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간강사의 사회
강사 내모는 대학의 품격

이번주 신간 국내서 중에는 작년에 비정규 교수(시간강사) 문제를 다룬 프레시안의 연재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을 묶은 책도 포함돼 있다. 해가 바뀌어서 제목은 <비정규 교수, 벼랑끝 32년>(이후, 2009)이 됐다. 따로 서평이 뜨지 않아서 프레시안의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프레시안(09. 04. 25) 32년 동안 모두 알면서 말하지 않은 정답 

때때로 묻는 이도, 듣는 이도 답을 전혀 모르는 질문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강원도에서 잇따르고 있는 젊은이들의 자살에 대해 언론은 이렇게 보도한다. "도대체 왜일까?"

반면, 누구나 그 답을 알면서 아무도 답하지 않는 질문이 있다. 2007년 2월, 한국에서 만4년 동안 비정규 교수(시간강사)를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한경선 씨. 비정규 교수의 자살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 며칠 전, 서울대 불문과 한 시간강사가 대학 화장실에서 자살했고, 2006년에는 한 서울대 강사가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많은 이들은 묻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여서 학위를 따기 위해 십 년을 넘게 공들이고도 목숨을 끊는 것일까"라고. 우리는 정말 그 이유를 몰라서 이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걸까. 최근 출간된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김동애 외 31인 지음, 이후 펴냄)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쉽고도 충실히 답하기 위해 나온 책이다.

누구나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이 책은 지난해 10월부터 <프레시안>에 실렸던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 연재를 추려 묶은 것이다. 비정규 교수는 물론 대학생, 학부모, 변호사 등 다양한 이들이 증언하는 비정규 교수들의 절망적인 현실, 그리고 예고된 어두운 미래는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만든다.

대학에 다녔던 이들이면 한번쯤 들어봤을 비정규 교수의 비애. 누가 교수로 임용되기 위해 어떤 짓을 했고, 교수가 된 뒤 어떻게 바뀌었다더라 하는 류의 이야기, 그 뒷면에는 비정규 교수에 대한 상식 이하의 처우가 있다. 전국 각지로 뛰어다니며 강의를 하고도 차비와 밥값에도 못 미치는 연봉(공식 통계는 999만 원·실제 추정액 500여 만원)을 받고 연구실 하나 없는 '교수 아닌 교수'가 한국에는 7만 명 가량 있다.

시작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7년, 지식인을 길들이고 저항 지식인을 제도권 밖에 두려던 박정희 정권은 대학 교원 범주에서 시간강사를 제외했다. 개정된 교육법 75조는 강사의 정의를 끝내 전임강사로 바꿨고, 전임자가 아닌 강사의 교원 지위를 빼앗았다. 결국 대학 강의의 절반을 맡으면서도 아무런 신분 보장도 받지 못하는 수 만명의 계약직 강사가 생겨났다.

책 곳곳에 나오는 문구처럼 누구나 '이대로 둬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비정규 교수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지식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들의 교원 지위를 회복해야 하는 당위성은 사실 굳이 이렇게 많은 필자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언제든 계약이 해지될 수 있는 비정규 교수 본인들은 발언 자체가 생계와 직결돼 있었다. 전임 교수들은 이제 자신의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비정규 교수의 처우 개선은 자신들의 밥그릇과 연결되는 문제였다. 교수와 대학 당국에 학점과 졸업을 맡겨 놓은 학생의 처지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비정규 교수를 채용하는 대학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리 만무했다.

배움의 추락, 해법은 간단하다

결국 변화를 외치는 비정규 교수들은 학교 밖으로 나섰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 소속된 비정규 교수들은 2007년 10월부터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농성 600일이 다되가는 현 시점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입법 발의를 했던 국회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된 오늘도 이들은 언제 천막이 철거될 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의 현실에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점점 더 공허해진다. 대학이 그 답으로 내놓는 핑계가 너무 간단하기 때문이다. 바로 '돈'이다. 적립금이 수천 억원이 넘어가고, 그 돈으로 펀드를 굴리는 대학이 '돈이 없다'며 발뺌하고, 정부가 이를 옹호하는 가운데 더 이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최근 대학들은 보다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겠다며 계약 해지를 무기로 점점 더 많은 교원을 내몰고 있다. 그래야만 교수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과 연구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도 한다. 대학 자율화를 하겠다는 교과부는 지난해 기존에 교원 지위가 인정됐던 전임강사까지 교원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밝혔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대학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는 정반대에 있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시간강사와,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몸부림을 악용하며 청탁과 뇌물이 오가는 부조리한 교원 임용을 일삼는 교수와 대학의 만행 속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학문이 이뤄질 수 있을까. 대학 진학률 85%를 자랑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서 이뤄지는 배움의 실상에 대해서는 나몰라라하는 사회. 이제 악순환을 끊을 때다.(강이현 기자)  

