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온 책이긴 하지만 짐작에 지난 한달을 통틀어 학술사전 분야에서 가장 의미있는 책이라 할 만한 것은 <칸트 사전>(도서출판b, 2009)이다. 현대철학사전 시리즈의 첫 권이지만, 올초에 나온 <헤겔사전>에 이어 두번째로 나왔다. 이제 비로소 '칸트에 헤겔까지' 독일 관념론을 독파하는 데 필요한 연장을 다 구비하게 된 듯싶다. 지젝의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도서출판b, 2007)을 다시 손에 들어도 좋지 않을까.

 

일본학계의 칸트연구 성과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도 책의 장점인데, 용어 번역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백종현 교수의 칸트 번역서들서 사용된 용어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한 가지 공부이겠다. 책을 손에 넣기 전에 일단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문화일보(09. 10. 12) ‘칸트의 모든 것’ 한권의 책으로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칸트사전’(도서출판 b)이 출간됐다. 출판사에서 기획한 현대철학사전 중 제1권으로, 올해 초 나온 제2권 ‘헤겔사전’에 이어 출간된 이 사전은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158명의 칸트 연구자들에 의해 집필된 ‘칸트사전’(코분도·弘文堂)을 독일 철학 연구자인 이신철 건국대 강사가 완역한 것이다. 사카베 메구미(坂部惠) 일 도쿄(東京)대 명예교수와 아리후쿠 고가쿠(有福孝岳) 교토(京都)대 통합인간학부 교수 등이 편집고문을 맡고 구로사키 마사오(黑崎政男) 도쿄여자대 문리학부 교수 등이 편집위원을 맡아 1997년 펴낸 ‘칸트사전’에는 일본의 칸트 연구 역량이 총집결돼 있다.

칸트 철학의 기본개념들과 칸트 연구에서의 핵심사항 등 이 사전에서 다루고 있는 항목들은 800여개에 달하며 ‘관념론’·‘대립’이나 ‘독일의 칸트 연구’ 등과 같이 철학사의 주요한 개념들과 연구사의 중요 쟁점들은 짧은 논문 한 편 분량으로 상세하게 해설돼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칸트의 강의록들에 대한 해설 및 칸트 연구와 관련된 다양하고 폭넓은 참고 자료들이 실려 있다. 특히 칸트 철학이 일본에서 수용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우리에게 칸트에 대한 ‘창조적 독해’의 방향을 시사하기도 한다. 역자가 덧붙인 ‘한국어판 칸트 저작 및 연구문헌 일람’도 부록으로 수록돼 있다.

‘순수이성비판’ 등 3권의 비판서를 남긴 칸트의 철학은 그 이전의 철학사 전체가 그곳으로 흘러들어오고 또 그 이후의 모든 철학들이 어떤 모양으로든 그곳으로부터 발원하고 있는 하나의 광대한 호수에 비유된다. 특히 칸트의 사유 속에서 철학적 사유의 모든 근본문제들과 기초개념들이 다듬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칸트 철학에 대한 독해가 여러 철학적 사유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나 정작 칸트 철학에 대한 이해는 지난한 과제이다. 칸트가 다루고 있는 주제의 방대함과 가닥을 찾기 어렵게 얽혀 있는 개념들의 그물망, 칸트 철학에 대해 서로 대립하는 다양한 해석 때문이다. 이 점에서 텍스트 비판에 기초해 칸트 철학의 의의를 현대의 관점에서 재발견하려고 노력한 이번 사전은 칸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나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사는 내년에 현대철학사전 시리즈로 ‘마르크스사전’과 ‘니체사전’, ‘현상학사전’을 잇따라 출간할 예정이다.(최영창기자)  

09. 10. 17.  

 

P.S. 최근에 나온 칸트 번역서로는 <형이상학적 진보/ 발견>(이제이북스, 2009)가 있다. 연구서로는 칸트 전공자인 강영안 교수의 <칸트의 형이상학과 표상적 사유>(서강대출판부, 2009)가 저자의 칸트 연구를 집약해놓은 책으로 기대를 갖게 한다. 덧붙여, 칸트 연구서로 빨리 번역되었으면 싶은 책은 승계호 교수가 쓴 입문서 <칸트>(컨티뉴엄, 2007).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 시리즈의 하나인데, 한국인 학자가 이런 저명한 시리즈의 저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흡족하고. 국내에 출간된 책으론 클레어 콜브룩의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그린비, 2008)이 이 시리즈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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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0-17 21:31   좋아요 0 | URL
로쟈 님은 18~19세기 독일 관념론에 관한 책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에 어떤 것이 있는지요?

로쟈 2009-10-17 22:16   좋아요 0 | URL
코플스턴 신부의 책이 나온 게 있네요. 시간이 나면 대출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고진에게 칸트를, 지젝에게 헤겔을 배운 형편이라서 좀 변칙 공부를 한 거죠. 무얼 추천할 만한 자격은 못 되구요...

