 <일본 근대 독자의 성립>(이룸, 2003)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