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이 내주부터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고 한다. '도시의 기억'을 꼬박꼬박 챙겨읽지는 못했지만 고종석의 연재기사들은 일주일에 하루이긴 해도 지난 몇 년간 아침신문을 읽는 한 가지 즐거움이었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이란 새 주제는 이미 발표한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6)과 제목이 겹친다. 좀 얇은 책이어서 아쉬움을 가졌었는데 새로운 부피를 더해주었으면 싶다. 아니 부피보다는 '볼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모국어는 아니더라도 볼륨은 부피가 갖고 있지 않은 관능을 내포하고 있기에. 더불어,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문학과지성사, 1991; 동문선, 2004)도 내내 곁눈질해야 할 책이겠다. 새 연재 덕분에 봄이 예년보다 일주일 빨리 오고 있다...
한국일보(08. 02. 20) 우리시대 美文家, 낱말에 배인 분홍빛 관능을 추출하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다소 삿되게 빌어 쓰자면, 사랑의 말이야말로 ‘모국어의 속살’에 해당할 것이다. 감각이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랑의 저릿한 말들. 그 뜨겁고 내밀한 언어들이 이제 흙빛 종이 위에 흐벅지게 만개한다.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이 <도시의 기억>에 이어 새 기획 시리즈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매주 월요일 연재한다. 우리말 가운데 사랑을 연상시키는 단어 하나씩을 주제어로 삼아 그 쓰임새, 어원, 상징, 이미지 등을 풀어놓는, 사랑의 자기장에 놓인 한국어들에 대한 관능적인 에세이다.
“슬프게도 여성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내게 로맨스의 대상이 아니지만, 나이 쉰이 되니까 유독 늙은 기분이 들어요. 그 늙은 기분과 싸우려는 거죠.” 연재를 앞두고 집필실에서 만난 이 미문의 스타일리스트는 “지천명이 되고 나니 외려 발악을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환기시키는 새 시리즈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은 199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나온 책의 후속편. 30대 후반에 씌어진 사랑의 말과 50세에 씌어지는 사랑의 말들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닮았을지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자못 궁금하다. “전작에서 사랑에 관한 직접적인 말들을 어지간히 써먹었기 때문에 이번엔 사랑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말들이 주를 이룰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보면, 감각과 관련된 말들, 정서와 깊이 연결된 말들에 대한 에세이가 될 듯합니다.” 정서적 환기력이 떨어지는 한자어는 표제어에서 배제된다.
아직 주제어 목록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고 위원은 ‘입술, 가냘프다, 아름답다, 어지럼, 누나, 할퀴다, 꽃샘, 매끄럽다, 수줍다, 아깝다, 축축하다, 열없다, 얼굴, 보조개’ 같은 말들을 사랑의 말로 예시했다. 이 열거항들은 숙명적으로 필자가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판타지와 편견들을 드러낼 터. 혹자는 ‘가냘프다’에서 살찌지 않은 여체라는 억압적 당위를 떠올리며 쓰는 이의 정치적 올바르지 않음을 꼬집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존재의 연민에 대한 은유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가냘프다’를 생각했을 땐 여성의 몸이 아니라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람 마음이 여리게 되는 상태를 떠올렸어요. 물론 마음의 여림이라는 것도 상황에 따라 정치적으로 그릇될 수 있죠. 하지만 주제어를 뽑을 때 정치적 올바름은 고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건 사랑의 말에 대한 얘기지 정의의 말에 대한 얘기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는 “어떻게 쓰든 이 연재물은 압도적으로 판타지와 편견의 글이 될 것”이라며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앞선 연재물 <도시의 기억>은 그에게 “사사로운 기억과 도시의 객관적 정보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고 한 게 결국 어중간함을 낳은 것 같은 아쉬움”을 남겼다. 연재 서두에 외국 도시로 대상을 한정해 서울편을 쓸 수 없었던 것도 섭섭하다. 서울에 대해 썼다면 24시간 연중 무휴로 깨어있는, 그가 좋아하는 이 도시의 활기에 대해 썼을 것. “<도시의 기억>이 그 도시를 아직 안 가본 사람들에게라면 일종의 영혼의 지도나 역사의 지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거기 가보거나 살아본 사람들한테라면 어떤 기억의 부싯돌이 될 수도 있을 테고.”
1년간 <도시의 기억>을 연재하며 쌓인 문장의 ‘여독’을 풀고 있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름다운 문체의 비법을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글쎄, 문체라. 문체가 문장의 형식적ㆍ양식적 개성 같은 걸 뜻한다면 내 문장에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노력이 아니라 의식을 통해서 생기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말투를 따라 목소리 하나 더 보태는 일은 어지간하면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식.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쓰지 않을 말투로 말해야겠다는 의식.” 미문가가 편찬하는 남 다른 말투의 사랑어 사전은 25일 첫 장을 선보인다.(박선영기자)
08. 02. 20.
P.S. 예전에 따로 적은 바 있지만 고종석은 '문제적 작가'가 아니라 '문체적 작가'이고 '문채적 작가'이다. 따로 소설들을 쓰기도 하지만, 그의 산문들을 분류해 넣을 칸이 한국문학에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보다 미려하지 못한 산문들을 쓰는 시인/작가들이 드물지 않음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