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6).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에 대한 것이며, 소개기사는 미리 옮겨놓은 적이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2138329). 가라타니가 한국어판에 붙인 서문 등도 읽어볼 만한데, 분량상 리뷰에서는 '서설'만을 정리했다.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에 대한 가라타니식의 '비평'이다.
시사인(08. 07. 05) 역사는 왜 반복되는가
비평이란 무엇일까? “내가 이 책 읽은 거 맞아?”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으로 정의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두 번 읽도록 자극하고 권유하는 것이 ‘비평’이라면, 가라타니 고진이야말로 일급의 비평가다.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이자 사상가라는 평판을 이미 얻고 있는 처지이므로 ‘일급의 비평가’란 평은 중언부언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란 경탄을 매번 불러일으키는 비평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이번에 출간된 <역사와 반복>(도서출판b 펴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책은 ‘역사와 반복’ ‘근대 일본에서의 역사와 반복’ ‘불교와 파시즘’, 3부로 구성돼 있는데, 표제가 된 첫 번째 에세이에서 그가 시범적으로 다시 읽는 것은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라는 도입부로 유명한 글이다.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중 한 꼭지를 이루는 이 정치 팸플릿에서 마르크스는 1789년과 1848년의 프랑스혁명을 다룬다. 그가 보기에 1848년부터 3년간은 1789년 혁명에서 나폴레옹의 쿠데타까지를 반복하고 있다. 즉, 보통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가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켜서 다시 황제가 되는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 1세의 행적에 대한 ‘소극’적 반복이다.
가라타니가 <브뤼메르 18일>을 다시 문제삼는 것은 그러한 역사적 반복에서 어떤 패턴을 읽기 때문이다. 역사의 반복에서 중요한 것은 되풀이되는 사건(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반복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어떤 형식(구조)이다. 그리고 그러한 형식에 주목하게 한다는 점에서 <브뤼메르 18일>은 특권적이다. 가라타니는 아예 <자본론>과 동급의 의의를 갖는다고 말해놓을 정도다. “<자본론>이 경제를 표상의 문제로서 파악하고자 한다면, <브뤼메르 18일>은 정치를 그와 같이 파악하고 있다. <자본론>이 근대경제학 ‘비판’이라면, 마찬가지로 <브뤼메르 18일>은 근대정치학 ‘비판’이다.”
가라타니가 다시 읽는 <브뤼메르 18일>은 1870년대 이후의 제국주의, 1930년대 파시즘뿐만 아니라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세에 관해서도 본질적인 통찰을 가능하게 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통찰이 정치적 대의(代議)의 문제와 연관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대표제라는 상징적 형식은 이중적이며 입법권력으로서의 의회와 행정권력으로서의 대통령은 크게 다르다. 의회제는 토론을 통한 지배라는 의미에서 자유주의적이고, 대통령은 일반의지(루소)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적이다. 때문에, 독재형태는 자유주의를 배반하지만 민주주의를 배반하지는 않는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는 근대 인식론의 각기 다른 사고방식에도 대응한다. 즉, 한편에는 진리를 선험적인 명증성에서 연역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적 사고방식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진리란 타자와의 합의에 의한 잠정적인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앵글로색슨적인 사고방식이 있다. 전자의 경우 ‘일반의지’는 서로 대립하는 사람들이나 여러 계급을 넘어선 존재에 의해 대표되며, 후자의 경우는 토론을 통한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역사의 반복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의회(대표제)를 부정할 경우 도달하게 되는 정치적 위기가 흔히 그것의 상상적 지양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1848년 혁명 이후 루이 보나파르트가, 그리고 1930년대에는 히틀러가 ‘결단하는 주권자’로 출현하게 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혹은 가까이에서 예를 찾자면 4.19 혁명이 5.16 쿠데타와 10월 유신으로 귀결된 것과 같은 과정을 우리는 떠올려볼 수 있겠다.
민주주의의 대표제는 절대주의 왕을 죽임으로써 출현하지만, 거기에는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있으며 ‘황제’ 혹은 ‘결단하는 주권자’는 그러한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반복 강박’의 산물이다. 이것이 ‘우스꽝스런 보통 사람’으로 하여금 ‘영웅’으로 행세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그러한 소극은 지금 우리에게도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08. 0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