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간단히 꼽아놓도록 한다. 어느새 4월이고, 여전히 '잔인한 달'이긴 하나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최악은 아니다. <실낙원>에 나오는 타락천사 벨리알의 말을 빌면, 비록 지옥에 나가떨어진 처지라 하더라도 "우리의 현재 운수는 만일 우리 스스로가 더 화를 자초하지만 않는다면, 행복이 보기엔 불행이지만, 최악의 불행은 아니니."(무엇이 최악일까?) 아파트 단지 내 목련들이 앞다퉈 흐드러진 자태를 자랑하다가 하나둘 지고 있다. 꽃핀 날들이 길지 않다, 길지 않을 것이다...  

1. 문학 

지난달부터인가 한국간행물위원회 웹진에서는 이달의 읽을 만한 책 추천자를 따로 밝히고 있지 않다. 분야별 추천자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나도 따로 적지 않겠다. 문학 분야에 선정된 책은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창비, 2009)이다. 추천의 변은 작가의 희소성에 대해서 먼저 언급한다. "한국문학에서 이승우의 위치는 매우 귀하다. 그의 작품 세계의 한 축엔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있고 또 다른 축엔 인간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존재론적인 질문이 있다. 그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관념적인 주제를 지적인 문체로 일관되게 작품 속에 승화시켜 왔다. 그의 데뷔작인 “에리직톤의 초상”이 한국 문학에 강렬하게 풍긴 인상을 아직도 어제 겪은 일처럼 간직하고 있는 독자들도 꽤 많을 것이다." <오래된 일기>는 그런 작가의 중단편 8편을 싣고 있다. 대표작 <생의 이면>(문이당)과 소설작법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마음산책, 2006)도 이 참에 같이 손에 들어도 좋겠다. 목련나무 그늘 아래서.  

2. 역사 

역사 분야의 책은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수전 캠벨 바톨레티의 <히틀러의 아이들>(지식의풍경, 2008)이다. "1932년 10월 히틀러가 청소년단(유겐트) 단원들에게 “젊은이가 위대한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나라의 국민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라고 물었을 때만 해도 그 말의 의미를 아무도 몰랐다. <히틀러의 아이들>은 그 후 독일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라고 소개된다. 사진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묵직한 물음을 던지는 책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이왕에 히틀러를 손에 들었다면 리처드 오버리의 <독재자들>(교양인, 2008)과 라파엘 젤리히만의,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생각의나무, 2008)도 같이 고려해볼 만한 책들이다(책들은 다 구해놓았지만 나는 아직 읽을 짬을 못내고 있다).    

3. 철학 

철학 분야의 책은 신정근의 <공자씨이 유쾌한 논어>(사계절, 2009)이다. <논어>라면 이미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은 번역서와 주해서들이 나와 있는 상태이지만, "이번에 출간된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는 여러 가지 점에서 그 수많은 책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먼저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해설에 이어 발랄하고 경쾌한 일상어로 원문을 번역, 해석했다." 게다가 저자가 이전에 낸 공자/논어 관련서를 집대성하고 있다고. <논어>에 대해서는 예전에 리쩌허우의 <논어 금독>(북로드, 2006) 등을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둔 적이 있는데, 그간에도 여러 권이 더 나왔다. 도올의 <논어 한글 역주>(통나무, 2009) 전3권도 도서관에서 대출해봄 직한 책이다.  

 

4. 정치 

정치분야의 책으로 추천된 것은 미국의 국제전략연구소(CSIS)에서 펴낸 정책보고서 <스마트파워>(삼인, 2009).  "이 책은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는 이유를 분석하고 미국의 새로운 외교 전략으로 ‘스마트 파워’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미국이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시처럼 군사력 등 하드 파워를 일방적으로 휘두르지 말고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문화, 가치 등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 같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통합하고 조율하여 미국의 이익과 세계의 이익을 일치하도록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스마트 파워라는 것이다." 요컨대, '스마트파워 = 하드파워 + 소프트파워'다. 강온 양면책이라고 할까. 조지프 나이의 <소프트 파워>(세종연구원, 2004)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미국의 마지막 기회>(삼인, 2009)도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책이다. 필요할 때 읽어봄 직하다.   

