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학서 독자라면 제목이 단박에 리처드 파인만의 자서전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말로 비튼 것도 아니고, 원래 제목이 그렇다. 새로 나온 아이작 뉴턴의 전기를 언급한 김에(http://blog.aladin.co.kr/mramor/2311334) 파인만의 이 베스트셀러에 대한 서평도 챙겨두도록 한다. 나는 아주 오래전 두 권으로 나오기 전 판본으로 읽었다. 최근 이 자서전은 파인만 서거 20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와 <남이야 뭐라 하건!>을 합본한 <파인만!>(사이언스북스, 2008)으로 다시 출간됐다.
경향신문(08. 09. 20) [자서전 읽기](6) 리처드 파인만의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파인만의 동료과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파인만이 모험과 우스개의 주인공으로만 알려지는 것이 영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축구로 치자면 개인기가 출중해 문지기마저 희롱하는 화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골잡이로만 돋을새김된 면이 있다고 본 것이다. 프리먼 다이슨도 그런 점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파인만의 과학스타일은 빛나고 인상주의적이었던 바 “불투명한 미분 방정식이 아니라 투명한 그림으로 자연을 설명했고, 칠판을 가득 메운 비의적인 기호가 아니라 극적인 몸짓과 온갖 의성어를 동원해서 강연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의 과학정신은 보수성을 짙게 띠고 있었다고 프리먼 다이슨은 힘주어 말한다.
파인만은 물리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나타났을 적에 그것이 얼마나 멋지냐보다 얼마나 올바른 것이냐를 판단의 잣대로 내세웠다. 그 자신이 일순간의 놀라운 발명으로 과학의 새 지평을 열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세심하고 고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그가 만든 것 중에서 서둘러 구축한 것은 하나도 없고, 이 모든 것들은 세월의 시험을 견디고 서 있다.”
하지만 파인만의 진중함과 진정성, 그리고 끈기를 동경해서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사이언스북스, 이하 ‘파인만!’)를 읽을 리는 없다. 결코 과학자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화, 그러니까 과학자와 군사 전문가들이 한 데 모여 있는 데서 남의 금고를 열어젖히고, 죽음이 예고된 여성과 결혼하는 순애보를 남기고, 밴드에서 드럼을 치며 삶을 즐길 줄 알고, 바에서 만난 여성을 꼬드기려고 애썼다는 전설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기행만 일삼았다면 무에 대단하겠느냐만, 그 와중에도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1986년에 일어난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원인을 밝혀내 성가를 올린 출중한 학자였기에 그의 자서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리라.
나는 ‘파인만!’을 읽으면서 대뜸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의 일대기를 보노라면 과학자들이 겪었음직한 성장과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는 말이다. ‘이름 하여 천재과학자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관점으로 이 책을 읽노라면 새로운 것을 깨우치게 된다.
먼저 아버지의 역할. 그의 아버지는 제복장사를 했다. 아내에게 만약 아들이 태어나면 과학자가 될 거라 했다니, 과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파인만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는 그를 무릎에 앉혀놓고 백과사전을 읽어주곤 했다. 동화책이 아니라 백과사전을 읽어주었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읽어주는 방식도 남달랐다. 공룡 항목에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나오고, “이 공룡은 키가 7~8m이며 머리 둘레가 2m 정도”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이 구절을 읽고나서 아버지는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자 했다. 공룡이 만약 집앞 뜰에 서 있다면 책을 읽는 2층 창문에 닿을 만한 크기인데 머리가 커서 창문으로 들어올 수는 없겠다고 말해주었다. 딱딱한 내용을 실감나게 풀어 설명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흥미는 배가되었다. 아버지는 늘 예를 들어 설명하고 대화로 가르치려 했다. “강요나 억압은 전혀 없었고 단지 흥미롭고 사랑이 깃든 대화가 있을 뿐이었다.” 훗날 그가 명강의로 이름을 날리게 된 힘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아버지는 스승이자 경쟁자이기도 한 법이다. 열세 살 적에 도서관에서 미적분학 책을 빌리려 하자 어린아이가 왜 이런 책을 보려 하느냐고 사서가 물었다. 아버지께서 보려 한다고 거짓말하고는 빌려와 혼자 공부했다. 아버지도 읽었는데, 복잡하다며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은 비교적 쉽고 간단하다고 느꼈는데 말이다. 늘 가르침을 받아왔는데, 이제 가르쳐드릴 정도로 훌쩍 자라났다. ‘청출어람’은 이럴 때 쓰라고 사전에 있는 말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사한 내용이 장회익의 자서전 ‘공부도둑’에도 나온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그럼에도 동료들이 ‘장 박사’라 부를 만큼 견실한 토목기술자로 살아갔다. 평소 수학과 물리학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는 데다 꾸준히 관련학문을 공부해 온 덕이다. 장회익이 일찌감치 이들 과목에 흥미를 느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가 여러 차례 미적분학을 혼자 힘으로는 공부해낼 수 없다고 실토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러브의 ‘미적분학’을 읽고나서 눈을 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미적분을 이해했다며, 가르쳐드리겠노라 선언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설익은 지식을 아랑곳하지 않고 흔쾌히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무릇 이 땅의 아버지들은 스스로 물어보아야겠다. 다음 세대에게 지적 흥미와 자극을 주는 살아있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라고. 그리고 기억해야겠다. 모든 것은 아버지한테 배우는 법이라는 것을.
