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눈길을 끈 뉴스 하나는 정부가 '신빈곤층'이란 용어를 금지어(금기어, 금칙어)로 지적했다는 소식이었다. <1984년> 같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이어서(MB의 대한민국은 유토피아다!) '재미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MB부터가 즐겨쓴 이 용어가 현 정부에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준다고 해서 '위기가정'으로 대체될 예정이라고 한다(신빈곤층 문제를 이렇게 간단히 해결하다니!). 스스로 '위기의 정부'임을 광고하는 것인지. 아무려나 '희귀한 사례'가 될 듯싶어서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경기도 안양의 한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신빈곤층의 사각지대를 찾아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현장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에게 직접 전화상담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도 안양의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신빈곤층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한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언급하면서 빈곤층에 "사각지대가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KTV, 09. 02. 06)

경향신문(09. 03. 04) 이명박 정부 금기어 ‘신빈곤층’

3일 일선 지자체가 내놓은 각종 자료에 눈에 띄는 용어의 변화가 생겼다. ‘신빈곤층’이란 용어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신 등장한 용어는 ‘위기가정’이다. 전북도는 이날 ‘신빈곤층’으로 써 오던 관련 자료 용어를 모두 ‘위기가정’으로 바꿔 사용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신빈곤층’이란 용어는 공식용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민주노동당은 2일 민생브리핑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봉고차 할머니’ ‘목도리 할머니’ 등 빈곤층 찾기 쇼를 할 때 현장에서 직접 사용까지 했던 용어를 며칠 만에 금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민노당은 “신빈곤층이라는 용어가 현 정권이 만들어낸 빈곤층으로 들린다는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며 “이제 집권 1년이 지난 현 정권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노당은 “용어 사용에 얽매이지 말고 그 용어 자체가 사라지도록 하는 정책에나 전념하라”고 꼬집었다.

지자체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전북도는 공식적으론 “정부의 ‘신빈곤층’ 용어 자제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료 한쪽 면에 ‘청와대 신빈곤층 용어 사용 금지령’이란 제하의 인터넷판 뉴스를 복사해 첨부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지만 정황으로 볼 때 앞으로 모든 공문서에 신빈곤층 대신 위기가정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시의 한 간부는 “이명박 대통령도 신빈곤층 복지사각 제도를 없애라는 말을 사용했다”면서 “정부 스스로 이 용어를 쓰지 말라고 했다면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대 김모 교수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문서작업시 이전 정권에서 주로 사용했던 단어들은 모두 금지어라는 점에 놀랐다”면서 “예컨대 ‘소외계층’ ‘혁신’ ‘참여’ 등의 단어를 보고서에 쓰면 혼쭐난다”고 말했다.(박용근기자)    

노컷뉴스(09. 03. 05)[변상욱의 기자수첩] 국민은 '신 빈곤층', MB정부는 '신 위기층' 

'신빈곤층'이란 용어가 금지어로 지정됐다고 한다. 지난달 26일쯤 관련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청와대 관계자가 밝히기로 "신 빈곤층이라는 용어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내부 검토에 따라 쓰지 않도록 조치했다. 국민을 계층화 해버리는 의미가 있어 일시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는 내용.

◈ 빈곤층은 '신新' 것인가? 쉰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새롭게 발생하는 신빈곤층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경제 살리기를 공약했었다. 결국 신빈곤층이란 서민·중산층이 이번에 들이닥친 경제위기로 인해 빈곤층으로 추락하면서 생겨났다는 의미로 '신빈곤층'이라고 규정한 것. 노무현 정부가 미처 대응하고 돌보지 못한 새롭게 생겨나는 빈곤층을 새 정부가 예리하게 파악해 적절한 대응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이명박 대통령이 목도리 할머니, 봉고차 할머니 만나고 어려운 가정들 돌아볼 때 마다 사용하던 용어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나도 신빈곤층은 계속 늘어만 가고 경제성장율이 마이너스가 예상되는 마당에 계속 늘어날 것이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신빈곤층'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생겨난 빈곤층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 황급히 지워버리고 싶은 게 속내인 걸로 짐작된다.(물론 설명으로는 국민을 계층화하는 부적절한 용어라 계층으로 굳어지는 게 아니라 일시적인 잠깐 고생하다 다시 중산층으로 상승할 계층이라는 이미지로 바꾸고 싶다고 하지만….)

노무현 정부 책임으로 귀책되는 빈곤층이냐, 이명박 정부 책임으로 봐야 할 빈곤층이냐. 그런 뉘앙스의 차이인데 어차피 신빈곤층이 줄어들거나 신빈곤층이 먹고 사는 데는 전혀 도움 안 되는 머리 굴림.

◈ 국민은 '신빈곤층'으로, MB 정부는 '신 위기층'으로? 

