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이 펼쳐진 책들만 열 권이 넘게 책상과 그 주변에 널려 있어서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그만큼 벌여놓은 일들이 많기 때문이긴 한데, 현실적/물리적으로 다 마무리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어서 마음만 무겁다. 일단 하나라도 처리하고자 무릎에 올려놓은 책이 존 맥킨지의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문화디자인, 2006).

책은 작년 가을에 나왔지만 벌써 품절되어서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국역본은 '예술과 역사'란 부제를 달고 있지만 역시 지난주에 구한 원서 <오리엔탈리즘>(1995)의 부제는 'History, theory and the arts(역사, 이론, 예술)'. 목차를 보면 부제가 그리 붙은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 논의'와 '동양, 문화, 제국주의'를 다룬 1, 2장에 이어지는 장들은 각각 미술, 건축, 디자인, 음악, 연극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도 겸하고 있기에 여러 모로 유익한 책이다.

뒷표지에 실린 그 비판의 요점은 이렇다: "<오리엔탈리즘, 역사와 예술>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비판을 한다. 하나는, 사이드는 역사의식을 결여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사이드는 문학만을 다루었기 때문에 서구 예술의 오리엔탈리즘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책의 윤곽을 다룬 서평기사를 미리 읽어두고 몇 가지 코멘트를 적어두기로 한다.     

경향신문(06. 09. 23) '서양’의 잃어버린 이상향 

단숨에 사람의 머리를 베어내고도 눈하나 깜짝 않는 잔인함(르뇨의 ‘판결없는 처형’), 수많은 부인을 거느린 호색한(레폴의 ‘파샤와 그의 부인의 방’), 백인여성의 목욕시중을 들고 있는 노예(제롬의 ‘무어욕실’)….(*아래가 제롬의 <무어욕실>이다. 원서에는 직접 들어가 있지 않으며 국역본의 서두에 삽입된 그림들 중의 하나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판한 서양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은 이런 형태로 요약된다. 18~19세기 서양화가들이 묘사한 비도덕적이고 야만적인 동양인의 모습은 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여졌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오리엔탈리즘의 고전이 된 사이드의 이분법적 시각에 이견을 제기한다. 오리엔탈리즘 비평가들은 코란 학교에서 공부하는 이슬람 아이들의 느슨한 이미지를 놓고 동양의 무기력과 게으름을 묘사한 것이라 비판하지만, 저자는 종교적 신념으로 가득찬 학습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또 동양을 표현한 ‘야만적’이란 단어도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에도 불구, 부정적 의미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오리엔탈리즘이 유행하면서 악인과 선인의 대립구도를 지니는 서양의 오페라에 동양인의 등장이 잦아졌지만, 도덕적 구분선이 민족적 구분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 중 하나로 든다.

저자는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을 부패하고 뒤떨어진 문명으로 그렸다기보다는, 자신들이 잃어버린 이상형을 동양에서 찾으려 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상시합에서 단독결투를 하는 아랍인들의 모습에는 서양 중세의 기사도 정신이 재창조돼 있고, 유럽의 승마열기는 고귀한 아랍족장이 기품있는 아랍말 위에 타고 있는 모습으로 이상화됐다. 그들에게 중동 사람들은 성경에서 막 걸어나온 사람들이었고, 이집트의 사막은 산업화된 문명의 썩은 악취에서 자유로운 거대한 정화의 힘을 지닌 곳이었다. 그래서 구달과 루이스, 칸딘스키와 클레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화가들은 틈 날 때마다 이집트와 사막으로 달려갔다.

저자는 서두를 통해 이질적인 세계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재의 국제적 정세에서 자신의 책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세계주의와 이질적 존재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의 충돌을 거쳐, 동서양의 상호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더욱 창조적인 예술로 진보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일깨우고 싶다는 바람으로 읽힌다.(정유진기자)

먼저 이 책의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자 해설'을 먼저 읽어두는 것이 좋겠다. 대표 역자로서 박홍규 교수는 이렇게 적고 있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출판된 이래 그것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어왔으나, 학문적으로 경청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반면 이 책은 제국주의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제국주의의 실제 역사에 입각해 사이드와 그의 학파를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사이드의 주장이 역사학적으로 검증될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검토한 데서 큰 의미를 갖는다."(407쪽)

 

 

 

 

그렇다고 해서 비판을 위한 비판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리엔탈리즘, 역사와 예술>은 그동안 내가 읽은 사이드에 대한 그 어떤 책보다도 사이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의 취지에 뜨겁게 호응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 애정에서 나온 비판이기에 그것은 다른 어떤 비판보다도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역자도 느꼈던 사이드에 대한 여러 의문을 풀어주면서도, 그의 사상에 누구보다도 더 깊은 애정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최적의 비판서라 할 만하다.

