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예술의전당에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가 개관20주년 기념 공연의 하나로 무대에 오른다.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긴 하나 이번 공연이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 때문이다. 얼핏 생소한 이름이지만 지난 2003년 그가 연출한 <보이체크>를 본 관객이라면 '아, 그 사람!'이라고 기대를 가질 법하다. 러시아 최고의 연극상인 황금마스크상 연출가상 수상자이니 허명은 아니다. 곧 거장급 연출가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내달의 가장 기대되는 공연이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한겨레의 관련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317233.html 참조).

매일경제(08. 10. 20) 안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

"옷을 다 벗어보세요."

안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 연출을 맡은 러시아 대가인 유리 부투소프(43)의 갑작스러운 주문에 배우 김태우 씨(트레플레프 역할)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머니의 애인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뺏기고 작가의 꿈마저 좌절된 트레플레프가 자살을 결심하는 순간 무대에서 옷을 갈아입으라는 지시였다. 얼굴 표정만으로 심리 상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장되고 극단적인 설정을 도입하려는 의도다. 물론 대본에는 없는 장면이다.



이렇듯 부투소프의 연극은 연습 과정에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하는 `생명체` 같다. 배우의 모습과 움직임, 무대 세트를 보면서 떠오르는 영감에 따라 대사와 장면을 바꾼다. 어떤 작품이 생산되는지는 오직 공연날에만 확인할 수 있다. 11월 7~23일 예술의전당 공연을 앞둔 그는 "국가와 민족에 따라 사람이 다르듯 배우에 따라 연극도 달라진다"며 "순간순간 나의 느낌을 무대에 올린다는 생각으로 연출한다"고 말했다.

원작의 향기를 살리기 싫어하는 `나쁜 연출가`인 그의 무대는 삐딱하고 파격적이다. 112년 전 작품을 올리면서 의상과 무대 세트, 언어를 현대적으로 바꿔버렸다. 보통 `갈매기` 무대 세트는 호수와 정원이 등장하지만 그는 7m 높이의 계단 두 개와 거대한 창문으로 꿈을 이루고 싶은 인물들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원작에서 검은 옷만 입는 마샤 역할의 내면 속에 들끓는 감정을 포착해 하얀 원피스와 노란 구두, 빨간 모자, 분홍색 선글라스를 착용하도록 했다.

도대체 부투소프는 `갈매기`가 어떤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과감한 변형을 시도하는 것일까. 그는 "죽음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며 "연극을 보면 알 것"이라고 불친절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메드베젠코 역할을 맡은 김경익 씨가 부연설명을 했다. 어머니는 탄생을 의미하며 죽음과 더불어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고 죽게 되는 부조리한 삶이 복잡하게 얽혀 사는 세상을 체호프 특유의 언어로 들려준 작품이 바로 `갈매기`다.



체호프의 작품 세계와 연결 지점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는 부투소프는 "체호프는 첫 번째 부조리극 작가이자 의사의 눈으로 세상을 본 냉혹한 작가"며 "체호프보다 더 어려운 작가를 만나는 것도 어려우며 그가 말하는 우리 인생에 대한 진실은 불편하고 단순명료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3년 예술의전당에서 밀도 높고 강렬한 연극 `보이체크`를 선보인 후 서울에서 두 번째 작품을 올리게 됐다.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에 대해 "느낌과 예감이 좋은 배우들이다. 배우려는 학생의 태도가 있고 발전 가능성도 높다"고 평가했다.



부투소프는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가장 바쁜 연출가. 군더더기 없이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연출 스타일로 연극의 고전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새롭게 각색해 러시아 최고의 연극상인 `황금마스크상 최고 연출가상`을 수상했다. `황금 소피트상`과 `스타니 슬라브스키상` 등 권위 있는 상을 휩쓸며 관객을 사로잡는 그에게 자신의 연극 속 매력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자 "그건 관객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라며 "나는 상을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전지현기자)

08. 10. 20.

P.S. 아래는 부투소프가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올린 <햄릿>의 한 장면. 그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과 '색깔'을 엿보게 한다. 렌소비에트극장에서 공연한 <보이체크>의 한 장면은 http://kr.youtube.com/watch?v=ZSv8orC-2QI 참조. 한국에서의 공연을 떠올리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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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8-10-2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젤 앞자리로 예매했습니다. 이제 갈매기를 읽어야겠지요. 학교다닐 때 봤던가 안 봤던가 기억도 안 납니다. ^^;

로쟈 2008-10-21 20:48   좋아요 0 | URL
너무 앞은 불편하실 듯한데요...^^;

심술 2008-10-2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투소프 씨, 되게 고집스럽게 생겼네요.

로쟈 2008-10-21 23:20   좋아요 0 | URL
실력 있는 고집은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