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써야 할 원고들이 많아서 미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어느새 11월이다. 아마도 1년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달을 꼽자면 2월과 11월이 되지 않을까? 12달 가운데도 주연과 조연이 있다면, 2월이나 11월은 만년 조연에 딱 맞는 달들이다. 비록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달이긴 하나 남몰래 책을 읽기에는 더 좋은 달일 수도 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제지수들이 변수가 될 수는 있겠지만...

1. 문학

신경숙 작가의 추천작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 2008)이다. 이 작품을 모른다면 알라딘 마을에서는 '간첩'과도 같으니 군말은 필요 없겠다. 나는 일찌감치 지인에게서 선물을 받았지만 10월에는 읽을 여유가 없었다. 해서 대신에 '김연수 문학의 기원'(http://blog.aladin.co.kr/mramor/2333164)이란 페이퍼만 올려두었었는데, 11월에는 사정이 좀 다를 수도 있다(달라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에 보면 와다 하루키의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창비, 1995)에서 처음 민생단 이야기의 단서를 접하게 됐다고 하면서 김연수는 이후에 도움을 받은 몇 권의 책을 나열한다. 신주백의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아세아문화사, 1999)와 김성호의 <1930년대 연변 민생단 사건 연구>(백산자료원, 1999) 등이 도우미가 된 책들이다. 그의 소설의 독자라면 한번쯤 같이 뒤적여봄 직하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몇 권의 일본시집도 같이 읽어보는 건 어떨까?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밤은 노래한다>를 읽은 여운으로 들춰보았다는 시집들이다(http://h21.hani.co.kr/arti/COLUMN/68/23580.html). 1886년에 태어나 26살에 요절했다는 일본의 '국민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집도 오랜만에 열어볼 수 있겠다.  

“내 친구는 낡은 가방을 열고/ 희미한 촛불이 흩어지는 마루 위에/ 여러 가지 책을 꺼내놓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 이 나라에서 금지된 것들이었다.// 마침내, 내 친구는 사진 한 장을 찾아내어/ ‘이거야’ 하고 내 손에 얹어놓고는/ 조용히 또 창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쁘지도 않은 젊은 여인의 사진이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 ‘낡은 가방을 열고’ 전문)

마지막 행은 “그건 아리땁다고만은 할 수 없는 젊은 여자의 사진이었네.”라는 소설의 번역이 더 '시적'이긴 하다. 아무튼 '낡은 가방'을 열어보듯이 오래전 책들의 먼지를 슬며시 닦아보자. 없으면 도서관에 가서라도 닦아보도록 하자...

2. 역사

이덕일씨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이진이의 <이순신을 찾아 떠난 여행>(책과함께, 2008)이다. 어인 또 이순신인가, 싶지만, 추천의 변을 들어보면 일리가 없지 않다. "이순신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고, 필자도 노산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1969년판)>을 필두로 여러 권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책은 계속 나오고 있고, 그때마다 또 손길이 가게 된다. 그만큼 그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은 피해갈 수 없는 바위처럼 우뚝한데 과거 군사 정권의 의도에 의해 과장된 인물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고 접근하지만 그런 의도를 뛰어넘는 콘텐츠를 확인하고 매료되고만 경험을 가진 사람도 많다." 물론 저자가 그런 사람이고.

책은 “삶이 몹시 힘들다고 생각된다면…나처럼 이순신의 삶을 따라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을 담은 "인간 이순신과 함께 하는 여정"이라 한다. 그 여정에 겸사겸사 김훈의 <칼의 노래>(생각의나무, 2003)를 다시 빼들 수도 있겠다(<난중일기>는 어느 것이 '정본'인지 모르겠기에 넘어간다). 궁색한 처지인지라 새책을 살 여유도 없으니 읽은 책이나 한번 더 읽도록 하자(사실 나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이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얼마전에 소개한 바 있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나는 누구인가>(21세기북스, 2008)이다(소개기사는 http://blog.aladin.co.kr/mramor/2346452 참조). "눈에 띄는 철학 입문서가 나왔다. '나는 누구인가... 이미 알고 있다고요? 그럼 얼마나 알고 계신지요?' 계급장 떼고 전공 불문하고 한번 제대로 따져보자는 식이다. 이제껏 자기 분야에 갇혀 ‘똑같은 노선을 단조롭게 오가는 나이든 버스 기사’ 같았던 철학자가 새로운 스타일로 변신하여 대중들 곁으로 바짝 다가온 느낌이다. 결코 지루하거나 골치 아프지 않은, 그러나 핵심을 놓치지 않는, 흥미진진한 사유의 테마 여행 속으로 독자의 손을 잡아끈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로 루이 라벨의 <자아와 그 운명>(누멘, 2008)과 앤서니 엘리엇의 <자아란 무엇인가>(삼인, 2007)도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각각 '자아(나)'에 대해서 철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어떤 해명/설명을 시도해왔는지를 간추려주는 책들이다. 나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책의 상태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할 수 없다. 