역자가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한길사, 2001)에서 인용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저자인 무어-길버트는 이 책에 대해서 "다른 학문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 중에서 (적어도 분량 면에서는) 가장 비중 있는" 책으로 평가했다고. 거기에 역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나 분량면에서가 아니라, 그 책이 검토하는 방대한 영역 면에서 가장 포괄적인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와 이론뿐만 아니라, 미술, 건축, 디자인, 음악, 대중예술 전반에 걸쳐 오리엔탈리즘 현상을 분석한 책으로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409쪽)

곁들여 챙겨둘 만한 사실은 사이드에 대한 비판서로서 이 책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드의 <이론 속에서: 계급, 민족, 문화>(1992)라는 것. 역자가 귀뜀해주는 바에 따르면 아마드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에 적대적인) 사이드에 맹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고.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론에 대한 저자 맥켄지의 사려 깊은 비판은 한국어판 서문과 원저 서문에서 읽어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는 부분은 음악(클래식)과 관련한 것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다양한 예술분야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을 두루 살펴보는 의도와 의의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에서 이렇게 광범위한 예술 분야를 다루는 의도는 다음 두 가지이다. 즉 문학에만 얽매이는 데에서 탈피함으로써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스트 명제를 얼마나 더 긍정적이고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는지 살피고, 서로 다른 문화 형태의 관련성을, 특히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양면에서 고찰하기 위함이다(사이드는 그 자신도 인정했듯이 대중문화를 잘 알지 못했다)."(32-3쪽)  

비판의 주된 논점은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저자는 사이드의 제국주의관이 그가 교육받은 미국식 제국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며 그것은 유럽의 제국주의와 양상이 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제국주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저자의 식견인지라 음미해볼 만하다(맥켄지는 <제국주의와 대중문화>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사이드와 그 추종자들은 제국주의라는 모체 안에 있는 특정 예술 분야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은 제국주의에 정통한 역사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제국주의'는 애매한 감이 없지 않다. 즉 그들의 개념은 제국주의 시대의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 하나의 일반화된 개념으로서 역사적 동태성이 부족하다. 또한 제국주의에 관한 이론, 다시 말해 제국주의의 다양한 형태가 갖는 복잡성과 경제적, 정치적 관계의 다양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역사학자들의 시대 구분을 통해 사이드가 주장한 오리엔탈리스트 개념들을 살펴보면 맞지 않는 구석들이 많다. 다음의 여러 장에서 볼 수 있듯이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는 매우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35-6쪽)

마지막 문장은 "Orientalism and imperialism, as the subsequent chapters will demonstrate, did not march in parallel."을 옮긴 것이다. '동양에 대한 제국주의적 사고와 문화=오리엔탈리즘'이란 등식은 곤란하다는 이야기겠다. 맥켄지는 이 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음악을 든다.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전성기에도 서양의 작곡가들은 동양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예술적 언어를 확장하기 위해 동양 음악의 여러 가능성을 발견하고 활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음악에 나타나는 동양적 요소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일면적이라는 지적이겠다.



"사이드는 음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하게도 자신의 이론을 서구 클래식 음악에 접목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는 그가 서구 음악의 미적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36쪽)

사이드가 음악 애호가였다는 점은 잘 알려진 것인데(바렘보임과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을 내기도 했다. 국역본은 조야하다는 평이 주류여서 유감이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면 마지막 문장은 이해되지 않아서 원문을 찾아봤다. 이렇게 돼 있다. "Curiously, despite his great interest in music, Said has made little attempt to apply his model to western classical forms, perhaps because he seems to be highly ambivalent about their degree of aesthetic autonomy."

