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한길사, 2009)이 번역돼 나왔는데, 마침 역자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버크의 책은 '보수주의의 바이블'로도 읽힌다고 하므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도 나름 제시해줄 듯하다(한국에서 설치는 '설치류' 보수 말고 '진짜' 보수 말이다).  

한겨레(09. 04. 16) 보수주의 바이블’ 220년 만에 한국어로 

인용과 전언으로만 떠돌던 ‘보수주의의 바이블’,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성찰>)이 마침내 번역돼 나왔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인 1790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됐으니, 한국인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무려 219년을 기다려야 했던 셈이다. 번역자인 이태숙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버크의 역사관과 보수주의’로 석사학위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웨이크필드와 식민체계화운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영국 근대 정치사란 연구 주제와 씨름해 온 ‘영국통’이다.  

“한국에서 버크만큼 오해되고 있는 사상가도 드물어요. 그의 보수주의가 변화와 개혁을 무작정 거부하는 사상은 아니었다고 흔히들 얘기하는데, 아닙니다. <성찰>을 쓸 당시 버크는 영국의 사회제도를 최상의 것으로 보고 어떤 변화를 가하는 것도 용납치 않았어요. 그는 반혁명·반개혁적이었을 뿐 아니라 철두철미하게 변화를 거부했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버크를 ‘개혁적 보수주의자’쯤으로 오해하는 것은 미국 혁명을 찬양하고 영국의 인도통치에 비판적이었던 휘그당(자유당의 전신) 시절의 견해를 <성찰>을 쓸 당시의 입장과 뒤섞어 바라보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라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미국 혁명을 찬양할 때 버크는 명백히 자유주의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보수주의로 돌아섭니다. 프랑스 혁명을 보면서 갖게 된 극도의 위기의식이 인간 본성과 역사를 재인식하게 만들었던 것이죠.” 프랑스 혁명에 대한 버크의 위기의식은 “나에게는 프랑스만의 사태가 아니라 전 유럽, 아마도 유럽 너머까지도 미치는 큰 위기 가운데 내가 처해 있는 듯 보인다”고 쓴 <성찰>의 서두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을 “이제까지 세상에서 벌어진 일 중 가장 경악스러운 일”로 규정한 뒤 “경박함과 잔인함이 빚어내고, 모든 종류의 죄악이 모든 종류의 어리석은 짓과 뒤범벅이 된 괴상한 이 혼란 속에서는, 모든 것이 본성에서 벗어난 듯싶다”고 적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 초기 1년의 사태만으로 혁명의 파괴적 측면을 꿰뚫어 봤습니다. 기존 제도의 과격한 파괴가 개선된 새 질서로 이어지기는커녕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고, 결국 군사독재자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언했어요.” 버크의 이런 통찰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관점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버크는 인간의 이성을 연약한 것으로 봤기 때문에 인간이 합리적 의지로 세상을 개조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이상을 불신한 반면,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돼 온 기존 제도와 관념을 수호해야 할 ‘지혜의 보고’로 떠받들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성찰>에 나타난 이런 보수주의의 근본이념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인정하면서도, 한국과 같은 현실에서는 보수주의를 선뜻 수용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현재의 번영과 위세를 가져다준 제도와 가치를 긍정하고 보존하려는 것이 보수주의입니다. 보수주의는 근본적으로 선진국 이데올로기예요. 긍정하고 지켜야 할 제도와 가치가 부재했던 신생국 대한민국에서 보수주의가 강세를 보여 온 것은 기이한 현상입니다. 전쟁의 경험과 북한이라는 외부 위협의 존재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보수주의에 대한 이 교수의 이런 규정은 한국 보수의 미래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보수주의가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결국 북한의 위협을 계속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북한의 위협이 약해지거나 사라진다면, 1990년대 미국의 네오콘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위협세력을 만들어내야겠지요.” (이세영 기자) 

09.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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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4-16 11:28   좋아요 0 | URL
"설치는 '설치류'"에서 빵 터졌습니다(아, 개그에 대한 이 취약함이란...^^). 설치류의 자칭 보수주의란 "긍정하고 지켜야 할 제도와 가치가 부재"함 그 자체에 대한 보수가 아닐까 하고, 그 보수주의만큼이나 "기이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로쟈 2009-04-16 12:31   좋아요 0 | URL
급수를 좀 올리세요.^^ 사실 한국 보수가 지키는 건 있지요. 호의호식하는 기득권, 권력, 재산...

2009-04-16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6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09-04-16 12:43   좋아요 0 | URL
'설치류'는 정말 압권이군요 ㅎㅎㅎ 설치류가 설쳐서인지 비밀 댓글이 늘어난 것이 왠지 '징후적'으로 읽히는 군요. 로쟈님이 이 기사를 옮겨 놓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군요^^ 저는 오전에 백낙청 선생의 한겨레통일문화상 기념강연과 이 기사를 비교해서 읽었고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로쟈 2009-04-17 10:23   좋아요 0 | URL
이신전심이었나 봅니다.^^

merci 2009-04-16 13:09   좋아요 0 | URL
쩝 드디어 이 책이 번역되었군요. 이제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보수주의 운운할 때 '버크도 번역 안 해놓고..'라고 할 수 없게 되서 살짝 아쉽(?)네요. 지금 버클리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저 분도 여기서 박사를 하셨다니 괜시리 반갑군요. ㅎㅎ

로쟈 2009-04-17 10:23   좋아요 0 | URL
버클리에서는 버크를 많이 읽으시나 보네요.^^

2009-04-16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7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