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식 코뮤니즘과 즐거운 계몽주의
장례 기간 동안 연기한 <로쟈의 인문학 서재> 관련 일도 많이 밀렸다. 이벤트 결과발표도 오늘중으로 해야 하고 2쇄 발간을 위한 점검도 해야 한다('지속가능한 글쓰기'를 위해서도 가까운 시일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아직 독자 리뷰들은 별로 접해보지 못했지만('블룩'이란 책의 성격상 리뷰의 가닥을 잡기가 좀 어려울 듯도 싶다. 오늘 알게 된 것인데,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블룩'의 우리말 순화어는 '누리글보따리'다. 이건 뭘 해도 '보따리 장사'로군!), 언론리뷰는 조금 더 눈에 띈다. 일단 부산에서 발행되는 국제신문에 실린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기사의 타이틀이 '인터넷 서평꾼 로쟈의 소풍'인 것이 눈길을 끈다. 아, 매일같이 서재로 소풍을 가다니!..

국제신문(09. 05. 30) 넘나들고 통합하는 지성…인터넷 서평꾼 '로쟈'의 소풍
'로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넷 서평꾼'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서재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의 주인장인 것이다. 이 블로그에는 하루에 1000명 정도가 꾸준히 접속해 로쟈가 적어놓은 인문학 관련 신간 소식과 지적 흐름을 엿듣는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오프라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로쟈의 새로운 글쓰기다.
왜 새로운 글쓰기인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쓴 글이지만 대부분의 글을 다시 손봤기 때문이다. 온라인 버전과는 제목과 내용이 다르다는 뜻이다.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블로그에 올려둔 글들 가운데 알맹이만 골라 편집해 만든 책으로, '블룩'(blook·blog+book)이라고도 칭한다. 이 책에서 새로운 출판 문화의 한 단면을 읽을 것 같다.
부제를 통해 저자 스스로 '곁다리 인문학자'라고 말한 부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전공하지 않은 분야들까지도 건드리다 보니 부득불 딜레탕트에다가 곁다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도 정색하고 정통 인문학이란 이런 것이라고 읽고 말하는 고식적인 태도가 아닌 '제멋대로 읽고 기우뚱하게 쓰는' 경쾌한 시선이 돋보인다. 만화나 리빙, 자기계발서 분야의 도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식 분야를 넘나들고 통합하는 저자의 능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는 문학과 영화, 예술, 철학에 대한 진지한 에세이와 지젝 읽기, 그리고 번역비평에 대한 주요 글들이 망라돼 있다. 부제에서 암시하듯 '본격적인' 인문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 글들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런 종류의 글을 너무 쉽거나 말랑하게 느끼는 독자들이 앞으로 더 늘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문학 독자층'을 넓히는 데 일조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욕심인 것이다.

책은 다섯 개의 서재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슬라보예 지젝을 다룬 네 번째 서재가 눈길을 끈다. 지젝을 즐겨 읽는 이유와 함께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 어떤 것인지 살짝 드러내줄 수 있는 글이 몇 편 실려 있는데, 앞으로 본격적인 '지젝론'을 쓰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오래 전부터 지젝의 글을 꾸준히 올린 덕분에 지젝은 이제 한국 '지식장'에서 현대 철학 혹은 '통합 지성'의 일반명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로쟈의 예술 리뷰'라는 부제가 붙은 두 번째 서재는 재미있다. 미술 에세이 한 편을 제외하면 주로 영화에 대한 글을 모았으며, '생명복제 시대'의 예술로서 영화 텍스트 깊이 읽기다. 이 가운데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와 '빈집'에 대한 비평은 압권이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그의 무능력이 아니라 고집스런 불성실과 아집, 그리고 부정직이다. 대충 얼버무리고, 황당한 것 갖다 붙이고, 자신이 이해가 안 돼도 넘어가는 태도 말이다." 저자는 다섯 번째 서재에서 우리나라의 잘못된 번역 문제를 아프게 건드린다. 서늘하고 신랄하게 번역의 윤리 문제를 거론하는 그는 "독자가 무서운 줄 안다면, 함부로 대충 번역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이면에는 아름다운 책에 대한 숭배와 '제대로 된' 번역자의 고통과 노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진하게 묻어 있다.(강춘진 기자)
09. 05. 31.
P.S. 대학신문의 기사도 같이 옮겨놓는다.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내고 분석"하는 일은 사실 책읽기의 기본임에도 로쟈의 특징으로 주목받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다루는 리뷰들에서 주로 '박학다식'이 화제에 오르는데(대개 '소문'을 밑천 삼아 책소개를 하는 탓이리라), 이번 책은 '비평적 에세이'와 '텍스트 읽기'를 모은 것이다. 나중에 따로 묶으려고 하는 '서평집'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블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블룩적'이지도 않다. '블룩'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는 나도 더 생각해봐야겠다...
대학신문(09, 06. 01) The Reader: 책 읽어주는 로쟈
인터넷 블로그의 글이 지면의 활자로 재탄생한 ‘블룩(blog+book)’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달 18일 출간된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 이현우씨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인터넷 서평꾼이다.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박학다식을 자랑하는 그가 블로그에 자유롭게 써 온 ‘책 이야기’ 중 고갱이를 추려 다시 책으로 엮어낸 셈이다.
책은 문학·예술·철학 영역에서의 비평으로 시작해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인 지젝의 저서를 둘러본 뒤 번역비평으로 끝을 맺는다. 저마다 다른 주제의 글들이 이어지지만 대중지성을 희망하는 저자의 시각에서 비켜나가지 않고 있다. 로쟈는 세상에 대한 ‘즐거운 저항’인 책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포르노보다 더 음란한 포퓰리즘의 정치를 경계한다. 또 지식의 오만에서 비롯된 오기(誤記)를 비판한다.
로쟈의 서평이 주목받는 점은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내고 분석한다는 데 있다. ‘니체와 여성’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그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안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니체와 여성’을 제각각의 관점에서 다루는 다른 저자들의 책들과 함께, 니체의 다른 저서 『선악의 저편』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학문의 경계를 초월한 그의 지식의 종횡무진함은 바로 이러한 책읽기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지식인과 대중 간 거리를 좁히는 방법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꼽는다. “블로그는 그 빠름을 감당할 수 있는 젊은 세대에만 유용한 데 비해, 느린 활자는 모든 세대에게 유효하다”는 저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블로그가 대중지성의 지적 보고 중 하나로 각광 받고 있다 할지라도, 지식 공유의 폭을 확장시켜 사회적 의사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활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느리지만 넓고 깊이 있게 모두에게 다가가는 것, 그것이 활자이고 책이다. 대중은 책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지성인으로 자라나고 세상을 변하게 한다. 대중의 시대는 왔을지 몰라도 로쟈의 시각에서 볼 때 ‘대중지성’의 시대는 아직 뻗어나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뻗어나감을 돕는, 지식인의 겸손과 대중지성의 도래를 돕는 징검다리로 놓여 있다.(김빈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