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인에 실린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1). 그러고 보면 지면에 쓰는 서평/리뷰도 꽤 분량이 된다(알라딘의 '마이리뷰' 편수로 잡히지 않을 따름이다). 지난주 마감일에 분치기로 쓴 글이라 지면기사에는 탈자까지 있어서 온라인기사에서 바로잡았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레핀과 페로프의 그림 두 점이 나란히 실린 것이 만족스럽다. 이 그림들을 소개하는 것이 리뷰의 원래 목적이었으니까.

시사인(08. 01. 07) 격렬한 삶과 희망을 담은 그림에 취하다

“러시아에도 미술이 있어?” <러시아 미술사> 저자 이진숙씨가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보인 일치된 반응이었다고 한다. 러시아에 발레와 음악은 있지만(곧 볼쇼이 발레와 차이코프스키는 있지만), 어인 미술인가라는 반응이었겠다. 이번에 나온 <러시아 미술사>는 저자가 러시아에서 러시아 그림들을 보고 받은 ‘충격’을 적어놓은 보고서이자, 러시아 미술에 흠뻑 취해 늘어놓은 취중록(醉中錄)이다.

흔히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하는 시구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동시대 시인 츄체프의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인데, 저자가 러시아 미술 세계에 대한 길잡이로 인용하고 있는 것은 민속학자 르보프의 말이다. “우리 러시아인들 사이에는 격렬한 삶이 있다.” 어째서 격렬한가? 러시아 역사 자체가 격렬했기 때문이다. 이 ‘격렬한 삶’과 무관한 미술, 오직 미술만을 위한 미술은 러시아 미술이 아니었다.

저자는 러시아 중세의 이콘화(종교·신화 및 그 밖의 관념 체계상 어떤 특정한 의의를 지니고 제작된 미술 양식)에서부터, 소비에트 시기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미술사 전체를 여섯 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이 중 러시아 미술만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역시 이콘화와 19세기 이동파,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등이 아닌가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특히 19세기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건 이 그림들의 일부가 최근 몇몇 아방가르드 작품과 더불어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에서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동파’란 민중에게 예술작품을 직접 감상할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전시회를 열고자 했던 유파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동파 화가들은 러시아 미술의 인텔리겐치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동파의 가장 대표 화가는 요즘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고 있는 일리야 레핀이다. ‘볼가 강의 배를 끄는 인부들’(1873)은 그의 대표작으로, 배를 끄는 인물들의 절망과 다양한 표정을 포착한 이 그림은 러시아 미술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에는 이 그림의 에스키스(초벌 그림)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이 그림과 함께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그림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1872)으로도 유명한 화가 바실리 페로프의 ‘트로이카’(1866)이다. 몇 년 전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게 한 그림인데, 추운 겨울날 물동이를 나르는 세 아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들의 팍팍한 삶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표정은 의외로 어둡지 않다. 저자는 이 그림에 대해서 “지금 그들은 행복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절망에 빠진 것은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절망 속에서도 어린 소년 같은 순수한 마음과 러시아적인 어떤 것에서 끊임없이 희망을 부여했듯이 말이다”라고 적었다. 

그러한 희망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직접 영감을 받아 그렸다는 니콜라이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1888)에서도 읽을 수 있다. 죄수 호송 열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잠시 정차한 사이에 창살 너머로 비둘기들이 모이를 먹는 걸 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비록 러시아 미술이 이 몇몇 그림만으로 포괄될 수는 없지만 러시아 미술의 메시지만은 확인 가능하다. 그것은 삶의 고통과 분노, 비애와 절망에 대한 연민이면서 그럼에도 끝까지 버릴 수 없는 희망에 대한 송가이다. 
 
참고로, 국내에는 러시아 미술사를 통시적으로 다룬 조토프의 <러시아 미술사>(1996, 동문선), 아방가르드 미술사를 담은 캐밀러 그레이의 <위대한 실험>(2001, 시공사), 그리고 최초로 국내 필자가 쓴 현장감 있는 러시아 미술관 안내서인 이주헌의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2006, 학고재)이 출간돼 있다. 이진숙의 책은 이 모두를 종합한 가장 이상적인, 러시아 미술사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러시아 미술로의 뿌리치기 어려운 초대장이다.

08. 01. 11.

P.S. 양질의 화보들만으로도 책은 값어치를 하는데, 거기에 덧붙여 저자의 그림 설명들이 깊이가 있으면서도 평이하다(그림은 기사에서 언급된 페로프의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 내가 '가장 이상적인' 입문서라고 적은 이유이다. 이젠 보다 전문적인, 그리고 방대한 러시아 미술사들이 소개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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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11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러시아 미술이 다른 서구미술보다는 우리와 감성적으로 오히려 통하는 면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어요.(20세기 이전 미술에서요.) 뭐 그렇다고 제대로 알고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전에 이주헌씨 책 읽으면서 꽤 강렬한 느낌들을 많이 받았는데 이 책 빨리 읽어야겠다는 느낌이 팍팍 드네요. ^^

로쟈 2008-01-11 00:36   좋아요 1 | URL
네, 러시아 문학도 미술도 딱 우리 타입입니다. 좀 고생한 나라들이죠...

뭉실이 2008-01-1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파'는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것 같네요.
대도시가 아니면 러시아 미술뿐아니라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도 보기 힘드니까요

로쟈 2008-01-11 00:51   좋아요 0 | URL
더불어, 민중미술도 진일보했으면 좋겠습니다...

털세곰 2008-01-11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박물관(루스끼 무제이)에서 발행한 책자에 보니, 례삔의 <볼가강의 배끄는 인부>에 대한 설명에, "배끄는 저 사람들의 가슴에 턱 얹힌 저 줄이 바로 그들을 묶어놓고 있는 사회적 제약에 대한 메타퍼이다" 라고 적혀있더군요. 무릎을 탁 치며, 그래 바로 이런게 그림에 대한 해설이지 싶었습니다... 그래도 이번 전시회에 이미테이션도 아니고 그 수천장의 스케치 중의 하나만 달랑 온것은 좀 심했다 싶었습니다.

로쟈 2008-01-11 07:59   좋아요 0 | URL
곁다리로 온 거죠 뭐. 대신에 고골의 '분신'이라고 돼 있는 그림이 반가웠고, 몇몇 그림들이 기억을 되새기게 해주더군요...

다락방 2008-01-11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시사인에서 읽었어요. :)

로쟈 2008-01-11 17:08   좋아요 0 | URL
^^

urblue 2008-01-1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전시회 보러 갈 계획입니다. 오늘 이 책 주문해야겠네요. ^^

로쟈 2008-01-11 17:08   좋아요 0 | URL
제가 광고는 잘하고 있군요.^^

마노아 2008-01-1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전시회 다녀왔는데 볼가 강의 배를 끄는 인부들’이 책에서 본 것과 아주 약간 차이가 있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초벌 스케치였군요. 근데 전시회에서는 '증기선'을 끈다고 설명되어 있었어요. 이주헌씨 책에는 '바지선'이라고 나와 있었는데... ;;; 아무튼, 저도 레핀의 그림들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오히려 고흐전보다 재밌게 보고 온 듯 해요^^

로쟈 2008-01-11 17:09   좋아요 0 | URL
네, 이 그림에 대해서는 그냥 맛보기였죠.^^; 다른 그림들이 그래도 좀 만회를 해주었지만...

소경 2008-01-1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에 갈려고 안내서로 이번에 딱 이진숙씨의 <러시아 미술사> 구입했는데 전시회도 그렇고 부담감에 마음 잡기가 어렵더군요. 벌써 부터 마음만 앞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