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아마도 이번주부터 각 부문별 수상자들이 발표될 듯한데, 역시나 백미는 문학상이 아닌가 싶다. '노벨상 프리미엄'이 출판계에서 별로 재미를 못본 지는 오래됐지만(오르한 파묵은 좀 예외적인가?) 몇 년전부터 한국인 작가의 수상 가능성이 조금씩 흘러나오면서 언론의 관심은 한층 높아졌다(늦어도 10년안으로는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은 시인의 수상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배당률 10:1이라고 한다(그러니까 10%의 확률이다). 이번주 목요일이면 수상자가 발표된다. 바람으로는 러시아를 포함해서 '변방'의 작가들이 수상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시야를 그만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도 되겠기에. 게다가 미지의 문학적 언어와의 만남은 언제나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니까...

한국일보(07. 10. 08) '대문호의 계보' 이을 100번째 주인공은 누가 될까?

노벨문학상이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리돔을 첫 수상자로 배출한 이래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휴지기를 거쳐 올해 100회를 맞았다. 노벨문학상 심사를 주관하는 스웨덴 아카데미는 11일 오후 1시(현지 시간)에 수상자를 발표하겠다고 5일 웹사이트에 공고했다. 한국 시간으론 11일 밤 8시. 작가, 언어학자 주축의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 18명 중 호선된 5명(임기 3년)으로 구성되는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는 전 세계에 의뢰해 받은 수백 통의 추천서를 검토, 현재 5명의 최종 후보를 추려놓은 상태다.

선정 과정 일체를 비밀에 부치는 선정위의 방침 때문에 수상자 예측은 물론, 어떤 작가가 후보로 거론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만 문학적 성취에 있어 우열을 따지기 힘든 거장들이 경합하기 때문에 수상자 결정엔 언어권ㆍ지역 안배, 정치적 고려 등 문학 외적 요소가 반영되리란 추측이 있을 뿐이다. 이번에도 이런 '허약한 전제' 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수상자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 누가 받을까
역대 수상자 103명(2명 공동수상 4회) 중에서 미국, 유럽을 제외한 비(非)구미권 국적 작가가 15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들어 노벨문학상의 지역 편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어왔다. 하지만 15명 중 9명이 80년대 이후 수상자인 만큼 노벨문학상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문학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아도니스(시리아ㆍ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팔레스타인ㆍ시인), 야샤르 케말(터키ㆍ소설가), 치누아 아체베(나이지리아ㆍ소설가), 바르가스 요사(페루ㆍ소설가) 등의 비구미권 작가들은 올해도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프랑스 국적의 가오싱젠(시인, 2000년 수상)을 논외로 치면 수상자가 전무하다는 점을 들어 모옌(소설가), 리뤠이(소설가)의 수상을 점치거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68년), 오에 겐자부로(94년)를 잇는 세 번째 일본인 수상자가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미국 작가가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통산 10명의 수상자를 낸 문학 강국인데도 93년 토니 모리슨(소설가) 이후 수상자를 못 내고 있는 정황이 그 근거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작가는 소설가 필립 로스, 조이스 캐롤 오츠, 토머스 핀천, 노먼 메일러가 있다. 스웨덴 현지에선 이탈리아계 미국 소설가 돈 델리오를 지목하기도 한다.

선정위원회가 불어권 작가들의 기를 살려줄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불어권은 85년 클로드 시몽(프랑스ㆍ소설가) 이후 수상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 알제리 여류 소설가 아시아 제바르 등이 기대주다. 벨기에 시인 위고 클로스, 네덜란드 소설가 세스 노테봄은 네덜란드어권 첫 수상자로 촉망 받는 작가들이다.

한편 영국의 대형 온라인 베팅업체 래드브록스(ladbrokes.com)가 개설한 노벨문학상 코너에선 이탈리아 소설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가 배당확률 5대1을 기록하며 '으뜸 후보'로 꼽히고 있다. 래드브록스는 작년 오르한 파묵(터키ㆍ소설가)을 비롯, 3차례에 걸쳐 수상자를 맞춰 주목 받는 사이트다. 이 곳에선 작년 최종 후보 5인에 포함됐다고 알려진 고은 시인이 아모스 오즈(이스라엘ㆍ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위고 클로스, 조이스 캐롤 오츠와 더불어 배당확률 10대1로 상위에 올라 있다.

고씨보다 등급이 높은 작가론 레스 뮤레이(오스트레일리아ㆍ시인), 필립 로스(미국ㆍ소설가), 토머스 트란스트로메로(스웨덴ㆍ시인), 아도니스가 있다. 시인이 많은 이유는 96년 비슬라바 쉼보르스카(폴란드) 이후 10년 간 시인 수상자가 없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 한국 작가 수상 가능성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 작가로는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씨가 첫 손에 꼽힌다. 이들의 작품은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들의 주요 가독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로 다수 번역돼 있다. 특히 고씨는 2000년대 들어 <만인보> <순간의 꽃> 등 시집 5권과 소설 <화엄경>을 스웨덴에 출간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황씨도 4월 첫 스웨덴어 번역작 <한씨 연대기>를 내고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 수상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작년 수상자가 터키에서 나온 만큼 대륙 안배 차원에서 한국인 수상자는 향후 2~3년 간 나오기 힘들 것"(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이란 분석도 있고, "노벨 재단이 스웨덴 독자에게 알려진 작가 위주로 상을 주는 만큼 작년 시상식 이후 스웨덴어 작품 2권을 더 보탠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이 밝다"(고영일 한국문학번역원 사업본부장)는 예측도 나온다. 뮤즈의 노래를 듣는 젊은이가 새겨진 메달의 진짜 주인공은 3일 뒤에 가려진다.(이훈성 기자)

07. 10. 08.

