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북리뷰들에서 크게 다루어진 책들 가운데 하나가 우석훈-박권일 공저의 <88만원 세대>(레디앙)이다. 이른바 '세대 경제학'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를 다룬 '초유의' 책이라고. 리뷰기사에 보면 책은 "세대간 불균형 문제를 다루는 데는 좌파나 우파나 모두 미숙하다고 싸잡아 비판한다"고도 한다. 저자들의 판단에 따르면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인데, 40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착취'당하는 부류가 있다면 분류상 20대인 건가?(하긴 요즘 다시 20대로 되돌아간 듯한 긴장감(!)은 자주 느낀다. 몸이 안 따라 주어서 그렇지.) 개인적으로 최근 '다윈주의 좌파'에 관한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 저자들의 입장이 다윈주의 좌파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어 흥미롭다(왜 그런가는 시간이 나는 대로 적어보겠다). 주변에 10-20대가 있다면 권해볼 만한 책이다.

경향신문(07. 08. 11) 한국 20대의 슬픈 ‘알바 인생’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이성과 합리성을 존중하고 권면해야 할 책의 메시지가 마치 시위를 선동하는 듯하다. ‘88만원 세대’라는 기발한 제목이 붙은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실제로 가슴이 뛴다.

‘세대 간 불균형’이라는 구조적인 현안을 다룬 우리나라 초유의 ‘세대 경제학’ 책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88만원 세대’라는 도발적이고 상징적인 이름은 저자들이 짜낸 독특한 아이디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 비율인 74%를 곱하면 88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88만원이 기껏해야 편의점과 주유소를 전전하는 한국 20대의 슬픈 ‘알바 인생’을 표징하는 것이다. 현재의 20대는 상위 5%만이 그럴 듯한 일자리를 가질 뿐 나머지는 비정규직의 삶이 불가피하다고 전제한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20대의 자립이 터무니없게 늦어지는 이유가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과 경제 시스템의 문제라고 저자들은 진맥을 먼저 한다. ‘첫 섹스의 경제학’이라는 다소 야한 제목이 붙은 1장부터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불행한 10대를 다른 나라 사정과 조목조목 살갑게 비교하며 논점을 설파해 나간다.

저자들은 한국에서 가장 저급하면서 장기적으로 경제시스템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두 가지 악재로 ‘1318 마케팅’과 ‘다단계 판매’를 지목한다. 이 두 가지 모두 10, 20대에게는 마약 같은 존재이며,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급성장한 신규 산업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1318 마케팅’ 때문에 한국은 소녀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일찍 화장을 시작하는 나라, 가장 많은 화장품을 10대가 집단적으로 소비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불법 다단계 판매’의 최대 피해자도 10, 20대다.

저자들은 ‘1318 마케팅’을 ‘세대 착취 자본주의’ ‘인질경제’라고 과격하게 몰아붙인다. 중첩한 경제적 불균형이 낳은 결과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구조적인 문제 해결책으로 왜 하필 바리케이드이고 짱돌인가. 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처음으로 갖기 시작한 것은 바리케이드라는 물리적 장치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들이 10, 20대들에게 주문하는 바리케이드와 짱돌은 시위 현장에 필요한 실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다. 독자적으로 설 수 있는 저항정신과 자세다.

책은 10대 문제를 다루는 한국 사회가 초보적인 까닭이 자본주의 운영방식을 서양에서 껍데기만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제 노동자·농민 문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노하우가 축적돼 있지만 10대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 세대간 불균형 문제를 다루는 데는 좌파나 우파나 모두 미숙하다고 싸잡아 비판한다.

저자들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세대 간의 문제와 다음 세대의 문제라는 ‘새로운 축’으로 바꿀 것을 촉구한다. 기성 세대 대부분은 성장률이 낮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일부에서는 양극화 문제로 진단하지만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돈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회의가 끝난 뒤 저녁 먹는 데 쓰는 사업집행비, 수조 원씩 아무 이유도 없이 사용되는 정부 예산만 합쳐도 상황을 훨씬 개선할 수 있고, 최소한 일본이나 프랑스 수준을 따라갈 수 있다고 장담한다.

10, 20대가 맞은 위기상황이 386세대에게 상당한 역사적 책임이 있음을 엄중하게 추궁한다. 386세대는 어느 나라, 어느 세대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반영하는 사회적 장치와 흔들리지 않는 단결력을 지녔다. 하지만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386은 대학개혁에 대해서도 아무런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학벌사회를 강화시켜 역사에 대한 배신을 행한 세대라고 비판한다.

