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올해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문혜진 시인의 <검은 표범 여인>(민음사, 2007)을 보여주길래 몇 편 읽다가 요즘은 또 '노골적인' 시들이 유행인가 싶어 관련기사를 검색해봤다(시인의 첫번째 시집은 <질 나쁜 연애>였다!). 마광수의 관능적인지 관념적인지 헷갈리는 시들과는 분명 다른 유형이긴 하다. 한편으론 여성시인이 '섹스'에 대해서 쓸 때 독자-비평가들은 왜 관대해지거나 무장해제되는지 궁금하다(여성의 몸속에 우주와 존재의 비밀이 있다고요? 설마!).
가령 표제작의 서두는 이렇다: "낯선 여행지에서 어깨에 표범 문신을 한 소년을 따라가 하루 종일 뒹굴고 싶어 가장 추운 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섹스를 나누다 프러시아의 스켄헤드에게 끌려가 두들겨 맞아도 좋겠어." 단편적인 예이긴 하나 마광수의 시만큼 헷갈린다(더불어 성욕은 진정한 욕망의 알리바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또한 '원초적 관능'과 대한 상투적 판타지는 아닌지. 조금 아찔한 시들도 있다. 가령 '홍어'의 세번재 연: "해풍에 단단해진 살덩이/ 두엄 속에서 곰삭은 홍어의 살점을 씹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 코는 곤두서고/ 아랫도리가 아릿하다"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를 맡아보지 못해서 이게 실감인지 관념인지 헷갈리지만 여하튼 전철에서 펴놓고 읽지 못할 시집이 한권 더 생긴 건 분명하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조선일보(07. 12. 10) 여성의 몸속에 우주와 존재의 비밀이…
여성의 몸을 통해 우주와 존재의 비밀을 노래하는 여성시인들이 연말 시단에서 주목받고 있다.
‘젖을 물린다/ 방심한 짐승의 눈빛으로/ 달콤한 젖내에 겨워 가장 작고 예민한 입술의 애무를 받으며/(중략)/생장점이 극에 달했을 때/ 우주는 스스로를 반복한다/ 순환의 리듬이/ 세상의 경전을 살찌우는 동안/ 몸속 유전자의 기억은/ 피를 흘리며 날고기를 씹는다’(문혜진의 시 ‘야생의 책’ 부분)
최근 제26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문혜진(31)시인은 페미니즘이나 생태주의적 여성시와는 다른 새로운 여성시의 관능적 상상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심사위원들(최승호 남진우 서동욱)로부터 받았다.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를 도발적인 언어로 공격하거나, 여성을 풍요로운 대지의 상징으로 예찬해 온 기존 여성시의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 “여성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비근한 일상에서 시가 시작되더라도 곧 까마득한 시공간의 확대가 이루어진다”고 평가한 시인·평론가 남진우는 “여성의 육체적 심연에서 길어 올린 언어로 쓰인 시답게 이 시인의 시는 관능적이면서도 문명 저편의 야성의 부름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49편의 수상작들 중에서 ‘내 몸 한가운데 불멸의 아귀/ 그곳에 홍어가 산다// 극렬한 쾌락의 절정/ 여체의 정점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로 시작하는 시 ‘홍어’도 화제작이다. 홍어를 매개로 한 후각과 미각을 통해 욕망과 죽음에 대한 본능을 선명하게 환기시킨 이 시는 음식과 허기를 연결시키면서 결국 육체성을 지닌 존재의 허무와 비애를 강렬하게 형상화한다.

이미 현대문학상, 육사시문학상을 받은 2000년대의 스타 시인 김선우는 11일 오후 5시 ‘문학의 집 서울’에서 제9회 천상병 시상(詩賞)을 받는다. 수상작은 시집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 시집의 제목이 된 시는 벌써 네티즌들의 애송시로 돌아다니고 있다.
‘그대가 밀어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전문)
‘여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성적인 상상력의 내면풍경을 한 단계 승화시킨 진전된 세계가 있다’(심사위원 신경림 박정희 정호승 방민호)는 수상자 선정 이유에 걸맞게 김선우의 시집은 관능적인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감각의 세계에서는 포착할 수 없는 존재의 깊은 울림에 귀를 기울여 그것을 노래로 전한다.(박해현 기자)
07.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