09.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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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
    from Back To Basic 2009-04-26 13:39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 - 김동애 외 31인 지음/이후 작년 봄 에서 시간강사 특집을 준비할 때 관여한 뒤로 항상 마음의 짐이 되어온 것이 시간강사 문제이다. (언제부턴가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란 말이 좀 떠돌게 된 듯 한데,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제목은 내가 작년 봄에 교열보면서 지은 제목이다.) 공부를 계속 하려고 생각중이다보니 당장 미래의 생계와 관련되었을 뿐더러, '학생'의 입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비정규직..
 
 
빵가게재습격 2009-04-25 22:2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오랜만에 알라딘에 왔다가 인사드리러 들렀습니다. 잘 지내시죠?^^ 글을 보고 있노라니, 박사 학위까지 따 놓고는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는 선배가 생각나서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책이 나왔다고 하더라, 대학이 무덤이라는 이야기인 것 같더라, 읽어봤냐 했더니, '난 이미 장례식 끝내고 탈상까지 마쳤다. 행복하다' 이러더군요. ^^;;;;
날씨만큼 좋은 소식도 드뭅니다. 늘 건강하세요.

로쟈 2009-04-26 10:32   좋아요 0 | URL
'습격' 나오셨군요.^^ 이왕 박사들이 많아진 김에 중고등학교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안일 듯싶은데(핀란드가 그렇다잖아요) 이것도 '재정' 운운하겠죠...

konstant 2009-04-25 23: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줄곧 오랫동안 눈팅만 하다가 댓글을 남겨봅니다.

몇년 전에 이와 비슷한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거기에 인터뷰한 한 시간강사가 강의로는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가 없어서
아침마다 신문 배달을 하고 낮에는 강의도 하느라
정작 자기가 하고픈 연구는 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빠듯한 삶 때문에
자신의 처지에 자괴감을 느낀다는 기사였어요.

제 주변에는 대학원을 다니는 선배들도 많고,
저 역시도 대학원 진학을 바라는 상황에서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학생은 그저 돈주머니로만 여기고,
시간강사는 노예처럼 다루면서
배때기만 채워 나가는 학교와 거기에 순응하고 나아가
앞장서 대변하는 많은 한심한 교수들.
비단 학교 내로만 국한될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기사에 나오듯이 해결책은 참으로 단순하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상황에 분노만 느끼게 돼요.

아, 그리고 이런 부패한 교수 사회를 볼때마다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 오버랩 되네요.

로쟈 2009-04-26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동료 강사들이나 대학원생들 보면 좀 착잡할 때가 있습니다. '학문후속세대'는커녕 학문에 대한 환멸만을 키워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군자란 2009-04-26 16:33   좋아요 0 | URL
제 대학다니던 시절만 해도 대학원을 나와 시간강사를 하면 나름대로 희망이 보였는데 정말 지금은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기득권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런문제가 약간 마음이 미안할뿐 결코 자기 밥그릇을 조금이라도 나눌생각을 안하는 것이 솔직한 그들의 속내가 아닐까요.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쳐버릴 것 같은데 세상사가 다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아 못내 마음이 아픕니다.

로쟈 2009-04-26 20:09   좋아요 0 | URL
사실 거액의 대학등록금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도 '당하는 입장'인데, 계속 방치되고 있죠. 대학졸업장만 가지고선 취직도 할 수 없는 시대에 아직도 '수혜자' 논리가 횡행하는 게 기이한 노릇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4-26 21:28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 사학재단 이사장은 전부 탐욕스런 자들로 그려지더군요.학생과 학부모를 화수분 단지로 생각하나봐요.

로쟈 2009-04-26 21:53   좋아요 0 | URL
실제로 비리 재단들을 보면 전형적인 '포식자'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