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겨레21에서 '정재승의 사랑학 실험실'을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0000/2007/12/021160000200712200690053.html). 지난번에 불륜 본능을 옮겨온 바 있는데, 이번에는 '사랑에 빠진 뇌'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다루어진다. 책과 관련한 이미지들은 내가 덧붙인 것이다. 재미있는 건 작가 인용된 시인/작가들의 국적이 기사에서 엉터리로 표기된 것. 해서 교정하면서 읽어야 한다.

한겨레21(07. 12. 20) '사랑’은 감정이 아니랍니다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거나 애착을 느끼는 감정 상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사랑이 이렇게 정의돼 있다. 기원전 4000년,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 동굴벽화에 흐릿하게 그려진 이래로 인간은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왔지만, 사랑에 대한 정의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옥스퍼드 사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랑은 상대가 필요하며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려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깊은 애착을 느끼게 되는 감정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영국의 시인) 존 키츠의 표현대로, 사랑이란 ‘온갖 자극과 감정이 뒤섞인 소란’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 표정을 지어보라
그러나 최근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은 옥스퍼드 사전에 담긴 사랑의 정의를 조금 수정해야 하지 않냐고 주장한다. 더없이 간결한 옥스퍼드 사전적 ‘사랑’에서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단어는 바로 마지막에 붙은 ‘감정’이란 단어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과연 사랑을 감정의 한 종류로 보는 것이 타당할까? 이 질문에 대해 신경과학자들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랑이란 감정은…’이라는 일상적인 표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사랑이 만약 감정이라면, 사랑을 얼굴 표정으로 나타내보라고 주문한다.

우리는 기쁘고 슬프고 분노하고 즐거운 감정은 얼마든지 얼굴 표정을 통해 표현할 수 있으며, (더욱 중요하게도) 남의 표정을 통해 상대의 그런 감정 상태를 읽어낼 수 있다. 설령 미국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찡그리는 미국인의 얼굴 표정을 통해 그가 화가 났다거나 슬프다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은 자신의 원초적인 감정을 얼굴 표정이나 몸동작으로 나타내고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사랑에 대응되는 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사랑에 빠진 표정을 명확히 지을 순 없다(사랑에 빠진 표정을 지어본 뒤 옆 친구에게 알아맞혀보라고 주문해보시라). 우리는 내 친구나 동생에게 연인이 생기면 그 사실을 다양한 행동들을 통해 알아차릴 순 있지만, 사랑이라는 상태는 확실히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 상태와는 확연히 구별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사랑은 반드시 ‘행동’을 동반한다는 점에서도 여느 감정과 구별된다. 우리는 슬프거나 기쁜 감정 상태가 표현되지 않고 그저 마음 상태로만 오래 간직된다고 해서 감정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사랑은 다르다. 사랑이라는 상태는 사랑하는 상대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키며 그와 함께하고, 그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수행하며, 일련의 행동에는 뚜렷한 목적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는 ‘욕구나 동기’에 더 가깝다.

결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뇌 활동사진을 찍어보면 사랑은 우리 뇌 안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영역(편도체 등)에서 처리되지 않고 ‘욕구나 동기’를 관장하는 영역에서 처리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동정, 황홀경, 갈망, 두려움, 의심, 질투, 당혹, 집중 등 온갖 격정적인 반응을 동반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서 호머(*호메로스)는 자신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뜨거움. 갈망의 돌진. 연인의 속삭임이여. 가장 성스런 사람까지 미쳐버리게 만드는 그 마력이여.”
히로뽕 중독 환자의 ‘보상 중추’처럼
사랑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은 다른 심리 상태와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욕망도 뇌에 있는 특정한 화학물질과 신경회로로 인해 생겨나는 보편적인 마음 상태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기(fMRI)라는 뇌 영상장치 안에 집어넣고 그들의 뇌를 찍을 생각을 했던 최초의 연구자는 헬렌 피셔라는 미국 럿거스 뉴저지 주립대학 인류학과 연구교수였다.

그는 사랑에 빠진 수십 명의 커플에게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디로 피가 몰리고 에너지가 활발히 소모되는지 관찰했다. 놀랍게도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히로뽕 중독 환자들이 히로뽕을 복용했을 때 활성화되는 보상중추라는 영역에서 활발한 반응을 보였다.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마구 분비되는 것도 관찰됐다. 사랑이란 고귀한 마음 상태도 생물학적인 뇌 활동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관찰한 것이다.
보통 뇌 속에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면 사람들은 극단적인 집중력을 보이기도 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동기부여와 목적 지향적인 행동을 수행한다. 또 무엇보다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된 사람처럼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하며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이 우리에게 극도의 쾌감을 주는 것은 연인과 함께 있으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마구 분비되기 때문이다. 도파민과 함께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도 늘어나는데, 이 화학물질이 체내에서 늘어나면 사람은 혈기 왕성해진 신체, 신경과민, 불면, 식욕 상실, 떨림, 두근거리는 가슴, 가빠지는 호흡, 고민과 두려움 등을 경험하게 된다. 놀랍게도 이 모든 증세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흔히 관찰되는 증세가 아니던가!
낭만적인 사랑의 또 다른 두드러진 징후는 애인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물밀듯이 밀려드는 연인에 대한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헬렌 피셔 박사가 쓴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에 따르면, 헬렌 피셔는 실험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연구실을 찾은 피험자이자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깨어 있는 시간 중에서 애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몇%나 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90% 이상”이라고 대답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한시도 생각을 놓을 수 없다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당연한 걸 뭘 물어보냐고?) 그래서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사랑이라는 현상을 “정상적인 사람에게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주목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에 사로잡힌 연인들의 행동은 강박관념에 빠져 정신장애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이탈리아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 연인의 뇌에 존재하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수치가 과도한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의 뇌에 존재하는 세로토닌의 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면 우리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몸에서도 이런 증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바다보다 넓은 것은 하늘이고, 하늘보다 넓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라고 했지만,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하늘보다 넓은 인간의 마음을 뇌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던지, “뇌는 하늘보다 더 넓도다”라는 신경과학자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시구를 남겼다.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기억하고 의식하는 모든 행동들은 생물학적인 뇌를 통해 설명될 수 있으며, 낭만적 사랑 또한 1.3kg에 지나지 않는 이 단백질 덩어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요즘은 1.4kg으로 치나 보다).

신경전달물질은 원인일까 결과일까
물론 사랑이 특정한 신경전달물질과 신경회로의 작동을 반드시 동반한다 해서, 그것으로 사랑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사랑하는 동안 과도하게 분비되는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사랑의 원인인지 결과물인지, 혹은 그저 부산물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사랑을 하는 동안 우리가 보이는 많은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이 신경전달물질의 평소 역할로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07. 12. 23.


P.S. 기사에서 자세히 언급된 헬렌 피셔 박사의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생각의나무, 2005)는 기대만큼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흥미로운 데이터들이 그냥 나열돼 있을 뿐이어서이다. 피셔의 책은 그밖에도 <제1의 성>(생각의나무, 2000), <성의 계약>(정신세계사, 1999), <사랑의 해부학>(하서출판사, 1994) 등이 소개돼 있다. 기억에 제일 재미있게 읽은 건 가정 먼저 소개된 <사랑의 해부학>이었다. 얼마전에 재번역돼 나온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사이언스북스, 2007; 백년도서, 1995)처럼 <사랑의 해부학> 또한 다시 번역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왜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싶어할까>(21세기북스, 2009)로 다시 번역돼 나왔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해선 그간에 더 좋은 책이 나왔을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