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가 말하는 한국사회

지난주에 소개기사를 옮겨놓기도 했는데,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내일 개봉한다고 한다. 동네 CGV에서는 상영을 하지 않아서 언제, 어떻게 봐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여하튼 몰상식한 뉴스들만 쏟아지고 있는 터라(오늘도 어이없는 언론탄압 기사들이 떴다) 최소한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보고 싶다. 감독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고대신문(09. 04. 06)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린 다 특별해"  

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 곁으로 날아온다. 오는 16일(목)에 개봉하는 영화 <똥파리(Breathless)>다. 지저분한 맨홀 뚜껑 아래에서의 삶을 절절히 그려낸 <똥파리>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양익준 감독. 그는 서른다섯의 나이에 스물다섯의 용기 하나로 살아간다. 영화인 양익준과 한 인간으로서의 양익준을 만나봤다.   

#1. 영화가 말을 걸다
영화 제목이 왜 똥파리(Breathless)인가
예전에 어른들이 ‘똥파리’란 말을 많이 썼잖아요. 아마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너무 많이 들어서(웃음). ‘에잇, 이 미천한 놈, 더러운 놈, 우리 곁에 오지 않았으면……’하고 내쳐지는 사람들을 비유하는 말이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상훈이나 영재가 다 똥파리로 치부되는 사람들이에요. 영어 제목 ‘Breathless’는 손원평 감독이 지어줬어요. 손 감독은 제가 주연으로 연기했던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2005)의 감독이었어요. 제 첫 작품부터 계속 제목을 지어줬는데 이번 것은 정말 잘 지어준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숨 쉴 수 있는 공기는 수북하게 있지만 사람들은 숨을 헐떡이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똥파리’라는 제목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거장 장 뤽 고다르(Monsieur Godard)감독의 첫 작품 제목도 ‘Breathless’였대요. 그 때문에 해외 영화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네덜란드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 됐다. 지난 1월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한 소감이 어떠한가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한테는 미안하지만 예전에 ‘미쟝센 단편영화제(2005)’에서 인기상 받을 때와 처음 만든 단편영화로 ‘서울독립영화제(2005)’에서 관객상 받았을 때가 더 기뻤던 것 같아요. 그 땐 초반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상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들어가는 게 싫어서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려고 해요. 이번 영화제엔 젊은 감독들이 많이 모여서 활기찼고, 상을 받은 것보다도 다른 나라의 감독, 관객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게 더 좋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 네덜란드의 한 중년 여성이 절 보더니 ‘Breathless!’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한 20분 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국 가족이라는 건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더라고요.  



연출과 주연을 둘 다 맡았다
처음부터 ‘내가 하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근데 촬영을 끝내고 편집하면서 ‘아, 내가 괜히 했나?’하고 고민을 했죠. 아무래도 연기만 할 때엔 연기에 온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는데 연출까지 하니까 아무래도 정신이 분산되더라고요. 대사를 잊어버려서 촬영 중간에 ‘잠깐만!’이라고 했던 적도 많고요(웃음). 아무리 때리는 연기라도 정신적으로 고요한 상태에서 집중해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영화에서 용역깡패 상훈 역을 맡아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다. 실제로 싸움을 많이 해봤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남을 먼저 때려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일단 맞으면 그때서야 저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싸움을 했죠. 맞아서 몇 번 기절했던 기억도 있고. 영화 속에서 상훈과 닮은꼴인 또 다른 주인공 영재(이환)라는 캐릭터를 보면 집에선 폭력을 행사하지만 밖에선 오히려 두려워해요. 밖에서 억압됐던 것들이 안에서 풀어지는 것. 참 아이러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폭력성이 내재돼 있어요. 이 폭력성을 배출할 수 있는 통로가 우리 사회에 없어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얼마나 많은 폭력이 존재할지 한 번 드러내보고 싶었어요. 영화에선 폭력의 수위가 센 감이 없지 않지만…….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수위도 따질 수 없는 거예요. 가족 안에서 아무리 미약한 모순과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당사자가 힘들다고 느끼면 그게 제일 괴로운 것 아니겠어요? 제가 주위에서 힘들게 봐왔던 이야기를 픽션으로 만들어서 표현한 거예요. 전 일단 착한 사람입니다(웃음).

영화에 개인적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나
네, 부모님과 징글징글했던 모든 것들. 저뿐만 아니라 제 주위 친구들이 그런 경험을 했고요. 지난달 31일(화) 시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 눈빛을 봤는데 고개를 계속 끄덕거리더라고요. 제작할 땐 저로부터 시작했지만 영화가 극장에서 공개된 그 순간부턴 관객들의 이야기가 된 거예요. 저의 어떠한 경험에서 시작됐는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전적 경험이라기보다 자전적 성찰이 담긴 거죠.