사라 밀즈의 푸코 입문서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앨피, 2008)이 출간된 김에 푸코와 주체/자기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볼 수 있겠다. <자기의 테크놀로지>(동문선, 1997)을 비롯해서 <성의 역사 3: 자기에의 배려>(나남, 2004), <주체의 해석학>(동문선, 2007) 등이 리스트에 오를 만하다. 자아 혹은 자기란 발견의 대상인지, 구성의 대상인지, 아니면 해체의 대상인지 늦가을의 고독을 씹으면서 한번 생각해봄 직하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고른 정치분야의 책은 장기표의 '17세를 위한 교실 밖 정치 교과서' <지못미, 정치!>(시대의창, 2008)이다. "저자가 기성세대로서 우리사회의 주인이 될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정치제도와 문화를 지켜주지 못하고, 낡은 지역주의 등 잘못된 정치를 물려줘 미안하다는 자괴감에 기초해 자라나는 주인인 청소년에게라도 정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생각을 갖게 만들어주기 위해 쓴 책"이라고. 청소년을 위한 '정치(학)' 입문서라고 해야 할까.

혹 여유가 된다면 비슷한 컨셉을 가진 국외의 책들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청소년을 위한 정치 이야기>(다른우리, 2005),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웅진지식하우스, 2006)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전자는 독일 청소년들을, 후자는 스페인 청소년들을 겨냥해 씌어진 듯한데, 우리도 해외에 번역될 만한 '정치 교과서'를 가질 때도 되지 않았나? <지못미, 정치!>가 그런 기대에 부응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손교수에 따르면, "청소년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정치교양서"이다.  

'일반 국민들'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정치적인 것'에 대한 정치철학적 관심을 총족시키고 싶은 독자라면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08), 샹탈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후마니타스, 2007), 한나 아렌트의 <정치의 약속>(푸른숲, 2007)을 같이 읽을 목록으로 올려둘 수도 있겠다. 내가 그런 경우인데, 최근에 <정치의 약속>의 원서를 입수함으로써 준비를 다 마쳤다. 샹탈 무페도 그렇지만, 특히 랑시에르 같은 경우는 원서나 영역본 등의 도움 없이 번역본만으로 맥락을 따라가기가 좀 어렵다(역자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한국어가 이런 철학서에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사실 랑시에르가 자주 인용하는 플라톤의 <법률>도 아직 국내엔 번역돼 있지 않다. 아직도 우리는 '가장자리'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브루스 핸더슨 등의 <서브프라임 크라이시스>(랜덤하우스코리아, 2008)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뒤흔들면서 이미 많이 언급된 책이다. 추천의 변에 따르면, "이 책을 쓴 사람들은 경제학자가 아닌 저널리스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쉽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실 서브프라임 위기는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사람조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문제다. 그런 복잡한 문제를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 복잡한 문제'는 '머리 아픈 문제'이기도 하고 당장 경제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는 '살 떨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당신의 아파트가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선대인 등의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한국경제신문, 2008)나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풍요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지구의 풍요 또한 끝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말을 맞이하지 않으시려면 빈곤을 준비하십시오. 빈곤이 싫다면 종말을 맞이하십시오."라고 충고하는 김재인의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다운>(서해문집, 2008) 등 최근에 나오는 경제 관련서들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고 살벌하다(<부동산 대폭락의 시대가 온다>의 저자 인터뷰는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1028114010 참조). '솟아날 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일독해봄 직하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도 눈에 익다. 아비샤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동녘, 2008). 책은 "성장 위주의 ‘양적 사회’에서 ‘질적 사회’를 넘어 ‘품격 사회’가 대안적 발전 목표로 거론되기 시작하는 이즈음, 국가의 품격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곰곰 생각토록 하는 읽혀지기를 바라는 서적에 속한다." 현재 예수살렘의 히브리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라는 저자의 책은 몇 권의 공저가 소개된 바 있지만 단독 저작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한 서평자는 "25년 전 존 롤스의 <정의론>이 출간된 이래 사회정의 문제를 다룬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까지 평했다. 소개의 글을 읽으면 좀더 흥미로워지는데,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동물농장>, <1984>를 쓴 사회주의 작가 조지 오웰은 언젠가 자신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즉 사회주의의 ‘비결’은 평등사상에 있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여태껏 사회주의의 부산물이었고 우리가 아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적인 형제애다.”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몸소 체험했던 오웰의 이런 생각이 ‘품위 있는 사회’에 가장 가깝다고 말한 한 학자가 있다. 바로, 2000년 공저<옥시덴탈리즘>을 통해 서양을 바라보는 적대적 편견을 이야기한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이다.

