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독서평설>(8월호)에 '유토피아의 종말, 그 후의 유토피아'란 타이틀로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그러니까 고등학생을 독자로 상정하고 쓴 것이다). 병기된 설명들과 미주는 제외했다.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 '갑론을박' 연재 중 네번째이자 마지막 글 꼭지였는데, 다시 쓴다면 러셀 자코비의 <유토피아의 종말>(모색, 2000)을 추가로 참조했을 듯싶다. '유토피아의 종말 이후의 유토피아'는 자코비식의 표현을 빌면, '유토피아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쯤 되겠다. 그의 책 1장의 제목이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이어서 그렇다. 거기에 또 한권을 보태자면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유토피스틱스>(창비, 1999). 모두 읽은 지 너무 오래된 탓에 원고를 쓰면서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서두의 에피소드는 지젝의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의 서론에 나오는 것을 조금 더 풀어쓴 것이다('스페인'이 '에스파냐'로 바뀐 것은 교과서 표기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토피아 - 마법과도 같은 자유
1964년 에스파냐의 마드리드 교외에서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 <닥터 지바고>를 촬영할 때 생긴 일이다. 영화의 배경은 1905년에 일어난 제1차 러시아 혁명01.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러일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사회가 동요하고 민중의 불만이 폭발하여, 학생 소요와 함께 정치적 테러, 암살이 횡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겨울 궁전 앞에서 평화 시위를 하던 군중을 제국의 군대가 무차별적으로 유혈 진압 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때 시위대가 가두 행진을 하며 부른 노래가 <인터내셔널가>였다. 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전 세계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자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 이후 구소련(구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1944년까지 국가(國歌)로 사용하기도 했다.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에스파냐의 국가주의자들은 이 시위 장면을 찍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내셔널가>를 불러야 했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 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영화의 제작진들은 에스파냐 엑스트라들 모두가 이 노래를 알고 있고 게다가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부르는 데 놀랐다. 그 당시 프랑코 정권의 경찰들이 진짜 정치 시위를 하는 걸로 오해하고 개입할 정도였다. 그리고 때마침 촬영은 저녁 무렵에 이루어졌는데, 인근에 사는 주민들도 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걸 듣고는 독재자 프랑코가 죽고 사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쟁취한 것으로 오해했다. 그들은 포도주 병을 따고 길거리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곧 ‘정상적인’ 현실로 복귀해야 했지만 그들은 잠시나마 환영(幻影,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도 같은, 하지만 반드시 환영만은 아닌 자유를 맛보았다. 이 자유야말로 마법적이며 유토피아적인 자유가 아닐까?
21세기의 시작 - 유토피아의 종말, 그러나 끝나지 않은 꿈
이제까지 유토피아란 말은 주로 ‘불가능한 이상 사회’라고 정의되었다. 그것은 ‘이상 사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며, 또 현실에 구현된 ‘유토피아’는 끔찍한 악몽이 되기 일쑤였다. ‘유토피아 문학’이 곧장 ‘안티 유토피아 문학’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이상 사회’ 지향으로서의 유토피아주의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원래의 말뜻을 그대로 따라가자면, 유토피아는 ‘가장 좋은 곳’을 뜻하기 이전에 그냥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왜 없는가? 기존의 사회적 공간에서, 곧 사회적 좌표계에서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토피아의 건설이란 이 기존의 좌표계 바깥에 있는 사회적 공간의 건설을 뜻한다. 그것은 순수하게 ‘가능한 것’의 목록을 다시 쓰고, 그 좌표를 바꾸는 제스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적이며 문제적인 충동이고 광기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그러한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다시금 레닌을 불러들인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1914년,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하려 했던 사회주의 운동은 재앙적인 상황에 놓인다. 전 유럽이 군사적 갈등 속에서 대립하고 있었고, 사회 민주주의 정당들마저도 전쟁에 동조하는 ‘애국주의 노선’을 채택해 레닌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레닌은 그렇듯 절망적으로 보이던 시점에서 혁명의 절묘한 기회를 포착해 낸다. 국가 그 자체를 뜻하는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하고, 상설적인 군대나 경찰, 관료가 없이도 만인이 사회 문제를 관리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코뮌적 사회 형태를 만들어 내려 한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레닌에게 그것이 머나먼 미래를 위한, 또는 먼 섬나라에서나 가능한 이론적 기획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은 이렇게 주장했다. “2,000만 명은 안 되더라도 1,000만 명으로 이루어진 국가 기구는 즉시 가동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레닌식의 유토피아적 충동이며 진정한 유토피아다.
하지만 레닌의 유토피아적 기획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1990년을 전후로 한 구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의 붕괴는 통상 정치적 유토피아의 붕괴로 간주된다. 사람들이 흔히 거기서 이끌어 내는 교훈은 ‘고귀한 정치적 유토피아가 어떻게 전체주의적 공포로 끝나고 마는가.’이다. ‘현실 사회주의 이후’는 그래서, ‘포스트-유토피아’, 곧 ‘유토피아 이후의 세계’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 포스트-유토피아 세계에서는 실용주의적 관리와 행정이 정치를 대신한다. 하지만 정말로 유토피아는 종말을 고했던 것일까?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에야 뒤늦게 자각된 것이지만, 실상 현실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 이후의 세계를 지배했던 것은 ‘자유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최후의 거대한 유토피아였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두 가지 유토피아의 종말을 경험한 셈이 된다. 하나는 70여 년을 버티던 정치적 유토피아로서의 공산주의의 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 10년을 승승장구하던 자유 민주주의 유토피아의 종말이다. 전자의 종언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였다면, 후자의 종언을 보여 주는 실재적 사건은 바로 9·11 테러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9·11 테러는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역사의 종말’ 같은 ‘게임 오버’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해 준다. 단지 무대만 바뀌었을 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자본주의의 평화적 팽창이 끝난 1914년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1990년까지를 20세기로 규정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함께 20세기가 시작됐다면, ‘테러 시대’라고도 불리는 21세기는 9·11 테러와 함께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는 1차 유토피아(1917~1990)와 2차 유토피아(1991~2002)가 모두 종말을 고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종말 이후’에 깨달은 교훈이라면 ‘진정한 종말’이란 아직도 멀었으며, 여전히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와 여정을 남겨 놓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그 뒤 새로운 갈등의 장벽들이 역사의 현실로 복귀했고, 사회적 차별과 갈등 또한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1990년 이후 전 세계에서 더욱 빈번해진 각종 국지전(局地戰)은 유토피아의 종말 이후 잠시 우리를 도취하게 만든 ‘역사의 종말’이라는 관념 자체가 얼마나 유토피아적(공상적)인가를 보여 준다.
