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서 박혜영 교수의 '시대를 읽는 문학' 칼럼을 옮겨놓는다.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정치가 토마스 제퍼슨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상업과 농업에 대한 그의 생각이 흥미를 끈다(나도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장사꾼들의 자유'와 '농부들의 자유'를 대비시켜서 자유의 문제를 다룬 바 있다). 하지만, 제퍼슨에 관한 책을 찾아보니 '썰렁'하다. <토마스 제퍼슨의 이해>(세종출판사, 2005) 정도인데 그나마 품절된 상태. 캠브리지 컴패니언 시리즈의 <토마스 제퍼슨>과 <게티즈버그 연설, 272단어의 비밀>(돋을새김, 2004) 등의 저자 게리 윌스의 <미국의 발명> 정도를 참고문헌으로 찾아놓는다. 윌스의 책은 번역되면 좋겠다.


한겨레(09. 11. 07) '자본의 애완견’ 민주주의에 바치는 추도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이해하는 게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인데 왜 용산참사의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야 하는지, 왜 농민들이 아우성을 치며 반대하는데도 4대강 사업으로 여의도의 13배가 넘는 옥토를 막무가내로 절단해야 하는지, 나아가 왜 납세자들의 허락도 없이 내년도 급식비 지원을 갑자기 중단하여 25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당장 굶주리게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른바 민주주의 시대인데 왜 데모스(demos)인 우리들은 이토록 무기력하게 되었는가? 우리 시대의 이 ‘불가사의’한 민주주의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토머스 제퍼슨의 경제사상은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미국 민주주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부도덕한’ 민주주의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몬티첼로의 성인’으로 불렸던 제퍼슨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제3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건국 초기 미국 민주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정치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민주주의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와는 전혀 다른 경제체제를 전제로 한 것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국가를 건설함에 있어 어떤 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제퍼슨은 이른바 ‘해밀턴주의자’로 불리던 중상주의자들과 대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공업에 토대를 둔 강력한 선진국을 만들려던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과 달리 초대 국무장관이었던 제퍼슨은 소규모 농업에 토대를 둔 도덕적인 민주국가를 꿈꾸었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농부들이야말로 가장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덕성스러운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도덕성은 이 목적을 위해 형성되어야 한다. 사회와 관련하여 옳고 그름을 인식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도덕적 능력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도덕적인 사례를 농부와 교수에게 던져보라. 전자가 후자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농부는 교수처럼 인위적인 법칙에 이끌려 나쁜 쪽으로 빗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땅을 돌보며 사는 농부가 땅에 대한 아무 감각도 없이 인위적인 논리만 만들어내는 교수보다 훨씬 도덕심이 뛰어나다는 제퍼슨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다. 사실 교수는 궤변만 늘어놓을 뿐 옳고 그름을 판단할 도덕능력이 없기 일쑤라는 것은 이미 지난번 총리지명 청문회에서도 다 드러난 일이다.
도덕적인 사회의 근간은 상업이 아닌 농업이라는 생각에서 제퍼슨은 해밀턴이 주장한 중앙은행 설립에도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은행이 설립되면 주기적인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통해 은행가들이 사람들의 돈을 다 털어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제퍼슨은 미국 독립의 정당성과 신생 민주국가의 정통성은 정치권력뿐 아니라 모든 경제권력도 인민에게서 나오는 그런 민주주의의 수립에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나는 상비군보다도 은행이라는 기관이 우리의 자유에 더 위험천만하다고 믿는다. 만약 미국 인민들이 자신들의 화폐발행권을 사설은행이 통제하도록 허용한다면 처음엔 인플레이션으로, 그다음에는 디플레이션으로, 은행과 은행 주변을 맴돌며 성장한 기업들이 모든 재산을 인민에게서 강탈하여 마침내 아버지들이 정복한 미 대륙에서 그 자식들은 눈떠 보니 노숙자 신세가 되도록 만들 것이다. 은행으로부터 화폐발행권을 빼앗아 원래 귀속되어야 마땅한 인민에게로 돌려주어야 한다.”
주권재민과 함께 경세제민이 민주주의의 근간임을 적시한 제퍼슨의 생각이 옳았음은 지금도 반복되는 월가의 파생상품 남발과 미국 은행의 도미노 파산공포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제퍼슨의 소망과 달리 경세제민의 핵심인 화폐발행권은 결코 인민의 손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달러 발행과 미국 통화정책을 쥐락펴락하는 연방준비은행이 경세제민보다는 상업적 이해관계에 철저할 수밖에 없음은 12개의 준비은행의 우두머리 격인 뉴욕준비은행의 대주주가 바로 체이스맨해튼과 시티은행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퍼슨이 은행을 반대한 이유는 국가건 개인이건 간에 은행의 핵심 기능이 바로 돈을 벌기 위해 빚을 늘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국채건 사채건, 투자건 대출이건, 융자건 저당이건 간에 모든 빚은 원금 플러스 이자이기에 전체 통화량은 항상 화폐발행량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즉 이자로 인해 처음부터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는 경세제민이 아닌 ‘위기관리’가 경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으며, 돈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데도 항상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아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개인이건 국가건 언제나 무기력하게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게 된다.
빚에 토대를 둔 경제체제가 지속되는 한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독립선언서’에 명시된 ‘자유’와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런 경제는 당연히 사회를 부도덕하게 만든다. 제퍼슨은 “공공 부채만큼 정부를 그토록 타락시키고, 국가를 그토록 부도덕하게 만들 동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채는 외부의 어떤 적보다도 더 심각한 파멸을 내부에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이 부도덕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하고, 입법부, 사법부가 있다고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모든 권력의 집중을 막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자유시장의 창녀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경제 권력부터 사람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것이다.(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09. 11.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