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대학원신문의 한 기사를 학술저널 담비에서 옮겨온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10777).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신 뒤라 잠시 '여흥' 삼아 읽은 '춤' 관련기사이다. 젊은 세대들에겐 왕가위의 영화 <해피 투게더>로 각인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춤, 탱고의 문화사를 잠시 짚어주고 있는데, 가난한 이민자들의 애환이 탱고에는 서려 있다는 걸 알게 한다(비슷한 근대화를 경험한 우리에겐 왜 이런 춤이 없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냥 캬바레 춤이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니 우리에겐 자유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춤도 부족하다... 

고려대 대학원신문(147호) 아르헨티나 근대문화로서의 탱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항구도시다. 항구도시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문화의 집결지라는 특성이 있다. 또한 외지인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가운데 이들이 경험하는 서러움과 고독, 향수 등이 풍요로운 문화를 낳기도 한다. 뉴올리언스 항에서 재즈가 탄생한 것이 그렇고, 리버풀이 비틀스를 탄생시킨 것이 그러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처럼 외지인의 유입이 국가 정책적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더할 나위가 있을까. 탱고는 바로 이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 그 중에서도 가장 남쪽 하구였던 보카에 정착한 이민자들 사이에서 탄생했다.

19세기 후반의 아르헨티나는 근대국가로 자리잡기 위해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국가헌정을 수립하고 유럽인이민정책 및 무상 공교육제도를 통해 공화국을 ‘문명화’하는 것이 실증주의자였던 이 시기 통치자들의 최대목표였다. 이민정책의 첫 번째 목적은 인디오를 축출한 지역에 사람을 거주시킴으로써 광활한 대지를 개척하고자 함이었지만, 유럽인의 유입이 선진적인 문명을 도입하는 데 기여하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통치자들은 ‘유럽화’를 곧 ‘문명화’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들어온 이민자들은 부유한 유럽국의 중산층이 아니라 가난한 남유럽 출신의 하층민들이었다. 특히 내 소유의 땅을 갖겠다는 꿈을 안고 온 남부 이탈리아의 농민들이 상당수였다. 돈을 벌겠다고 떠난 엄마를 찾아나선 이탈리아 소년의 이야기인 <엄마 찾아 삼만리>도 이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민자들은 뿌리깊은 대토지 소유제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대부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용 잡부로 전락했다. 이민자들이 주로 정착한 곳은 보카 지구였다. 남아메리카와 유럽을 잇는 주요 하구였던 보카는 일용직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고달프고 서러운 항구의 노동은 태양이 서쪽 지평선으로 사라질 즈음에야 끝이 나고, 어둑한 선술집에서 서민적인 음악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이민자들의 고단한 하루가 또 저문다. 때로 여흥으로 술파는 여인들과 춤을 추기도 한다. 대부분 돌아갈 것을 기약하고 가족을 두고 온 남자들이거나 미혼이었던 이민자들은 이 여인들과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이렇게 탱고는 향수에 시달리던 이민자들과 몸 파는 여자들 사이의 춤에서 비롯되었다.

하층민의 춤으로 탄생한 탱고는 처음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안에서도 보카 지역에만 머물러 있었다. 유곽에서 탄생했다는 원죄 때문이었다. 더구나 춤을 춘 사람들이 대개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었고, 당시에 이민자들에 대한 토착인들의 편견과 증오심이 팽배해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토착 아르헨티나인들이 탱고에 대해 느꼈을 거부감이 충분히 짐작된다. 서로 몸이 스치고 다리를 교차시키기도 하는 춤 동작이 외설스럽다고 여기기도 했거니와 빈민촌에서 탄생한 춤이다보니 더더욱 아르헨티나 상류층은 탱고를 경멸했다.

그러던 탱고가 유럽에 전파된 것은 유명한 탱고 작곡가들이나 빈민촌을 드나들며 탱고를 배운 일부 부유층 남자들이 유럽 여행을 통해 선보이기 시작하면서였다. 유럽 대륙은 탱고의 에로틱한 춤 동작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유럽 사교춤에는 탱고처럼 남녀가 몸을 가까이 맞대는 예가 없는 데다 탱고가 남미의 끝자락에서 건너온 춤이라는 이국성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탱고가 유럽 상류층의 호응을 받자 탱고를 저속하고 수치스러운 춤이라고 배척하던 아르헨티나 상류층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유럽으로 수출되었던 탱고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역수입되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탱고의 확산은 아르헨티나 정치 지형의 변화와도 맞물려 전개되었다. 1912년 보통선거법이 제정되고 하층민들도 투표권을 갖게 되면서 중하류층을 대변하는 급진시민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하류층의 참정권이 보장과 급진당 세력의 확산의 결과 하류층 문화도 제도권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탱고의 확산도 이러한 사회적 수용의 분위기에 힘입었음은 물론이다.

탱고는 근대국가 아르헨티나가 그 정체성의 기초를 마련하던 시기의 문화 산물이다. 탱고가 탄생한 곳은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접경지대, 이민자와 크리오요 사이의 갈등이 상존하던 빈곤의 공간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대도시 문명과 크리오요 농촌 전통 사이에 존재한 근대적 삶의 긴장이 탱고를 낳은 것이다. 탱고의 탄생지인 빈민촌, 그 변두리 공간은 바로 근대화 시대의 산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겪은 근대화, 도시화, 유럽화의 역사가 없었더라면 탱고라는 춤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연방수도로 변모하지 못하고 일개 주(州) 수도에 머물렀더라면, 탱고 또한 한 지방의 민속음악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19세기 말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세계화되어가던 연방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었기에 탱고의 탄생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근대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모든 욕망과 애환은 바로 탱고 속에 오롯이 담겨있는 것이다.(조영실/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강사)

08. 06. 16.

P.S. 탱고하면 <해피 투게더> 말고도 떠오르는 영화는 많다. 먼저, 샐리 포터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탱고 레슨>. 일단은 스텝이라도 배워야 출 것 아닌가? 그녀가 파블로 베론과 추는 탱고는 http://kr.youtube.com/watch?v=yi1dprxgEz8 에서 볼 수 있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알파치노의 탱고도 너무 유명하니 빼놓을 수 없겠다(http://kr.youtube.com/watch?v=dBHhSVJ_S6A).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도 있군(http://kr.youtube.com/watch?v=qX_4A6d_Q-U). 내친 김에 <해피 투게더>의 한 장면까지(http://kr.youtube.com/watch?v=ea1pM0qhudI).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거리를 피아졸라의 음악과 함께 잠시 둘러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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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6-16 22:26   좋아요 0 | URL
덕분에 '여인의 향기' 동영상 감사하게 다시 볼 수 있었네요...

로쟈 2008-06-17 00:29   좋아요 0 | URL
^^

노이에자이트 2008-06-18 23:32   좋아요 0 | URL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옹...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