두 번째는 어린이를 위한 과학자 위인전에 물릴 정도로 나오는 내용이다. 왕성한 지적 흥미를 이겨내지 못해 실험을 하다 사고를 겪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개구쟁이에 익살꾼이었던 그가 남 보기에 아슬아슬한 일을 얼마나 자주 저질렀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기껏 말했는데 친구들이 믿지 않으면 실제로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오줌이 중력으로 떨어진다고 우기는 친구에게 물구나무 서서 오줌 눌 수 있다며 실연을 해보였다. 코카콜라와 아스피린을 같이 먹으면 기절한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다. 논쟁이 이상하게 발전해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로 번졌다. 그래서 몸소 나섰다. 세 번 실험했는데, 아스피린 먼저 먹기, 둘 섞어먹기, 콜라 먼저 먹기. 결과는? 기절하는 것은 고사하고 잠이 안와 수학문제를 실컷 풀어보았단다. 동네 꼬마들을 대상으로 화학을 이용한 마술쇼를 한 적도 있다. 광대기질이 있는지라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벤젠을 이용해 손에 불을 붙이고는 불이 났다고 호들갑을 떨며 쇼를 마쳤다고 한다. 친구들이 믿지 않자 재연을 해보였다. 이번에는 손에 화상을 입는 큰 사고가 났다. 이유인즉슨, 어릴 때와 달리 손등에 난 털이 심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자서전의 백미라 할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에도 실험에 얽힌 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 하나. 형이 등산 가면서 실험실 열쇠를 맡겼다며 같이 가자고 친구가 찾아왔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열 여섯살 때다. 둘 다 화학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친구는 그것으로 돈벌이와 안정된 삶을 꿈꿨다. 프리모 레비에게는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뜻했다. 두 사람은 실험실에서 화학교과서에 나와 있는 현상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 정도는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웃음가스로 알려진 아산화질소를 만들려 했다. 연기가 엄청 피워 올라 웃음은 고사하고 질식할 뻔했다. 결과가 확실한 실험에 도전하려고 물을 전기분해해보기로 했다. 양극 쪽의 병에 기체가 절반 정도 찼는데, 친구가 그것이 수소와 산소라는 증거가 없다 했다. 모욕감을 느낀 프리모 레비가 음극 쪽의 유리병 주둥이 근처로 성냥을 켰다. 폭발이 일어났다. 그때를 회고하며 적은 문장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니까 그것은 수소였다. 태양과 별들 속에서 타고 있는 것이고, 영원한 침묵 속에서 뭉치면서 온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집에도 실험실이 있었다(형 것이든 친구 것이든). 큰 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적 호기심을 실험으로 풀어가며 과학자로 성장해나갔다. 예전과 달리 학교에 실험실이 많이 늘었다는 말을 전해 듣기는 했으나, 입시에 치인 청소년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흥미롭게 실험에 매달릴지 모르겠다. 기반도 만들어주지 않고 노벨상 받자고 팔 걷어붙이는 것은 도둑놈 심보일 뿐이다.
계통발생의 과정을 거친 파인만이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은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파인만!’을 읽으면서 이 점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이 책의 가치를 높이고 흥미를 돋워주는 대목도 여기에 있는 바, 권위에 대한 도전이 바로 그것이다.
