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연재 '자서전 읽기'의 한 꼭지를 스크랩해놓는다. 저명한 문학비평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게오르크(죄르지) 루카치의 자서전 <맑스로 가는 길>(솔, 1994)을 다루고 있다. 하도 오랜만에 접하는 책인데다가 장문의 기사여서(원고지 25매 가량인데, 일간지 북리뷰로서는 파격적인 분량이 아닐까) 눈길이 머물렀다. 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현재는 절판된 지 오래인 듯싶다.  

  

경향신문(08. 10. 11) 게오르크 루카치의 자서전 ‘맑스로 가는길’

분명히 가슴 찢어질 듯한 고통이었으리라.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모진 풍파를 겪은 스승이 죽어가며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장면을 지켜봐야 하니 말이다. 혁명과 반혁명, 전쟁과 숙청의 시대를 견뎌낸 노철학자이건만 생명의 순리는 어길 수 없었다. 암에 걸린 데다 동맥경화가 심해져 죽음을 준비해야 했다.

기실 서둘렀어야 했다. 혁명의 동지이기도 했던 아내에게 자서전을 쓰라고 권했지만, 작업을 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그때부터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죽음을 선고 받고서야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로 했다. 자료를 뒤지고 문서를 찾을 시간이 없었다. 책을 쓸 때 흔히 했던 대로 초안을 잡는다는 심정으로 타이프를 쳤다. 죽음을 앞두고 서둘러 썼으니 제대로 된 글이 될 리 없다. 기억의 사금파리만 널려 있을 뿐이니, 난수표도 이런 난수표가 없었다. 미완성의 문장인 데다 머리글자만 적혀 있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스승의 육신을 떠나보낼 수는 있으나, 삶과 정신의 흔적마저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스승을 녹음기 앞에 앉혔다. 초안을 읽으며 무슨 내용인지 물었다. 87세의 노철학자는 죽어가며 답변해주었다. 그것은 경이로운 의지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포기했을 일이다. 엄습하는 죽음 앞에, 밀려드는 육체의 고통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발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노철학자도, 그의 제자도 포기하지 않고 작업에 매달렸다. 이제 자서전이 아니라 유언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1971년 5월 작업이 끝났다. 그리고 6월4일, 별을 바라보고 가야 할 길을 알았던 시대는 얼마나 복되더냐고 말했던, 헝가리 출신의 철학자 게오르크 루카치는 영면했다.

루카치 자서전 <맑스로 가는 길>(솔)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우리말 번역본은 루카치의 초고와 대담인 <삶으로서의 사유>, 그리고 자전적 글과 또다른 대담을 부록으로 덧붙여 펴냈다). 숱한 오해와 곡해, 그리고 비판으로 얼룩진 삶이 비로소 복원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상당히 곤혹스러워지게 된다. 헝가리 역사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펼쳐진 유럽혁명사를 알지 못하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숱하게 나와서다. 이런 상황은 루카치를 다시 보게 한다.

우리는 흔히 루카치를 세계적인 철학자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서전을 읽다보면, 그는 헝가리라는 배경을 떼어 놓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문인과 예술인, 그리고 혁명가들이 즐비하게 나온다. 이래서는 자서전을 읽기가 곤란하다. 헝가리 혁명사를 공부하면서까지 그의 자서전을 읽을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걸림돌을 피하면서 루카치 삶의 핵심에 도달하는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 있다.



자서전 서문은 공동대담자였던 이슈트반 에외르시가 썼다. 그는 여기에서 루카치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말을 한다. 널리 알려졌듯 토머스 만의 <마의 산>에 나오는 나프타는 루카치를 모델로 하고 있다. 자서전에 토머스 만과의 관계와 그의 작품에 모델로 나온 소감을 피력하는 대목이 나온다. 에외르시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하고 있는데, 토머스 만이 루카치 삶의 미묘한 모순을 잘 파악했다고 본다.

“나프타는 예수회 회원이다. 즉 그는 세계 지배를 추구하는 조직의 이데올로기적 전위 투사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의 날카로운 이지력 탓으로, 자신이 전력을 다 쏟는 운동의 바깥에 서 있기도 하다. 비록 그에게는 운동이 자유를 보장하긴 하지만 운동 쪽에서는 그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이것은 결국 그 스스로 유발한 것이다. 즉 최종적인 결론으로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이단에 거의 가깝게 되는 그의 과감한 구상에 의해서 이러한 일이 유발되는 것이다.”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날 이미 미학자로서 우뚝 섰던 사람. 서양 철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를 가장 높이 평가했고, 속류화한 마르크시즘을 건져내려 했던 사람. 이념과 문학의 갈등에서 진정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써냈던 사람. 중부 유럽의 변방 출신이지만, 서구 사회에 충격을 가한 사람. 그러나 줄곧 자신이 믿고 따랐던 당은 그를 못미더워했다. 늘 숙청과 망명의 대상이었고, 마침내 당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는 반복하거니와, 나프타였으니, 여기에서 루카치의 삶은 보편성을 띤다. 지식인과 권력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느냐는 화두거리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뒤쫓으며 지속적으로 드는 의문이 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공산주의자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서양 지성사의 수수께끼일 터이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배울 만큼 배운 데다 그의 지적 도반들이 대체로 자유주의적이긴 하나 좌파적 성향을 띠지 않은 탓이다.



