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 허구적 구성물임을 주장한 <상상의 공동체>(나남출판, 2003)의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의 후속작이 출간됐다. <세 깃발 아래서>(길, 2009).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이 그 부제다. 우연찮게도 이번 가을호 <창작과비평>에는 앤더슨의 민족주의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문이 번역돼 있는데, 나란히 읽어보면 흥미롭겠다. 리뷰기사를 <창작과비평>에 실린 논문을 소개하는 기사와 같이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08. 29) 반식민 민족주의 운동 지핀 유럽 아나키즘

<세 깃발 아래에서>는 <상상의 공동체>(1983)의 지은이인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73·사진)의 2004년 저작이다. 이 책은 앤더슨을 세계적인 학자 반열에 올린 <상상의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종의 후속작이다. <상상의 공동체>에서 그는 근대 민족주의(내셔널리즘)가 18세기 말~19세기 초 라틴아메리카에서 출현해 유럽에서 발전했음을 입증함과 동시에 그 민족주의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결속해주는 문화적 접착제 구실을 했다고 주장했다. 후속작에서 앤더슨은 이렇게 형성된 민족주의가 19세기 후반에 동남아시아 식민지역에서 급속히 번지게 된 이유와 그 과정을 세계사적 시야에서 살핀다.    

  

전작 <상상의 공동체>에서와 마찬가지로 앤더슨이 이 책에서 동남아시아를 주요 사례로 끌어들인 것은 그 자신의 출생 이력과도 관련이 있다. 1936년 아일랜드 출신 아버지와 잉글랜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중국 윈난성에서 태어난 앤더슨은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를 키워준 보모는 베트남 출신 여자였다고 한다. 장성한 뒤 아버지가 다녔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한 앤더슨은 21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학에서 정치학을 연구했다. 그 후 지금까지 이곳에 거점을 두고 인도네시아·타이·필리핀 지역 연구를 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여전히 아일랜드 국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고향을 국적으로 간직한 것은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그의 어떤 애착을 암시한다.  

제목에 쓰인 ‘세 깃발’은 이 책이 지닌 지역적 성격과 세계적 성격을 동시에 상징한다. 첫 번째는 스페인과 미국에 대항해 혁명 전쟁의 포문을 연 필리핀 지하운동단체 ‘카티푸난’의 깃발이며, 두 번째는 당시 유럽 급진주의 혁명운동을 주도하던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이고, 세 번째는 스페인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이던 시절부터 쓰인 쿠바의 깃발이다. 이 세 깃발은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이 유럽 아나키즘 운동, 나아가 쿠바의 반식민 독립운동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부제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은 그런 세계적 차원의 연결 지점을 가리킨다.

앤더슨 저작은 추상적인 개념 설명이 아닌 구체적인 사례 분석이 중심인데, 이 책에서는 사례 분석이 사실상 내용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필리핀 민족운동에 결정적 기여를 한 세 사람을 중심으로 삼아 유럽과 쿠바의 상황을 교직함으로써 사태의 전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세 인물, 소설가 호세 리살, 인류학자·언론인 이사벨로 데 로스 레예스, 저항운동 조직가 마리아노 폰세는 모두 1860년대 초반에 태어나 19세기 말 이후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에서 핵심 구실을 한다. 이 세 사람 가운데 특히 호세 리살은 이 책의 사실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가 필리핀 민족운동 지도자들을 앞세우는 것은 19세기 말 필리핀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킨 선구적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 민족주의 운동에 자극을 준 것으로 유럽 아나키즘을 지목한다. 아나키즘은 당시 경쟁 이념이었던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농민에 대해 우호적이었고, ‘하찮고’ ‘몰역사적인’ 민족주의에 대한 편견도 품지 않았다. 억압적 지배질서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환영했다. 초기의 민족주의자들은 아나키즘 운동에서 든든한 국제적 동맹군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호세 리살은 1861년에 필리핀에서 태어나 1882년 식민 종주국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로 유학한다. 그곳 마드리드대학에서 철학·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하지 않고 파리와 런던 등지에 머물며 의학을 공부하고 유럽의 지식인들과 지적·정치적으로 교류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기에 두 편의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다. 스페인어로 쓴 두 소설 <놀리 메 탕헤레>(1887)와 <엘 필리부스테리스모>(1891)는 “유럽 바깥에서 쓰인 최초의 선동적인 반식민 소설”이었으며, 당대 서구문학의 아방가르드 양식을 효과적으로 차용한 최정상급 작품이었다.   

리살은 자신의 두 번째 소설에서 이렇게 쓴다. “스페인어를 하는 한 줌의 사람들이여, 스페인어로부터 무엇을 얻으려는가? 독창성을 죽이고, 다른 마음에 너희 생각을 종속시키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대신에 진짜 노예로 변질시키려는 것인가! 언어야말로 한 민족의 사상 그 자체인 것이다.” 리살의 소설들은 필리핀 현지로 들어와 반식민 민족운동의 상상력을 폭발시킨다. 1892년 필리핀으로 돌아온 리살은 4년 뒤 터진 반스페민 민족해방전쟁 과정에서 처형당한다.  

