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되었다(가 아니고 다음주 25일 개봉예정이다). 지난주부터 언론과 잡지마다 시사회 리뷰들을 싣고 있는데 대체로 평이 좋은 편이다. 한국영화라서, 혹은 '광주'를 다룬 영화라서 띄워주는 분위기가 아니라 모처럼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영화의 출현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극장나들이에 동참해보는 것도 좋겠다(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니까 본전은 뽑을 수 있도록). 여기서는 컬처뉴스에 실린 리뷰를 읽어보도록 한다.

컬처뉴스(07. 07. 20) 영화 한편의 힘! - <화려한 휴가>의 대중적 흡입력

영화 한 편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는 이미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희미한 북파공작원 사건의 비극을 다룬 영화 <실미도>가 엄청난 흥행을 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일었다. 심지어 9시 메인 뉴스에서 연이어 등장할 정도로 대단했다. 실미도는 순식간에 명소로 떠올랐고 공작원이 처절하게 죽은 신대방 거리에서 추모인들이 노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실제로 북파공작원 출신들은 강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1200만 명이라는 대대적인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서 <실미도>는 하나의 신드롬이 되어버렸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영화의 힘은 세다.

요즘 한국영화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는 팩션영화인데, 팩션영화는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효과를 노린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극적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바탕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대중들은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혼동하기도 한다. 즉 영화적 상상력을 실제적 사건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팩션영화가 흥행하면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신드롬이 되면 사소한 것으로까지 관심이 증폭되면서 역사적 사건의 실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나는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화려한 휴가>가 이런 단계에 올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사실 광주민중항쟁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에 제도권에서 만들어진 광주에 대한 영화는 대부분 지식인의 패배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는 주변부적 영화였다. 단 한 번도 정면에서 다루지 않았다(<부활의 노래>를 제도권 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꽃잎>이나 <박하사탕>을 보면서 왜 광주를 저렇게밖에 그릴 수 없는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박하사탕>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한다). 그러다가 문뜩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지식인의 패배주의적 시각으로 광주를 그린 이들은 대부분 1980년 5월에 성인이었던 이들이다. 성인의 눈으로 양민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을 바라본 그들에게 광주는 부채로 남았고, 때문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감히 광주를 정면에서 그리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세대가 등장해야 한다고. 1980년 광주의 원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세대가 등장해 정면에서 다루는 것을 보고 싶었다. 총칼 앞에서도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학수고대했다. 소시민이 영웅(또는 전사원형)이 되어가는 과정은 신화에서 이미 숱하게 보아왔던 익숙한 주제이다. 그러니 충분히 흥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민중항쟁이 점점 잊혀져가는 현실에서, 대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를 누가 만들려고 하겠는가. 광주민중항쟁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역사적 사건으로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했다.