P.S. 올 노벨문학상은 영국의 여성작가 도리스 레싱에게 돌아갔다. 한동안 단골로 거명되던 후보자였지만 최근 몇 년간 유력한 후보 명단에는 빠지더니 끝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최고령 수상. 작가도 일단은 오래살고 볼 일이다. 상대적으로 여러 작품이 소개돼 있는 편이어서 국내 출판계나 독자들로서는 반길 만한 수상 소식이다.

경향신문(07. 10. 12) 20세기 이데올로기 넘나든 ‘시대의 반역자’…도리스 레싱 작품세계

노벨문학상 발표가 임박하면서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정작 그 영광은 영국의 여성작가 도리스 레싱(88)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레싱 역시 ‘20세기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아온 영국문학의 중심 인물로 노벨문학상 후보군에 올라있던 작가여서 예상을 영 빗나간 것은 아니다. 영국 문단으로서는 2005년 해롤드 핀터의 수상에 이은 2년 만의 개가다. 노벨문학상 107년의 역사상 최고령이며 여성작가로는 11번째다.

런던 북부의 자택에서 수상소식을 접한 레싱은 “(포커게임에서) 로열 플러시 패를 쥐고 있는 기분”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레싱은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줄도 모르고 집 밖 상점에 잠깐 나갔다가 뒤늦게 소식을 전해듣고 “30년간 후보에 올랐다. 유럽의 모든 상들을 다 받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레싱을 “회의와 통찰력으로 분열된 문명을 응시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그린 서사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또 1962년 발표된 ‘황금노트북’을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으면서 “막 싹트는 페미니스트 운동을 선구적인 활동으로 평가하고, 남성과 여성간의 관계를 20세기의 시각으로 조망한 책”이라고 밝혔다. ‘어두워지기 전의 여름’(1973년), ‘다섯째 아이’(1988년), ‘폭력의 아이들’ 연작(1952~69년)도 주요 작품으로 꼽았다.



레싱은 1950년대 전후 현실에 대한 분노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던 ‘앵그리 영 맨’의 대표작가이자 페미니즘 문학의 기수로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레싱의 작품세계는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식민주의와 인종차별, 생명과학, 신비주의 등 20세기의 거의 모든 문제를 망라한다.



1950년 발표한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에서 2007년작 ‘틈’에 이르기까지 57년간 발표된 그의 작품들은 장르와 사건, 주제가 다양하며 마르크시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20세기의 이데올로기를 거의 섭렵하고 있다. 기법적으로도 자연주의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모더니즘 수법을 오가면서 우화, 설화, 로망스, 공상과학소설 등을 써냈다. 그래서 여성작가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선이 굵은 남성적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항상 주류에서 벗어난 ‘시대의 반역자’를 자처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유럽이 아닌 아시아, 아프리카였으며 14살 이후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성장 배경 자체가 기성의 가치와 제도, 체제, 이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때 사회주의에 경도됐다가 전후의 행태에 염증을 느껴 1956년 결별했으며 자신을 페미니즘 작가라고 부르는 데 대해서도 반감을 갖고 있다. 남아프리카에 대한 지속적 비판 때문에 1956년부터 95년까지 남아공 입국이 금지됐다.

레싱이 1950년 발표한 ‘풀잎은 노래한다’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로디지아를 지배한 백인식민주의자와 원주민의 갈등을 사회적·정치적 입장에서 묘사했다. ‘마사 퀘스트’를 시작으로 17년간 발표된 5부작 ‘폭력의 아이들’은 한 여성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으로 ‘황금노트북’과 더불어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으로 꼽힌다.

레싱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이슬람 신비주의에 기반한 ‘카노푸스’ 시리즈를 비롯한 다수의 공상과학 소설을 썼으나 평론가들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다. 1980년대 이후 인기가 서서히 시들해지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빼고 작품으로만 평가를 받아보겠다며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한윤정기자)

-도리스 레싱 연보-

▲1919년 페르시아(현 이란)에서 출생(본명 도리스 메이 테일러) ▲1925년 아프리카 로디지아(짐바브웨)로 이주 ▲1938년 프랭크 찰스 위스덤과 결혼 ▲1943년 이혼, 45년 고트프리트 레싱과 결혼 ▲1949년 이혼 후 런던 정착 ▲1995년 미 하버드대에서 명예학위 수여 ▲1999년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명예 훈작’ 칭호 수여 ▲작품 ‘풀잎은 노래한다’(1950), ‘마사 퀘스트’(1952), ‘황금노트북’(1962), ‘어두워지기 전의 여름’(1973), ‘다섯째 아이’(1988), ‘나의 속마음’(1994·자서전) ▲서머싯 몸상(1956), 유럽문학상(1986),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2001)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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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1-18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적인 페미니즘이 '버지니아 울프'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도리스레싱'의 '페미니즘은 다른 이념의 한 가닥'일 뿐이라는 것에 큰 호기심을 갖습니다.1962년작, '황금노트북'을 꼭 읽어 보면 그 동안 막혔던 어떤 것을 찾을 것같은 예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