주 저자 우석훈은 프랑스에서 생태경제학을 공부한 진보적인 소장경제학자다. 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고 늘 낮추지만 내공은 만만찮다. 그의 글쓰기에 매료된 독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 방증한다.
저자들 스스로 밝혔듯이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세밀한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차기 정부를 이끌어 보겠다고 나선 대통령 후보와 정책 참모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주류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방법론에 관한 생각이 다르다는 대목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의식에는 고개를 끄덕이리라 믿는다. 적어도 이 책이 세대 간의 불균형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 대안 연작 시리즈로 ‘88만원 세대’와 함께 나온 같은 공저자들의 두 번째 책 ‘샌드위치론은 허구다’(개마고원)는 한국 기업의 위기 본질이 외부가 아닌 기업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고 호루라기를 분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후발 개도국 중국의 협공에서 원인을 찾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담론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이 책은 조직론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기업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한다. 캐비아 자본주의, 엘리트 신입사원만 선발하는 귀공자 자본주의, 여성들과 일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마초 자본주의, ‘토호들의 짝패’ 자본주의, 중소기업을 배려하지 않는 조폭 자본주의의 문제가 그것이다. 여기서 캐비아란 경제행위를 하는 개인들이 기대하는 경제수준으로 임금, 부동산, 조기유학, 과외 등을 의미한다.(김학순 선임기자)

한겨레(07. 08. 11) "40·50대가 10대를 인질로 20대를 착취”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한국의 20대를 가리킨다. 자칭 ‘C급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사진)와 박권일 전 <말>지 기자는 최근 함께 펴낸 책 <88만원 세대>(레디앙)에서 직접 만들어낸 이 신조어를 둘러싼 사실과 해석을 펼쳐 놓는다. 비정규직 평균 월급여가 119만원이다. 이 액수에 20대가 전체 평균 급여에 견줘 받는 몫을 곱해보니 대략 88만원이 나왔다. 그러니까 이 용어는 20대 비정규직이 받는 월평균 급여다. 우 박사는 지금의 한국 경제를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으로 본다. 20대와 50대가 전체 고용인구의 3분의 1인 800만명 비정규직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88만원 세대’인 20대에 대한 세대 착취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과 소비마케팅의 포로가 된 10대는 인질이라고 했다.

이런 현실이 가진 함의는 “16살부터 사랑을 시작하고 18살에 고교를 졸업하면서 독립을 희망하는” 유럽 젊은이들과 견줄 때 확연히 드러난다. 프랑스는 최근 대학 등록금을 크게 올렸으나 50만원에 불과하다. 학생들에게 주거보조금도 준다. 스웨덴에선 20살이 되면 생애 첫 창업자금으로 2000만원을 대준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스무 살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학생의 동거권’이 경제적으로 원천 봉쇄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행복지수’의 차이는 상상하기 힘들다.

더 심각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확산된 직업 불안정 추세가 더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현 10대들에 대해서, “지금의 비정상적인 변화가 계속되고, 또 그 속성상 가속이 붙어 나가게 된다면 단 10% 미만의 선택된 소수들만이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명목실업률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비율입니다. 현 추세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1000만~1500만명 수준이 될지 그게 관심사입니다.”

최근 이랜드 사태를 촉발시킨 비정규직 보호법이야말로 비정규직을 양산시킬 ‘원흉’이다. “회사 고용의 몇%는 정규직으로 가야 하고 이런 체계를 갖춘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법안이어야 했습니다. 법 시행 이후, 취지와는 달리 기업들이 주나 일 단위 계약서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착취’는 유독 한국에서 가혹하다. 일본만 해도 ‘알바’들은 대기업 초임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우리의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 3480원이 급여 책정의 기준이 되지만 일본은 대법원 판결로 알바의 고임금을 보장해주었다. 비인간적인 저임금은 사회풍속에 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의 몰락도 20대를 나락으로 몰고 있다.

그는 20대의 가혹한 운명이 사회의 파시즘화를 불러올 것으로 점쳤다. “황우석 사태 때 최대 98%까지 황 교수 편에 섰습니다. 이 정도 수치라면 우리 사회의 논의나 결정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죠.” 그는 다음 정권이 파시즘 성격을 가질 것으로 단언했다. “개인 통제를 강화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젊은 세대는 배고픔의 열정 때문에 제국주의적 성격의 해외 진출이나 길게 보면 자원 부족으로 가상할 수 있는 한·중·일 사이의 전쟁 기류에 박수를 칠 겁니다.”

극단적인 과거회귀는 막아야 한다. 그는 우리 경제가 인간의 얼굴을 한 유럽이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일본형 경제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스위스와 덴마크의 중간 어디쯤”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스위스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강합니다. 국민들의 지식 수준이 높지 않아도 가볼 수 있는 모델이라고 봅니다.”