사실 광주의 학살이라는, 너무나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 객관적으로 그리는 작업은 매우 어렵고 고단한 작업이다. 피해자나 그의 가족이 엄연히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가해자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 아무리 잘 재현한다고 해도 ‘잘해야 본전’인 게임이다. 때문에, 어쩌면 광주민중항쟁을 그린 영화를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불안감을 한 번에 잠식시킬 수 있는 영화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화려한 휴가>가 문제의 영화이다. 이 영화가 특이한 것은 1970년대생이 만들었다는 것이고, 대구 출신의 감독이 연출했다는 것이며, 광주를 정면에서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결합하면 광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광주를 객관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가 100억 원이다. 홍보비를 합치면 120억이 된다.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인데, 이것은 흥행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하면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운명이 끝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영화의 위기가 가속화된다. 감독과 제작사는 분명 이 점을 명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광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10일간의 광주를 대중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10일 동안 계엄군에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시민들의 내적 파노라마를 멜로적 감수성으로 그리는 것이다. 이름 없는 시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캐릭터를 구축한 후 그들의 의리와 투쟁을 신화적 내러티브로 전개해 대중성과 현장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것이다. 소시민이 영웅이 되어가는 신화의 구조를 이 영화는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한편으로 감독은 당시의 현장을 복원하는 것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이 영화의 현장성을 위해 당시 사진과 다큐를 생생히 화면으로 다시 복원했다. 이미 광주항쟁 비디오나 사진을 본 이들은 한번쯤은 본 듯한 장면들이 영화에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감독은 사실적인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물론 사실적인 느낌의 복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대중적으로 재미있고 눈물 나도록 포장했다. 100억 원을 들인 영화가 사진이나 다큐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또는 같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화려한 휴가>는,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실미도>와 닮아있다. 군인이 등장한다는 점이나 냉전체제의 산물이라거나 주인공이 대거 희생된다는 점, 또는 액션 스펙터클의 볼거리라는 점을 떠나서, 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서적 동일시 효과가 이상할 만치 비슷하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각자의 개성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축하다가 마지막에 모두 전사한다는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마지막 전사 시퀀스는 비교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닮았다. 죽어가는 시민군들이 자신의 이름과 하고픈 말을 무전기로 남기고 죽을 때의 모습은 <실미도>에서 병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장면과 거의 비슷하다. 두 영화가 가지는 대중적 흡입력도 상당히 흡사하다. 이 말은 <화려한 휴가>는 대중적으로 흡입력이 크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의도한 바를 성취했다. 초반부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날들이 지나면 처절한 투쟁의 현장이 너무도 애절하게 이어진다. 사이사이 멜로적 코드의 여백이 배치되어 있고 여백을 넘으면 강한 템포의 학살과 투쟁이 이어진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 웬만한 이들이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눈물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는 불과 27년 전에 이런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교과서가 될 것이고,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원죄의식을 달래주는 한판 굿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5.18에 대한 속죄의 영화이자 뒤늦은 만가(輓歌)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대중영화다 보니 명확한 장점과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대중적으로 알리 쉽게 캐릭터를 구축하고 내러티브를 전개해서 누구나 영화를 통해 1980년 광주의 당시 모습을 확인할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과잉된 정서로 사건을 다루다 보니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계엄군이 광주를 진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은 당시의 시국 인식보다는 특전사 대장의 충성의 발로처럼 보이고, 해방구를 접한 후 시민군들은 서로를 격려해주는 동지애만 강조할 뿐 그들의 갈등과 분열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투쟁하자는 입장과 투항하자는 입장의 대립이 거의 없다. 이런 불만은 이 영화가 시민군들의 입장을 철저하게 옹호한 영화라는, 때문에 대선 정국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할 영화라는 반대편의 비판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를 충분히 끌어안을 만큼 <화려한 휴가>는 대중적으로 몰입이 강하다. 이것만으로도 일반인이 광주민중항쟁의 실체에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영화 한 편이 모든 것을 다 보여 줄 수는 없다. 영화는 단지 한편의 영화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목적한 바를 충분히 성취했다. 이제 남은 몫은 이후의 영화가 새롭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역사가 팩트에 대한 해석이듯이, 영화도 광주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나 재현에 지나지 않는다. 해석이 다양하고 풍부해지면 그만큼 우리의 현재가 두터워지는 것이고 현재가 두터워지면 과거와 미래도 두터워진다. 이 한 편의 등장으로 광주민중항쟁을 다양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강성률/ 영화평론가)

07. 07. 20.



P.S. 검색해보니, 필자인 1970년대생 영화평론가 강성률씨의 책으론 <영화입문>(리토피아, 2005),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이론과실천, 2005), <친일영화>(로크미디어. 2006) 등이 나와있다...

P.S.2. 생각난 김에 어제 읽은 인터뷰 기사도 옮겨놓는다. <화려한 휴가>의 주연을 맡은 배우 김상경씨와의 인터뷰이다. 내용중에 가장 인상적인 건 김지훈 감독이 이 영화를 일종의 '재난영화'로 찍고 싶어했다는 것. 이 영화의 성취가 그러한 발상에 힘입은 것이리란 생각을 했다.

문화일보(07. 07. 19) ‘5월 광주’… 그 억울함 함께 느꼈으면… 

‘화려한 휴가’의 주인공 김상경을 만났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혈육을 잃고 통곡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사의 일부가 된 택시 기사 강민우를 맡은 그는 시사 이후 ‘화려한 휴가’에 쏟아진 호평에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배우야 고생해서 찍은 작품의 반응이 좋으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겠지만 더군다나 5.18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어린 관객에서부터 우리 어머니처럼 나이드신 분들까지 모두 공감하고 눈물 흘리는 영화로 완성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정치 이야기가 배제된 광주 영화다. 이런 영화로 완성될 것이라고 예상했나.

