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고교 독서평설에 실은 갑론을박 꼭지를 옮겨놓는다. 지난 7월호를 배송사고로 아직 입수하지 못하는 바람에 8월호의 글을 먼저 옮겨놓게 됐다. 이달엔 순전히 '8월'이란 이유에서 카뮈의 <이방인>을 골랐다. 나대로 아주 오랜만에 작품을 다시 읽고, 관련자료를 찾아보고 해서 작성한 글이다. 요 며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아침부터 생각이 났다. 

 

고교 독서평설 (09년 8월호) 뫼르소, 그는 과연 이방인인가?

세계 문학계의 신화, 카뮈
1960년 1월 4일,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숨졌다. 향년 47세. 1957년,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지 불과 3년 만의 일이었다. 카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문학과 그에 대한 기억은 카뮈를 20세기 문학의 한 신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신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작품이 그의 첫 소설이기도 한 <이방인>(1942)이다.  

알다시피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알제리의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그런데 태양이 너무 뜨거워 살인을 했다고 하여 ‘반항의 상징’이자 ‘문학사적 명사(名士)’가 되었다. 이달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 카뮈와 그의 대표작 <이방인>을 다시 읽어 봄으로써,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신화’를 조금 걷어 내 보기로 하자. 사실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단지 8월은 태양이 무척 뜨거운 달이라는 것밖에.    



20세기 최고의 문제작, <이방인>
청년 시절 카뮈는 회색 양복에 작고 둥근 펠트 모자를 쓰고 청색 바탕에 흰 물방울 무늬 넥타이를 매고서, 흰 양말에 니스 칠한 구두를 신고 다녔다고 한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사진에선 자주 담배를 꼬나문 포즈를 취했다. 그 당시 유명 배우였던 험프리 보가트(1899~1957)를 연상하게 하는 이런 멋쟁이 포즈는 물론 의도된 자기 연출이었다.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는 언제나 당당하게 보이길 좋아했고 그렇게 처신했다. 그렇다고 가난의 수치심마저 다 떨쳐 낼 수는 없었다. 그가 한 살 때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아버지가 전사(戰死)했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건 모두 남의 집 일을 하던 어머니의 몫이었다. 집에는 신문도 라디오도 책도 없었으며, 그는 학교에서 집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학교 서류에 어머니의 직업을 적어 넣어야 했을 때 ‘하녀’라고 쓰며 수치심을 느꼈고, 그렇게 수치심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에 또 수치스러워했다.  

그 당시의 여느 하층민처럼 카뮈의 어머니 또한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귀가 어두웠고 말도 약간 더듬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는 아들을 어머니는 딴 세상에서 온 이방인처럼 쳐다볼 따름이었다. 하지만 카뮈는 <이방인>의 주인공과는 달리 어머니를 평생 지극히 사랑했다. 게다가 그는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과 바다의 자식이기도 했다. 가난은 삶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해야 했지만, 축구와 독서, 연극과 사랑에 모든 젊음을 불살랐다. 그런데 대학 축구팀의 골키퍼로 활약하던 어느 날 그는 시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감기에 걸려 앓아눕게 되었다. 이는 폐결핵으로까지 발전했고, 그 바람에 대학교수를 향한 그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대신 그에겐 신문 기자의 길이 열렸다. 우리가 아는 카뮈, 곧 작가이자 연극인이며 동시에 신문 기자인 카뮈는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1939년 독일의 도발로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지만, 카뮈는 폐결핵이 재발해 참전하지 못했다. 알제리를 떠나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대신에 프랑스 문단에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을 내놓게 된다. 바로 <이방인>이었다. 이 작품이 출간된 것은 파리가 아직 나치의 점령하에 있던 1942년 7월이었다. 무엇이 ‘문제적’이었던 것일까?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평범한 샐러리맨 뫼르소는 인근 마랑고의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는다. 이틀간의 휴가를 내고 그는 몹시 더운 날 양로원을 찾아가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장례식 이튿날 그는 지중해에서 여자 친구와 해수욕을 즐기고 코미디 영화를 같이 보며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며칠 뒤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의 건달 레몽과 친구가 되는데, 이 친구와 불량배들과의 싸움에 우연히 말려들어 한 아랍 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이것이 1부의 내용이다. 재판 과정을 담고 있는 2부에서 뫼르소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상태로 재판을 ‘구경’한다. 그에게 주로 쏟아진 질문은 살해 경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보여 준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비종교적이고 비도덕적인 그의 태도는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그리고 법정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고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는 이런 ‘진실한’ 태도 때문에, 결국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어차피 인간은 죽게 마련이라는 이유에서 상고를 포기하고 사형 집행일을 기다린다. 이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부조리에 대한 화두를 던지다
‘이방인’처럼 등장한 이 작품을 놓고, 그 당시 프랑스의 작가 사르트르(1905~1980)는 이렇게 물었다. “이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사르트르는 물론 작품을 읽는 모든 독자가 품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은 삶에 대한 뫼르소의 무관심이다. 그는 삶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특별한 열정이나 고집도 갖고 있지 않다. 여자 친구인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라고 반문하자 그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는 식으로 말한다. 곧 그에게는 사랑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혹은 결혼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이 별다른 차이를 갖지 않으며 특별한 의미도 없다. 심지어 그는 재판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증언하기를 거부한다. 예컨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했다고 진술하라는 변호사의 충고도 거절하고, 검사가 증인들에게서 사건과 무관한 증언들을 유도해 내도 항의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살해 이유에 대해서도 ‘태양 때문이었다’고 진술해 비웃음을 사고, 형 집행을 앞두고 신부(神父)가 찾아와 회개를 권유해도 그는 기도조차 거부하며 반항한다.  