먼저 어린시절의 독서편력을 들 수 있다. 그는 아버지가 매우 올바르고 사려깊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성공만이 올바른 행동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라고 여겼다. 아버지와 다른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일리아드>와 <모히칸 족의 최후>를 읽고 나서다. 그는 이 책들에서 “성공이 올바른 행동의 기준은 아니며 올바르게 행동한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이제 안락한 부르주아적 삶을 거부하는 반항아로 성장할 자격을 얻은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읽은 <공산당 선언>으로 마르크스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의 인상을 “매우 강렬했다”고 했으니,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알 만하다. 대학에 들어가서 <브뤼메르의 18일> <가족의 기원> 등을 읽었고, 특별히 <자본> 1권을 깊이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몇 가지 핵심 지점들의 정당성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어린 휴머니스트가 세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틀을 얻은 셈이다.

그러나 루카치가 곧바로 공산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만하임, 하우저 등과 같이 공부했던 일요서클 시절만 해도 그는 아직 뚜렷한 혁명적 성향을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피히테에 빗대어 그 시대를 죄악의 시대로 보았을 뿐, 사회 전체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는 전망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의 사상적 방황은 1918년 가을 장미혁명에 대한 회상에서 드러난다. 역사에서 폭력이 차지하는 긍정적 역할을 믿고 있으면서도 막상 “내 자신의 행위로써 폭력을 촉진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했을 때” 큰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의 사상적 전회를 자극한 것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도대체 누가 영국과 프랑스의 문화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애매한 이 표현을 이해하려면 에외르시가 쓴 서문을 참조해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현존하는 권력과 제도, 그리고 세계를 열광에 휩쓸리게 하면서 파국으로 몰고가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루카치의 경멸을 강화했다고 풀이한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루카치는 10월 러시아 혁명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1918년 12월 막스 베버와 게오르그 짐멜의 제자였던 그는 헝가리 공산당에 가입한다.



루카치는 본디 작가가 되고 싶었다. 18세에 희곡을 썼는데 스스로 보기에도 형편없다 싶어 불태워버렸다. 그러고는 문학사가가 되길 꿈꾸었다. 그러다 베르테르의 눈색깔이 검은색이냐, 파란색이냐를 놓고 벌이는 논쟁에 환멸을 느껴 철학에 관심을 돌렸다. 그의 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의 학설은 날마다 매 시간 실천에 의거해 새로이 다듬어지고 자기화되어야 한다”는 데 충실했다. 하지만 당은 늘 그에게 자기비판을 강요했다. <소설의 이론>과 <역사와 계급의식>에 실린 서로 다른 서문은 그 갈등이 낳은 산물이다. 세계 지성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존재를 걸고 혁명 대열에 동참했으나, 당은 그를 사상적으로 박해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스탈린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그의 자서전을 읽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나는 스탈린주의가 일종의 이성의 파괴라는 것을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고 또 늘 그렇게 주장해왔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런 답변에 쉽게 물러설 수는 없다. 알면, 왜 맞서 싸우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는 당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히틀러의 멸망이었고, 그를 대적할 수 있는 집단은 스탈린의 소련뿐이었다고 변명한다. 파시즘에 맞서려면 그를 지지해야 하나, 그의 전제적 통치는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에 반대하면 유리해지는 것은 파시즘 세력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루카치의 고민이 있었다. 물론 그는 스탈린 체제에서 빨치산 투쟁을 했다고 말한다. 스탈린의 말을 인용해서 검열자를 만족시키면서 그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써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빈약한 저항이었던가.



더욱이 “나는 항상 사회주의의 가장 나쁜 형태가 자본주의의 가장 훌륭한 형태보다 살기에 더 낫다고 생각해왔다”는 발언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당연히, 양차대전을 낳을 수밖에 없었던 자본주의적 폐해를 극복할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선택한 루카치의 윤리적 결단을 폄훼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20세기의 이념 지형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발언이 이념에 눈 멀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현실사회주의 몰락으로 드러난 체제의 속살은 얼마나 보잘것없었던가.

루카치는 벌라주를 평가하면서 공산주의에 공감하는 부르주아 작가로 남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했다. 자서전을 읽다보면 루카치가 현실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실천적 지성으로 남았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의 스승인 베버는 “학문상의 모든 ‘성취’는 새로운 ‘질문’을 뜻한다”고 말했다. 루카치가 줄곧 학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은 그의 새로운 질문이 체제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느 체제나 당이 내부 구성원의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질문을 참아주겠는가. 모든 지식인은 결국 나프타로 분한 루카치와 같은 운명을 안고 있다. 결국 권력의 품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비판적 지성이 있어야 할 자리는 따로 있으니, 그를 기리는 조사에 나와 있다. “쉴 사이 없이,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그는 인간을 옹호하는 데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했습니다.”(이권우 | 도서평론가)

08. 10. 12.