저자에 대해서 급 호감과 관심을 갖게 한다. 소개기사를 옮겨놓으려다 말았던 책인데, 챙겨두어야겠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추천한 교양과학서는 제인 구달과 루이스 리키를 다룬 진주현의 <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김영사, 2008)이다. "인류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화석, 침팬지 무리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행동을 담은 이야기를 책에서 접했던 독자들이 고인류학, 영장류학의 선구자인 루이스 리키와 제인 구달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 사실 루이스 리키, 메리 리키 부부와 제인 구달은 사제지간이라고 한다.

"고릴라와 오랑우탄을 연구하는 다이앤 포시와 비루테 갈디카스, 제인 구달"을 루이스 리키의 '세 천사'라고 부른다는데,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의 자전적 기록은 국내에도 번역돼 있다. 각각 제인 구달의 <제인 구달>(사이언스북스, 2005)과 다이앤 포시의 <안개 속의 고릴라>(승산, 2007)이다. 갈디카스의 책으론 <에덴의 벌거숭이들>(디자인하우스, 1996)이 소개됐었고. 세 사람에 대한 스케치로는 사이 몽고메리의 <유인원과의 산책>(다빈치, 2001; 르네상스, 2003)이 있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사진작가 조선희의 <네 멋대로 찍어라>(황금가지, 2008)이다. 조선희는 사진을 찍되, 어떤 대상을 어떻게 찍을까를 염려하지 말고 마음의 소리를 들으라는 조언을 한다. "사물마저도 그 사물들의 이야기에 마음의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책 안에는 이러한 심정으로 작가가 찍은 사진들이 다양하게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솔직한 사진 찍기의 충고들이 담겨있다."고 소개된다. 개인적으로는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별로 즐겨하는 편이 아니므로 '어떤 대상을 어떻게 찍을까'에 대해서 염려하거나 고민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하지만 좋은 사진을 보는 즐거움마저 마다할 이유는 없다(비록 고가의 사진집들을 소장할 여유는 아직 못 되지만).

최근에 나온 사진관련서로, 보다 정확하게는 사진과 역사의 만남을 다룬 책으로 이경민의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 2008)와 김장춘의 <세밀한 일러스트와 희귀 사진으로 본 근대 조선>(살림, 2008)이 눈길을 끈다(관련기사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022029015&spage=5 참조).  