노이에자이트 2009-10-18 00:23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mirror 2009-10-18 18:10   좋아요 0 | URL
칸트에 대해서 국내에 출간된 책 중 가장 추천할 만한 입문서는 문예출판사에서 나오고 오트프리트 회페가 지은 '임마누엘 칸트'입니다. 이 책은 독일에서도 가장 많이 추천되고 읽히는 칸트 입문서입니다. 회페는 손꼽히는 칸트 연구자 중의 하나이자, 또한 독일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정치철학자 중 하나입니다. 최근에 나온 영어권의 주목할만한 입문서는 Paul Guyer의 "Kant"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칸트 연구의 대가라 할 수 있습니다. 좀더 짧은 것을 꼽으라면, Allen Wood가 쓴 입문서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대규모 영어판 칸트 저작집인 캠브리지판의 편집자들이자 순수이성비판 판단력 비판등의 번역자이기도 합니다.

로쟈 2009-10-18 18:16   좋아요 0 | URL
네, 회페의 책은 많이들 추천하시더군요. 가이어의 <판단력 비판> 연구서는 저도 갖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순수이성비판> 공역자라는 건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mirror 2009-10-18 18:48   좋아요 0 | URL
코플스톤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으나, 그 책을 칸트나 헤겔의 입문서로서 추천할만한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칸트나 헤겔의 전문가도 아니었고, 또한 50여년 전의 영미의 칸트 헤겔 연구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영미에서도 좋은 칸트 헤겔 연구서들과 입문서들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 50년전 비전문가가 쓴 대규모 철학사 중 일부가 지금 출간되어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더구나 오늘날 한 사람이 철학사 전체를 서술하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그 만한 능력을 한 사람이 갖는다는 것 자체가 초현실적이니까요(예외라면, 앤소니 케니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비트겐슈타인 각각에 대해서 업적을 남긴 학자니까요.)제가 본 바로는 오늘날 코플스톤의 책이 칸트 헤겔의 입문서로서 추천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읽어본 바로는, 그가 쓴 철학사 중 경험론은 뛰어났으나, 합리론은 정말이지 흉악한 수준의 책이었습니다.

로쟈 2009-10-18 18:5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영미권의 최근 연구서들이 번역돼 있는 것도 아니기에 독자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 로마 철학사>만 갖고 있는데, 영어권에서는 이미 잊혀진 철학사가인가 보네요...

mirror 2009-10-18 19:00   좋아요 0 | URL
새로 나온 영미권의 철학사를 들자면, 90년대 말에 루틀리지 출판사에서 9권짜리가 새로 나온바 있습니다. 수많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쓰여진 책이죠. 요즘은 이런 류의 철학사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철학사보다는 개별 철학자 입문서가 좀더 추천될 수 있을 것 같고요, 각 철학자들에 대한 캠브리지 컴패년 시리즈는 높게 평가받는 입문서들이기도 합니다.
칸트에 대해서는 회페책이 입문서로서 충분할 것 같고, 문제는 헤겔이지요. 헤겔에 대한 입문서는 다른 나라 말로도 흔치 않고, 있어도 입문서로서 기능하지가 의문입니다. 이것은 입문서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 헤겔 철학 자체의 특성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오래전부터 높게 평가받은 책은 Charles Taylor의 "Hegel"라는 책입니다. 75년에 나온 책이지만, 즉시 독일어로 변역되어 독일어권에서도 널리 읽혔죠. 500페이지 가량 되는 두틈한 책입니다. 헤겔 철학의 입문서가 주제별로 접근하면 피상적이 되고, 헤겔의 주요저작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어렵게 되는,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로쟈 2009-10-18 19:03   좋아요 0 | URL
네, 그러나 여전히 칸트/헤겔은 전공자나 연구자들을 위한 철학자로 남을 듯합니다. 한국의 일반 독자가 (한국어로) 칸트/헤겔을 읽는 게 어떤 의미가 있고, 과연 읽을 수는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mirror 2009-10-18 19:17   좋아요 0 | URL
그 의문은 매우 타당한 의문이시고요, 그 의문의 대상이 칸트와 헤겔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요.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그렇습니다. 한국의 철학계 수준이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의미는 타인이 있다고 해서 있게 되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 발견해야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철학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요. 다만 문학의 독자층이 철학보다 훨씬 많고, 또한 접근가능성이 용이하다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쉽게 얻어지는 지식이 있겠습니까? 모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로쟈 2009-10-18 19:20   좋아요 0 | URL
원론적으론 그런데, 저는 그래도 일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철학서와 동료들을 상대로 쓰여진 철학서는 구분된다고 봅니다. 칸트나 헤겔이 후자의 경우고요. 직장인이나 주부들에게 칸트를 읽으려면 노력을 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무리죠. 제대로 이해하려면 독어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짧지 않습니까?..