P.S. 내가 읽은 범위 내에서 루카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유익했던 책은 하우저와의 대담을 담은 <변증법적 미학에 이르는 길>(문학과비평사, 1990)이다. <소설의 이론> 번역자인 반성완 교수의 편역으로 나왔던 책이다. 더불어, <맑스주의의 향연>(이후, 2001)에 실린 마샬 버먼의 글도 좋은 참고문헌이다. 흔히 브레히트와 많이 비교되기도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루카치와 벤야민을 비교해보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중에 에세이로 써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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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10-13 02:25   좋아요 0 | URL
반가운 기사 옮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편애'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루카치에 대한 글은 어떤 글이라도 항상 반갑습니다. 저 또한 루카치와 벤야민의 비교에 개인적으로 큰 관심을 두고 있는데, 어서 에세이를 완성해주시기를 고대할 뿐입니다.^^

로쟈 2008-10-13 21:40   좋아요 0 | URL
'나중에'는 '좋은 시절이 오면'이란 뜻이죠...^^;

소경 2008-10-13 14:53   좋아요 0 | URL
마르크스 역사철학에 대해 발표를 놔두고 있는데 (기한은 널널하지만) 쫌만 더 욕심을 내야 겠네요 ^^:;

로쟈 2008-10-13 21:41   좋아요 0 | URL
<역사와 계급의식>까지 포함하려면 욕심을 많이 내셔야겠는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10-13 16:21   좋아요 0 | URL
이권우 씨는 루카치가 1956년 헝가리의 임레나지 정권을 지지했다는 죄로 고초를 당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군요.그걸 언급했다면 스탈린주의에 너무 약하게 저항했다는 평가는 유보했을텐데요.

로쟈 2008-10-13 21:44   좋아요 0 | URL
지젝은 루카치와 반목했던 브레히트가 오히려 '스탈린주의의 내적 위대성'을 보여주는 시인이라고 평했죠. <역사와 계급의식>에 대한 해제도 썼는데, 아직 못 읽어보고 있습니다...

히드라 2008-10-14 18:44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쓰신, P.S.를 읽고, <변증법적 미학에 이르는 길>을 읽어봤는데, (루카치가 아니라) 주로 하우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특히, 앞쪽에 실린 (세 편의) 대담 중 두 편이 (루카치가 아닌 다른 이들과 했던) 하우저와의 대담이고, 루카치도 동참했던 하우저와의 대담에서도 루카치는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아서, 사실 책을 읽고 조금 실망....^ ^;; --로쟈님으로부터 자주 공부에 도움을 받고 있어 고마워하고 있는 독자로부터 --


로쟈 2008-10-14 20:55   좋아요 0 | URL
네, 하우저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 맞습니다. 제가 주목한 건 '진리는 단수이다'라는 루카치의 단언이었어요. 하우저는 단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지요. 저는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하여 자주 인용하곤 했습니다.^^;

히드라 2008-10-15 01:40   좋아요 0 | URL
부정확한 사실 수정 추가 : <변증법적 미학에 이르는 길>에 만하임과 나눈 대담은 없습니다. 로쟈님 덕분에 루카치의 '진리는 단수이다'라는 단언에 다시 한번 더 주목하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

로쟈 2008-10-15 07:17   좋아요 0 | URL
아, 하우저를 만하임으로 잘못 썼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0-15 16:44   좋아요 0 | URL
혹시 루카치의 정치적 유언이라는 <사회주의와 민주화 운동>을 보셨는지요? 비교적 차분한 마음으로,자아비판 당할 염려도 없이 솔직하게 인간적 사회주의 노선을 밝힌 책입니다.

로쟈 2008-10-15 17:07   좋아요 0 | URL
<사회주의와 민주화운동>이나 <이성과 파괴> 등은 사놓기만 하고 안 읽은 듯합니다. 90년대엔 루카치도 '매장' 분위기였죠. '인간적 사회주의'라는 노선 자체도 스펙트럼이 넓어서(스탈린주의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니까요) '진의'가 무엇인지는 살펴봐야 할 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16 16:06   좋아요 0 | URL
스탈린주의자가 보기엔 수정주의겠지요.그런데 이성의 파괴 아닌가요?

로쟈 2008-10-16 21:16   좋아요 0 | URL
<이성의 파괴>는 흔히 루카치의 최악의 책이라고들 얘기해서 읽게 되지 않던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10-17 15:32   좋아요 0 | URL
예.그 책이 그다지 평이 좋지 않더군요.유물론과 관념론으로 도식적인 분류를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그런데 위에 오타가 났어요.이성과 파괴.

로쟈 2008-10-17 23:45   좋아요 0 | URL
네, 이성의 파괴죠...

독립만세 2008-10-17 23:20   좋아요 0 | URL
<딩통의 죽음> 이란책도 있나요?

로쟈 2008-10-17 23:45   좋아요 0 | URL
<당통의 죽음>인데, 어디 오타가 났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