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서 이번주 '장정일의 책 속 이슈'를 옮겨놓는다. 같은 지면에서 지난 3주간 '우리시대 지식논쟁'으로 가라타니 고진이 제기한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나'가 다루어졌고 조영일(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44352.html), 최원식(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46074.html), 권성우(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47675.html)의 찬-반-종합의 의견이 제출되었다. 연재의 연장선상에 있는 건 아니지만 장정일의 '토'는 그와 함께 읽어봄 직하다. 덧붙이자면 나의 생각은 장정일의 견해에 가장 가깝다.  

한겨레(07. 11. 10) 무시할 수 없는 ‘문학 종언’ 경고

일본계 미국인인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기세 좋게 선언한 ‘역사의 종언’이 농담이 되고부터, 한국인들은 어떠한 일본제(製) ‘종언’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면 과장이 될까? 일본 출신으로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활동했던 가라타니 고진의 최근작 <근대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우리나라 문학계의 냉소를 보면, 그런 점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문학의 종언은 일본의 상황이지, 한국에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의 주장은 간명하다. 근대 이전의 세계는 다수의 제국에 의해 지배되었고, 그 제국의 범위는 몇 개의 언어 권역과 일치한다. 동아시아라면 한자, 유럽이라면 라틴어, 이슬람이라면 아라비아어라는 식이다. ‘문자언어’의 성격이 강했던 이 세계어들은 제국의 주변부에 사는 보통 사람들이 읽고 쓰기가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제국은 수많은 지역 국가로 분절되기 시작했고, 근대 국가란 다름 아닌 ‘언문일치’의 국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근대 국가 만들기에 기여한다.

지은이에 의하면 근대문학이란 어느 장르도 아닌, 소설을 가리킨다. 소설은 신학이나 철학과 같은 이성 능력이 아닌 감성과 상상력을 통해 새로 생긴 시민계급에게 지적·도덕적 발견을 실어 나른다. 제국과 세계어라는 구심력에서 벗어나서만 비로소 쓰여지는 ‘언문일치’의 소설은 ‘공감’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하나로 묶고,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예컨대 일제 시대의 젊은이로 하여금 계몽과 해방의 주먹을 부르쥐게 했던 것은 이광수의 <무정>이고, 심훈의 <상록수>였다.

근대소설은 그 발생에서부터 종교는 아니지만 종교 밖에서 종교가 추구하지 못하는 진실을 추구했고, 또 정치는 아니지만 정치의 영역 밖에서 정치가 억압하는 진실을 드러내 왔다. 대개 문학은 무력하고 무위이고 반정치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성공한 혁명이 곧바로 제도가 되어버리는 어느 정치혁명보다 더 혁명적이다. 그래서 장 폴 사르트르는 정치혁명이 보수화될 때 문학은 “영구혁명”을 계속한다고 했던 것이지만, 어느날 문학이 사회적 임무나 도덕적 과제를 벗어버린다면 그것도 ‘근대문학’일 수 있을까?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성취된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에서 문학은 대중문화에 투항하거나, 과민한 자의식만을 표현한다. 거기서 작가와 평론가들은 대학과 출판계에 안주하거나 투신하여 스스로 제도가 됨으로써, 사회적 ‘공감’ 능력을 잃게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의 종언’이 한국에서도 감지된다면서 “1990년대에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고 썼지만, 최원식의 말대로 “내가 알기론 김종철을 제외하고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한겨레> 10월 27일치 19면). 하지만 그걸 책잡아 ‘종언’이 주는 문제의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근 15년 동안 한국 문학이나 문학평론가들은 <녹색평론>을 능가하는 어떤 사회적 의제도 만들지 못했다. 유일하게 문학계를 떠난 그만이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은, 결국 무엇을 반증하는 것일까?(장정일 소설가)

07. 11. 10.

P.S. 본문의 분량은 7.6매이다. 나는 짧은 원고들을 쓸 때 그보다 2-3매를 더 쓰면서도 매번 분량에 대해 투덜거리곤 했다. 문제는 분량이 아니라는 걸, 이 글에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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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11-1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종언'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글이군요. 그런데 장정일 자신도 소위 "문학계"를 떠나지는 못한 것 아닐까요? 결국 자신도 "영구혁명가"는 아니라는 건데...

로쟈 2007-11-10 11:44   좋아요 0 | URL
문학은 끝났으니까 문학계를 떠나야 한다는 식의 반응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요?(정년을 맞이한 사람에게 당신은 할일을 다했으니 이젠 죽으시오, 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핵심은 오늘날에도 <무정>이나 <상록수>가 가능한가란 문제제기입니다. 요는 그게 여전히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거나(주장하는 게 아니라) 아니면 그만한 일을 문학바깥에서 해내는 것이죠(이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문학바깥에 있다고 우월한 포지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문학은 다른 용도도 갖고 있숩니다(가령 시로서의 문학)...

나디스 2007-11-10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 씨는 갈수록 정련된 인문학적 사유와 글쓰기를 보여주네요. ^^ 저도 요즘 대학원신문 리뷰가 7매라 매번 투덜거리는데(10매만 되어도 이주의 리뷰에 뽑힐 거라는!-_-;;), 각잡고 반성하렵니다...

로쟈 2007-11-10 20:48   좋아요 0 | URL
그게 7매짜리로군요.^^ 사실 짧게 쓰는 것도 공력이지요. (김훈의 표현을 빌면) 스트레이트문장으로...

자꾸때리다 2007-11-1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책을 펴본적도 없지만 제가 짐작하기로는 예전의 문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 (도덕적,사회적 etc....)이었는데 대문자 진리의 죽음으로 말미암아(주로 철학에서 표상주의의 종언...) 이런 목적 추구가 불가능해졌고 따라서 유희적인 것이 문학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뭐 이런 거 아닌가요?

로쟈 2007-11-10 20:50   좋아요 0 | URL
대문자 철학의 죽음과는 좀 무관한 거 같습니다. 보다 직접적인 건 고진도 예를 들고 있지만 (정치운동으로서) 학생운동의 종언과는 맥을 같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꾸때리다 2007-11-10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문예 대회에 60만원 상금이 탐이 나서 시 좀 써보려고 하는데 좀 개그적인 마인드로 마구잡이로 대중음악 노래 가사 표절한 다음에 후기에다가 문학의 종언이니 저자의 종언이니 하며 헛소리를 좀 적고 싶군요. 이러면 바로 탈락이겠죠? ㅋㅋㅋ

로쟈 2007-11-10 20:51   좋아요 0 | URL
'헛소리'인 줄 다들 알아볼 텐데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11-11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나요.
장정일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이름 뒤에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이 글에서 전하고 싶은 바를 소설을 통해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크네요.

로쟈 2007-11-11 00:29   좋아요 0 | URL
지난번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서도 피력한 것이지만 장정일은 희곡쪽에 더 관심이 있고 그쪽으로 작품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2007-11-11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1 0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