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이 화려하고 값도 어지간한 양서를 뛰어넘는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양질의 책들이 출간되고 있는지는 의문인데, '외화내빈'의 책들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번역과 편집 등에서 발견되는 실수와 오류 들이 결코(!) 줄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데 이를 꼬집는 기사가 있어서 옮겨놓는다. 출판에서도 실수나 오류가 '관행'으로 굳어지는 걸 자주 경계할 필요가 있다(물론 사람이 저지르는 게 실수다. 문제는 '태만한' 실수이고 그런 실수의 '구조적인' 방조다). 어느 분야나 가만 앉아있어도 알아서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경향신문(08. 05. 03) [책동네 산책] ‘책 만드는 장인정신’ 아쉽다

존 뮤어(1838~1914)는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환경주의자이자 자연주의 작가다. 지난주 나온 책 ‘나의 첫 여름’(사이언스북스)은 1869년 여름 요세미티 지역을 탐험한 경험을 기록한 책으로 미국 생태문학의 고전으로 칭송받는 작품이다.

호기심에 차서 책장을 넘겨보다가 의아스러운 대목이 눈에 띄었다. 옮긴이의 글에서다. 뮤어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를 요세미티로 초청해 이틀간 야영을 같이한 후 아이젠하워가 백악관으로 돌아가 이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선포하게 한 사실은 매우 잘 알려진 일화”라고 썼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시기는 1953~61년. 뮤어가 타임머신을 타고 가지 않는 한 그를 만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출판사 측은 이 같은 내용을 그대로 담은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인터넷서점의 책 소개에도 버젓이 올라있다. 허술한 교정·교열 문제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지만 너무한다 싶었다. 게다가 상대는 국내 유수의 출판사인 민음사의 계열사 아닌가.

그런데 이런 일이 우연히 발생한, 예외적인 경우는 아닌 모양이다. 같은 주 나온 피터 드러커의 ‘경제인의 종말’(한국경제신문). 몇 장 펼치지도 않았는데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나왔다. 이번에도 옮긴이 해설이다. “ ‘경제인의 종말’ 이후 드러커의 모든 저서들을 분석하고 예측한 것을 시간의 검증을 거쳐 ‘경제인의 종말’에서 다시 분석하고 예측하였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됐다. 그 앞 문장에 비슷한 문장이 있긴 했다. 담당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최종교정을 편집장이 봤다며 바꿔준다. 그의 대답이다. “이런, 실수했네요. 앞 문장을 잘못 반복한 것 같습니다.”

이름깨나 날린다는 출판사들이 이 모양이니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사실 요즘 출간되는 책들 가운데는 과연 교정·교열을 꼼꼼하게 봤나 싶을 정도로 오·탈자와 비문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오·탈자의 발견’은 책읽기의 일상적인 사건이 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 도서평론가는 “이제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그냥 포기하고 읽는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한 출판인은 “아주 구조적인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출판사들이 ‘양’으로 승부를 내다보니 책을 ‘찍어내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책에 대한 ‘장인정신’은 뒷전이라는 것이다. 교정·교열 능력을 제대로 갖춘 유능한 편집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는 출판계 시스템도 문제다. 요즘에는 교정·교열을 아예 외주로 돌리는 출판사도 많아서 편집자가 자신이 내놓는 책의 세부적인 내용을 모르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근 문학과지성사가 내놓은 ‘한국문학선집 1900~2000’ 중 작가 김성동씨에 관한 해제에 심각한 오류가 발견된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혹 이 사건이 한국 출판이 자초할 위기를 경고하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 같은 게 아닐까. 화려한 장정과 디자인을 앞세운 한국 출판이 정작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다는.(김진우기자)

08. 05. 04.

P.S. 기자의 지적대로 부실한 편집/교정은 현행 출판시스템의 문제이다. 교정/편집자가 전문화되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은 오히려 정반대로 가는 듯하다. 양적인 팽창이 질적인 내실을 동반하지 못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해두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교정/편집의 부실은 사소한 경우라도 책에 대한 신뢰를 치명적으로 잠식하는 수가 있다. 최근의 경험을 들자면,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정치철학>(삼우사, 2008)의 '감사의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폴리티출판사 사람들, 특히 나의 편집자 존 톰슨, 길 모틀리, 데비 세이무어, 팜 토머스 그리고 제니퍼 스피크와 함께 일하는 기쁨을 가졌다. 어떤 저자도 훌륭한 출판인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자가 출판 편집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상례적인 문구이다. 한데, "어떤 저자도 훌륭한 출판인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역자의 무지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편집자는 이 대목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책의 두번째 페이지인데(원서로 치면 첫페이지이다!). 이 문장은 "No author could wish a better publisher."를 옮긴 것이다. "어떤 저자도 이보다 더 좋은 출판사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도의 뜻 아닌가('publisher'는 '발행인'을 뜻하기도 한다). 물론 저자가 상찬하고 있는 건 폴리티출판사(Polity Press), 혹은 그 발행인이다. 그것이 어떻게 "어떤 저자도 훌륭한 출판인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로 번역되는 것인지는 미스터리다.   

