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특별히 눈에 띄는 신간이 없다(나올 만한 책들이야 물론 계속 나온다). 마땅한 리뷰가 아직 안 올라온 경우도 있지만, 여하튼 덕분에 손품도 덜게 됐는데, 다만 통권 100호을 맞은 잡지 <녹색평론> 관련기사 정도는 챙겨놓는다. 내가 직접 사서 읽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지만 꾸준히 한목소리로 '고르게 가난한 사회' '공생공락의 가난'을 우리사회의 지향점으로 주장해온 공로는 평가할 만하다. 앞으로 문제의식을 더 많이 확산/공유하는 문제가 100호 이후의 과제로 남겠다. 내가 읽은 기사는 이번주 시사IN(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03#)과 오늘자 경향신문의 기사다.

경향신문(08. 05. 16) 독자 성원만으로 지킨 ‘공생공락의 가난’

‘고르게 가난한 사회’가 진정한 대안임을 설파해온 ‘녹색평론’이 통권 100호를 맞았다. 1991년 11월 격월간 잡지로 창간된 후 16년이 넘게 한번도 빠짐없이 나온 이 잡지가 최근 발간된 5·6월호로 100권째를 돌파한 것. 교수 임용·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잡지에 글을 쓰려는 지식인들이 줄어드는 대신, 잡지의 수는 많지만 대부분 단명하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자본 또는 국가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독자들의 성원만으로 일궈낸 잡지 100호여서 의미가 남다르다.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녹색평론은 단순한 환경잡지가 아니다. 생태 위기의 문제가 현대인들이 단순히 환경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근대 산업자본주의 문명이 갖는 근원적 한계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얘기해왔다. 땅과 농업, 풀뿌리 자치의 가치를 역설해온 배경에는 진정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이 있었다. 녹색평론은 100호에서 그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김종철 발행인(전 영남대 교수)은 “녹색평론이 추구해온 ‘고르게 가난한 사회’ 혹은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가난’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생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김 발행인은 100호 서문에서 “진보진영의 근본 문제는 경제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지배세력에 맞서서 충분히 철저한 대안논리를 구상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라며 “그들은 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주장하지만, 사회적 공평성과 복지의 전제조건으로 성장논리를 시인해버리는 이상, 가혹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지배세력의 논리에 굴복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경제’를 위해 인간적 가치와 환경은 언제까지나 희생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녹색평론이 다른 잡지들과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독자모임’이다. 매번 녹색평론의 맨 끝에는 경향 각지에서 14곳의 ‘독자모임’이 준비한 행사 안내가 수록돼 있다. “이번달에는 모여서 영화 ‘식코’를 같이 봅니다” “녹색평론 100호 읽고 느낌 나누기” “텃밭실습 같이 합시다” 등. 김 발행인은 “잡지를 계속 만들어내는 데 여러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매호 잡지가 나오기를 기다려주는 열성적인 독자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녹색평론 정기독자는 5000여명이며, 서점에서도 매월 1000부 정도 꾸준히 판매된다고 한다.