끝없는 열망 - 새로운 대중의 탄생, 또 다른 모습의 유토피아
가장 기본적으로 “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다.”라는 삶의 절박함이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서의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을 만들어 낸다고 하면, 유토피아적 충동과 기획은 여전히 우리의 것이고 또 우리의 것이어야만 한다. 유토피아는 실제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이상 사회에 대한 몽상과는 무관하다. 유토피아는 우리가 더 이상 ‘가능한 것’의 한계 안에서 살아갈 수 없을 때 제기되는 생존의 문제이며, 가장 심층적인 차원에서의 어떤 불가피성의 문제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철학자 지젝은 우리가 레닌이 1914년에 대응해서 한 일을 1990년에 대응해서 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다른 가능성은 없어. 민주적 합의에 충실해야 돼.”라는 일종의 ‘사고 금지’에 대응해 다시금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오늘날 유토피아 전략들의 심미적 경향이다. ‘심미적’이란 말 대신에 ‘유희적’이란 말을 써도 무방하다. 포스트모던의 상황에서, 정치적 저항은 심미적 현상들로 강하게 물들어 있다. 가장 간단하게는 ‘피어싱(piercing)’이나 ‘옷 바꿔 입기(crossing-dressing)’에서부터 ‘플래시 몹(flash mob)’ 같은 공개적 스펙터클(spectacle, 장관·구경거리·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플래시 몹이란 사람들이 정해진 시각에 지정된 장소에 나타나 간단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다시 흩어지는 걸 말한다.
가령, 2006년 5월 벨로루시의 루카셴코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한 직후, 한 네티즌이 이에 항의하는 표시로 수도 민스크의 광장에 나와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플래시 몹 제안을 인터넷에 올렸다. 벨로루시 경찰은 이에 과민 반응 하여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 몇 사람을 잡아갔다. 하지만 단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시민들의 사진을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올리면서 일은 더욱 커졌다. 더욱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다양한 형태의 플래시 몹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플래시 몹의 최대 장관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촛불 집회일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반대하여 2008년 봄과 여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자발적인 평화 시위에 대하여, 정부는 ‘배후’를 찾아서 사법 처리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그것은 유례없이 거대하고 강력하며 지속적인 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만을 자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주부 인터넷 모임의 대표는 배후 세력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정(母情)일 것이라 말했고, 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영어 몰입 교육, 0교시와 우열반 부활, 그리고 ‘미친 소’ 수입 등을 결정한 집단, 곧 이명박 정부가 촛불 시위의 배후라고 일갈했다.
경찰은 혹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본떠 검은 망토와 모자에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인 한 DVD 동호회 사람들에게도 배후란 혐의를 지울 수 있을까? 이들은 독재 정부를 무너뜨린 영화 속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를 패러디한, 이런 팻말을 들고 거리를 순례했다. “촛불은 내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어요. 제 친구였고, 저이기도 했죠. 촛불은 우리 모두였어요.” 이러한 시위의 현장에서 유토피아는 결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최대 수십만 시민들이 자발적이면서도 통일된 행동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테크놀로지의 사회적·경제적 효과를 연구하는 미국 학자 클레이 서키(Clay Shirky)는, 이렇듯 ‘조직 없이 조직된’ 새로운 대중의 탄생은 디지털과 인터넷에 기초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테크놀로지 덕분에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거대하고 더 널리 흩어져 있는 공동 작업 그룹이 탄생하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국가의 관리에 대한 레닌의 ‘전체주의적’ 기획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다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젝의 제안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해방 - 그 영원한 꿈을 향한 노력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거대 은행이 없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면서, 자본주의적 기구인 중앙은행을 더 크게, 더 민주적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중추적 기관으로서 중앙은행의 자리에 오늘날 ‘일반 지성’의 상징인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갖다 놓는 것은 어떨까? 자본주의 신(新)경제의 첨병처럼 보이는 월드 와이드 웹은 한편으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 레닌적 제스처, 곧 유토피아적 광기는 국가 기구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과 싸우는 대신에 그것을 사회화(국유화)하는 것이다. 또 가령, 다음(Daum)의 아고라 같은 인터넷 토론 광장을 사회적 공유 자산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사회주의=전력화(電力化)+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레닌의 공식은 ‘사회주의=인터넷 무료 접속+소비에트 권력’으로 변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두 번째 요소이며, 이를 통해서만 인터넷은 확실한 해방적 잠재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해방적 잠재력인가? 물론 인간 해방이다. 역사상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는 의미에서,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또한 유토피아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꿈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며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의 성취보다도 그것을 향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가>의 마지막 3절은 이렇다.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08. 0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