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경향신문의 '책동네산책' 칼럼을 옮겨놓는다. '책을 윤리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문제를 다루면서 '알라딘 불매운동' 얘기도 언급하고 있다(개인적으론 며칠 전에 기자의 몇 가지 질문에 답한 바 있다). 개별적인 사안이지만 사실 출판계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물류쪽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이건 언론이나 방송쪽도 다 마찬가지이며(대다수 방송작가와 영화 스탭이 비정규직이다), 강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의 비정규 교수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덜 열악하지 않다(대학의 경우라면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이 수업거부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하긴 자칭 'CEO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어느 나라에서는 소수의 '간부'들을 제외하곤 국민 대다수가 '비정규직' 직원 정도로 간주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윤리적 소비'의 문제는 현재의 자본주의 국가체제의 '토대'와 연결된 전면적인 문제다. 어떤 해법이 가능할까? '고등어'를 금하는 것이 해법일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경향신문(09. 12. 26) 비정규직이 만든 책 ‘윤리적 소비’를 논할 수 있는가
독일에 살고 있는 임혜지씨는 그의 책 제목 <고등어를 금하노라>(푸른숲)처럼 식탁에 고등어 반찬을 올리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그들이 사는 지역까지 생선이 운반되려면 많은 연료가 소비되므로 생선을 먹는 것은 지구온난화에 일조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임씨네는 과일도 제철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다. 농산물을 살 때는 원산지가 어디인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환경을 중심으로 한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윤리적 소비는 환경과 개인의 건강을 지키고 노동과 무역에서 정의와 공정함을 이룩하기 위해 소비활동을 스스로 규제하는 행동을 말한다.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터졌을 때 벌어진 불매운동 역시 적극적인 윤리적 소비에 속한다.
최근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책을 윤리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발단은 비정규 노동자 김모씨가 알라딘으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지난달 초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형식상 인력 파견업체에 고용된 사람인데 파주에 있는 알라딘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그런데 지난 9월 알라딘의 인력감축 통보를 받은 파견업체가 김씨에게 더 이상 알라딘에서 일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김씨는 반발했다. 현재는 고용 및 해고 과정의 적법성 문제로까지 번진 상태다.
알라딘은 다른 인터넷 서점에 비해 ‘서재’라는 이름의 블로그가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책의 소비자인 독자들이 알라딘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에 책에 관한 서평들을 적극적으로 올리면서 하나의 지식공동체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런데 김씨 소식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알라딘 블로거들에게 알려졌다. 블로거들의 초기 반응 가운데는 ‘다른 인터넷 서점도 아니고 알라딘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는 비난이 많았다. 인터넷 서점 개척자인 알라딘은 그간 사회적 공익에 이바지하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알라딘도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비정규 노동자를 양산하는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실망감과 분노였던 것이다. 블로거들은 알라딘 측의 공식 해명과 사과, 김씨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비정규 고용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서재를 문닫겠다는 블로거까지 나왔다.
알라딘 측에서는 대표가 나서서 사과했다. 하지만 김씨와 관련해 불법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수기와 비수기가 극명한 상황에서 비정규 노동력의 고용은 불가피하지만 앞으로 비중을 줄여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에서부터 블로거들의 입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정도 사과와 해명으로 족하다는 반응, 다른 인터넷 서점은 더 심할 텐데 알라딘만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반응, 김씨 문제의 해결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 등 다양했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가 알라딘만의 문제는 아니다. 출판계 역시 비정규직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은 책을 내는 출판사도 이런 책을 유통시키는 서점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윤리적 소비의 기준을 비정규직의 손을 거치는 책은 사지 않겠다는 데 둔다면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책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래서 김씨 사건은 책에 담긴 내용과 책이라는 상품 사이의 괴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김재중 기자)
09. 12. 25.
P.S. 덧붙여 지난주 '한겨레21'의 기획특집 "12명의 문화평론가가 뽑은 ‘사소해서 더 가치 있는’ 올해의 문화계 뉴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379.html) 가운데 출판계 뉴스를 옮겨놓는다. 나도 청탁을 받고 무순으로 세 가지 뉴스감을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알라딘 불매운동'이었다. 출판쪽 기사 선정엔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도 참여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1. YES24, 1조원 매출 온라인 서점 매출 1위인 YES24의 2008년 매출액은 2996억원으로, 2007년의 2485억원보다 20.56% 성장했다. 올해는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지만 이 비율로만 매출이 성장해도 2015년에는 1조2천억원이 넘는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이해 YES24는 자신들이 5년 안에 1조원 매출을 기록할 수 있지만 그것을 7년으로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과도한 집중에 따른 폐해를 스스로 의식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2. 웅진지식하우스 620억원 매출 국내 단행본 출판사 중 매출액 선두를 달리고 있는 웅진지식하우스가 올해 6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웅진지식하우스의 지난 3년간 성장 속도를 볼 때 2011년에는 1천억원의 매출을 충분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1천억원은 1만원 정가의 책 1천만 권이다. 10개 출판사가 도매상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현재의 구조는 머지않아 5개 출판사로 줄어들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3. <로쟈의 인문학 서재>,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상 수상 한 온라인 서점의 서재 블로그에 연재된 글 가운데 의미 있는 글들만 골라 펴낸 이 책이 제50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저술상을 받았다. 이것은 지식체계가 완전히 잡힌 다음 교과서적으로 정리해 문자로 기록하는 ‘황혼의 글쓰기’보다 정보가 광속으로 날아다녀 ‘모든 것이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현실에서 눈앞에 주어진 정보들을 연결한 ‘브리콜라주’적인 지식을 문자로 기록하는 ‘대낮의 글쓰기’가 중요해졌음을 학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로쟈 인터넷 서평꾼
1. 아직도 읽을 수 없는 레비스트로스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서 잠시 화제가 됐다. 한데 ‘구조주의 인류학’을 대표하는 그의 대표작, <친족의 기본구조>와 <구조인류학>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고 있다. 이유야 장사가 안 되거나, (그와 연관해) 역자가 없거나, 관심을 가진 출판사가 없기 때문일 터. 많은 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 단계 출판 역량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2. 이렇게 많은 <안나 카레니나> 지난 2007년, 영어권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문학작품 1위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였다. 그걸 고려한 듯 이번에 새로 나오기 시작한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첫 권은 <안나 카레니나>였다. 특이한 것은 올해 민음사와 작가정신에서도 <안나 카레니나>를 새롭게 번역 출간했다는 것(작가정신판은 번역상의 문제 때문인지 현재 자체 품절). 거기에 대중적인 입문서로 석영중 교수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까지 출간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범우사판의 <안나 카레니나> 정도였던 걸 고려하면 ‘올해의 뉴스’감이다.
3. 알라딘 불매운동 인터넷 서점계에서 매출로는 4위쯤이지만 서재 블로거들의 활동은 가장 활발한 ‘알라딘 서재’에서 지난달부터 알라딘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가을 인력도급업체 소속으로 알라딘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알라딘은 앞으로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불매운동에 참여한 알라디너들의 화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가 68혁명의 구호였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