녹색평론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100호 특집 대담에 참여한 독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최근 광우병 파문과 관련해 미국 관보의 내용과 정부 측 설명이 다름을 처음으로 지적한 바 있는 송기호 변호사는 “80년대 후반까지 상당히 고양돼 있었던 대중운동의 경험만 가지고는, 그나마 당시 농업이라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힘이나 지혜를 얻기가 힘들겠다는 자각이 있었다”며 “그러면서 녹색평론을 찾아 읽게 됐고 어느새 이 책이 얘기하는 목소리에 같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해지역 녹색평론 독자모임’ 운영자인 고영남 인제대 법대 교수는 “나는 사실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독재 잔재 청산과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점에 깔린 녹색평론을 보면서도 ‘녹색’과 ‘생태’ 이야기는 언젠가 중요한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2001년 대학에 자리잡아 지역 생활을 하면서 사회문제들의 본질을 직시하고, 개인적으로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왜 내 건강이 나빠졌는지 등에 대해 고민하다가 녹색평론을 본격적으로 읽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 몇년간 녹색평론 지면에 자유무역협정(FTA), 대운하 등 현실 고발적인 글들이 늘어나며 예전보다 감동이 덜하다는 지적도 있다. 창간호 탄생에 기여한 장길섭씨(농민·충남 홍성)는 “나는 녹색평론을 읽고 삶의 내용이 가장 크게 바뀐 경우이지만, 예전에 비해 요즘은 잘 안 읽힐 때가 많다”고 했다. 이에 김종철 발행인은 “90년대 중반 접어들며 우루과이라운드니, WTO니, IMF 사태니 하면서 세계화 강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최소한도나마 대응하려고 하다보니 초창기의 좀 낭만적인 분위기가 많이 사라진 측면이 있다”며 “초창기처럼 생태영성이나 생명과 자연 현상의 신비스러움, 종교적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 쪽으로 계속 갔더라면 지금보다 장사는 잘됐겠지만 다급한 현실에서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녹색평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100호 기념으로 출간된 세 권의 단행본을 보면 좀더 분명해진다. 김종철 발행인이 지금까지 썼던 녹색평론 서문 또는 에세이를 모은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와 ‘땅의 옹호’, 녹색평론에 실린 여러 필자들의 글을 모은 ‘녹색평론선집2’.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광우병과 조류 인플루엔자(AI), 식량가격 폭등, 부동산가격 폭등과 인간성 상실, 생태 위기, 농촌 위기 등이 녹색평론을 통해 지난 16년간 꾸준히 예언돼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녹색평론은 또한 시국강연회와 전국 순회 강연회를 마련한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과 김종철 발행인이 연사로 나서는 시국강연회는 30일 오후 6시30분 원불교 종로교당에서 열리며, 독자모임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한 전국 순회 강연은 21일 대구를 시작으로 원주(24일)와 군포(28일), 부산(6월1일), 제주(4일)를 거쳐 다음달 11일 광주로 이어진다. 특히 원주 강연은 지역운동에 투신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14주기를 겸해서 진행된다.(손제민기자)

시사인(08. 05. 09) "공생공락하는 심플 라이프가 대안이다"

<녹색평론>의 외형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 사진 없이 글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모습도 같고, 재생지를 써서 같은 판형의 다른 책보다 가볍게 들리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의 함량은 결코 가볍지 않다. 원래 지식인 잡지로 출발했지만, 지식인이나 생태주의자만 이 잡지를 읽지는 않는다. 전국에서 독자 모임이 열릴 정도로 꽤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정기구독자 5000명 남짓. 또 서점에서 1000부 정도가 소화되니까 작은 잡지치고는 꽤 성공했다. 잡지 발간이 김종철 발행인(61)의 개인 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다. 그 잡지가 올해 5·6월호로 지령 100호를 맞이했다.

김 발행인은 마흔네 살 때 영남대 교수로 있으면서 <녹색평론>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홀로, 나중에는 그를 따르는 몇몇이 참여했다. 그동안 웬델 베리나 리 호이나키, 이반 일리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등이 <녹색평론>을 통해 국내 지식 사회에 알려졌다. 천규석, 권정생, 이현주, 전우익 등 국내 생태주의 ‘은사(隱士)’들에게 가장 많은 지면을 내준 것도 <녹색평론>이다. <녹색평론>은 100호 표지 사진으로 1년 전 권정생 선생이 타계한 직후, 그가 살던 집 섬돌에 놓여 있던 고무신을 찍은 사진을 실었다.



김 발행인은 4년 전 교수직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학계와 생태운동가들에게 작은 화제였던 ‘총장 폭행사건’이 직접 원인은 아니었지만, 수개월 뒤 그는 사표를 던졌다. 사건 전말을 간략히 전하면 이렇다. 그는 당시 외국의 생태운동가와 평화주의자들을 불러 사상 강좌를 열곤 했는데, 일본의 평화학자 도다 기요시 나가사키 대학 교수를 초청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도다 씨의 “거지 같은 차림새”가 학교 측의 비위를 상하게 했던 것. 1000만원 지원을 약속했던 총장이 70만원밖에 주지 못하겠다고 하는 순간 ‘다혈질 순수파’ 김 교수가 ‘폭발’해버렸다. 그 일로 그는 3개월 감봉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는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지금 그는 <녹색평론> 발행·편집인 역에 전념하고 있다. 5월8일 서울 사직동 녹색평론사 자료실에서 김 전 교수를 만났다.