독립영화계에선 유명한 배우인데, 대중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몰랐으면 좋겠어요. 제 삶이 제일 중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침해받고 싶지 않거든요. 지금은 영화가 개봉되는 시기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려고 해요. 영화가 거의 막을 내릴 즈음엔 다시 제 삶을 찾아 돌아가야죠. 언제까지 ‘나 상 받은 놈이야, 나 감독이야’ 이러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지금은 제 인생에 있어 아주 특별한 시간인 거고요. 그렇지만 전 아주 특별한 지금보다 평범한 시간들, 일상이 더 좋아요.

초창기 배우 시절에 <품행 제로>(2002), <해피에로 크리스마스>(2003),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등에서 단역을 주로 맡았다. 그 때의 생활이 궁금하다
아, 단역은 아니었는데 많이 편집됐어요. 주조연급 정도였어요. 사실 그 땐 아르바이트로 영화에 출연했어요. 연기는 하고 싶고 돈은 벌어야 하니까 생계를 위해 했던 거죠. 현실적으로 초짜한테 누가 중요한 역할을 주겠어요. 가능성이 보인다고 해도 스타들이 득실거리니 안 되죠. 그런 환경에서는 인정받기 어려워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에 둘 다 출연했어요. 사실 상업 영화중에 내 영화다 싶은 건 없어요. 애착이 가는 영화는 손원평 감독, 이진우 감독이랑 찍었던 단편 영화랑 제 작품 4편 정도예요.  



#2. 평범하고 독특하게 사는 법
첫 인상과 달리 내성적인 것 같다

엄청 내성적이어서 표현을 많이 하고 살려고 하다 보니 말을 많이 하는 성격으로 변한 것 같아요. 요즘엔 처음 만나는 사람하고도 잘 떠들어요. 아무래도 ‘내가 그렇게 모자란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돼서인 것 같아요. 예전엔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고백하지 못했어요. ‘쟤는 나보다 크고 높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드니까 위축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자신을 제일 존중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어요. 남들 앞에서 주눅 들지 마세요. 사는 데 별로 도움 안 돼요.

영화배우가 안 됐더라면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 것 같은가
노숙자?(웃음) 그냥 뭘 해도 잘 했을 것 같아요. 열심히 사는 건 습관화돼 있으니까요. 사실 거의 10년 동안 계속 연기만 하면서 살아와서 잘 모르겠어요. 20대 때엔 정말 미친 듯이 연기했던 것 같고, 몇 년 전부터는 연기가 재미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고 있어요. 저는 영화배우다, 감독이다 뭐 이런 것보다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당신의 20대는 어땠나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고3때부터 막노동하고, 용산전자상가에서 냉장고 배달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어요. 그리고 바로 군대에 갔는데 고참들이 대학 얘기를 하더라고요. 대학에 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군대에서 하루에 두 시간씩 공부해서 수능을 봤어요.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연기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고 자연스레 연기과에 진학했죠. 사실 대학 자체가 제게 큰 의미가 있진 않아요.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은 많이 남아 있죠. 지금 이렇게 미친 듯이 연기할 수 있는 것은 학교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저와 제 친구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갔던 덕분인 것 것 같아요. 연기라는 건 절대 누군가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배우가 살아온 흔적들이 결국 연기를 통해 나와요. 대부분의 배우들은 연습을 통한 일관된 감정들이 나오잖아요. 그런 건 제가 볼 땐 되게 재미없어요. 거짓말 같은 느낌들이죠.

살면서 이것만은 꼭 붙잡고 살아야 한다, 이런 게 있다면
사랑. 끊임없는 사랑. 그 중에서도 연인과의 사랑. 그게 삶에 있어 가장 큰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미움도 헤어짐도 사랑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만큼 그리고 저보다도 더 많은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사랑은 꼭 제대로 해봤으면 좋겠어요. 남들과 비슷하게 살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특별한 이유에 의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태어난 이상 특별한 존재로 살아가야죠. 부모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니라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가끔은 싸우기도 할 줄 알아야 해요. 남에게 피해주고 상처 주지 않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거침없이 뛰어드세요. 젊은 데 뭘 망설여요.(노희 기자) 

09.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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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7-2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과 주연을 동시(똥파리),
주연에 대한 느낌이 영화 제5원소의 '게리 올드만'을 나게 합니다.
알파치노,게리올드만,양익준 - 무언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마음도 아픕니다.

돌탑영화의 신지승 감독의 말이 생각납니다.
"풍경보다는 사람의 모습에 촛점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