아직 확실히 결정된 용어는 아니지만 일단 대체해 사용하는 것이 '위기가정'인 모양이다. 왜냐하면 보건복지가족부가 '위기가구'라는 말을 계속해 사용해 왔기 때문에 여기서 빌려 온 듯하다. 전재희 보건복지장관이 지난달 말 인터뷰 때 이야기한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신빈곤층이란 말의 의미가 좀 모호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신빈곤층이란 법령적인 것도 학문적 개념도 아니다. 행정적으로 쓰는 용어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소득을 상실해 새로운 위기에 빠진 가정인 셈이다. 복지부는 '위기가구'라는 개념으로 씁니다"

보건복지부의 행정 처리상으로는 소득상실, 폐업, 실직, 주소득자 사망, 이혼, 화재나 교통사고 등으로 생계유지가 갑자기 어려워져 '긴급 복지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위기가구'이다. 청와대는 복지부의 '위기가구'를 그대로 베껴 쓰자니 자존심 상하고 개념의 차이도 있고 해서 '위기가정'으로 일단 바꿔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기가정'이란 용어는 너무 포괄적이다. 조금 더 명확히 하자면 '경제 위기가정' 이렇게 써야 신빈곤층이라는 본래의 표현에 더 가깝다. 그러나 흔히 줄여서 '위기가정' 이렇게 쓴다. 뭔가 경제를 못살려 어려워진 가정, 정부 책임 이런 느낌을 덜 주고 그 가정이 문제가 있고 어려워서 힘을 못 쓴다는 느낌이 강하지 않은가. 은근히 국민에게 떠미는 느낌. 학문적, 행정적 용어를 정리하자면 사회의 계층은 최상위 부유층 - 부유층- 중산층 - 서민층 - 신빈곤층 - 차상위 계층 - 기초수급 대상자 로 이어진다. 위기가정이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신빈곤층의 특징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행정 용어로 '비수급 빈곤층'. 두 가지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복지부의 통게로 경제위기 가구는 8만5천5백 가구이다. 올 경제성장율이 마이너스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개념 정리를 어찌 해나가든 신빈곤층은 늘어만 갈텐데…. 국민은 '신빈곤층'으로, 해결 못해 쩔쩔매는 MB 정부는 '신 위기층'으로 가고 있는 중? 

09. 03. 08.  

P.S. 요점은 '신빈곤층'이란 말을 '위기가정'으로 대체함으로써 '정부 책임'이란 뉘앙스를 제거하고 싶다는 것(결국 빈곤은 가정 문제이고 가장의 책임이다?!). 아무래도 정부에는 이 방면으로 머리 쓰는 인재들이 많은 모양이다. 해서, 신빈곤층을 염려하던 이대통령의 멘트도 소급적으로 교정되어야겠다. "위기가정의 사각지대를 찾아내 지원해야 한다"라거나 "이 대통령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위기가정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남의 가정 일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정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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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3-08 14:59   좋아요 0 | URL
정권교체를 피부로 느끼라고 이렇게 금지 용어를 지정했군요.

로쟈 2009-03-08 16:11   좋아요 0 | URL
아니요, 요즘은 반대 같아요. 정권교체를 못 느끼게 하려고 애를 쓰니까요. '잃어버린 10년'이란 말도 요즘은 안 쓴다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09-03-08 21:01   좋아요 0 | URL
내 남자의 여자 김상중 씨의 극중 배역명이 홍준표라고 하더라구요.그래서 홍준표 의원이 왜 하필 내 이름이냐...고 했단 뒷이야기가 있었답니다.

로쟈 2009-03-08 21:49   좋아요 0 | URL
금지된 이름인가요?^^

람혼 2009-03-09 04:04   좋아요 0 | URL
'위기가정'에 덧붙여 '위기국가' 또는 '위기정부'라는 신조어(?)를 자주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현실에서 할 수 없고 하지 못하는 일을 '언어'의 레벨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이 '상징적인 분서갱유'가 무서울 정도로 기가 막혀서 오히려 귀여울(?) 지경/경지이군요.

로쟈 2009-03-10 00:04   좋아요 0 | URL
'상징적인 분서갱유'가 현실화될까 염려됩니다...

쟈니 2009-03-09 13:11   좋아요 0 | URL
수구 정권이 늘 더 세심하게 언어를 쓴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어로 생각을 조정(? 조절?)하려는 건 어느 나라나 다를 바 없어요. 주구장창 외치던 잃어버린 10년도 안쓴다니, 저러다 선거 앞두고 또 당명 한번 바꾸는 건 아닐까 걱정되군요.

로쟈 2009-03-10 00:05   좋아요 0 | URL
재집권만 한다면 뭐라도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