<녹색평론>을 창간한 이유는?
영남대 교수가 돼서 대구에 내려갔는데 처음에는 전원생활 같았다. 그런데 갈수록 개발 바람이 불더니 학교가 있는 경산과 대구 사이의 논밭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는 걸 봤다. 참 고약하다고 생각하던 참에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출신 생태학자 루돌프 바로가 쓴 <대안>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는 생태 위기 때문에 문명이 절멸할 것이라면서 녹색문화혁명을 주장했는데 와닿았다. 혼자 생각하다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되고 사회주의 붕괴 뒤 진보 세력이 흔들릴 때 공론의 장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창간했다.

창간사 제목이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였는데, 17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그때 첫 문장이 이랬다. ‘지금부터 20년이나 30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좀더 기다려봐야지(웃음).

위기의 징후를 느끼나?
식량문제가 심각한데 왜 우리 언론은 조용한지 모르겠다.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 농토 잠식 등으로 인해 인류의 식량문제가 점점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5%로 산업국가 중 최하 수준이다. 10년 안에 북한 같은 기아 사태가 우리한테도 닥칠 수 있다. 일본은 40% 수준인데도 2050년까지 자급률을 60%까지 올리도록 법제화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나 언론계 인사들은 아직까지 농지규제 완화나 궁리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제 자식들 데리고 여기서 오래 살 생각이 없는지도 모르지만.

<녹색평론>은 그동안 경제성장 논리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자본주의 경제는 끝없는 성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선진국의 풍요 이면에는 인도나 중국 등 초저임금 노동자의 착취가 있다. 또 생산력을 높일수록 지구 자원을 계속 수탈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가능할까. 내가 볼 때 장기적으로 인류생활 전반을 고려하면서 주장을 펴는 경제학자가 없다.

경제성장은 대중의 욕망이기도 하다. 진보학자인 백낙청 교수도 김 발행인의 생각이 “잘살아보겠다는 대중의 정당한 욕구를 외면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는데.
대중의 욕구라는 게 얼마나 정당한지, 과연 적당한 경제성장이란 있는 것인지 토론이 필요하다. 백 교수에게 내 나름의 논리를 갖춰 이야기했으니까 뭔가 반론이 있겠지(그는 <창작과 비평> 봄호에 ‘민주주의, 성장논리, 농적(農的) 순환사회’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백낙청 교수의 ‘적당한 경제성장’ 주장을 비판한 바 있다).

정부나 정치인이 경제성장 논리를 거부하기는 사실상 힘든 것 아닌가?
근대 이후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치의 모범처럼 됐다. 그걸 해야 정상국가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로 인류 공통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런 체제에서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에게 경제성장 약속을 안 할 수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인류를 자기 파멸로 이끌어갈 수 있다.

대안이 있나?

도시나 농촌, 지역과 직장에서 자치와 자급이 가능한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 협동조합운동이 내가 생각하는 대안이다. 국가는 그런 네트워크를 조정하는 사회자 같은 구실이면 된다. 산업혁명 초기부터 그런 생각이 제기됐지만, 마르크스주의가 주류 진보 담론으로 성행할 동안 죽어 있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현실 가능할까? 현실 대안이 아니라면 책상물림의 공론으로 끝날 텐데.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혁명보다야 훨씬 쉽지. 대안학교 만들고, 도농 직거래 네트워크 열고, 의료생협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복지국가론도 반대하나?
복지국가 또한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답은 아니다.

웬델 베리나 리 호이나키, 천규석이나 권정생 같은 생태주의 은사들의 글을 주로 소개했는데, 이게 <녹색평론>의 색깔인가?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초기에는 개인의 각성을 강조한 글이 많았다면, 요즘은 좀더 전투적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사회가 하도 어지러워서 거기에 대항하다 보니까 영성 같은 데는 좀 소홀해졌다(<녹색평론>은 최근 한반도 대운하와 한·미 FTA에 대해 반대하는 특집을 연달아 싣고 있다). 또 내 자신도 좀 변했고. 지금은 개인의 각성보다 연대나 친교, 우정 같은 데 관심이 더 간다.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영향을 미쳤다.

(서울 사직동 녹색평론사 자료실에서 책을 읽거나 사람들과 토론하는 게 그의 요즘 일과다. 이곳에서 매주 토요일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이 열린다. 이반 일리치는 서구 문명체제의 허구를 폭로한 사회사상가. 그가 즐겨 쓰는 ‘공생공락의 가난’이라는 말도 일리치의 ‘conviviality’ 개념을 옮긴 조어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필요한 물건을 나누어 쓰기도 하고, 몇 사람이 종자돈 수천만원을 출자해 만든 ‘일리치 은행’을 통해 이자 없는 은행을 실험하기도 한다.)

