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서 '최근 미시사의 성과들'을 다룬 서평을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7195). 미시사 관련서 세 권이 서평의 대상이다. 직접 읽을 수 있는 형편은 못 되더라도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더라' 정도는 챙겨두어야겠다. 그 또한 교양이므로...

 

교수신문(08. 11. 10) 진실 독점하는 ‘全知的’ 관점 버리니 잊혀진 인간의 얼굴이 보이네

미시사란 비유하자면 줌인(zoom-in)의 역사다. 미시사가 줌인 하고자 하는 것은 實名의 인간 개인 혹은 소집단이 영위해 온 구체적인 삶의 細切이다. 인류학자들이 ‘마을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연구하는 것처럼, 미시사가들 역시 과거를 멀리서 관찰하기보다는 과거 사람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과 공감하며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고자 애쓴다. 종래의 역사에 비해 미시사가 종종 더 미묘하고도 다층적인 인간 감정과 정서와 욕망들을 분별해 내곤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접근법 덕분이다.

인간의 구체적 삶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지향하는 미시사가 그들을 ‘설명’하기보다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때로는 그 이야기 속에 역사가 자신도 슬쩍 끼어든다. 미시사는 더 이상 역사적 진실을 독점하는 ‘全知的’ 관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역사 속에서 잊혀져온 수많은 기억과 목소리와 얼굴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할 따름이다.

196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약 20년간은 미시사가 새로이 출현한 시기였다. 이 시기 1세대 저작들은 대체로 사회사적 기반 위에 미시사적 관점을 접목한 것으로 미시사회사적 경향이 농후했다. 2세대는 시기상 대략 1990년대 이후의 저작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특징은 우선 양적 팽창인데, 최근 20여 년간 수많은 미시사 저작들이 쏟아졌다. 연구시기도 1세대의 주류였던 근대 초를 벗어나 20세기까지 확장됐다. 연구범위와 주제도 다양해져서 이례적 사건과 반복적 일상을 넘나들며 젠더, 가족, 몸, 경계인,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로 그 관심사를 넓히고 있다. 지방사, 생활사, 여성사, 구술사, 풍속사, 문화사 등도 그 성격상 미시사와 공유하는 점이 많다.



로렐 대처 울리히의 『한 산파의 이야기: 자술 일기에 근거한 마서 발라드의 생애, 1785~1812』(1990)는 2세대 미시사의 대표적 저작이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여기서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까지 미국 메인 주 케네벡 강가에 위치한 100가구 내외의 작은 마을 할로웰에 살았던 마서 발라드란 산파가 죽을 때까지 무려 30년 가까운 긴 세월에 걸쳐 쓴 비망록식 일기에 기초해그녀의 삶을 되짚어가고 있다(이 책이 일기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산파일기’란 역서명은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녀는 이 기간 동안 겨울에는 얼어붙고 봄에는 범람하는 위험한 강을 오가며 816번이나 주변 마을의 아기를 받아냈다. 마서의 일기는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완고한 일상성으로 점철돼 있지만, 이런 점이야말로 사료로서 일기가 갖는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하다. 정확히 9천965일 동안의 일을 기록한  마서의 일기는 그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엿보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마서의 시대에 산파란 단순한 직업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한 편으로 남편의 부족한 벌이를 보충해 가족을 부양하는 방책이었지만, 동시에 마음 속 깊이 이웃과의 공감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소명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녀의 일기는 당시까지 대학에서 교육받은 (남성)의사가 아니라 (여성)산파가 출산에서 훨씬 더 중심 역할을 했다는 의료사의 중요한 사실도 깨우쳐 준다. 또한 통상적인 장부에는 나와 있지 않은 가계 경제의 이면들, 즉 아마씨를 언제 뿌리고 어떻게 키우고 언제 수확했는지, 그것으로 마서와 그녀의 딸들이 어떻게 실을 잦고 베를 짰는지도 세세히 얘기해준다. 아메리카 동북부의 외진 마을에 살았던 마서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우리 기억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미시사이다.



이제 1차대전 직전, 제3공화국 시절의 프랑스 파리로 옮겨가 보자. 에드워드 베렌슨이 쓴 『카요부인의 재판』(1992)이 다루고 있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전직 총리이자 좌익 급진당 당수였던 조제프 카요의 부인 앙리에트이다. 무대는 보수파 일간지 <르 피가로>의 편집장 가스통 칼메트의 사무실. 시간은 1914년 3월 16일 오후 6시경이다. 당시 칼메트는 근 석 달 동안 온갖 저열한 수단을 동원해 조제프 카요를 비방하는 기사를 게재해오고 있었다. 급기야 3월 13일에는 조제프가 情婦 베르트 게이당(뒤에 그의 첫째 아내가 된다. 앙리에트는 두 번째 아내였다)에게 보낸 비밀 私信까지 공개하면서 그 속에 담긴 그의 도덕적·정치적 위선을 만천하에 공개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3일 뒤 가스통의 사무실을 찾은 앙리에트는 브라우닝 자동권총으로 그를 난사해 절명케 한다. 7월 28일 저녁, 배심원단은 놀랍게도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희대의 사건은 일단 막을 내린다.