그는 ‘88만원 세대’의 고통을 덜기 위한 몇 가지 주문을 내놓았다. “그들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예컨대 세대 대변자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 이사회의 ‘주니어 보드’ 같은 게 한 예다. “다 토플책만 보고 있으면 각개격파 당합니다.” 지식기반 사회의 젖줄인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독서도 강조했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10대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 그들을 겨냥한 소비광고마케팅에 휩쓸려 가거나 아니면 독서를 통한 지식경제 1세대로 나아가느냐는 것이 그 선택지다. 이는 한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외부에는 △감원 대신 감봉을 택해 일자리를 나누는 스웨덴 볼보주의 정책 도입 △정규직화 비율을 높이기 위한 예산 지원 △2조원의 20대 창업지원금 확보 △자영업자를 위한 홍보 및 마케팅 지원 △지자체의 알바 보조금 지원 등을 제시했다.

지은이들은 함께 펴낸 다른 책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개마고원)에서 삼성과 현대 자동차 등의 사례 분석을 통해 한국 기업 조직이 빠져 있는 함정을 집중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살길이 없는 ‘붕괴’ 모델입니다. 외부에서 굉장히 많은 돈이 유입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모델이죠. 돈이 끊기면 그 순간 불만이 쌓이면서 무너질 수 있죠.” 그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1~2년 이내에 창사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면서, 이 경우 거액의 연말 보너스 보상 체계로 돌아가고 있는 삼성이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는 현대보다 더 격렬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삼성의 강남 엘리트 중심의 채용 시스템도 위기를 키우는 요인으로 봤다. 창의성은 떨어뜨리고 조직원들의 소모적인 경쟁만 촉발시키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글 강성만 기자)

07.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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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펌]다윈주의 좌파?
    from 영혼의 아까징끼 2007-08-13 14:19 
    '로쟈'라는 아이디는 눈에 익다. 예전에 그가 쓴 서평을 몇번 읽어본 적이 있었고 날카로운 시각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알라딘에서 꽤 유명한 소위 '스타급' 서평자라는데, 공부하는 분인 듯(러시아문학 같다) 하다. 얼마 전부터는 『한겨레21』에 칼럼도 쓰나 보다. 아래의 글은 그가 『88만원 세대』에 대해 포스팅한 글인데, "저자들의 입장이 다윈주의 좌파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어 흥미롭다"고 말한다. 그가  다윈주의 좌파에 대해...
 
 
philocinema 2007-08-13 13:09   좋아요 0 | URL
그 위대했던 88올림픽 근처의 세상에서 태어나 양육된 기운도 88한 우리의 젊은이들에겐 88만원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군요.

람혼 2007-08-13 13:29   좋아요 0 | URL
센스 88만점의 댓글입니다!ㅎㅎ^^

philocinema 2007-08-13 13:51   좋아요 0 | URL
만점이 100점이 아니었군요!

람혼 2007-08-13 16:25   좋아요 0 | URL
9진법으로 읽어주시길! ^^

로쟈 2007-08-13 13:58   좋아요 0 | URL
88올림픽 즈음에 태어난 분들은 거의 '착취세대'에 들어갈 텐데요.^^

마늘빵 2007-08-14 00:39   좋아요 0 | URL
음 저는 다행히 70년대 마지막 열차를 탔는데 비껴갈 순 없을거 같군요. 흐흐.

섬나무 2007-08-14 12:48   좋아요 0 | URL
아들이 고1인데 '착취세대'란 살벌한 용어에서 썩 자유로울듯하지도 않은 현실이니 난 아들에게 스무살에 해야할 몇 가지.. 따위의 책들 대신 필히 이 책을 들려줘야겠습니다.
영혼의 아까징끼님이 소개한 로쟈님의 글도 잘 읽었습니다. 영혼의 아가징끼님은 그러니까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중 한 분이란 말씀이겠지요.
어떤 분 블로그를 보고 로쟈님 서재를 보는 오늘 아침엔 불쑥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온통 디워 난리통에 피랍사건이 묻혀버렸다는 그 분의 시니컬 멘트의 냄새가 디워 굿판에 일조한 지식인들의 정체성 아닌가 싶은.. 엊그제도 그분 열정적으로 디워 굿판에 참석하시던데.. 그깟 시시한 일로 왜 그렇게 열을 올리셨는지. 피랍사건이나 영화 한 편에 대한 시비는 한 발 떨어진 사람들에겐 뉴스거리 이상일리 없고 공허한 말들은 보태질수록 가난해지는 듯합니다.
그 속에서 돌부처처럼 독서하시는 감탄스러운 로쟈님!^^

로쟈 2007-08-14 13:53   좋아요 0 | URL
<디워>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보게 될 것 같지도 않구요) 저로선 할말이 없고, '미학적 비평'이 나오는 게 난데없이 여겨지는 것 정도입니다. 미학과는 무관한 사회적 현상일 뿐이라고 봅니다. '돌부처'처럼 독서할 만한 여유가 저도 좀 있었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