김 발행인 사상의 뿌리는 서양의 생태학인데, 대안은 두레 같은 전통에서 찾는 듯하다.
이반 일리치도 서양 중세에서 대안을 찾았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밑바닥 마을 사람들의 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선인가?
회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하잖나. 그래서 ‘오래된 미래’라는 거지. 결국 세상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순환적인 패턴으로 움직인다. 봄·여름·가을·겨울, 태어나고 죽고, 내가 누군가의 밥이 되고 나를 먹은 누군가가 또 누군가의 밥이 되는 게 생태계다. 불가에 가면 공계순환제유정(空界循環濟有情; 세상은 순환함으로써 만물을 구한다는 뜻)이라는 말이 있다. 순환이 막히면 죽는다.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 농토의 4분의 1에서 표토가 상실했다고 한다. 이게 다 순환의 질서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근대라는 것은 순환 대신 직선을 지향한다. 생태계 건강을 망치면서 미친 문명이 돼버렸다.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 생활을 순환 패턴으로 되돌려놓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 욕망을 줄여야 한다. 자발적 가난, 심플 라이프야말로 대안이다.

그는 <녹색평론>을 통해 수많은 생태주의자의 글과 삶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가 그들을 직접 만난 적은 거의 없다. 책을 읽다가 좋은 글을 발견하면 에이전시에 연락해서 허락을 맡고 번역해 게재하는 게 거의 전부다. 그는 그들을 “정신적 친구들”이라 불렀다. 그가 한국에 초청한 정신적 친구들은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쓴 더글러스 러미스나 일본의 평화운동가 오다 마코토, 생태주의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를 비롯한 몇몇이다.



그 중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녹색평론>이 발굴한 최대 스타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해 7월 중앙북스와 <오래된 미래>의 정식 판권 계약을 맺으면서 그와 결별했다. 그동안 녹색평론사는 노르베리-호지와 정식 계약 없이 ‘녹색 동지’의 관계를 맺어왔고, 김 발행인은 그녀의 연구소에 인세에 상당하는 기부를 해왔다. 그런 자발적 관계가 깨졌을 뿐 아니라 노르베리-호지가 일방적으로 출판사를 바꾸면서 인세 의혹까지 제기한 점 때문에 그의 상실감은 한동안 컸다.

그는 본래 문학평론가였다. 하지만 <녹색평론>을 발행하면서 그는 문학 평론을 접었다. “재미가 없었다. 지금도 요즘 작가는 아니고, 일제강점기 작가나 평론가들에 대해서 다시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 때는 가끔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문학을 떠난 일은 국내 문단은 물론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에게까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본디 의미의 문학에 충실한 사례’로 부커상을 받은 다큐멘러리 <작은 것들의 신>을 쓴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와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을 언급했는데,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 모두 ‘문학을 그만둔’ 상태였다. 하지만 어쩌면 <녹색평론>에서 글을 쓰는 지금의 활동이 그에게는 최상의 문학 행위일 수도 있다. 영문학에서 리터러처(literature)란 원래 ‘문사철’을 포함한 문자로 된 모든 저술 활동을 뜻했다고 하니까.(안철흥기자) 

08. 05. 16.

P.S. 참고로 같이 읽을 만한 오늘자 기사. '이명박 시대'가 어떤 시대욕망(시대정신이 아니다!)에 들려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단신이다.

이데일리(08. 05. 16) 李 대통령 "한국은 저성장 안돼..여러가지 이유로"

이명박 대통령이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적절한 경제 성장을 해야 한다"며 거듭 경제성장을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6일 저녁 전국 세무서장을 청와대로 초청,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저성장해서는 되지가 않는다”며 “젊은이 일자리 만들어줘야 하고, 서민 잘살게 해줘야 하고..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적절한 성장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아시다시피 어려운 때로, 미국이 0.5%로 플러스 성장할지 마이너스 성장할지 알수 없고, 일본 1.5%, 유럽도 ±1%"라고 한데 이어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기업의 사기를 올리는 세무행정을 당부했다. 대통령은 “세무행정만 바뀌어도 기업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싶다, 이런 생각 나올 것”이라고 했다. 또 “일자리와 성장, 모든 주역은 기업이며 우리(정부)는 뒤에서 지원하는 후원 부대”라며 “한때 우리는 그 분들이 조연이고 우리가 주역같이 국정을 살폈던 때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갑, 을이 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하는 사람들이 주연이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도록 투자를 하고 내수 진작시키고 일자리 만들어 내고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중소기업 300만 개 1사람씩만 고용하면 300만 일자리 생기고, 해고하면 300만 일자리 없어진다”며 “중소기업 특별한 배려해야 한다, 국세청이 잘하면 웬만한 중소기업 100만 개에는 1자리씩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만찬에 참석한 한상률 국세청장도 "(대통령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재정상의 어려움 때문에 지장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그러나 절대 무리한 세정은 집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김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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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malthea의 생각
    from amalthea's me2DAY 2008-05-19 13:47 
    녹색평론 정기구독신청할까...고민중.
 