 

지은이는 필리핀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당시 일본·중국 지식인들과도 교류했음을 상세히 밝힌다. 특히 쑨원·량치차오·루쉰은 필리핀 민족운동의 영향을 직접 받았으며, 그들의 투쟁에서 영감을 얻었다. 옮긴이 서지원(오하이오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씨는 해제에서 “국제주의 입장이 민족주의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아님을 이 책은 무척이나 선명하게 증언하고 있다”고 말한다.(고명섭 기자) 

한겨레(09. 08. 28) 창비, 탈민족주의 확산 본격 제동 나섰다

창비 진영이 탈민족주의 담론의 원류 격인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론’을 정조준했다. 지난주 출간된 <창작과 비평> 가을호를 통해서다. <창작과 비평>은 1990년대 말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탈민족주의 담론에 대해 특집·논단 등의 꼭지를 통해 그 ‘현실적 공허함’을 이따금 지적하긴 했지만, 앤더슨의 저작을 겨냥해 직접 비판을 가하기는 처음이다.  

 

창비의 달라진 행보 뒤에는 남북관계가 위기에 봉착하고 시장근본주의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탈민족 담론의 확산을 방치할 경우 자칫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노력이나 국가를 매개로 한 공공적 실천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이런 창비의 문제의식은 ‘상상의 공동체론’을 논박하기 위해 게재한 라디카 데사이 캐나다 매니토바대 교수의 글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데사이 교수의 비판은 민족주의를 ‘문화적 구성물’로 보는 앤더슨의 시각과 그 안에 내장된 ‘유럽중심주의’에 맞춰져 있다. 민족주의의 내용은 “해당 사회의 경제적·정치적 과제들이 요구하는 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실재임에도 앤더슨은 그것을 오직 문화적인 조성물로 간주할 뿐 아니라, 제3세계 민족주의를 아메리카와 유럽의 선행 모델에 대한 ‘표절’의 산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한층 견고한 유럽중심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앤더슨의 민족주의 연구에 담긴 성과를 데사이 교수 역시 긍정한다. 민족주의의 기원을 19세기 중반의 유럽이 아닌, 18세기 후반 미국의 탈식민화 과정에서 찾음으로써 “민족주의를 언어나 종족 또는 다른 원초적 요인들에 의존해 설명하는 오랜 설명방식”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사이 교수가 볼 때 상상의 공동체론이 거둔 ‘성공’은 학술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것이다. 

요컨대 <상상의 공동체>는 신자유주의가 제3세계를 경제적으로 재식민화하는 상황에서 “학문을 탈정치화하고 민족주의를 가당찮은 문화적 박식의 일부로 만듦으로써 학문의 우경화에 일조”하고 “진보정치가 민족문제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에 반격할 필요가 절실해지는 중요한 시점에 민족주의 연구를 유럽중심적인 것으로 만들고 제3세계의 민족주의를 서구의 구성물로 규정해 그 정통성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데사이 교수는 <상상의 공동체>가 거둔 인기의 일부는 “신자유주의와 그것의 파생물인 ‘지구화’의 소산이었다”고까지 말한다.

이런 데사이 교수의 말은 창비가 앤더슨에 대한 비판을 통해 얻으려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신자유주의와의 ‘결과론적 공모’ 혐의를 추궁함으로써 탈민족주의 담론의 확산에 확실한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데사이 교수의 글을 발굴해 게재를 추천한 사람이 편집인 백낙청 교수였다는 점도 주목된다.

염종선 <창작과 비평> 편집장은 26일 “지난 3월 <아시아-퍼시픽 저널: 저팬 포커스>라는 해외 잡지에 실린 글을 백 교수가 발견해 번역게재를 추천했다”며 “편집위원들도 이 글이 탈민족주의 담론의 편향된 부분에 대한 교정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데사이 교수의 원문은 창비 영문판 누리집(www.changbi.com/english)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세영 기자)  

09.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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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8-28 23:15   좋아요 0 | URL
민족주의는 아나키즘이나 사회주의도 모두 삼켜버리는 블랙홀이라고 봅니다.사회주의가 민족해방론과 제휴하다가 결국은 민족편향으로 끝나버린 게 사실이니까요.오히려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의 해독을 저지하고 경고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뉴라이트가 일부 탈민족주의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민족주의의 유용성만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안이한 자세라고 봅니다.앤더슨 비판이 결국은 민족편향이라는 괴물을 살려주는 결과를 가져올까 염려되는군요.창비에 실린 글을 읽어봐야겠습니다.

페리 앤더슨의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도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형제가 모두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는군요.

로쟈 2009-08-29 14:08   좋아요 0 | URL
저는 월러스틴의 비판이 가장 래디컬하다고 보는데요. 그에 따르면, 대학제도 자체가, 근대적 학술담론 자체가 유럽중심적이라는 것이죠...

펠릭스 2009-08-29 15:16   좋아요 0 | URL
앤더슨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로 무장하기 위한 기초체력 단련같은 것인가요,
아니면 위성발사체로 보면 맨 위 위성체는 제국주의고, 1단연료엔진은 민족주의 같은 것인지? 문제는 발사체 맨 위에 위성말고 탄도를 올리면 안된다는 격인지 심상치가 않습니다. 또한 19세기 말 필리핀이(호세 리살) 아시아에서 최초로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킨 선구적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