로스엘러모스에서 파인만은 위대한 과학자들을 만난다. 막 박사학위를 마친 그에게 눈길을 돌릴 거물은 없다. 단, 한스 베터는 예외였다고 한다. 그는 사무실로 들어와 건방진 젊은이를 붙들고 논쟁을 벌인다. 그러면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 아니요, 그건 미친 생각이에요. 이건 이렇게 될 거예요.” 그러자 한스 베터는 ‘잠깐만’이라 하고는 왜 자신이 미치지 않고 젊은이가 미쳤는지 설명한다. 무례한 젊은이가 파인만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닐스 보어가 만나자고 했다. 효율적으로 폭탄을 만들 아이디어가 있다며 설명하자 파인만은 그렇게는 잘 안될 거라고 대꾸했다. 닐스 보어의 반론이 있자 약간 나은 것 같지만 여전히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비판했다. 두 시간 남짓 공방이 벌어졌다. 그때야 닐스 보어가 말했다. “이제 거물들을 불러모을 수 있겠군.”
창조와 혁신은 권위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다. 창의의 영역에 영원한 법칙은 없다. 지금까지 유효한 것만 있을 뿐이다. 의심하고 비틀어보고 다시 생각해보고 질문해 나갈 때 새 지평이 열리는 법이다. “남이야 뭐라 하건!” 자기의 주장을 당당히 펼치는 정신이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그리고 그 도전을 높이 쳐주는 너그러움 또한 간절하다.
파인만에게도 아킬레스 건은 있다. 과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그는 무심했다. 원자폭탄 실험이 끝났을 때 로스엘러모스는 잔치분위기였다. 그런데 밥 윌슨은 울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든 것은 흉악한 거야”라는 말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이에 대해 파인만은 “우리는 충분히 이유가 있어서 시작했고, 열심히 한 덕분에 성공했고, 이것은 즐거운 일이고, 짜릿한 일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 문제를 더 깊이 있게 고민하려면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승산)를 보아야 한다.
이 강연집에서 그는 “이것은 ‘과학자의 책임과 윤리의식’에 대한 문제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난 여기에 대해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이것을 ‘과학의 문제’라고 말하는 건 좀 과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건 오히려 인도주의적인 문제에 훨씬 더 가깝다. 과학을 통해 어떻게 그 힘을 얻는지는 분명하지만 그걸 어떻게 규제할지는 분명치 않은데, 그것은 이 문제가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며 과학자가 여기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과학과 사회, 그리고 윤리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오로지 발견의 가치 때문에 과학자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인만!’은 일반적인 자서전과 달리 대필한 책이다. 동료였던 로버트 레이턴의 아들 랠프 레이턴이 파인만과 어울리면서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파인만이 원고를 검토하고 가필하고 출판을 승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래서 이 책의 지은이는 리처드 파인만이고 엮은이는 랠프 레이턴이다. 저작권도 유족과 엮은이가 공유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쓰는 글이 자서전이다. 그런데 우리는 돈 벌고 힘 있는 사람들이 문필가를 고용해 자신의 삶을 미화하는 것이 자서전인양 여긴다. 당연히 자신이 직접 쓴 듯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구술하고 이를 대신 써줄 수는 있다. 그러나 누가 썼는지를 밝히느냐 아니냐는 분명히 다른 문제다. ‘파인만!’은 우리의 천박한 자서전 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파인만을 과학자로 만든 것은 어린 시절부터 지적 호기심을 실험으로 풀어냈던 태도였다. 그리고 파인만이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세울 수 있었던 절대적인 힘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창조와 혁신은 권위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다. 창의의 영역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의심해보고, 비틀어 보고, 다시 생각해 보고, 질문할 때 새 지평이 열리는 법이다. 남이 뭐라 하든 자기의 주장을 당당히 펼쳤던 파인만이기에 그는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이권우 | 도서평론가)
08. 09. 21.
P.S. 알다시피 파인만의 삶과 과학을 다룬 자세한 전기에는 제임스 글릭의 <천재>(승산, 2005)가 있다. <파인만!>과 함께 세트로 갖춰둘 만하다(파인만의 아버지에 대해서 관심이 간다). 아래는 세 권의 표지이다. <천재>의 원서와 사이언스북스판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 그리고 내가 읽은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도솔,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