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출간된 책 가운데 빼먹은 것이 하나 있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마음산책, 2009). 추천사를 쓰기 위해서 미리 읽어본 책인데(<올가의 반어법>에 이어 두번째다), 처음 제목은 '여행자의 아침식사'였다. 출간본의 제목이 <미식견문록>이고 부제가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이다. 러시아어 전문 통역사였던 까닭에 러시아 관련 읽을 거리가 풍부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그녀의 글을 즐겨 읽게 되는 이유이지만(더불어 고유명사 표기 등의 '감수'도 맡는 이유이지만), 그녀의 글은 그런 사정과 무관하게 유익하다. '영양가'가 있다. 이미 '요네하라 마리의 모든 책'이라고 진작에 못박아놓은 만큼 군말은 필요없을 터이고, 내가 이 책에 대해 적은 추천사는 이렇다.
'요네하라 마리 컬렉션’에 한 권을 더 추가하게 됐다. ‘프라하 생활’이나 ‘통역사 생활’에 더하여 이번에는 이 재치 넘치고 다정다감한 문필가가 자신의 ‘식생활’을 다루었다. 속담과 유머에 대한 책도 낸 만큼 놀랍진 않다. 하지만 그녀가 튼튼한 위를 가진 ‘냠냠공주’이기도 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자신을 ‘먹기 위해 사는 타입’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식도락가나 푸드파이터는 아니다. 일용할 빵과 감자와 무와 양배추, 그리고 보드카 따위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게 마음에 든다. ‘읽기 위해 사는 타입’인 나로선 ‘먹는 것과 산다는 것’에 대한 이 유머러스한 성찰의 기록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서가에 바로 올려놓는다.
학교가 공사중이어서 출판사에서 보내온 택배 꾸러미를 열어보지 못해 책의 실물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일단은 소개기사만이라도 늦게나마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9. 07. 04) 배꼽잡는 유머로 감칠맛 나는 세계음식 기행
요네하라 마리(1950~2006)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제법 많을 테지만, 그 기억은 제각각일 가능성이 높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로 그를 만났다면 빼어난 논픽션 작가로, <올가의 반어법>에 반했다면 재능있는 소설가로, <대단한 책>을 읽고 감탄했다면 하루에 7권씩 읽어치우는 '독서 폭식가'로 그를 떠올릴 것이다. 공산당 간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체코 프라하로 이주, 그곳의 국제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 일급의 일본인 러시아어 통역사는 그 화려한 프로필에 또 하나의 이력을 추가했다. 바로 '미식 에세이스트'다.
<미식견문록>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갖가지 음식을 접해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은 물론 동화, 민담, 전설, 문화사 등을 총동원해 음식에 관해 풀어놓은 37편의 유쾌한 음식론이다.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며 풀어놓는 해박한 지식도 그만이지만, "맛있는 것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대식가 가문"의 적통다운 배꼽 빼는 유머가 새콤달콤한 소스처럼 읽는 이를 톡 쏜다.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그가 어린시절 경험했던 것들이다. 표트르 바일과 알렉산드르 게니스의 <망명 러시아 요리>에 따르면, "사람을 고향과 이어주는 끈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질긴 끈은 위(胃)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우메보시(매실장아찌)가 들어간 주먹밥. 어린 입맛에 제 존재를 강렬하게 새겨넣은 이 고향의 음식에서 그는 "몇 번이나 절망을 추슬러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우메보시와 쌀밥은 저자가 1986년 라식 수술을 받기 위해 러시아로 온 일본인 여성을 통역했을 때도 괴력을 발휘했다. 수술 후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규하던 그 여성은 저자가 마련한 우메보시를 먹은 후 "어머, 중학교 이후 이렇게 잘 보이긴 처음이네" 하며 번쩍 눈을 떴다고.
고국의 맛을 잊지 못한 병사들로 인해 전력 약화로 고전했던 전쟁들의 역사를 훑으면서는 "맛없는 음식을 인내한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식민지에 오래 주둔하려면 본국 음식이 매력 없을수록 유리하기 때문. 오늘날 세계사의 비극은 고로 영국과 미국의 음식이 맛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저자는 "최근 지구의 급속한 인구증가와 함께 식량위기가 문제가 되어도 괜한 걱정이 아닐까 싶다"고 낙관하는데 그 근거가 재미나다. "먹을거리의 범위를 넓혀가는 인간의 능력은 그리 얕볼 게 아니"기 때문. 저자는 "바퀴벌레나 까마귀, 쥐새끼 같은 걸 맛있게 먹을 수만 있다면 식량문제는 단번에 해소될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제안한다. 서양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자가 악마의 식량으로 배척되다가 18세기 이후에야 '시민권'을 얻었다는 문화사적 추적이 덧붙는 걸 보면 진담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리지만.(박선영기자)
09. 0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