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가 되고 있는 책,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에서 제6장 '도덕의 뿌리: 우리는 왜 선한가?"를 읽었다. 주중에 피터 싱어의 <다윈의 대답1: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이음, 2007)를 읽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어진 독서였다.

 

 

 

6장은 네 개의 절로 나뉘어져 있지만 핵심적인 절은 '다윈주의와 도덕의 기원'일 것이다(일단 타이틀이 대표성을 띤다). 번역도 매끄럽고 여러모로 잘 만들어진 이 책에서 그래도 흠을 잡자면 참고문헌이 수록되지 않은 걸 들 수 있겠다. 미주까지는 붙어 있지만, 가령 6장의 미주3)에서 참고하라고 소개된 Hinde(2002)가 무슨 책을 말하는 것인지는 번역본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물론 손품을 좀 팔아서 검색해본다면 알아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대다수 독자들이야 별로 불편함을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서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아쉬운 일이다(참고문헌만 복사할까 했더니 도서관의 책은 대출중이다. 참고문헌 때문에 원서를 구입해야 할까?).

예컨대, Hinde(2002)라고 표기된 참고문헌은 본문에서 "로버트 힌데의 <선은 왜 선인가?>"(325쪽)로 옮겨진 'Why Good is Good: The Sources of Morality'란 책을 가리킨다. 다는 아니겠지만 참고문헌 읽기를 즐기는 독자들에겐 이런 정보가 본문만큼이나 요긴하고 흥미롭다. 문제는 그 흥미를 충족시키는 일이 좀 번거롭다는 것.

그나마 로버트 힌데의 책은 나은 편이고 "우리의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이 다윈주의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몇몇 책들, 곧 '다윈주의와 도덕의 기원'에 대해서 말해주는 책들로 도킨스가 거명하고 있는 다른 책들은 번역된 제목만 가지고 서지를 추적해야 한다. "마이클 셔머의 <선과 악의 과학>, 로버트 버크먼의 <신이 없어도 우리는 선할 수 있는가?>, 마크 하우저의 <도덕적 마음: 자연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감각을 어떻게 설계했는가?>" 같은 책들의 경우가 그렇다.

잠시 손품을 팔도록 한다. 먼저 셔머의 책이 그래도 쉬운 편인데, <선과 악의 과학>이니까 키워드 몇 개를 쳐넣으면 'The Science of Good and Evil:  Why People Cheat, Gossip, Care, Share, and Follow the Golden Rule'(2004) 같은 다소 긴 제목의 책이 뜬다(368쪽 분량이니까 우리말로 옮기면 450쪽은 되겠다). 저자 마이클 셔머는 'Michael Shermer'로 표기된다는 것도 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곁가지로 같은 저자의 <과학의 변경지대>(사이언스북스, 2005)가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는 사실도 챙길 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 로버트 버크먼(Robert Buckman)의 책의 경우도 대충 영작을 해서 검색해보면 'Can We Be Good Without God?: Biology, Behavior, and the Need to Believe'(2002)란 책이 뜬다(278쪽 분량이다). 그리고 마크 하우저(Marc Hauser)의 책 'Moral Minds: How Nature Designed Our Universal Sense of Right and Wrong'(2006)도 쉽게 검색되는데(512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사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구입한 독자들이 같이 산 책이라고 열거돼 있기도 하다.

 

 

 

 

도킨스는 이 장에서 서두에 열거한 저자들이 펼친 주장을 그 나름대로 다시 개진하겠다고 하는데, 여하튼 보다 심화된 독서를 위해서는 힌데, 버크먼, 하우저의 책들도 참고해볼 수 있겠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매트 매들리의 책을 들 수 있을 터인데, 도킨스 또한 잊지 않고 있다. "매트 리들리는 <덕의 기원>에서 다윈주의적 도덕이라는 분야 전체를 명쾌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평판에 대해서도 아주 탁월한 설명을 제시한다."(331쪽) 여기서 도킨스가 언급하고 있는 <덕의 기원(The Origins of Virtue)>이 우리에겐 <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북스, 2001)로 번역된 바로 그 책이다(오해의 소지가 있는 제목이긴 하다).

