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의 '로쟈의 인문학서재'를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2000/2008/07/021162000200807090718049.html).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통치형태에 관한 일부 내용을 읽고 그 '교훈'을 생각해본 것이다. 발단은 핀레이의 <고대 세계의 정치>(동문선, 2003)를 읽으려고 손에 든 것이었다. <정치학>의 번역은 아직 정본이 없는지라 영역본도 부분적으로 참고했고, 원고 자체를 급하게 쓰느라 꽤 애를 먹었다. 덕분에 오타도 그대로 남았다. 지면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로 들었지만'이라고 돼 있는 부분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로 들어섰지만'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한겨레21(08. 07. 15) 아리스토텔레스와 '고소영'

“참주정은 통치자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이고, 과두정은 부자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이며, 민주정은 빈자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구절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빈자’ 곧 ‘가난한 사람들’로 번역된 말은 ‘데모스(demos)’다. 때문에 ‘민주정’이라고 옮겨진 ‘데모크라티아’는 ‘빈민정’이라고 번역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 데모스의 의미는 이중적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전체로서의 시민집단을 뜻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통사람, 다수, 빈자를 가리켰다. 피플(people)의 어원인 라틴어 ‘포플루스(populus)’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건 과두정과 민주정의 차이이다. 그에 따르면, 이 둘의 차이를 낳는 것은 부와 빈곤이다. “과두정은 소수의 부자들이 국가의 관직을 맡는 정치질서이며, 마찬가지로 민주정은 다수인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를 지배하는 정치질서”이다. 하지만, 특정한 사회적 계급에 봉사하는 정치체제를 중용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옹호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올바른 정치질서의 세 가지 형태는 왕정, 귀족정, 혼합정이다. 그리고 참주정은 왕정의 왜곡이고 과두정은 귀족정의 왜곡이며 민주정은 혼합정의 왜곡이다. ‘혼합정’은  ‘입헌정’ ‘공화정’으로도 번역되는 ‘폴리테이아’를 옮긴 것이다. 한데, 왜 혼합정인가? 과두정과 민주정을 절충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제는 단순하다. 모든 국가의 시민들은 넉넉한 계급, 가난한 계급, 그리고 그 중간을 형성하는 중산계급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원칙으로서 절제와 중용은 언제나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재산의 소유에 있어서도 가장 좋은 것은 중간상태이다. 그가 보기에는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이성에 잘 따른다. 때문에 중간계급의 시민으로 구성된 국가가 가장 잘 조직된 국가이다. 지나치게 아름답고 튼튼하고 가문이 좋고 부유해도, 또 반대로 지나치게 나약하고 가난하고 비천해도 이성에 따르기가 어렵다. 첫 번째 부류는 거만하여 중대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고 두 번째 부류는 불량배나 잡범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거만한 자들이나 불량한 자들이나 모두 정치에는 부적격하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판단이다.

따라서 정치적 공동체의 가장 좋은 형태를 이룩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구성원들이 알맞은 재산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재산이 많고 다른 사람들은 재산이 전혀 없는 경우, 우리가 얻게 되는 결과는 극단적인 민주정(빈민정)이거나 극단적인 과두정, 혹은 이 두 극단에 대한 반발로서의 참주정이다. 참주정은 가장 무분별한 형태의 민주정이나 과두정에서 생겨나며 중간 정도의 정치질서에서는 나올 가능성이 적다. 중산계급이 클 경우에 시민들 사이의 분열이나 파벌이 생길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통치형태를 규정하고자 할 때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통치자의 재산이라는 점은 지금도 시사적이다. 물론 인간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데 재산의 유무가 정말로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적 현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이 여전히 유효함을 말해준다. ‘강부자’, ‘고소영’ 인선 파문이 그렇지 않은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로 들어섰지만 이명박정부는 여러 정책을 통해 자신이 ‘넉넉한 계급’을 위한 ‘과두정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진통 끝에 비고려대, 비영남권, 재산 10억 미만을 새로운 인선기준으로 고려할 것이라고도 하는데, 아직 촛불 민심을 반영한 내각 개편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과연 더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에게는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려는 자연적인 충동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완성되었을 때 동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이지만, 법과 정의로부터 배제된다면 가장 나쁜 동물로 전락하고 만다.” 국민을 법과 정의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은 ‘가장 나쁜 동물’로 전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건 가장 나쁜 정부가 하는 일이다.

08. 07. 09.

P.S. '고소영' '강부자' 인선 파문을 들먹인 것은 '뒷북'이긴 하나, 지난주에 글을 쓸 때는 내각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알다시피 이대통령은 엊그제 장관 3명을 교체하는 선에서 개편을 마무리지었다. 예상대로 더 기대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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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8-07-10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핀레이의 책의 번역 상태는 어떠한지요? 구매자평에는 벌써 다시나와야 한다는 악평이 뜨네요. 알라딘 책 소개 창에도 원제목으로 'POFITICS IN THE ANCIENT WORLD'라고 되어 있네요.Polifics가 아니라 Politics겠지요.

로쟈 2008-07-10 00:22   좋아요 0 | URL
말씀대로 별로 좋진 않습니다. 저도 원저와 대조해서 좀 읽다가 머리가 아파서 덮어둔 상태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10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 고소영 누나를 말썽 많은 내각의 별명으로 만들게 해버린 정부는 나쁜 정부입니다.

로쟈 2008-07-10 21:46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별로 떠오르는 게 없는 배우라...

람혼 2008-07-10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로 들었지만(I've heard/people say)"이라는 오타가 사뭇 뼈가 있고 징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쟈 2008-07-10 21:47   좋아요 0 | URL
그런 건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7-1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저는 고소영 누나가 무조건 좋아요.우리 옆집에 살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