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경찰 무죄, 철거민 유죄’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기대할 것 없는 수사였고, 예상되었던 결론이다.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소위 '억압적 국가장치'로서의 경찰/검찰 권력이란 한갓 권력과 지배계급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것. "범죄수사를 통한 형벌권 행사 및 법원의 판단에 의하여 구체화된 형벌권의 내용실현을 지휘, 감독하는 국가권력작용"이란 사전적 정의만 놓고 보더라도 검찰(권)과 사회정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해서, 권력의 충복으로서 검찰은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주권을 도둑맞은 국민이 못났을 뿐이다). 그것이 희생자 유족들이 주저앉아 있는 자리이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이다(MB집단에게 국민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 곧 '니그로'다!). 바로 계급이 나뉘는 자리이다...    

‘용산 참사’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9일 오전 희생자 유족들이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들어가려다 경찰에 저지되자 영정을 들고 청사 현관 앞에 주저앉아 있다.

경향신문(09. 02. 10) [책읽는 경향]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강력한 통제수단이었음을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배웠다. 인디언의 역사를 삭제한 채 구성된 아메리칸 드림, 승리자였던 조조 대신 유비를 중심으로 구성한 소설 삼국지 속에서도 배제의 정치적 혐의는 읽을 수 있다.  

최근 ‘용산 참사’를 보면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반응이었다. 사건 초기 각종 언론은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아내려는 떼쟁이 이익집단의 과격한 이해관계 관철 수단(점거농성과 화염병)의 지긋지긋함에 초점을 뒀다. 시위를 한 절박한 이유나 배경, 이들의 삶의 조건과 철거 이후 어떻게 추락할지에 대한 인도적 관심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벨 훅스·모티브북)는 미국 사회가 엄존하는 계급간의 문제점을 왜 이야기하지 않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단순한 삶을 추구하고 탐욕·부·질시의 위험성을 공유하며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도록 배웠던 미국”이 쾌락적 소비주의의 만능 속에 빈자와 약자를 얼마나 당당하게, 그리고 죄책감 없이 무시하게 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렸을 때 늘 듣던 말이 있다. ‘부잣집 애들은 공부를 못하고 가난한 집 애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 계급이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순환되고 있음이 반영된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부자는 영원히 부자이며 가난은 영원히 대물림되는 ‘신 계급사회’에 와 있다. 문제는 점점 이런 부분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됐으며 죄책감조차 없어져 간다는 점이다. 약자에 대한 무감각을 한국사회가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알려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우리 사회야말로 다시 계급에 대해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권미혁|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09. 02. 09. 

 

P.S.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에 이어서 지난해 말에 출간된 벨 훅스의 또다른 책은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모티브북, 2008)이다. "인종.성.계급의 ‘경계 넘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벨 훅스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벨 훅스가 그러한 목표를 실행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결실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너네 공부 안 하면 철거민 된다'라고 주입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과연 그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F4 판타지에 몰입하는 사회에서 나는 기대를 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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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느낌
    from seoulrain's me2DAY 2009-02-11 10:28 
    벨 훅스 읽기 : F4를 무리 없이 소화하는 사회가 우울하다.
 
 
Arch 2009-02-09 23:55   좋아요 0 | URL
기사의 한부분이 정정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부분. 논의의 여지는 많겠지만, 다들 자신의 위치는 중산층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면서 자식의 교육이나 신분상승의 기회를 활용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적극적이잖아요. 혹은 자신이 세워놓은 중산층의 위치가 너무 높아 그 정도면 되는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거나.
경계짓기를 유머 코드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개콘이고, 부자의 억울함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하는 드라마를 보며 대리만족이나 눈이 즐거워지는 체험을 한다니 할말없죠.

로쟈 2009-02-10 11:10   좋아요 0 | URL
저는 그것이 인간이 본성인지, 혹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말하듯이 자본주의하의 '이차적 본성'인지 헷갈립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처방도 달라질 듯싶은데요...

yoonakim 2009-02-10 12:20   좋아요 0 | URL
너네 공부안하면 철거민 된다.....밥 먹고 누우면 소된다...가 더 낫네요. 정말 끔찍한 가운데 살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감성구조의 변화와 그것이 고착화되는 속도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막막함과 황당함 무력감을 기본으로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별로 없어요.

로쟈 2009-02-10 13:05   좋아요 0 | URL
인문학(혹은 책)이 뭘 바꿀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약간 지체시킬 수 있을 뿐인지, 그런 고민까지 하게 됩니다...--;

yoonakim 2009-02-10 12:22   좋아요 0 | URL
참, 이리 멘젤 영화는 비디오로 여러개 가지고 있는데 혹시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전주영화제 세미나용으로 받았던 테잎이거든요.^^

로쟈 2009-02-10 13:04   좋아요 0 | URL
오호, 그럼 나중에 신세를 좀 질게요.^^

게슴츠레 2009-02-10 13:35   좋아요 0 | URL
"F4 판타지에 몰입하는 사회에서 나는 기대를 꺾게 된다..." 완전 공감입니다. 나름의 '도덕'을 준수하려고 노력하는 공중파에서 <꽃남>이 방영되는 것도 신기하다만, 그걸 일체의 무리없이 완벽하게 즐기는 데 성공하는 이들의 존재는 정말이지 놀랍다고밖에 말 못하겠습니다. 단순히 '도'를 넘어섰다는 보수적 개탄을 넘어서 본격적인 미디어 비평들이 쏟아져 나오면 어떨까 싶습니다.

로쟈 2009-02-12 22:34   좋아요 0 | URL
그게 딜레마입니다. 미디어비평을 위해서 '꽃남' 시청자가 되고 싶진 않거든요...

2009-02-11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2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9-02-12 10:51   좋아요 0 | URL
F4가 뭐죠??

로쟈 2009-02-12 22:33   좋아요 0 | URL
흠, 산책님도 '따'시겠는데요...

릴케 현상 2009-02-13 12:08   좋아요 0 | URL
앗 농담이었다고 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