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1840)은 작가가 재판에 붙인 서문으로도 유명한 소설이다. 그는 1841년에 결투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 페초린이 결투로 동료인 그루슈니츠키를 죽게 만들지만 정작 현실의 결투에서 사관학교 동창의 총탄에 쓰러진 것은 레르몬토프 자신이었다.

  

스스로도 불행한 인간이자 다른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든 낭만적 환멸의 주인공 페초린을 두고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고 칭한 데 대해 의견이 분분하자 따로 서문을 붙인 것인데, 특별히 마지막 구절이 유명하다.  

저자는 단지 그가 이해하는 방식대로 이 동시대인을 그려가는 일에 즐거움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러한 종류의 인간은 아주 자주 만날 수 있다. 아마도 여기에서 저자의 몫이라면 이 질병의 존재를 알리는 것일 뿐,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는 신만이 아시는 것이다! 

서문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1830-40년대 독자를 겨냥한 것으로 당대 독자들의 오독과 오해를 유감스러워 하는 내용이다.  

우리의 대중은 아직도 너무나 미숙하고 순박하기만 해서, 마지막에 교훈을 찾을 수 없는 우화라면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농담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풍자를 눈치 채지도 못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형편없는 교육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고상한 사교계나 책 속에는 노골적인 욕설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동시대 교육이 보이지는 않지만 더욱 날카롭고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이 무기는 아첨하는 척하다가 피해갈 수 없는 지점을 향해 정확한 공격을 날린다.

새로 나온 <우리 시대의 영웅>(민음사, 2009)에서 인용했는데, '풍자'라고 옮겨진 것은 원래 '아이러니'이다. 종종 그렇게 번역되지만 나는 '아이러니'는 '아이러니'로 옮겨지는 게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요는 독자들이 농담도 알아듣지 못하고 아이러니도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독서 대중을 레르몬토프는 순박한 시골 사람에 비유한다. 

우리의 대중은 마치 전쟁 중인 양 진영으로부터 온 외교 사절들의 대화를 엿듣는 시골 사람과도 같다. 즉, 그들이 서로 간의 연약한 우정을 위해 각자의 정부를 배신하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피터 싱어를 인용하면 '당신은 공리주의자로군!'이라고 혀를 차는 현학자의 태도에서 나는 '우리 시대의 조롱'을 본다. 레르몬토프는 자신의 소설에 쏟아진 비판에 이렇게 응수했다.  

불행히도 최근에 이 책은 낱말 그대로의 의미를 믿어 버리는 독자들이나 심지어 잡지들의 질타로 인해 애를 먹었다. 그들 중 몇몇은 '우리 시대의 영웅' 같이 부도덕한 인물을 한 전형으로 제시한 점에 대해 정말로 몹시 화를 냈다. 다른 몇몇은 이 인물이 작가 자신이거나 작가가 아는 다른 사람의 초상일 거라는 애매한 지적만 남겼다... 이 얼마나 낡아 빠지고 가여운 농담이란 말인가! 

타인에 대한 조롱과 혐오는 자유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수준의 것만을 본다. 그런 수작에서 '낡아 빠지고 가여운 농담'만을 읽는 것이 나의 수준이고 나의 불행이다...  

10.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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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3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3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3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3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3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3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 2010-01-0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여전히 내 눈에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착한 신부는 '윤리적 소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윤리적인 척 하는 알라딘으로 보이는 걸 어쩌나요. 그리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윤리적인 척 하는 노무현/김대중 씨는 옹호를 하면서, 윤리적일 것을 주장하는 알라디너들에게는 철퇴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도 윤리적 소비라는 전략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때로 맞는 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로쟈 씨가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것은 아니죠. 이 싸움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올바른가의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로쟈씨는 왜 문제제기를 하냐고 문제제기를 했어요. 그리고 그게 제가 불쾌한 이유입니다.

한마디로 너무 거만해요.

로쟈 2010-01-03 22:10   좋아요 0 | URL
"왜 문제제기를 하냐고 문제제기를 했어요"가 핵심인가요? 거만한 독법이 어떤 건지 시범적으로 보여주는군요.

NA 2010-01-03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스는 파리 코뮌 대중 봉기가 일어나기 전에 봉기 전략에 대해서 효과적이지 못하며 무모하다는 비판을 했지만, 막상 대중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는 함께 가서 싸웠습니다. 로쟈씨는 확실히 너무 거만하다는 겁니다.