이러한 ‘비정상성’에도 불구하고 이방인 뫼르소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인 편이다. 이는 주로 관심의 초점이 그의 살해 행위보다는 재판 과정에 두어졌기 때문이다. 카뮈는 자신이 유행어로 만든 ‘부조리’란 말을 설명하면서, 그것은 합리성을 열망하는 인간과 비합리성으로 가득 찬 세계 ‘사이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뫼르소에 대한 재판은 부조리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만하다. 곧 재판의 합리성에 대한 독자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게 <이방인>의 법정은 뫼르소가 살인을 했기 때문에 범죄자인 것이 아니라, 범죄자이기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식으로 몰고 간다. 때문에 뫼르소는 살인을 범한 가해자이지만 이 부조리한 재판의 피해자로도 여겨진다. 검사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뫼르소의 태도를 문제 삼아서,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자는 곧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될 자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율법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판의 부조리성과 관련해 카뮈는 스스로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라고 역설적으로 비판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카뮈는 주인공 뫼르소에 대해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연기(演技)를 하지 않았을 따름이라고, 곧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즉시 위협당한다고 느끼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카뮈가 편드는 쪽은 ‘사회’가 아니라 ‘뫼르소’다. 그는 뫼르소를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으로 본다. ‘우리들의 분수에 맞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라고까지 평했을 정도다.  

이러한 카뮈의 말에서는 주인공에 대한 각별한 연대감까지 느껴지지만, 과연 그것이 뫼르소의 진실일까?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방향에서 그를 살펴보기로 하자. 소설의 결말에서, 우리는 모든 일에 무관심하고 냉담한 뫼르소와는 조금 다른 뫼르소를 만나게 된다. 바로 이런 생각을 하는 뫼르소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왜 인생이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생애를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닮아, 마침내는 형제 같음을 느끼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기 위해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사생활의 변두리에서 주변적인 인물로서 외롭고 관능적으로 살아”가는 뫼르소가 마지막에 원하는 것은 덜 외롭게 느껴지는 것, 곧 사형 집행일에 많은 사람이 자신을 맞아 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라는 구절과 조응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작품의 서두와 대조된다. 뫼르소의 이 마지막 고백이 아이러니가 아니라면, 마치 이 작품에는 두 명의 뫼르소가 등장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렇다면 이 변화의 계기는 무엇일까? 바로 사형 선고다.  

