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비스사를 바꾸는 바람에 오전에 잠시 새 연결망 설치작업이 있었고 또 그 바람에 약간의 책정리를 하다가 리처드 레인의 <보드리야르, 소비하기>(앨피, 2008)의 원서를 발견했다. 잠시 읽어보게 됐는데, 독일 극작가 페터 바이스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어 몇 자 적어놓는다. 보드리야르는 바이스의 주요 작품들을 불어로 옮긴 번역자이기도 하다.  

 

 

 

 

책의 '왜 보드리야르인가?'란 서론은 "장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제로 글을 쓴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일 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사람이다."(15쪽)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실천한'은 'embody'를 옮긴 것인데, 말 그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구현한,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인 이론가가 보드리야르라는 것.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같은 시리즈로 나온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포스트모더니즘을 구하라>(앨피, 2008), <트랜스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앨피, 2007)과 함께 나란히 읽어봄 직하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도래와 함께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삼총사'이기 때문이다(제임슨의 명성은 물론 상당 부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반대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의 주저 중 하나인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유행'에 있어서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그런 보드리야르(1929-2007)의 경력은 장 폴 사르트르가 주관한 잡지 <현대>에 주로 글을 발표함으로써 시작된다. "사르트르는 대체로 독창적인 마르크스주의 해석 때문에 모든 세대의 프랑스 사상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그에 더하여 개인적으로 독일의 사회학과 문학에 흥미를 느꼈다."(19쪽) 여기서 '모든 세대'는 'a whole generation'을 옮긴 것이다. 그냥 '한 세대 전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독창적인 마르크스주의 해석'은 짐작에 <변증법적 이성비판> 같은 책을 염두에 둔 멘트로 보인다. 국내엔 이 책의 서론만이 <방법의 탐구>(현대미학사, 1995)로 번역돼 있다. 보드리야르는 그러한 독일 철학에 보태서 독일 사회학과 문학에도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다는 것.

"그는 더 전문적인 분야를 일컫는 '문학'이나 '철학' 같은 용어보다 '문화'라는 말을 선호했는데, 왜냐하면 프랑스의 주류를 이루는 지적 사고의 한계 지점에 서 있는 이론가로 자신을 자리 매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는 (그의 주요 지적 라이벌인 미셸 푸코처럼) 전통적이고 체계적이며 철학적인 훈련을 받기보다는 좀더 우회적인 길을 걸었다.(19-20쪽)

'프랑스의 주류를 이루는 지적 사고의 한계 지점'은 'margins of mainstream French intellectual thought'의 번역이다. 그러니까 다 똑같이 유명한 프랑스 이론가/사상가로 알고 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서 푸코처럼 주류(메인스트림) 정통파도 있고 보드리야르 같은 비주류 주변부파도 있는 것이다. '지적 라이벌인 미셸 푸코'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 보드리야르의 <푸코 잊기>(1977; 영역본은1987)이다. 푸코의 생전에 나온 책이다! 책이라곤 하지만 분량은 팜플릿 수준인데, '푸코를 잊어버리기'란 제목으로 <세계의 문학>(1989년 가을호)에 번역됐었다(무슨 소리를 적어놓았는지 다 잊어먹었지만).

여하튼 "제도의 경계에 서 있는 이러한 보드리야르의 위치는 주류적 사고의 경계 지점에서 유희하는 그의 후기 출판물들과 유사한 맥락에 서 있다." 그런 비주류성 혹은 가장자리성과 잘 호응하는 것이 독일 극작가들에 대한 관심이다. 특히 페터 바이스와 베르톨트 브레히트.

