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지난주에 배송된 책들을 나르기 위해 '폭우'에도 불구하고 오전에 학교에 갔었다. 가방에 잔뜩 포개넣어 들고 온 책들 가운데 하나는 마누엘 데란다의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그린비, 2009). 이미 입소문이 돌던 저자이고 책인데, '과학철학 이론으로 분석한 들뢰즈의 생성존재론!'이란 카피가 책의 성격을 잘 요약해줄 듯싶다(원서는 오래전에 구해두었지만 또 필요할 때라고 찾으니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젠장). 당장은 들춰보기 어렵지만 내달에는 시간을 내봐야겠다. 참고로, 데란다의 책은 '리좀총서'의 '시즌2' 첫권이다('시즌2'의 리스트를 보니 아홉 권 가운데 데란다의 책만 세 권이 들어가 있다. 가히 비중을 알 만하다). 작년 가을 한 대학원신문에 공역자 중 한 사람인 이정우 원장의 소개글이 실린 바 있어서 스크랩해놓도록 한다. 

 

중앙대 대학원신문(08. 09. 03) 마누엘 데란다, ‘들뢰즈 이후’의 철학자  

‘들뢰즈 이후’ 철학의 향방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인 데란다(Manuel de Landa, 1952~)는 실험영화 제작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건축가 등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독특한 인물로서, 군사(軍事)계통의 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영화, 컴퓨터, 건축 등을 단지 스쳐지나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가 이 계통들에서 이룬 성과는 모두 수준 높고 영향력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한 인터뷰에서 당신이 정말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데란다는 철학자라고 답하고 있다. 

데란다 철학의 출발점은 질 들뢰즈이다. 그러나 다양한 경력이 암시하듯이 데란다는 제도적 의미에서 철학수업을 철저히 받은 인물은 아니다. 그의 저작에는 깊이 있는 철학사적 논의가 그다지 나오지 않는다. 반면 일반적인 철학자들의 저작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지식과 분석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 데란다의 주석은 일반적인 인문적 주석가들의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그의 주석은 다른 주석서로는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데란다가 행하고 있는 작업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영미철학과 프랑스철학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누엘’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데란다가 스페인계 멕시코인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는 들뢰즈의 철학을 영미적 맥락에서 새롭게 전유함으로써 단순한 주석가가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담론형태를 창조해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데란다는 들뢰즈에 관해 상당수의 논문을 썼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풍부한 그의 논문은 들뢰즈 연구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글들이다. 특히 <강렬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2002)은 자신의 들뢰즈 관련 논문들을 전반적으로 정리해 들뢰즈의 존재론을 일관되게 해명하고 있는 주요 저작이다.  

이밖에도 데란다는 <비선형 역사 100년>(1997)이라는 흥미로운 저작을 펴냈다. 서기 1000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1천 년간의 역사를 독특한 방식으로 해명하고 있는 이 저작은 들뢰즈/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잇는 속편이라 할 수도 있을 듯하다. 또 <인공지능 시대의 전쟁>(1991)에는 컴퓨터, 군사, 건축 등에 대한 그의 지식이 잘 나타나 있으며 폴 비릴리오의 저작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작년에는 <새로운 사회철학: 배치이론과 사회적 복잡성>이라는 흥미진진한 저작을 펴내 들뢰즈/가타리의 사회철학을 계승하고 있다.(이정우/ 연구공간 ‘소운서원’ 원장)   

※ 데란다의 글 전체는 www.cddc.vt.edu/host/delanda에 게시되어 있다. 

09.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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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7-1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 경력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군요 ~ ^^

로쟈 2009-07-15 22:54   좋아요 0 | URL
철학자 대신에 작가를 해도 성공할 경력이에요.^^

펠릭스 2009-07-1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란다(Manuel de Landa, 1952~)는 실험영화 제작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건축가 등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독특한 인물로서, 군사(軍事)계통의 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운전이나 컴퓨터프로그랭은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더 잘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경계가 없는 응용력과 상상력이 부럽습니다.

로쟈 2009-07-15 22:55   좋아요 0 | URL
운전도 그런가요?^^

펠릭스 2009-07-16 05:08   좋아요 0 | URL
춤,글,운전의 경우 마음의 흐름과 손발 동작이 일치되면 잘 풀리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말은 아니고요.

로쟈 2009-07-16 08:49   좋아요 0 | URL
예술적 감각의 운전이라면 레이서 수준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