“시나리오를 받고 가장 좋았던 게,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정치색이 강하고 민주열사가 주인공인 영화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읽기 시작했는데 보면서 좀 놀랐다. 초반에는 아주 평범하고 순진한 사람이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얘기도 코믹하게 나오고.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광주를 정치적 무게감 없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헌신하는 착한 민우는 그동안 맡아온 캐릭터와 많이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의사나 변호사, 검사 등 전문직, 영화에서도 남루하긴 한데 그래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좀 삐딱한 역할을 많이 했다. 이번 영화의 강민우처럼 순수하고 담백한 역할은 처음이다. 그래서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람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의 무게감을 많이 느끼지 않고 그냥 평범한 일상, 보편적인 감정을 담으려고 했다.”

―김지훈 감독이 어떤 부분을 가장 강조했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 마음을 강조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감정…. 감독은 ‘화려한 휴가’가 5·18을 소재로 하지만 정치 영화가 아닌 ‘재난 영화’로 찍고 싶다고 하더라. 갑자기 당한 사람들에게는 재난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재난 영화’라는 표현에 공감하는지.

“‘재난 영화’의 의미도 여러가지니까 공감한다. 갑자기 당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온 나라에 난리가 난 것 아닌가. 기자 시사 때도 반응이 좋았지만 일반 시사, VIP 시사 때는 정말 좋았다. 자막 올라갈 때까지 사람들이 안나가더라.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피해자들이 느꼈을 감정이 그만큼의 에너지를 갖고 전달된 덕일 것 같다.”

―영화에 가해자가 없다.

가해자나 총을 쏘라고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 하는 것은 다른 데서도 공부할 수 있다. 우리 영화는 그저 그때 광주 사람들의 그 심정, 억울함과 비통함을 공유하자는 영화다. 사실 나도 그랬지만, 타지역에서 5·18 광주를 진짜 가슴으로 느끼고 슬퍼한 사람이 많았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억울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느끼고 공유했으면 좋겠다. 난 내가 나오는 영화를 못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계속 보게 되고, 볼 때마다 울게 된다. 그건 진짜 감정이 담겼기 때문인 것 같다.”

―왜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못보나.

“내가 출연한 것도 잘 못보고, 사실 영화를 잘 안본다. 고민인데, 이제는 내가 가진 이미지를 지우기에 바쁘다. 연기하려고 하면 내가 어디 어디서 연기한 것, 누구 누구의 연기가 떠오른다. 연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인데 찌꺼기, 때가 많이 낀 것 같다. 순수한 감정에서 연기가 올라와야 할텐데 기술적으로 계산하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기가 힘들어진다. 영화를 안보는 대신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책도 소설보다는 인문과학서나 인간에 대한 분석이 담긴 책이 좋다. 어떤 내용이든 현실과 밀착되지 않은 이야기는 내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덤덤한 거 아닌가.

“무덤덤하다면 ‘화려한 휴가’에서 동생이 죽었을 때 그렇게 우는 모습이 나올까? 감수성은 예민한 편이다. 슬픈 다큐멘터리 보다가도 1초면 눈물이 난다. 그냥 믿기지 않는 인위적인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배우로서의 이미지도 그런 것 같은데, 늘 옆에 있는 것 같고 아주 일상적인데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게 난 재밌다.”(전영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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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7-2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개봉되었군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로쟈 2007-07-2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극장에 간판이 다 붙어 있어서 이번주부터인 줄 알았는데, 다음주부터라는군요.^^;

twinpix 2007-07-2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들과 다다음주 쯤에 볼 예정이에요. 평을 읽어보니 괜찮을 것 같네요.

로쟈 2007-07-21 08:52   좋아요 0 | URL
단체관람을 하시는군요.^^

테렌티우스 2007-07-21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년에 고1이었는데, 이 영화 '꼭' 잘되길 바라봅니다...^^

로쟈 2007-07-21 08:52   좋아요 0 | URL
되돌아보면, 험난한 세월을 사신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