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초인가 스토리텔링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어보고 이 주제의 책들은 실용서나 처세서 정도로 치부하는 편인데(그나마 인문학에서 돈 된다고 하는 쪽이다. '스토리텔링'과 '콘텐츠'는 금박 입은 단어들이다), 제법 유혹적인 책이 출간됐다(하기야 이 서재도 많은 이들에겐 그냥 '실용적인' 도서 정보 제공처이겠지만). 마이클 티어노의 <스토리텔링의 비밀>(아우라, 2008). 이름이 생소한 저자보다는 역자가 더 눈길을 끄는데,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한 김윤철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번역이다. 아마도 한예종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책인 모양이다. 그런데, 유혹적이라고 한 건 이 책이 스토리텔링의 비밀 전수서로서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입문서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원저의 제목이 '시나리오작가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시학>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런 아이디어쯤은 다들 가져봤을 것이다. 단 저자인 티어노는 그걸로 책 한권을 써냈다는 점이 차이다. 일반독자들이 <시학>을 접할 수 있는 유익한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8. 10. 25) 시나리오 작법의 비밀 알려줄까요

방송가와 영화판 언저리에 작가 지망생 집단이 형성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누군가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야기의 끈을 잡아채려 시간을 톺고 있을 것이다. 그중 누군가는 몇 달 씨름 끝에 완성한 금쪽같은 대본에 내려진 주변의 혹독한 평에 좌절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바로 이런 이들에게 관객이 감동하는 이야기를 쓰는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속삭이는 책이다. 그 비밀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에 담겨 있다. 알고 보면, 이 2천년도 더 묵은 책 <시학>은 이 시대 드라마 생산공장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공공연한 시나리오 작성의 바이블이다.

할리우드의 스토리 분석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마이클 티어노가 쓴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을 밑줄 삼아 할리우드산 명작 영화들을 조목조목 분석해놓은 작법 지침서라 할 수 있다. 글쓴이는 단언한다. “위대한 영화를 분석해 보면, 그 영화를 만든 작가와 감독은 관객들이 어떻게 드라마에 반응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시학>은 바로 그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극적인 이야기 구조의 근본 요소를 꼼꼼히 적시하고 있는데, 그 극적 구조의 비밀 문을 여는 제1의 열쇳말은 이렇다. “이야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좋은 작가는 이야기를 위해서 일하고, 시원찮은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서 일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극적인 이야기 구조란 무엇인가. 글쓴이 티어노는 이를 풀어내기 위해 ‘액션 아이디어’라는 용어를 꺼내놓는다. 굳이 풀이하자면 ‘플롯화된 이야기 개요’라고 할 수 있는 이 용어를 통해 글쓴이는 이야기(=드라마)는 액션, 곧 행동임을 일러 준다. <시학>은 이야기는 반드시 행동에 관한 것이어야 하며, 행동은 인물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극적 행동을 주도해야 하는 것이다. 가령 영화 <조스>는 식인 상어를 막으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요컨대 <조스>라는 전체 이야기가 딛고 서 있는 아이디어는 바로 식인 상어를 막는 일, 그 행동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 플롯을 짜는 능력 또는 강력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그가 보기에 구성보다 대사나 성격 묘사에 능한 것은 초보자들이지 좋은 작가가 아니다. 나아가,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려면 어떻게 써야 하나? <시학>의 대답은 행동의 극적인 통일, 곧 플롯의 통일이다. “이야기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반드시 하나의 전체 행동을 모방해야 한다.”

단일하게 통일된 플롯은 이야기 속 사건들이 서로 개연적인 또는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존재하게 한다. 어떤 사건이 들어 있든 들어 있지 않든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 사건은 꼭 필요한 게 아니므로 과감히 빼라는 얘기다. 인과관계로 연결된 사건을 통해 하나가 된 플롯은 바로 한 인간의 모습을 온전히 그려내며, 중요한 것은 그 플롯 행동이 주인공의 가장 깊숙한 욕망과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통일된 플롯이야말로 이야기의 목적이라고까지 설파하는데, 이는 관객의 감정이입 혹은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플롯 구조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관객의) 연민은 부당하게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일어나고, 공포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일어난다. 주인공의 운명 변화에서 그 원인은 악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과실(착오나 실수)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극적인 이야기에서는 반드시, 주인공이 일으키거나 주인공이 연루돼 있는 ‘비극적 행위’가 일어나야 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비극적 행위는 잭(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 차가운 대서양 얼음바다에서 로즈(케이트 윈즐릿)를 구하기 위해 널빤지를 밀어올려준 뒤 죽는 일이다.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 막시무스의 실수는 코모두스를 로마 황제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을 때 일어나며, 막시무스는 이 ‘과실’로 말미암아 가족을 잃고 노예가 되고 끝내 죽음에 이른다.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 레스터(케빈 스페이시)는 삶이 아름다우며 그 순간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총을 맞는 것이다.(허미경 기자)

08. 10. 25.

P.S. 소설가 박민규씨의 추천사는 이렇다: "여기 마이클 티어노가 전하는 <스토리텔링의 비밀>이 있다. 이는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당신을 연결해줄 가장 쉽고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제 축구는 축구선수들에게 맡기고, 타고난 당신의 재능 위에 이천년 이상 역사를 장악해온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탑재하라. 티어노의 말처럼 할리우드라는 원형 경기장에 뛰어나가서도 당신은 두 팔을 벌리고 이렇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덤벼, 다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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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0-26 00:05   좋아요 0 | URL
헤...막시무스다...

로쟈 2008-10-26 00:48   좋아요 0 | URL
'다 나와!'란 대사는 요즘 많이들 입에 물고 다니실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