5. 경제/경영  

경제/경영 분야의 책은 역시나 생소한데, 바한 잔지지언의 <버핏톨로지의 비밀>(비즈니스맵, 2009)이다. 워렌 버핏이 누구인지는 알지만 투자할 돈이 없는 처지라 나에겐 이 '오마하의 현인'의 값비싼 충고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니 순수하게 '전기'로 읽을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버핏의 좋은 점뿐 아니라 문제가 될 수 있는 점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한다. 물론 그럼에도 "이 책 역시 거의 대부분이 그의 성공 비결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성공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워싱턴포스트 사 주식을 사들여 20여년 만에 11,609%의 수익을 올린 그의 천재성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에 큰돈을 벌게 해줄 투자대상을 족집게처럼 집어낼 수 있는지 경탄을 하게 된다." 글쎄, 그 '경탄'도 내 몫은 아닌 듯싶다. 버핏의 투자전략에 관한 책으로는 티머시 빅의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 전략>(비즈니스북스, 2005)이 많이 읽히는 듯하다. 이민주의 <워렌 버핏>(살림, 2009)은 가장 간략한 소개이다. 

 

6. 사회 

사회분야의 책은 요하임 바우어의 <학교를 칭찬하라>(궁리, 2009)이다. 책은 생소하지만, 저자의 이름은 낯설지 않아서 찾아보니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에코리브르, 2007) 등 이미 몇 권이 소개된 저자다. 책은 독일의 스테디셀러라고 하는데,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교육당사자들이 힘을 모아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뇌 연구에 주력해 온 신경생물학자요 정신신경과 의사인 저자는 인간의 학습이 “거울뉴런"이라는 공명현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독창적 가설과 함께 학생-교사-학부모의 공조적 관계 형성이 학교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임을 역설한다." 인상적인 건 분량이 185쪽밖에 되지 않는 것. 원저가 150쪽 안팎이지 않을까 싶다. 두어 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책이다.   

7. 과학 

과햑분야의 책은 <세계의 과학자 12인, 과학과 세상을 말하다>(지호, 2009). 무슨 책인가는 이미 제목이 다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진화하는 진화론’의 저자 스티브 존스, 인간의 뇌와 의식을 연구하는 수전 그린필드, 자신의 팔에 실리콘 칩 송수신기를 이식한 인공두뇌학자 케빈 워릭, 인류를 궁지로 몰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를 사랑하는 도로시 크로포드, 암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마이크 스크래튼, 현대 과학의 위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수학자 노먼 레빗 등 12명의 과학자들과 직접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아는 이름이 스티브 존스와 케빈 워릭밖에 없군...  

8. 예술 

예술분야의 책은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엽서 속의 기생 읽기>(민속원, 2009)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이번에 내놓은 <엽서 속의 기생읽기>는 그런 맥락에서 하나의 주제, ‘기생’이라는 대상으로 묶을 수 있는 그림엽서들을 모아 제작한 중요하고도 재미있는 책이다. 총 265점의 자료를 수록해 놓은 이 책은 각 그림엽서의 제목과 그림의 설명, 추측이 가능한 경우 연도 등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단락별로는 필요한 역사적 지식과 문화, 예술적 배경의 장을 함께 싣고 있어 다각도로 당대를 이해할 수 있게 배려했다." 기생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책은 기와무라 미나토의 <말하는 꽃 기생>(소담출판사, 2002). 사진집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아카이브북스, 2005)도 요긴한 자료가 될 수 있겠다.  

 

9. 교양 

교양분야의 책은 잉겔로레 에버펠트의 <유혹의 역사>(미래의창, 2009).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책인데, "남자와 여자에 관한 적나라한 보고서다. 아마도 저자가 남자였다면 상당히 논란이 됐을 만큼 여자의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본능’을 확 까발리고 있다. 독일의 성의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여자들의 세계를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경쟁의 세계로 파악한다. 그 경쟁은 너무나도 치열하다. 진짜건 가짜건 예쁘기만 하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본능이 그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히틀러의 아이들>과 함께 좀 읽어둔 책이어서 반갑다. '유혹'을 주제로 한 책들을 좀 찾아봤지만, 결과는 좀 실망스럽다. 이명옥의 그림책 <팜므 파탈>(다빈치, 2003; 시공아트, 2008) 정도가 눈길을 끌 뿐. 키에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한길사, 2001)로나 손길이 가는 것이 나의 한계다(오래전에 러시아어본까지 구해놓고 아직 안 읽고 있다).   

