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관심도서는 단연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새물결, 2008)이다. 재작년부터 출간설이 나돌던 책이 드디어 나온 셈인데 여느 인문서들과 마찬가지로 '지각' 소개된 우리시대의 '고전'이다(그의 호모 사케르 3부작이 그렇다). 이미 지젝이 <실재의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하네!>에서 이 책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고 내가 '호모 사케르'란 말을 처음 접한 것도 지젝을 통해서였다(바디우와 아감벤 등이 지젝이 높이 평가하는 동시대 철학자이다). 이제 아감벤의 음울한 시대 진단을 본격적으로 음미해볼 시간이 되었다. 유사 '호모 사케르'로서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향신문(08. 02. 23) 우리모두의 자화상…호모 사케르 진단

호모 사케르(Homo Sacer)? 신성한 인간?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연작 저서 제목인 호모 사케르는 ‘어떠한 시민적 권리도 없어 종교의 희생 제물로도 삼을 수 없는 로마시대의 특정 인간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감벤은 이를 “중세의 ‘늑대 인간’, 홉스 시대의 ‘재판에 회부되지 않는’ 어떤 유형의 범죄자들, 나아가 슈미트가 ‘대지의 노모스’에서 논의했던 국제법 탄생 초기의 문제적 존재들이었던 해적들, 그리고 근대 생명정치의 출현 이후의 모든 ‘국민’(나치 수용소의 수감자들은 이들의 지위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과 같은 수많은 ‘벌거벗은 생명들’”로까지 확장한다.

근대 주권국가의 역사는 이들 특수한 인간을 실정법의 법 테두리 안에 끌어들이는 과정, 예외가 곧 보편 규칙이 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9·11 사건 이후 국경을 넘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테러범 취급을 받게 된 것이나, 바로 당신이, 당신의 아들·딸이 언제든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호모 사케르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수용소’에 갇혀 실험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9·11 사건 이후 뉴욕대학의 강의 요청도 거절하며 미국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있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작의 첫권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이 처음으로 번역됐다. 새물결 출판사가 기획한 ‘What's up?’ 총서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세번째 책이다). 번역자 박진우씨(파리5대학 박사과정)는 “우리 시대 사유의 근본 범주를 재설정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에 해당할 한 권의 문제작”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호모 사케르 3부작을 모두 번역할 예정이다. 

이 책과 함께 번역된 책은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과 슬라보예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이다. 90년대 초반 학번인 현성환(파리8대학 박사과정)·한보희(연세대 박사과정)씨가 각각 옮겼다(*이미 소개한 바 있다. <사도 바울>에 대한 리뷰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71469.html 참조). 이번 총서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는 이들 젊은 연구자들은 “그간 학계와 사회는 소위 386세대의 문제의식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지배돼 왔다”면서 “87년이라는 한 가지 역사적 사건에만 과잉 동일시돼 있는 앞 세대와 달리 97체제 그리고 지식인 사회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횡단하면서 시대적 고민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국제적 흐름을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동시에 우리 현실에 대한 새로운 글쓰기를 부단히 시도하겠다고 밝혔다.(손제민기자)

08. 02. 23.

P.S. <호모 사케르>에 대한 언론의 본격적인 리뷰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아감벤'이란 이름이 생소한 분은 대학신문의 기사를 옮겨온 '아감벤과 호모 사케르의 시대'(http://blog.aladin.co.kr/mramor/1577009)를 우선 참조할 수 있겠고, 근처에 도서관에 있는 분들은 계간 <문학과사회>(2004년 가을호)에 실린 기획평론 '예외성의 철학: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통치권력과 벌거숭이 삶>'까지도 챙겨볼 수 있겠다(온라인에서 읽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번역본 <호모 사케르>를 들고 일단 몇 페이지를 읽어보는 것이다. 얼핏 읽어본 바로는 기대 이상의 번역이며 철학적 사유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경탄과 함께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아감벤!..

P.S.2. '호모 사케르 3부작'은 네 권의 책으로 구성돼 있는데, 모두 국역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예외상태. 호모 사케르 2-1>, <왕국과 영광: 경제와 통치의 신학적 계보학을 위하여. 호모 사케르 2-2>, <아우슈비츠의 유산: 기록과 증언. 호모 사케르3>이 이어지는 책들이다.   

유튜브에는 아감벤의 강의도 여럿 올라와 있다. '왕국과 영광'('The Power and the Glory) 강의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http://www.youtube.com/watch?v=jz7dxevH7Rs 등), 영어로 강의하는 아감벤의 육성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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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2-23 18:54   좋아요 0 | URL
이 시리즈 3권이 모두 관심이 갑니다....

로쟈 2008-02-23 21:49   좋아요 0 | URL
네 모두 번역될 예정인 것으로 압니다...

드팀전 2008-02-25 12:23   좋아요 0 | URL
ㅋㅋ..아감벤의 3부작이 아니구요..ㅋㅋ what's up 시리즈요..
그나저나 바탕이 얇아서 어려울 듯 보여요..^^

로쟈 2008-02-25 16:39   좋아요 0 | URL
짐작엔 지젝의 책이 가장 쉽습니다.^^

2008-02-28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28 23:11   좋아요 0 | URL
명불허전인 철학자들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