프랑스가 전쟁에 참전하기 3일전까지도 거의 모든 신문의 첫머리를 장식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됐던 이 재판은 이른바 ‘벨 에포크’라 불린 세기말 프랑스의 거의 모든 문제점들이 함축돼 있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가족과 사랑, 도덕과 이데올로기, 여성성과 남성성, 섹슈얼리티와 정치에 대한 상반된 가치들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던 전쟁 직전 프랑스 사회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대는 다시 15세기 후반의 피렌체.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전문가인 마르티네스가 2003년 ‘감독한’ 최신작 『사월의 유혈극: 피렌체와 반 메디치 음모』다. 이 역시 카요 재판처럼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 강도는 훨씬 더 끔찍하고 엽기적이다. 1478년 4월 26일, 일단의 자객들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으로 들어가던 메디치가의 일명 ‘大人’ 로렌초(번역과는 달리 ‘위대한 로렌초’가 아니다. 원래 그의 ‘위대한’ 행적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를 습격한다.

당시 병색이 짙었던 줄리아노는 칼에 난자당해 죽었으나 로렌초는 운 좋게 달아난다. 이것이 이른바 ‘파치 음모’이다. 이는 신흥 귀족 메디치가에 밀려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던 명문 파치가가 교황 식스투스 4세의 비호 아래 일대 반전을 노린 사건이었다. 하지만 곧 로렌초의 피비린내 나는 무자비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주모자들은 붙잡혀서 처참하게 살해되고 그 시체는 아이들의 놀이감으로 또는 개의 먹잇감으로 던져진다. 심지어 정적의 시체 일부를 먹는 ‘카니발리즘’의 제의가 행해지기까지 한다. 저자는 ‘파치 음모’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전통적인 공화주의 판도를 무력화하려는 메디치가의 또 다른 ‘음모’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메디치 통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최근 서구 학계의 대체적인 경향에 대한 반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파당성이 강한 이탈리아 학계의 풍토에서 이러한 시도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가 지금까지 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진짜’ 역사가는 없었다고 단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르티네스는 이 사건을 하나의 창으로 삼아 당시 피렌체에서의 이념 투쟁, 정략적 혼인 정책, 정적을 말살하는 ‘창의적인’ 갖가지 방법, 후원자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자유’의 한계 등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층위들을 상세히 전해준다. 하지만 성벽으로 둘러싸인 최대 인구 7~8만의 당시 피렌체에서는 이 모든 측면이 정치라는 용광로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또 다른 주장이다.

이 세 저작들의 공통점은 마서의 일기든, 카요의 재판이든, 혹은 파치의 음모든 간에, 모두가 그것을 하나의 창으로 삼아 그것을 둘러싼 더 넓은 컨텍스트와 더 깊은 층위들을 판별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변용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이것이야말로 미시사를 가로지르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곽차섭 부산대·서양사)

08.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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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l 2008-11-12 01:46   좋아요 0 | URL
필자가 서양사학자라서 최근 번역된 책 세권만 소개한거 같은데, 사실 비슷한 방법론으로 한국사를 들여다본 저서들도 상당히 많은거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겟지만요. 특히 최근에 나온 (아직 살펴보지는 못한) '양반의 사생활'이 이런 접근법으로서 좋은 예가 아닌가 싶군요.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510787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위의 세권 중 두번째와 세번째는 미시사 책을 몇권 읽어보면 느낄 수 잇는 '소재주의'가 감지되는데요, 물론 읽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얘기하는게 편견이겟지만요.

로쟈 2008-11-12 21:30   좋아요 0 | URL
흥미로운 소재를 찾아내는 것도 능력일 듯싶은데요.^^

반딧불이 2008-11-12 23:44   좋아요 0 | URL
최근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를 재미있고 읽고 미시사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로쟈님 덕분에 새로운 책들을 알게 되었네요. 감사드립니다.

로쟈 2008-11-13 06:56   좋아요 0 | URL
이후엔 '긴즈부르그'로 표기됩니다. 저도 옮겨놓았을 뿐인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