"1960년대에 보드리야르는 특히 극작가 피테르 바이스(1916-1982)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을 번역하는 데 힘을 쏟았다. 보드리야르는 그 영향력이 과소평가되어 온 바이스의 주요작품 네 편을 번역햇다. <소실점>(1964), <마라/사드>(1965), <토론>(1966), <베트남 해방전쟁의 발생과 전쟁에 대한 담론>(1968). 불안정한 시점의 형식을 취하여 날카로운 정치적 진술들을 담고 있는 이 텍스트들은 보드리야르가 글쓰기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전조로 간주될 수 있다."(20쪽)

Photo: Peter Weiss, 1960er Jahre

'페테르 바이스'는 '페터 바이스(Peter Weiss)'라고 읽어주는 게 낫겠다(물론 '피터 웨이스'라고 영어식으로 읽은 책들도 있긴 하다). 독문학자들이 그렇게 읽고 또 국내에도 그렇게 소개됐다. "그 영향력이 과소평가되어 온"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바이스가 보드리야르에게 끼친 영향을 말한다(The influence of Weiss is usually played down). 그것이 보통 간과됐다는 것. 하지만 주요작을 네 편이나 번역한 이상 모종의 영향관계나 친연성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



 

 

  

<마라/사드>는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다른 세 작품은 좀 생소한데, 찾아보니 <토론>이라고 옮겨진 작품은 <수사(Die Ermittlung)>, 영어본으로는 <조사(The Investigations)>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한국문화사, 2003)로 번역돼 있다. 제목대로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다룬 '기록극'이라 한다. 11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장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1 승강장의 노래
2 수용소의 노래
3 그네의 노래
4 생존가능성의 노래
5 릴리 토플러의 종말에 관한 노래
6 하급친위대원 슈타르크의 노래
7 검은 벽의 노래
8 페놀의 노래
9 방공호 구역의 노래
10 치클론 B가스의 노래
11 화장로의 노래

페터 바이스는 유대계였던 탓에 나치 독일을 떠나 오랜 망명생활을 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전기적 내력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그렇다면 대표작 <마라/사드>는 어떤 내용인가? "<마라/사드>는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장 폴 마라(1743-1793)의 암살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그러나 바이스는 이 모든 것을 복잡하게 비튼다. 그의 희곡은 한때 샤랑통 시설(Asylum of Charenton)'에 수용된 마르키 드 사드(1740-1814)가 그곳에서 상연한, 마라의 암살 사건을 다룬 연극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마라/사드>는 역사적 현실에 기반한 희곡이면서 동시에 역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20-21쪽)

'샤랑통 시설'은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샤랑통 정신병원'으로 사드가 감금되었던 곳이다. 그리고 <마라/사드>는 <사드 후작의 연출로 샤랑통 정신병원의 재소자들이 공연한 장 폴 마라에 대한 박해와 암살사건(The Persecution and Assassination of Marat as Performed by the Inmates of the Asylum of Charenton Under the Direction of the Marquis de Sade)>이라는 긴 원제를 가진 작품으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사드가 연출가로 분하여 환자들과 함께 마라의 암살 사건을 극중극으로 재현한다" 때문에 "<마라/사드>는 역사적 현실에 기반한 희곡이면서 동시에 역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Marat/Sade becomes a play located in the historical real, but also one that dislocates history.).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보드리야르의 포스트모던적 글쓰기와 상통한다는 것. "바이스의 <마라/사드>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연극 작품이 생산되고 상연된 시대를 바이스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깨닫는 동시에,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방식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정치를 사고하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형식을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보드리야르 역시 흔히 수행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석과는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로테스크한 폭력과 성적 과잉'을 보여주는 희곡을 번역한 보드리야르의 작업을,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21쪽)

이 대목은 원문과의 대조를 필요로 한다. "With Weiss' Marat/Sade, we have a new and interesting form for the explorarion of political ideas, one which strays far from the typical Marxism that informed Weiss' thinking at the time of the play's development and production. Similarly, Baudrillard was exploring different ways of performing Marxist anaylses, and we can tie in his work translating this play of 'grotesque violence and sexual excess' with his interest in the French thinker Georges Bataille(1897-1962)."(4쪽)