푸하 2010-01-03 21:41   좋아요 0 | URL
으아... 최원님... 저도 님의 견해와 많은 부분 접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상대가 거만하다는 지칭은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는 말씀인가요???

최원님은 이번 댓글에서 분명 '글을 통한 실천'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도하시는 바는 분명 '알라딘불매운동'이 효과적이고 그것을 옹호하는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님의 댓글은 알라딘불매운동에 도움이 되려는 의도(맞나요?)와는 정반대의 실천적 효과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태도가 거만하다고 느껴지시나요? 그래서 싫은 거세요? 그럼 님이 거만하게 이야기하지마시길 바래요. 님의 언급이 다시 '안티로쟈'(저는 단연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의 존재를 많은 분들에게 확증하는 역할을 하게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주장을 하시려거든 최대한 예의바르게 공격성을 눅여서 깔끔하게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물론 아닐때도 있구요.) 지금이 그럴 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글을 쓰실 때(하다못해 댓글을 다실때) 전략적으로 의도한 바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쓰시길 바랍니다.

NA 2010-01-03 21:47   좋아요 0 | URL
이 정도의 공격성을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공격성이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공격성은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푸하 2010-01-03 22:12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논의를 보셨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기억하는 논쟁이 불필요하게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억에 의존하여 쓰겠습니다.)당초 로쟈님의 페이퍼에 대한 볼빨간님, 판다님, 정군님 등...이 문제를 제기했지요. 로쟈님의 인터뷰에서 나타난 "불매운동에 대한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지칭-표현"순수한 가장"-에 대해 로쟈님에게 댓글로 따져 물었습니다. 더불어 바슈타님(지금은 볼빨간님과 바슈타님이 서재를 접었습니다.)이 페이퍼로 로쟈님에 대한 '강한풍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의문제기가 과도하였는지 로쟈님은 서재를 잠시 쉬신다는 포스트를 올리셨지요. 아마도 그때 남기셨던 포스트의 내용엔 로쟈님이 (이것도 제 기억입니다. 틀릴 수 있지만 쓸께요.) 관망조차 '기회주의'매도되고 로쟈에 대한 격문도 나오니 자숙하는 의미에서 좀 쉬겠습니다.'의 요지로 글을 남기시고 서재를 접으셨지요.

......

제가 파악한 상황을 전제하고
제가 논쟁에서 많이 아쉬웠던 부분은 로쟈님이 평소에는 자신에 대한 '오독'(로쟈님의 관점에서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로쟈님이 느끼시는 것과 주장을 간단히 핵심만 짚어서잘 이야기 하셨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진술의 참과 거짓을 떠나) 평소처럼 로쟈님은 볼빨간님과 바슈타님 판다님 등에게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잘 이야기 하셨을 수도 있는데 이 때는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로쟈님의 반응이 이해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래 댓글에서도 남아있지만 로쟈님의 인터뷰에 대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내용과는 다르게 공격성을 담고 있고 또한 재차 하시는 질문들이 마치 취조하듯이 이루어진 감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로쟈님이 그렇게 반응을 보이신 것 같기도 하구요.(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여기서도 로쟈님 정도면 가볍게 넘기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공격성을 드러내는 분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또 공격성을 드러내는 분이라고 하더라도 그분들의 주장은 분명 생각하고 논의해야 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로쟈님의 입장에 온전히 설 수 없기 때문에 '안티로쟈'의 존재를 느끼시는 로쟈님의 견해에 반박하기가 어렵습니다만, 나름 알라딘의 공기에 익숙한 한 사람으로서는 저는 '알라딘불매운동'과정에서 로쟈님이나 혹은 다른 블로거들에 대한 무작정 안티, 밑도 끝도 없는 안티는 없거나 매우 적다고 생각합니다.

로쟈님이 자신에 대한 안티가 있다고 주장하는 핵심에 자신을 향한 공격성, 그것이 전제하는 로쟈님에 대한 '오독', 소통불가능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저는 다르게 생각하지만요.)