mirror 2009-10-18 19:43   좋아요 0 | URL
영어권이나 독일어권을 보아도 직장인이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철학 소개서는 극히 드뭅니다. 그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듯 합니다. 저는 철학이 그렇게 쉽게 소개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또한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어쩔 수 없는 철학의 특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교양으로 칸트 헤겔을 일반인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알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좀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칸트 헤겔의 이해를 위해서 독일어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무지를 드러내는 발언들이지요. 영어나 프랑스어로 칸트와 헤겔의 중요한 전 저작이 잘 번역돼 있습니다. 또한 칸트와 헤겔의 연구 수준에 있어서 영어권과 불어권이 독일에 뒤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각기 나름대로 전통을 가지고 발전해 왔고, 특히 요즘 영어권은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죠. 한국말로도 칸트는 이미 2세대에 걸친 훌륭한 번역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헤겔인데, 최근에 새로 번역되어 나온 책들이 어떠한지 제가 지금은 확인을 안 해서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을거 같습니다. 이와 별개로 헤겔에 대한 접근은 어떤 말로 번역되어도 어렵습니다. 정신현상학을 원문만 읽어도 쉽게 이해되도록 번역했다,는 말을 누군가 한다면, 전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상상이 되지 않는군요. 저는 일반인들에게 헤겔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로쟈 2009-10-18 19:54   좋아요 0 | URL
그게 '철학사'인지 '서양철학사'인지에 따라서도 문제는 달라질 듯해요.^^; 한 푸코 전공자가 예전에 데리다는 한국어로 번역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소개는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얘기도 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이해한 만큼 더 쉽게 설명/번역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봅니다. 가령 헤겔이 보다 뛰어난 문장력을 갖고 있었더라면, 이라고 가정해볼 수는 있는 것이죠. 그의 독특한 스타일에 의해 굴절된 언어 사용도 고려해볼 수 있고요. 헤겔이 난해하더라도 중요한 철학자라면 저는 '읽을 수 있는 헤겔'을 보여주는 것이 학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난해성이 진정성의 표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mirror 2009-10-18 20:03   좋아요 0 | URL
번역될 수 없는 철학책이 있다는 말을 저는 믿을 수가 없군요. 학자가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헤겔의 문장들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습니다. 헤겔은 칸트에 비하면,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죠. 헤겔의 난해함은 내용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문장의 스타일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해석과 번역은 다르지 않을까요? 헤겔 해설서를 가능하면 쉽게 쓰라는 요구는 타당하죠. 그러나, 번역을 원문과 동떨어진 창작을 하라는 것은 좀 무리한 요구지 않을까요? 원문이 난해하면 번역서가 난해한 것이 당연합니다. 물론 주석을 통해서 그것을 완화하라는 요구는 당연한 요구이지만, 원문 자체까지 손대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철학의 대부분은 쉽게 해설서를 써도 제대로 소개하자면 주부들과 직장인은 접근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용 자체가 난해한데, 쉽게 될 수 있을까요? 모든 지식이 쉽게 다 서술될 수 있다는 믿음에 쉽게 동의되지 않습니다.

로쟈 2009-10-18 20:36   좋아요 0 | URL
철학이 세계에 대한 개념적 이해라면 그것은 다른 용어로 재구성될 수 있고, 압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래서 한자도 손댈 수 없다면, 시적이고 문학적인 철학이란 생각이고요. 저는 난해함 자체에 대해선 좀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단 이해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난해하지 않다고요...

펠릭스 2009-10-18 22:57   좋아요 1 | URL
어떤 이론이나 가설 그리고 분명치 않은 정신세계와 인간의 심리 등을 다방면에서 연구합니다. 그것을 이해 못할(?)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것들을 중역하는 사람들의 오류나 오해 등의 자의적인 첨삭으로 인해 더 홀란 스러울 경우도 있습니다. 대중을 위한 인문학적인 전문성이 과연 필요 있겠는가의 우려 또한 의미있습니다.

하지만 난해하다고 그것을 받아 들이려는 독자층 확장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합니다. 어쩌면 이론이나 사상이 어려워서 접근하지 않는게 아니라 중역되어 대중에게 가까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있으면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전문가구룹(교수 등)을 존경한 것은 그들의 사회적 역활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인문학과 노숙자 인문학도 있지만요. 평생 들어보기만 했던 평양을 통일하기 어려워 대중은 기대말며 특수목적의 외교관이나 정책상 다녀오면 족하다며 통일불가능론을 편다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구한말이후 세계문화와 사상을 접하는데, 번역이야 말로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해왔습니다. 앞으로 대중을 위한 번역과 해설 등으로 많은 인문학 관련 작업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사회구조상 중간층의 생각이 확장될 수 있는 인문학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