 
노이에자이트 2008-05-17 22:45   좋아요 0 | URL
오다 마코토 <전쟁인가 평화인가>녹색평론사 2004서문을 김종철 씨가 썼는데 저자와 개인적 친분도 있어서 2003년 5월 영남대에 초청했다고 나와 있더군요.그해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지라 반전평화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였답니다.2002년 겨울엔 일본의 오다 마코토 자택에도 초대를 받은 걸 보면 상당한 친분인 것 같았어요.
녹색평론사 답게 이 책도 재생지를 썼더군요.오다 상은 제가 좋아하는 평화운동가라서 만나보고 싶었는데 얼마전 저 세상으로 ...그의 친구인 하워드 진도 이제 80줄...

로쟈 2008-05-18 22:37   좋아요 0 | URL
<전쟁인가 평화인가>만 알고 있었는데 몇 권 더 소개가 되었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5-18 23:50   좋아요 0 | URL
경향신문은 녹색평론100호를 사설에서까지 다루었는데 의외로 여기선 댓글이 한가하네요.오다 상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고 생전에 그가 우리나라 신문에 기고한 글은 봤습니다.김종철 씨는 앞으로 동아시아 근현대 사상 총서를 기획중이라니 기대가 큽니다.사이비 일본통이 아니라 일본의 녹색운동이나 평화운동에도 조예가 깊은 것 같습니다.

로쟈 2008-05-19 00:09   좋아요 0 | URL
요즘은 댓글의 절반 이상이 노이에자이트님 겁니다.^^

열매 2008-05-19 02:25   좋아요 0 | URL
흥미롭군요. '동아시아 근현대 사상 총서를 기획중'이라니요...우리나라에서 동아시아 근현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BK등의 용역 연구비 타먹을 연구원뿐이라고 여겼는데, 연구비 타먹으려 싸낸 논문따위 말고 총서 내지 선집를 만들어낼 기획을 하고 있었다니 놀라우면서도 기대됩니다. 근현대가 어디서부터 어디 정도까지 포함하고 있는지 알 순 없지만 근대 메이로쿠샤부터 동아시아 3국을 아우르는 선집이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혹시 '노이에자이트'님이 알고 계신 것이 있다면 귀뜸해 주실 순 없는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0 02:57   좋아요 0 | URL
경향신문에 나온 인터뷰 기사에서 김종철 씨가 밝힌 포부입니다.자세한 것은 모르고요.한국이라는 일국사에 갇히지 않고 중국과 일본까지 포괄하는 동아시아사라는 더욱 넓은 시각에서 역사를 보자는 취지랍니다.
요즘 일본의 근현대사상가들에 대해선 좋은 번역이 꽤 나오던데요.다케우치 요시미 평론선,태평양 전쟁의 사상 등...특히 아시아주의자들에 대한 책들요.현양사같은 야쿠자 집단이 아닌 지적인 아시아주의자들을 다룬 책들이죠.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이들을 다룬 연구서들도 보세요.후지타 쇼죠,츠루미 슌스케의 책들이 번역되어 있습니다.태평양 전쟁 긍정론을 쓴 하야시 후사오의 전쟁관을 짙게 깐 소설인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태평양 전쟁>은 오래전에 번역되어 있습니다.단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습니다.이 소설 겁나게 재밌습니다.
학술서적이 아닌 교양서적으로는 서경식 씨가 좋아하는 다카하시 데쓰야의 저작을 권합니다.우리나라에도 꽤 지성계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공부합시다!!!

21세기컴맹 2008-05-29 18:36   좋아요 0 | URL
자체보다 주변에 더 흥미로운 글입니다. 제목도 시사하는 바가 크군요.그 그,
그리고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