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이 '세계 책의 날'이라고 한다, 고 적고서 찾아보니 그 유래는 이렇다.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은 국제출판인협회(International Publishers Association: IPA)가 스페인정부를 통해 유네스코에 제안한 '책의 날'에 러시아정부가 제안한 '저작권'의 개념이 포함되어 제정된 기념일이며, 4월 23일은 스페인 까딸루니아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했던 세인트 호르디(St. Jordi)의 날이자, 1616년 세계적 문호인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와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맨날 책 얘기들만 늘어놓는 처지에 그냥 지나가기도 뭐해서 관련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책에 미친 인간'들, 곧 '점잖은 미치광이'들을 다룬 책, <젠틀 매드니스>(뜨인돌, 2006)를 '책의 날의 책'으로 다룬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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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08. 04. 23) [오늘의 책<4월 23일>] 젠틀 매드니스
책 읽기에만 정신을 쏟고 다른 일은 돌보지 아니하는 이를 옛사람들은 ‘서치(書癡)’라 불렀다. 책만 읽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비아냥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며 <간서치전(看書癡傳)>이란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서음(書淫)’이란 말도 있다. 글 읽기를 지나치게 즐겨 음란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 그 음란은 결코 추하지 않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서구에도 책 사랑을 가리키는 비슷한 표현이 있다. ‘젠틀 매드니스(geltle madness)’라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변호사ㆍ하원의원이었던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가 인쇄업자ㆍ도서수집가였던 자신의 할아버지 아이제이어 토머스를 가리켜 한 말이라 한다. ‘점잖은 미치광이’인 셈인데, 점잖게 풀어 쓰면 ‘가장 고귀한 질병, 즉 애서광증(愛書狂症)에 푹 젖어버린 분’ 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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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 매드니스>는 그렇게 책에 미친 인간들의 사연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가 고대로부터 1980년대까지, 젠틀 매드니스의 사례들을 방대한 자료수집과 취재를 통해 펼쳐놓는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아내가 죽자 자신의 시 원고들을 같이 묻었다가 7년 후 무덤을 파헤쳐 <시집>이란 책으로 출간한 시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이 시집은 하버드대 도서관에 있다), 다빈치의 과학에 대한 원고ㆍ삽화가 든 72쪽짜리 필사본을 경매에서 3,080만달러에 낙찰받은 빌 게이츠, 미국 전역 268개 도서관에서 2만3,600여권의 희귀본을 훔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컬렉션을 만든 책도둑 스티븐 블룸버그 등등.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은 번역본 분량이 자그마치 1,111쪽이다. 이런 책을 쓰고 번역하고 출판하고, 또 비싼 책값 주고 쇄를 거듭할 수 있도록 사서 읽으며 ‘문자의 독배를 들이켜는’ 독자들, 책사랑에 빠진 음란한 그들이 있기에 책은 저마다의 영혼을 갖게 된다. 오늘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하종오기자)
08. 0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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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나 또한 '책에 미쳤다'는 소리를 가끔씩 듣지만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건 이 책 <젠틀 매드니스>를 소장하고 있지 않다는 점. 일차적으론 그 부피와 무게와 책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서이지만 한편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알리바이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책에 미친 당신에게'(http://h21.hani.co.kr/section-021152000/2008/04/021152000200804170706038.html)에서 언급되는 있는 '책에 관한 책들', 혹은 '비블리오 픽션'들에 대해 관심을 덜 갖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예전에는 즐겨 읽었지만). 물론 이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점잖은 미치광이' 아니냐고 당신이 따져묻는다면 대답은 궁색하다. 약간 에누리해서 '점잖은 반미치광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