내가 읽은 바를 나대로 옮기면 "페터 바이스의 <마라/사드>를 통해서 우리는 정치 사상을 탐구하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형식과 접하게 된다. 이 형식은 이 희곡이 씌어지고 공연되던 시기 바이스의 사고를 틀 지웠던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로부터 한참 벗어난다. 마찬가지로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주의 분석을 수행/상연하는 다른 방식들을 탐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그로테스크한 폭력과 성적 과잉'의 희곡을 번역한 그의 작업을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이유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관지어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보드리야르는 바타이유(바타유)와 접속된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사이에 조르주 바타유는 스스로 '이종적 문제(heterogenous matter)'라고 부른 '과잉', 요컨대 쓰레기, 배설물, 폭음과 폭식 등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것에 기반한 글쓰기 이론을 구축했다. 그는 철학의 거장들이 흔히 자신들의 철학은 그러한 세속적 문제를 초월하려는 시도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시하는 영역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21쪽)

바타이유의 이러한 '이질적인' 철학은 당대의 주류 사상가들로부터 거부되었으나 1960년대 이후로 '재발견'된다.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바타유와 그의 저서에 담긴 새로운 관심사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의 프랑스 사상가들이 헤겔과 마르크스라는 제약에 맞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바타유를 참조함으로써 보드리야르를 포함한 사상가들 전체를 반反 헤겔 혹은 반反 마르크스라는 서사 내에 한 묶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22쪽)

참고로 원문은 이렇게 돼 있다: "To understand Bataille, and the new interest in his work, is to understand the way in which modern French thinkers reacted to the constraints of Hegel and Marx; in other words, we can situate a whole host of thinkers that include Baudrillard in one stretch of narrative."(4쪽)   

역시나 나대로 다시 옮기면, "바타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고 그의 작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현대 프랑스 사상가들이 헤겔과 마르크스의 구속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보드리야르를 포함한 다수의 사상가들을 하나의 내러티브 선상에 위치시킬 수 있다."

지난번에도 언급한 것이지만(http://blog.aladin.co.kr/mramor/1965343) 리처드 레인은 줄리언 페파니스의 책 <이질성과 포스트모던(Heterology and the Postmodern: Bataille, Baudrillard, and Lyotard)>을 높이 평가하는데(<이질성의 철학 그리고 바타이유, 보드리야르, 리오타르>(시각과언어, 2000)로 소개돼 있다), 인용한 대목은 이 점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아니, 서론에 나오는 것이니까 미리 암시해준다고 해야겠다. 그리하여 다시 읽게 되는 보드리야르는 페터 바이스와 바타이유 사이의 보드리야르이다...

08.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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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30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30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30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8-03-30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타이유 이야기가 나와서 개인적으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요.^^
반가운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언제나처럼.

로쟈 2008-03-30 10:13   좋아요 0 | URL
람혼님에게는 기별도 안 갈 내용인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4-07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터 바이스의 희곡 중 베트남 토론회라는 작품이 있는데 보들리야르가 번역했다는 토론이 혹시 이 작품은 아닌지요...심문이라는 희곡은 따로 있는데요...(중앙일보사 오늘의 세계문학
13번 페터 바이스 관련 흑백화보 설명에서)

로쟈 2008-04-07 00:30   좋아요 0 | URL
<베트남 해방전쟁의 발생과 전쟁에 대한 담론>라고 따로 거명돼 있어서요. 한데 번역된 건가요? 저는 중앙일보 책이 박스에 들어가 있어서.--;

노이에자이트 2008-04-0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중앙일보 것은 부모와의 이별 번역본이고요.화보에는 바이스의 희곡이 연극무대에 올려진 것을 소개하고 있어요.한번 확인해보세요.박스에 너무 깊이 넣으셨나요...

로쟈 2008-04-07 01:15   좋아요 0 | URL
게다가 창고에 가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4-07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태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