비록 사형 선고가 내려지기까지의 재판 과정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희극적이기까지 했지만,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 대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준엄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뫼르소는 고백한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아버지를 본 적이 없으므로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날 아버지는 사형 집행을 보러 갔다가 아침 먹은 것까지 토했다는 것이다. 뫼르소는 그런 아버지가 그때 싫어졌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그에겐 ‘사나이다운’ 아버지, 그래서 그에게 어떤 금지를 강요할 수 있는 아버지가 부재했다. 사회에 속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이방인이 아니고 싶었던 이방인, 뫼르소
이런 뫼르소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법이다. 법에 의한 사형 선고와 집행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절대적인 확실성의 선언이고 실행이다. 뫼르소의 삶은 아무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 삶,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우연에 내맡겨진 삶이었다. 이는 더불어 그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삶이었다. 어머니의 장례 때문에 휴가를 신청하면서 그가 사장에게 한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라는 말은 삶의 대한 그의 태도를 잘 요약해 준다. 어떠한 책임으로부터도 면제된 삶은 동시에 모든 사회적 역할로부터 배제된 삶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뫼르소는 ‘이방인’이었다. 문제는 그에게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다른 삶에 대한 은밀한 갈망도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의 살해 장면은 이에 대한 암시가 아닐까. 

“나는 온몸이 긴장하여 손으로 피스톨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를 만졌다. 그리고 짤막하면서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굳어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뫼르소가 쏜 첫 발은 ‘태양 때문에’라고 할 수도 있는 우발적인 총격이었다. 하지만 그가 연이어 쏜 네 발의 총탄은 이 살해에 대한 모든 정상 참작의 여지를 제거해 버린다. 거기엔 강한 의도성과 필연성이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뫼르소는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서 ‘불행의 문’을 두드린다. 이는 그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다’의 세계 혹은 ‘어머니’의 세계에서 이제는 빠져나오고자 하는 안간힘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는 무의식적인 도피처나 안식처에서 벗어나, 사회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뫼르소는 이 ‘노크 행위’로 인해 재판을 받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격리’, 곧 ‘사형 선고’야말로 ‘사회’가 뫼르소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기도 했다. 따라서 “사형 집행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으며, 요컨대 그것이야말로 사람에게는 참으로 흥미로운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어째서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을까!”라는 뫼르소의 깨달음은 결코 아이러니가 아니다. ‘사형 선고’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 뫼르소, 그가 남긴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09.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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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2009-08-16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방인은 탈감정된 사람, 문맹인 까뮈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들(까뮈),
한석봉 어머니, 생선까시처럼 남은 사랑은 건조한 꿈을 꾸고, 히틀러 또한 홀어머니곁에서 학교와 도서관만 다님. 두 아이는 한석봉과는 다름.

로쟈 2009-08-16 17:51   좋아요 0 | URL
작가로서 카뮈의 시작과 끝이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소설인 것이 흥미를 끌었습니다...

외투 2009-08-16 19:54   좋아요 0 | URL
공간이 다른 곳에서 누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죽은 누나와 관련된 앞으로의 모든 일들에 무관심해졌다.
어쩌면 나는 일련의 죽음과 무관한 사람처럼 눈앞에서 일어나는
의식이나 또는 애도를 표하는 사람들로 부터 떨어저 있었다.
다른 공간에 있는 타인처럼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무언가를 나에게 소리소리하는 재판관이나 변호인 검사 배심원은
나와는 무관한 딴세상의 벌레들 같았다.

외투 2009-12-11 16:39   좋아요 0 | URL
'그가 해변에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 법정에서 "햇살이 눈부시기 때문이었다"라고 진술하는 대목은 실존주의의 명제가 아니라 마비된 감각에 대한 은유로 들린다. 뫼르소가 내내 시달렸던 졸음도 육체가 알아서 정신을 보호한 행동이었다. 시야를 흐리게 한 햇살 이미지도 상실의 현실을 분명하게 보지 않으려는 감각의 자기 보호 작용이었다. (좋은이별/김형경/54쪽)

2009-08-16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6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09-08-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방인이 한참 전쟁중인 가운데 출간된 사실을 아니 좀 놀랍군요.전쟁중이라도 자국내에서 소설등이 나오는것은 이해가 가지만 적국에 점령된 상태에서도 출판물이 나오고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문학에 대한 사랑때문인지 점령국 독일의 널널한 통치때문인지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