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저명 미학자 아서 단토의 책 오역논쟁'이란 기사 타이틀이 있기에 뭔가 해서 클릭해봤더니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벌어진 일을 정리해놓은 기사다(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6/h2008061802344784210.htm). '알라딘통신'에나 들어갈 만한 내용이 일간지에 실려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필경 기사거리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심있게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불쾌한 일이 아니다. 기사를 자료 삼아 '창고'에 넣어둔다. 

한국일보(08. 06. 18) 美 저명 미학자 아서 단토의 책 오역논쟁

미국 저명 미학자ㆍ미술평론가인 아서 단토(84)의 국내 번역 저서를 둘러싼 인터넷 상의 오역 논쟁에 저자까지 가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최근 국내 소장학자 및 번역가들이 인터넷을 통해 펼치는 번역비평의 수준과 활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발단은 ‘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문학 전문가 이현우씨가 지난달 21일 자신의 알라딘 블로그(http://blog.aladin.co.kr/mramor)에 지난달 번역 출간된 아서 단토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김혜련 옮김)의 일부 구절에서 발견한 오역을 지적한 일이었다. 이 책은 한길사에서 1996년부터 출간 개시한 고전 시리즈 ‘그레이트북스’의 100번째 책이다.

이씨는 남성용 소변기를 ‘샘’이란 제목으로 미술전에 출품하는 등 일상적 소재를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인 작업으로 유명한 프랑스 조각가 마르셀 뒤샹의 예술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이 책 57쪽의 두 문장을 오역 사례로 제시했다. 해당 구절은 이렇다. “그(뒤샹)의 행위는 하찮은 대상들을 모종의 미적 거리 안에 배치했고, 그 결과 그것들이 미적 향수(享受)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간단하게 평가할 수도 있다. 즉 가장 가당치 않은 곳에서 모종의 아름다움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입증하려던 시도로 볼 수 있다.”

이씨는 두 문장이 얼핏 봐도 모순적이라며 번역자가 앞 문장 ‘그 결과…’ 이하 구절에 해당하는 원문 ‘rendering them as improbable candidates for aesthetic delectation’에서 ‘improbable’(가능할 것 같지 않은)의 반어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 결과 가능할 법하지 않은 그것들(빗자루, 병걸이, 자전거 바퀴, 소변기 등)을 미적 향수의 대상으로 연출했다’로 번역해야 옳다는 것.

글이 게재된 다음날부터 ‘노이에자이트’ ‘juin’ ‘규’ ‘qualia’ ‘carboni68’ ‘palefire’을 각각 필명으로 쓰는 알라딘 블로거가 차례로 ‘댓글 논쟁’에 가담했다. 이 중 ‘지방 중소도시에 사는 번역가’로 자신을 소개한 ‘qualia’는 이씨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문제의 두 문장에서 두 개의 쟁점을 새로 제시하며 논쟁을 주도했다.

하나는 번역자가 ‘하찮은 대상들’로 번역한 ‘these unedifying objects’는 ‘미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대상들’로 표현해야 정확하다는 점, 또 하나는 ‘가장 가당치 않은 곳(the least likely places)’에서 ‘places’를 ‘전시장’으로 해석하는 다른 논쟁자들에 맞서 그 단어는 소변기, 빗자루 등 뒤샹의 ‘전시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자기가 듣고 본 것들을 몇 문장에 투사해 과시 대회 같은 분위기로 흘러간다”면서 논쟁에서 빠지겠다고 쓴 한 블로그를 “뜻하지 않게 서로 감정을 다치게 했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 토론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득,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 인터넷 논쟁 문화의 성숙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50개의 댓글이 달리며 열흘 넘게 진행된 논쟁을 끝맺은 사람은 저자 아서 단토였다. ‘qualia’가 지난달 25일 세 쟁점에 대한 해답을 요청하며 보낸 이메일 질문지에 이달 2일 답신을 한 것. 단토는 “관심과 열정에 감사한다. 복잡하고 평이한 문장을 함께 구사하는 내 글쓰기 스타일에서 비롯된 의문 같다”면서 질문마다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모든 쟁점에서 ‘qualia’의 손을 들어주는 답장이었고, 논쟁은 유익하고 평화롭게 마무리됐다.(이훈성기자)

08. 06. 18.

P.S. 내가 쓴 페이퍼는 '앤디 워홀의 비누상자'(http://blog.aladin.co.kr/mramor/2102426) 이고, qualia님의 관련 페이퍼는 '아서 단토 교수님, 답장을 보내주시다'(http://blog.aladin.co.kr/qualia/2120870) 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Gene님의 의견은 http://geneghong.blogspot.com/2009/01/9.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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