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로선 문단의 최연소 비평가 허윤진씨의 첫 비평집이 나왔다. 언젠가 한 모임에서 안면을 튼 적은 있지만 나는 이 작은 체구에 여려 보이는 비평가가 얼마나 큰 비평적 야심을 품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었다. 야심? '5시 57분'이란 타이틀부터 시작해서 비평집의 목차를 그냥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독자적 존재양식으로서의 '비평'에 대한 열망을 그녀가 얼마나 강하게 품고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것이 근대적 비평의 말기증상인지 21세기 비평의 초기징후인지는 세월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여하튼 나는 그녀를 한국 비평계의 '시한폭탄'으로 간주해도 좋으리라고 본다(째깍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리하여 조만간 뭐라도 터질 것이다. 그녀의 비평이 폭발하든, 우리의 관행적 비평이 폭발하든 뭐라도 터질 거라는 예감... 3분 남은 건가?.. 

경향신문(07. 08. 09) 허윤진씨 첫 평론집 ‘5시57분’…21세기 문학 21세기 방식으로 읽기

‘소노그램(소리에 대한 기록) 아카이브에서 아키비스트로 일하게 된 지도 어느덧 24,327,850초가 지났다…얼마 전에 아카이브를 체크하다가 나는 흥미로운 소노그램을 들었다. 동아시아공동체 EAC에 살고 있는 모델넘버 C18662126이 익명의 다수에게 전송한 내용이었다.’

Serial Number(일련번호) 6002(2006년산)로 분류된 이 파일에서 흘러나온 내용은 한유주 소설집 ‘달로’와 김애란 소설집 ‘달려라 아비’의 인용문들이다. 문학평론가 허윤진씨(27)의 첫 평론집 ‘5시57분’(문학과지성사)은 이처럼 특이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한유주와 김애란의 소설에는 근대소설의 독법으로는 잡히지 않는 잉여가 존재하는데 눈으로 읽기보다 소리 내서 읽을 때 제대로 감상할 수 있고, 나아가 (음독하는)시와 (묵독하는)소설이라는 장르 구분은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평론집은 21세기 문학을 21세기적인 방식으로 읽어낸다. 조연호의 시를 분석한 ‘대화의 퍼즐, 흩어진’에서는 각각 번호를 단 조각글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0부터 23까지를 맞춰가며 읽어도 되지만 23, 11, 1, 3, 19의 순으로 읽어도 마지막에는 그림이 드러난다. 이는 시인 조연호의 방식이기도 하다. 사전의 언어를 시의 언어로 전유한 이준규의 시에 대해 말하면서 한 문단을 5페이지에 걸쳐 끊지 않고 쓴 부분(사전이란 기표의 끊임없는 미끄러짐이다), 김민정·유형진·이민하의 작품집에 대한 글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장(chapter) 대신 차원이동이 가능한 지도(map)로 구성한 것도 특이하다.

“새로운 한국 문학에 대해 선조성(linearity)이 무화됐다, 중심이 없다, 주체가 분열됐다고 말하면서도 비평의 목소리는 여전히 선조적이고 근대적인 데 대해 모순을 느꼈어요. 똑같은 길을 갈 수는 없었습니다. 또 고전에서의 시서화(詩書화)처럼 장르가 통합된 방식이나 요즘 무용·연극·음악 등이 보여주는 장르 넘나들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허씨가 생각하는 비평은 작품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 거기에 이르는 길로 독자를 안내하는 게 아니다. 텍스트를 인용하기는 하지만 비평 자체가 완결된 작품이다. 평론집의 한 부분에서 그는 “타자적인 요소들이 내합한 채로 발설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말을 더듬다가 결국 자기 파괴의 현장으로 가서 자기의 주검까지도 확인하고 돌아오는 과정이 비평이어야 한다”는 자의식을 드러낸다.

그가 좋아하는 작품은 아무래도 동시대 작가들의 것이다. 소설가 한유주·김애란·편혜영·김숨, 시인 황병승·이준규·조연호·김경주 등을 즐겨 다룬다. 김행숙·이장욱·김경인·김중일 등의 시인, 김미월·황정은 등의 소설가도 향후 분석하고 싶은 작가로 꼽았다. 이들과는 세대적 특성을 공유한다. ‘문자 메시지에 답을 안 해줄 때 상처 받는 세대’이자 싸울 대상은 없으나 제도적 억압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세대의 문학이다. 여성평론가라는 정체성 때문에 여성주의에도 관심이 많지만 굳이 여성작가의 작품보다는 황병승과 최하연의 시에서 성별을 거스르는 여성적 측면을 읽어낸다.

허씨의 글들은 감성도 번뜩이지만 문학이론, 매체이론, 영화·만화·음악 등 다른 장르에 대한 지식을 종횡무진 오간다. 그러나 비평적 권위는 사양한다. “평론가 역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 방식으로 텍스트와 대화를 나눈다”며 “세상에는 문학작품을 읽는 수천가지 방식이 존재하고 그 한 방식으로서의 내 글 역시 모호한 다양성으로 독자들의 해석에 열려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는 자기 평론의 전범을 작고한 평론가 김현에게서 발견했고, 그의 책을 읽은 대학신입생 시절부터 평론가를 꿈꾸었다.

우리 문단의 최연소 평론가인 그는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던 2003년 초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평론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현재 서강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복도훈·이수형·신형철·차미령씨 등 또래 평론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평론집을 묶었다. 조만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소속 방문연구원으로 1년간 공부하기 위해 출국한다.

앞날이 창창해 보이는 그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이번 첫 평론집에서도 청탁을 받은 글은 빼고 제가 쓰고 싶었던 글만 넣었습니다. 그러나 전체가 이어진 글은 아닙니다. 앞으로는 정치·경제·사회·예술적으로 중요한 주제에 대해 제가 읽었던 텍스트를 인용해 쓰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책에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달아 완결성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고통스러운 꿈보다 현실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직전의 시간”이라고 설명했다.(글 한윤정기자)

07. 0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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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 읽기 전까진 남잔 줄 알았어요.

로쟈 2007-08-10 10:50   좋아요 0 | URL
이름이 그런가요, 아님 인상이? 혹은 문체?

심술 2007-08-1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에 나온 얼굴이 남자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