역자는 음악의 미적 자율성에 대한 사이드의 'highly ambivalent'한 태도를,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간주했는데, 나로선 '양가적'이거나 '유동적인' 태도로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서양 클래식 음악의 경우 여러 양식들(western classical forms)이 있는데, 그들의 미적 자율성 수준(their degree of aesthetic autonomy)이 제각각이라고 본 거 아닐까? 높은 수준의 미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말은 그것이 외부의 물적/이념적 조건과 상대적으로 무관하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그 수준이 낮다는 말은 외부적 조건에 좌지우지되며 그것으로 환원시켜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문맥으로 보아 사이드는 순수음악의 경우엔 높은 수준의 미적 자율성을 갖고 있고 오페라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본 듯하다(이것이 음악에 대한 그의 양가적 태도이다). 그럴 경우 순수 클래식은 제국주의 혹은 오리엔탈리즘과 연관시킬 건덕지가 별로 없고 다만 오페라의 경우는 그와 연관지어 이해해볼 수 있다. 이어지는 건 그와 관련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그의 최근 저서인 <문화와 제국주의>(1993) 중에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그 글은 이른바 제국주의적 맥락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분석하고 있다. 원래 이 논문은 1988년 브라이턴에서 개최된 영국 예술사학자협회 회의의 기조 연설문이었다. 당시 그 내용에 의문을 가졌던 나는 몇 가지 유보를 제기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사이드의 분석 결과가 책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더욱 확고해졌다."(37쪽)

이어지는, <아이다>에 대한 사이드와 맥켄지의 의견 차이다. 맥켄지가 보기에 사이드는 "오페라의 진정한 의미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으며 결론을 오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럽 내 갈등, 특히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고,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베르디의 시각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사실 베르디의 <아이다>는 국적의 상이를 초월하는 사랑의 힘만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베르디가 각색한 이집트 장군과 에티오피아 공주의 개인적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정복에 의한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거기에 역자가 각주에서 보태는 지적: "사이드는 베르디의 오페라가 19세기 오페라 전체를 대표하고, 나아가 오페라는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유럽의 고급문화를 대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페라를 이렇게 단정짓거나, 베르디의 오페라를 제국주의라고 보기는 힘들다. 베르디가 제국주의에 적대적이었다는 해석은 이미 음악계에서는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자신 외세의 지배에 저항한 중요한 독립투사였음은 <비바 오페라>(박홍규 지음, 가산문화사, 2002, 132-175쪽)에서 이미 설명되었다."(37쪽)

 

 

 

 

결론은 무엇인가? "만약 '오리엔탈리스트'의 해석에서 서구의 동양 관련 작품과 동양적 형식의 각색에서 나타나는 복잡성과 이중성이 간과된다면 이는 역사적 관점을 무시한 처사다."(39쪽) "사이드의 방법론과 결론에 대한 나의 의구심, 특히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접근법과 기존의 역사적인 연구가 일치하지 않는 점 때문에 나는 사이드를 부정하기에 이르렀지만, 한편으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은 전혀 변함이 없다. 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 학자로서의 바른 자세, 그리고 때로는 순진한 세계주의에 가깝기는 하지만 세계인의 이해를 구하려는 그의 노력은 칭찬할 만하다.(...) 전세계 학자들은 문학 및 역사 교육과 관련해 심각하게 왜곡된 접근방식을 밝혀내고 바꾸려는 사이드의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41-2쪽) 

내가 동참하는 길은 현재로선 이런 페이퍼로 거드는 일 정도이다...

07.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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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실이 2007-10-15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걸로도 거들수 있겠죠?*^^*

로쟈 2007-10-15 08:22   좋아요 0 | URL
읽는 걸로는 부족합니다. 추천도 하셔야죠!^^

Jade 2007-10-1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 막 읽고싶어지는데요~? ㅎㅎ 좋은책 소개 감사합니다~

로쟈 2007-10-15 11:39   좋아요 0 | URL
책은 품절이라니까 구하시는 데 약간 애로가 있을 수 있습니다...

yoonta 2007-10-15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이 책 온라인에서 파는 곳 아는데..알려드리면 품절될것같으니 몰래 어서 구입해야겠네요..로쟈님한테만 혹시 궁금하시면 알려드릴께요.

로쟈 2007-10-15 12:47   좋아요 0 | URL
이게 나름 '고가'인 책이라 구입하지 않았었는데 소장할 만한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읽는 건 도서관들을 이용할 수 있지만서도...

2007-10-15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0-15 13:52   좋아요 0 | URL
감사.^^

무소속 2008-03-2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는 알라딘 중고샵에서 새책을 구하실 수 있습니다

로쟈 2008-03-22 22:41   좋아요 0 | URL
페이퍼를 쓰고 곧 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