이와 같이
제가 파악한 맥락에서 최원님의 '공격성'이 담뿍 담긴 댓글은 로쟈님에게 그리고 지금 알라딘에 안티가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실제로 안티가 있음을 '확증'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큽니다. 그러니 댓글을 쓰시려거든 댓글이 파급하게 될 효과나 상황을 고려해서 쓰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파악한 상황이 정답이라고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키릴 2010-01-04 12:26   좋아요 0 | URL
푸하님, 최원님과 로쟈씨가 논쟁하고 있잖습니까. 그걸 좀 지켜보려 했는데, 푸하님이 끼어들어 마치 자신이 불매진영을 대표하는 사람처럼 최원님의 말을 저지하면 어떻게 합니까? 참고로 저는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불매 관련 푸하님의 입장도 매우 모호해 보입니다)입니다만, 최원님이 언급하신 '공격성'에 크게 공감합니다. 지금 하시는 행동이 푸하님이 줄곧 외치는 '예의'에 해당한다고 보십니까? 푸하님이 마치 토론장의 사회자 역할을 하는 꼴이군요.

푸하 2010-01-04 13:51   좋아요 0 | URL
제가 월권(부당하게 사회자처럼 행동한 점)을 했네요.
나중에 로쟈님에 대한 제 생각을 따로 포스팅하려고 했는데 최원님의 글에 대해 쓰다보니 혼재되었네요. 분리해서 쓸수도 있었는데 어찌되었는지 그리 못했어요. 키릴님의 지적 감사합니다.
적절한 방식으로 제 의견을 밝히지 못한점 (로쟈님) 죄송합니다.

키릴님, 키릴님은 최원님의 공격성에 공감하셔서... 그리고 최원님과 로쟈님이 논쟁하려는 상황에서 제가 불매운동을 대표하는 사람처럼 끼어들어 흐트려놓았다고 저를 비판하시는 건가요? 제가 개입하든 하지 않든 최원님은 본인이 가진 생각대로 계속이야기 하실 수 있는 것이구요. 제 언급은 최원님에 대한 것이고 그걸 수용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최원님의 몫입니다. 행동의 최종 책임은 행동의 당사자가 지지만 그 전에 의견교환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닌가요? 그점에서 님의 언급-푸하가 최원님의 말을 저지한다는-은 적절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를 제약합니다. 키릴님도 저에게 하는 말씀이 사회자 역할을 하지말라는 언급이기도 하시니까요. 그리고 제가 불매운동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시는데 그런식으로 글을 쓰진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지닌 생각에 충실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키릴님도 제 입장이 모호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 다른 이야기이지만 입장이 모호한 것은 나쁜 것인가요?

2010-01-03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3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3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3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phie 2010-01-04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도 아이러니라고 번역한 것이 더 이해하기가 쉽네요. 서문에 나온 유명한 구절도 흥미롭고요. 어설픈 해법을 찾으려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꼽아놔야겠네요. 그런데 어째 러시아에서 쓸만한 작가는 다 결투로 목숨을 잃는 것 같네요... 거 참.

로쟈 2010-01-04 23:55   좋아요 0 | URL
푸슈킨과 레르몬토프가 대표적인데, 그 다음엔 다행히도 드뭅니다.^^

빵가게재습격 2010-01-05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거실바닥에 붙여놓은 껌을 낑낑거리며 떼고는, 눈내리는 출근길도 조금 걱정하며, 소박하게 새해인사도 드릴겸해서 서재에 들렸다가...이런, 깜짝 놀랐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는 것 같네요.-너무 소심한가요?^^- '알라딘 불매 운동'에 관련되어 이렇게 놀라운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모든 논란을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불만감을 털어 놓으시는 분들의 출발지점에 그리 큰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민주적인 가치를 옹호해 왔던 로쟈님의 이 무덤덤한 반응(혹은 약간의 빈정같은?)이라니' 정도 아닐까요.-그 문제는 로쟈님이 이미 답하셨고, 저도 그 답변에 공감합니다.- 그것에 '안티로쟈'나 '6년간의 블로거 생활로 무슨 덕을 쌓은 것인지 심각하게 회의' 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순이 있다면 해소되겠죠. 의지가 필요하겠지만요. 새해 인사를 하러 와서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건강하셔야 합니다.^^

로쟈 2010-01-04 23:57   좋아요 0 | URL
정치적 입장은 마치 최종심급처럼 인간을 규정하는 것 같습니다. 자초지종은 저도 적었지만 본의 아니게 무슨 원흉처럼 돼버려서 씁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