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은 지 일주일도 지나고 해서 연간 계획을 세워보았다. 그래봐야 해야 할 번역들과 써야 할 논문과 책 들의 주제 및 목록들을 작성해보는 것인데 밀린 것들이 많아서 거의 '천리마운동'을 필요로 하는 작업량이다(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계획을 세우는 김에 서재활동 계획도 잡아봤는데, 몇 가지 지표를 몰표치로 설정했다. 가령 현재 33만 4천명대인 방문자수를 50만명이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현재처럼 월 2만명 수준이 유지된다면 어렵지 않은 목표치이다), 그리고 즐찾수도 현재 1534명에서 2000명으로 늘리는 것(이건 쉽지 않은 목표치다. 이 서재를 찾을 만한 이들이 무한정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이를 위해서 연간 600편의 페이퍼와 50편의 리뷰를 쓰기로 했다(매달 50편의 페이퍼는 부담스럽지 않지만, 연간 50편의 리뷰는 좀 부담스럽다. 작년만 하더라도 나는 고작 두어 편의 리뷰를 올린 듯하니까. 한데 가끔 지면에 '북리뷰어'라거나 '인터넷 서평꾼'이라고 소개될 때면 좀더 걸맞은 명칭은 '페이퍼꾼'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리뷰수를 늘려잡은 건 그런 겸연쩍음을 좀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설정한 것이다. 달랑 이런 내용만 적어놓는 건 또 멋쩍으므로 시 한편도 옮겨놓는다. 예전에 한번 올려놓았던 것인데(http://blog.aladin.co.kr/mramor/441226) 읽어본 분들이 많지 않을 것이므로 '재방'을 해도 흠이 되진 않을 듯하다. 제목은 '찔레나무 벌레의 모험'이고 한 10여 년 전에 쓴 것이다.
찔레나무 벌레의 모험
모든 것이 되기 위하여 더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나는 나의 과거는 나의 하루는
미친 척한 찔레나무와 찔레나무 한 그루를 기어
올라가는 벌레 같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건
미친 생각이다 나는 안다
간혹 어깨가 결린다 무거운
돈가방이라도 들고 어디론가 튀고 싶다
꿈이다 아랫배가 고파오고 기온이 떨어진다
모든 것은 꿈과 같다 어젯밤에 본 영화 속의
치킨처럼 목 잘리고 잘 구워진 치킨처럼
잘만 하면 너도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나는 결린 사람
나는 꿈에 자주 결석하고 애린에 물들지 않는
다 내가 무얼 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표백된 영혼
나는 은근히 다리를 절면서
저 온갖 벌레 같은 인간들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척한다
나는
미칠 지경이다
간혹 나는 사랑의 유언이며 시체가 아닐까
나는 벌레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어이
기어오르고 싶다 자작나무 오동나무 오르지 못할 나무
내게 필요한 날들을 돈다발처럼 세어본다
꿈이다
내가 이 지구를 끌어당기는 힘
이걸 끌고 어디로 가나
어쩌면 이보다 편한 것이 없을 것이다
흥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없다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나는 나의 과거는 과거의 한 조각은
기온이 떨어지면 따스한 곳을 찾는 꿈처럼
무말랭이처럼 입을 다문다
미친 척한 찔레나무와 찔레나무 한 그루를 기어
올라가는 벌레와 꽁무니에 고무풍선처럼 매달린 지구에
생각만 미친다 미친 생각이다 그건
왜 간혹 나는 어깨가 결리는 것일까?
08. 01. 06.
P.S. 기억에 "어젯밤에 본 영화 속의/ 치킨처럼 목 잘리고 잘 구워진 치킨처럼"이란 구절은 닐 조단의 영화 <푸줏간 소년(The Butcher Boy)>(1997)에서 암시를 받은 것이다. 인상적인 영화였지만 지금은 줄거리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찾아 보니 "알콜 중독자 아버지와 자살 중독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악마적인 성격을 가진 아들 프랜시... 타고난 천성과 환경 때문에 깨어져가는 그의 정신세계를 나타낸 작품"이라고 소개돼 있다. 엽기적인 '푸줏간 소년'에 비하면 '찔레나무 벌레'는 얼마나 온순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