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시 옮겨놓기다. 그게 또 오래전 시다. 87년 겨울에 쓴 것이니까. 직선제 개헌 이후 첫선거가 있던 바로 그해이다(나는 정당의 선거참관인이란 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보았다). 시는 대선 이전에 쓴 것인지 이후에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맘때 썼으니 20년전이고, 체육관에서 낭송까지 했다(마이크 고장으로 알아들은 청중이 별로 없었다). 민주주의에 관해 주절대다보니 생각이 났다. 한 가지, 이 시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지만 그때 돼지값 폭등이 있었다. '돼지값을 인하하라!'란 주장은 그래서 시의성(!)도 갖는 주장이었다...
믿을 건 돼지뿐이다
시대가 혼란하면
믿을 건 돼지뿐이다
아는가, 삼겹살의 민주주의
그 비계와 살코기의 절묘한
정의로운 배분이며
연함과 질김의 완벽한 조화
넓적다리에서 등심까지
부지런한 입질 젓갈질이면
두룩두룩 살찌는 인격에
이렇듯 윤기있는 우리의 삶
소주라도 한 잔 걸치면
자못 당당해지는 발걸음 아닌가
너무 질기고 두꺼우면?
물론 위에 부담이 되겠지만
잘근잘근 씹다 보면
또 그것대로 맛이 나는 법
자고로 시대가 혼란하면
기댈 건 돼지뿐이다
우리 믿는 건
돼지뿐이다
돼지값을 인하하라!

07.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