그리고 최근에 나온 풍경 사진집으로 눈에 띄는 것은 강운구의 <저녁에>(열화당, 2008)과 정봉채의 <우포늪>(눈빛, 2008)이다. 각각 한 장의 표지 사진만으로도 사색의 공간을 그윽하게 넓혀준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를 담은 여행서,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웅진지식하우스, 2008)이다. 빌 브라이슨이 대표적이지만, 요즘은 불평꾼, 혹은 투덜이들의 여행기가 대세인 모양이다. "여행기와 문화인류학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종합한 책은 처음 보았다"고 하는 걸 보면 재미는 있는 책인 듯. 전에 읽다 만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21세기북스, 2008)과 견주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투덜이계의 왕중왕'을 뽑는다고 할 수 있을까? 와이너나 브라이슨이라면 '여행할 권리'(김연수)는 곧 '궁시렁댈 권리'이지 않을까 싶다.

10. 르 클레지오

이제 끝으로 아동서 대신에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 '특선'을 마련한다. 여느 때와는 달리 이미 많은 작품이 소개된 작가라 몇 권 추릴 수밖에 없는데, 나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골라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작품인 <황금물고기>(문학동네, 1998)부터가 그 계열에 속한다. 소개에 따르면, "<황금 물고기>는 프랑스 갈리마르사에서 1997년에 출간되자마자 순수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어떤 이야기인가?

"이 작품은 예닐곱 살 때 유아 인신매매단에 납치돼 팔려간 한 소녀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다. ‘밤’이라는 뜻의 라일라라는 이름의 소녀. 예닐곱 살에 유괴당한 그녀는 랄라 아스마라는 노파의 집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란다. 노파의 죽음 이후 우연히 창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숱한 역경과 고난 끝에 프랑스로의 밀입국. 미국, 또 다시 프랑스로 전전하다 결국 자신의 나라 아프리카로. 그녀의 조국의 땅을 밟은 순간 본디 자기가 서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연이어 <사막>(문학동네, 2008)과 <아프리카인>(문학동네, 2005)까지 읽으면 얼추 그 문학세계의 윤곽이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08. 10. 31.

P.S. 11월의 고전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열림원, 2006)이다. 1870년작으로 '마조히즘'을 창시한 오스트리아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대표작이다. "마조히즘의 극단적인 감각주의를 보여주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로, 자허마조흐의 일생과 문학 전반을 지배한 피학적 성적 취향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는 게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바이다. 최근에 닉 맨스필드의 <마조히즘: 권력의 예술>(동문선, 2008)이 출간되는 바람에 들뢰즈의 <매저키즘>(인간사랑, 2007)과 세트로 묶어서 읽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맨스필드는 서론에서 자신의 기본적인 입장을 이렇게 밝혀놓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나의 결론은 마조히즘이 권력에 대한 특정한 실험이며 이 실험에서 주체는 쾌락과 고통, 능동성과 수동성, 권력과 권력의 부재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시나리오를 꿈꾼다는 것이다."

모피를 입기에는 좀 이른 계절이지만 마조히즘에 입문(?)하기에는 오히려 적합할는지도 모른다. 축축하고 이 음산한 계절에, "자기 포기를 통해서 자신을 강화하고 자기 부정 나아가 자기 절단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확장시키는 그러한 권력의 모델"은 위험하면서도 충분히 유혹적이지 않을까? 곧 추운 계절이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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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1-0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 브라이슨도, 지금 제 앞에 있는 에릭 와이너도 왜 '불평꾼', '투덜이'로 카피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네들이 책에서 우스운 말로 불평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부정적인 단어들을 마케팅하는데 끌고 들어오는 것도 잘 이해가 안가요. 좀 심하게 말하면, '너네들은 짖어라,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줄아냐, 이 불평꾼들아' 로 들려서 기분 나빠요.

그나저나 르 클레지오는 위에 번역되어 나온 것 말고도 무지막지하게 번역되어 나오네요. 노벨문학상이 뭐길래..

로쟈 2008-11-04 22:22   좋아요 0 | URL
개그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 설정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대리만족의 순기능도 있을 법합니다. 호통개그처럼...

陳周賢 2008-11-28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알라딘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제 책(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글 남깁니다!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읽어보시게 되면 많은 비평 부탁 드려요. 처음 쓴 책이어서 이렇게 막상 나오니 겁도 나고 쑥스럽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

로쟈 2008-11-28 23:19   좋아요 0 | URL
책은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페이퍼는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을 기억하기 위한 용도이기도 합니다. 목차는 충분히 흥미롭고 짜임새가 있어 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