<이타적 유전자>를 펼쳐본 이라면 알겠지만 책의 프롤로그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탈옥'을 다루고 있는데, 거기서 '어느 무정부주의자'란 '상호부조론'의 제창자 표트르 크로포트킨(1842-1921)이다. 그는 1876년 동지들의 치밀한 계획과 헌신 덕분에 차르의 감옥으로부터 탈옥에 성공한다. 이후에 영국으로 망명한 크로포트킨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저작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저술을 통해 그는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설파했다. 또 그와 동지들이 붕괴시키기 위해 투쟁해 온 중앙집권적-귀족주의적-관료적 국가를 재창출하려는 시도로 여겨지는 이념적 라이벌인 마르크시즘을 공격했다."(12-3쪽) 그렇게 해서 저술한 것이 대표작 <상호부조론>(<만물은 서로 돕는다>)이다. 그의 이론에 대한 리들리의 평가는 이렇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은 찰스 다윈의 이론과 같은 기계적 진화론이 아니었다. 다윈은 사회성이 높은 종이나 집단이 사회성이 낮은 종이나 집단과의 경쟁에서 적자생존을 한다는 것 외에는 상호부조가 어떻게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크로프트킨이 절반은 옳았음을 입증하는 한편, 인간 사회의 뿌리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뿌리 깊은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사회가 제구실을 하고 굴러가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훌륭하게 고안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의 진화된 소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본성에 내재한다."(15쪽)

어떤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진화적 본성, 혹은 협동(상호부조) 성향을 도킨스가 정리하고 있는 바는 이렇다: "현재 우리가는 개체들이 서로에게 이타적이고 관대하고 '도덕적'이 되려는 타당한 다윈주의적 이유를 네 가지 알고 있다. 첫째, 유전적 친족 관계라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둘째, 호혜성이 있다. 받은 호의에 보답을 하고, 보답을 '예견'하면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셋째, 관대하고 친절하다는 평판을 얻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다윈주의적 혜택이다. 넷째, 자하비가 옳다면 과시적 관대함은 속일 수 없는 진정한 광고의 역할을 한다."(332-3쪽) 

그렇다면 이러한 '이타적' 본성은 어떻게 진화될 수 있었을까? 도킨스의 생각으론 '실수'나 '부산물'로 진화돼 왔다: "인간이 비비처럼 작고 안정적인 무리로 살아가던 시대에 자연선택은 인간의 뇌에 성적 충동, 굶주림 충동, 이방인 혐오 충동 등과 함께 이타적 충동도 프로그램해놓았다.(...) 나는 친절함, 이타주의, 관대함, 감정이입, 측은지심 등의 충동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성(불임이나 다른 어떤 이유로 자식을 낳을 수 없을지도 모를 상대)에게 욕망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울먹이는 불행한 사람(친척도 아니고 보답을 받을 수도 없을 누군가)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측은지심을 느낀다. 둘다 빗나간 사례이자 다윈주의적 실수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행스럽고 고귀한 실수이다."(334-5쪽)

마치 오목눈이 어미새의 뻐꾸기 사랑처럼...

07. 0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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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0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최근 이런쪽 - 조금 벗어나있긴 하지만 - 에 대해 책 읽고 있는지라, 다른 관점에서 도덕을 바라보게 되는군요.

로쟈 2007-08-05 11:36   좋아요 0 | URL
언급된 책들 가운데 하우저의 책은 도킨스도 풀이해주고 있는데 번역되면 좋겠습니다. 종교와 무관하게 우리의 진화적 본성(도덕감각)은 일정한 틀을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블루비니 2008-04-08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책 열거는 하나 책 내용에 대한 건 별로 없군. [대다수 독자들이야 별로 불편함을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서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아쉬운 일이다] ㅋㅋㅋ 그렇게 튀고 싶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