10. 시차적 관점 

아동분야 대신에 주관적인 관심사에 따라 정하는 마지막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은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이다. 그의 단독저작으론 오랜만이어서 독서욕을 자극한다. 페이퍼백 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같이 읽어도 좋겠고,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을 새롭게 다시 손에 들어도 좋겠다. 지젝과 가라타니의 조우 장면을 보다 잘 관람하기 위해서. 물론 분량상으론 두어 달은 읽어야겠지만...

09. 04. 04.  

P.S. 이달의 고전은 지난 만우절에 탄생 200주년을 맞은 니콜라이 고골(1809-1852) 읽기이다. 작품집을 일단 골랐는데, <오월의 밤>(생각의나무, 2007)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어서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민음사, 2002), 그리고 희곡 <검찰관>(민음사, 2005)이 필독서. 여유가 있다면, <친구들과의 서신 교환선>(나남출판, 2007)까지도 서가에 꽂아두면 금상첨화. 흠, 고골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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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4-05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엇의 '황무지'에 대한 언급 없이 새로운 4월을 맞이하긴 참 힘들군요^^ 작년 4월 로쟈님이 어떤 상태였나 옆 캘린더를 거꾸로 돌려 가보니, 서재 상으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계시네요^^ 서재에 드러난 상징적인 로쟈님과 제가 알 수 없는 실재하는 로쟈님과의 간극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젝은 러시아 혁명의 의미를 다시 묻는 데 굉장히 열심이군요.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그토록 두꺼운 책이 필요하다면 그 혁명이 다시 희망으로 작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참 난감하게 느껴지네요^^ 유토피아에 대한 과도한 갈망 없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도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까요?

로쟈 2009-04-05 09:34   좋아요 0 | URL
서재는 제 '외관'이자 피난처지요(물론 좀 허술하긴 해도).^^; <시차적 관점>은 사실 러시아혁명 얘기만 다루는 건 아니고, '시차'라는 개념을 통해서 자신의 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을 재정식화하려는 시도 같아요. 그래서 부피가 늘어난 것이고, 일종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입니다. 현재까지는 '지젝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푸른바다 2009-04-05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말을 생각해보면 '변증법'은 상징계를 지칭하고 '유물론'은 실재계를 지칭하는 듯 싶기도 하군요. 실재계와 상징계의 관계도 변증법적이라고 해야겠지만... 유물변증법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의 이행은 중심축이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이동하는 것을 상징하는 듯 싶기도 하군요^^ 저도 아주 오래전에 맑스의 '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보다 큰 새로운 사조의 획기적인 전기로 위치지워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정교하게 생각을 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실재계로의 방점의 이동은 화이트헤드가 지적하는 '완벽한 사전의 오류'와도 관련이 있을 듯 싶습니다. 영원히 닿을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작용을 하는 실재를 가정하는 것이 상징계의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끊임없는 생성에의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목적인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는 더 고민을 해봐야 겠지만...

로쟈 2009-04-07 00:21   좋아요 0 | URL
지젝과 화이트헤드라... 지젝도 흥미로워할 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4-0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검찰관>을 연극무대에 올리나요?

로쟈 2009-04-07 00:20   좋아요 0 | URL
상시 공연 레퍼토리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4-0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음양 2009-04-1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바다 / 정감록이 유토피아에 대한 민중의 갈망을 드러내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감록을 보면 난을 피해 숨어 있기 좋은 곳, 즉 십승지설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실제로 그지역으로 특히 북쪽지방 사람들이 많이 이주했지요. 경상도 풍기가 대표적인 곳입니다. 풍기가 인삼으로 유명해진 이유에는 황해도 사람들이 대거 이주해 인삼 재배를 시작하면서 부터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