사소한 한 문장이지만, 이런 대목은 저자/역자나 편집/출판인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는 걸 암시해준다. 미심쩍어하면서 더 읽어봤지만 아래 대목에 이르면 (역자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원서와 대조하지 않으면 독서의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나는 아렌트의 저작에 있어서 공적 삶과 정치적 생각함 사이의 결합 및 각자가 다른 사람을 아는 방식을 추적하려 한다."(17쪽)

"In this book, then, I attempt to trace out the connections in Arendt's work between public life and political thinking, and the ways in which each informs the other."(4쪽)

여기서 "the ways in which each informs the other"를 역자는 "각자가 다른 사람을 아는 방식"이라고 옮겼는데, 나로선 의외이다. 상식적으로 'each'는 바로 앞에 나오는 'public life'와 'political thinking'을 가리키는 것 아닌가? 저자가 이 책에서 따라가보고자 하는 것은 아렌트의 저작에서 (1)공적인 삶과 정치적 사유간의 관계, 그리고 (2)공적인 삶과 정치적 사유가 서로를 특징짓는 방식, 이다. 나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처럼 소개된 무게 있는 연구서를 반갑게 손에 들 수 없는 건 울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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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5-04 23:13   좋아요 0 | URL
제가 과외 가르쳤던 학생에게 했던 말...비교급에 부정문 나오는 것 제대로 해야해요.이거 하다가 영어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한나 아렌트 번역 오류를 보다가 갑자기 이 생각이 나네요.

로쟈 2008-05-05 16:59   좋아요 0 | URL
간혹 눈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도 단순한 오역들이 창궐해서요...

turnleft 2008-05-05 06:41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번역자들이 초벌 번역을 컴퓨터 영한 번역 프로그램으로 돌리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더군요 -_-+
(제 전공이 컴퓨터공학인데 과 교수님이 개발한 영한 번역기가 있었어요. 거기서 "Time flies like arrow" 를 넣으면 "시간 파리들은 화살을 좋아한다"라고 결과가 나오더라는..;;)

로쟈 2008-05-05 17:00   좋아요 0 | URL
거의 그런 수준의 오역들이 너무 많습니다. 비상식적인...

드팀전 2008-05-05 09:29   좋아요 0 | URL
파하하...시간 파리..

로쟈 2008-05-05 17:00   좋아요 0 | URL
'시적인' 번역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5-05 21:59   좋아요 0 | URL
인도네시아를 지배한 폴란드...라고 해서(제프리 배러글러프:현대사의 성격 김봉호 역 삼성문화문고92번)이거 뭔 소리? 했는데 홀란드를 폴란드라고...그리고 리델 하트 전략론(신상초 번역)엔 캠페인이라는 단어가 하도 많이 나와서 이게 뭐야...했는데 군사영어에선 대규모 전투를 캠페인이라고 한다는 걸 알고 실소...아마 번역자는 캠페인은 침뱉지 말자...줄서자...그렇게만 알았던 모양이예요.

로쟈 2008-05-05 23:08   좋아요 0 | URL
'세르비아'를 '시베리아'로 옮기는 등 코믹한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적이고 유머러스한 사례들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5-05 22:12   좋아요 0 | URL
아,,,그리고 문지사와 김성동 씨의 갈등은 지금 어떻게 되나요?

로쟈 2008-05-05 23:07   좋아요 0 | URL
보도로는 법정 분쟁에 들어간 상태로 보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06 00:29   좋아요 0 | URL
김성동 씨 성깔 있는데...제가 문단 뒷이야기...그런 류의 책을 즐겨 읽거든요.적나라한 것 좋아해서...예전에 유신시절 김성동 씨가 스님일 때 결혼식 하객으로 갔는데 주례사하는 김동리 씨가 내내 유신체제 찬양만 하길래 김성동 씨 왈...저러니 늙으면 죽어야지...

로쟈 2008-05-06 13:52   좋아요 0 | URL
ㅎㅎ 언젯적인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5-07 00:28   좋아요 0 | URL
만다라 쓰기 전이니까 70년대 중반에서 말 무렵이나 될까요? 우리나라 문인들 중 김동리 문하생들이 많잖아요.이문구 씨도 그렇고 박경리 씨도...그런데 김성동 씨 성향은 김동리 씨같은 강경한 반공하고는 안 맞죠.박헌영을 정통으로 보는 것 같아요.게다가 김동리 씨는 5공 때도 유명했잖아요.이병주 씨와 막상막하였죠.

로쟈 2008-05-07 23:27   좋아요 0 | URL
김동리 사단이라고 했지요. 박경리, 오정희 선생도 다 '문하'인데, 박완서 선생만 예외인가 싶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5-09 00:26   좋아요 0 | URL
서영은 씨도 빠질 수 없죠.손소희 씨 타계후 재혼상대였으니까요.제가 소장한 손소희 작품집엔 김동리 씨와 찍은 사진이 있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로쟈 2008-05-09 11:0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서영은씨는 요즘 작품활동이 뜸하시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5-09 23:53   좋아요 0 | URL
글쎄요.아직은 작가로는 한창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