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집어든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는 마루야마 마사오(1914-96)의 <일본의 사상>(한길사, 2003). 본래 1998년에 나온 책의 초판 3쇄였다. 요즘은 잘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어디선가 재고도서가 들어온 듯싶었다. 짐작에 마루야마의 다른 책들과 함께 박스에 보관돼 있는 책이지만 확인해볼 도리가 없는 데다가 당장 참고할 부분도 있어서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아예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 2007)도 주문해버렸다(그의 사상을 개관하고 있는 <오스까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삼인, 2005)는 도서관에서 대출해야겠다).

 

 

 

 

역자는 두 권 모두 김석근 교수인데 사실 한국에서의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소개는 거의 전적으로 그에게 빚지고 있다. 그 이전에 <일본의 현대사상>(종로서적, 1981) 등이 소개된 바 있지만 마루야마의 주요 저작들이 단기간에 한국어판을 얻게 된 것은 순전히 역자의 노고 덕분인 것이다. 물론 내가 마루야마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도올 김용옥의 책들에서였지만.

그렇게 손에 든 책에서 '옮긴이의 말'과 마침 이 번역이 마무리될 즈음 세상을 떠난 마루야마 마사오의 부음에 부쳐진 '마루야마 마사오의 삶과 사상을 생각함'을 읽었다. 역자로서의 소회를 밝히고 있는 '옮긴이의 말'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서 따라가본다. 어느새 10년도 더 전의 사정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일본의 사상'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반성하도록 해준다.

역자가 마루먀아를 처음 접한 건 대학원 석사과정 3학기 때라고 하는데, 본래 정치외교학 전공인 저자가 '한국정치사상사'를 공부하기 위한 방책으로 철학과를 기웃거리다가 맞닥뜨리게 된 에피소드. 마침 대학원 철학과에 '일본철학사'라는 과목이 개설되었었는데, '대학원의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의 이견으로("일본에 무슨 철학이 있냐?") 과목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 해서 '일본사상사'로 바꾸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일본에는 사상도 없다!") 결국엔 '일본문화사'로 낙착되었다는 것(철학과에서 웬 문화사?).

 

 

 

 

비슷한 사례가 될 만한 또다른 일화는 "주체적인 학문의 길을 주장"한 '어떤 선생님'과 관련된 것인데, 저자와 저서명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짐작에 조동일 교수의 <우리 학문의 길>(지식산업사, 1993)의 내용이다. 그 책에서 저자는 "'일본에 철학사가 있는가' 하는 재미난 화두를 하나 던지고 있습니다. 그 분의 논지를 여기로 다 끌어올 수는 없겠습니다만, 요컨대 일본에는 '사상(사)'은 있지만 (보편성을 추구하는) '철학(사)'은 없다는 식으로 이해하시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27쪽) 요컨대, 이러한 '부인'의 제스처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무의식을 잠식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물론 이후에 '일본의 철학'을 다룬 책들이 여러 권 버젓이 나오게 됐으므로 그러한 문제제기가 여전히 유효한 듯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역자가 체험한 한 시절의 풍경은 그러하다. 이것이 다소 넌센스인 것은 "애초에 '哲學'이란 단어 자체가 일본인 니시 아마네가 영어의 Philosophy를 번역하여 한자로 새로이 만들어낸 조어(造語)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동아시아문화권에서는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재했던 것이다."(28쪽) 말하자면 '철학'이란 말 자체는 근대 일본의 발명이고 고안이다. 하지만 "니들에게 철학은 없다"?

여기서 필자가 인용하고 있는 건 <일본정치사상사연구>(통나무, 1995)에 붙인 김용옥의 해제의 한 대목인데, 예전에 읽은 기억이 나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그것은 매우 거칠게 말해서 '한국철학'과 '일본사상'의 성격을 유비적으로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사상', '일본철학'이라는 말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학문을 연구하는 시각이나 방법의 성격상 한국에서는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즐겨쓰고, 일본에서는 '일본사상'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한국에서는 '한국사상'이라고 하면, 그것은 철학에 못 미치는 좀 엉성한 체계, 그리고 철학의 소양이 부족한 2류의 학인들이 자신없이 내거는 명칭으로밖에는 인식되지 않는다. 하나 일본에서는 '일본철학'이라고 하면, 역시 좀 학문적 가치가 떨어지는 국수주의자들의 사변체계, 군국주의시대의 '코쿠타이'(國體)를 연상시키는 '미기'(右翼) 사상가들의 억지주장 냄새가 난다."

해서 요컨대, "한국에서의 사상은 좀 처지는 놈들의 엉성한 논변이요, 일본에서의 '철학'은 항상 우익의 냄새를 피울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김용옥의 해제 28-29쪽) 그러니까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에서 '사상'은 좀 모자란 것이고 일본에서 '철학'은 좀 덜 떨어진 것이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실제로 '한국철학'이란 표현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사상은 '실학사상'이나 '계몽사상' 등의 표현으로나 쓰인다). 혹은 '철학사상'. '일본의 사상'이란 표현이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 데 비해서 '한국의 사상'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서로 다른 관행 탓인 듯싶다(거의 개와 고양이 수준 아닌가? 똑같은 꼬리 흔들기가 각각 반가움과 경계심의 표시라는).

잠시 옆길로 갔는데, 다시 필자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저는 그것을 '철학'이라 부르느냐 아니면 '사상'이라 부르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또 다른 제3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그리고 철학이나 사상이 없다든가, 사상은 있으나 철학은 없다는 식의 논지와 일본은 '있다' '없다'라는 식의 주장 사이에는, 그 성격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왠지 사물을 보는 시각 내지 생각하는 방식과 패턴 같은 것에서는 너무나도 닮아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저로서는 쉽게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29-30쪽)

"졸렌(Solen)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인(Sein)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에 기대면, 그가 비판하는 우리의 관행적 시각 내지 생각하는 방식은 일본이란 '존재'를 정확하게 알기 전에 일본은 이렇다, 저렇다고 당위적으로/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가리키겠다. 그걸 경계하자는 얘기이고, 그때 필요한 건 일단은 읽는 것이다. 물론 일본사상인지 철학인지가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고(마루야마가 평생 사투했다는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오규 소라이(1666-1728)나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의 책을 한국어로 얼마나 읽을 수 있는가?). 

한편, 책의 후기를 대신하여 쓰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삶과 사상을 생각함'에는 지난 1996년 마루야마의 타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추모 열기를 소개하는 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한 유력 일간지의 도쿄 특파원이 작성했다는 기사는 가관이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받으면서 이미 70년대 그의 저작들이 영문으로 번역돼나오기 시작했지만 한국에서의 소개는 약간 늦은 편이어서 1981년 <일본의 현대사상>을 시작으로 <현대일본정치론>(1988), <중국근대혁명사상>(1989), <섹스원죄 어디까지인가>(1995), <섹스법정>(1996) 등이 출판됐을 뿐이다..." 

필자의 지적대로 앞의 두 권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이지만 <중국근대혁명사상>(예전사, 1989)은 마루야마 마쓰유키의 저작이며, 전혀 난데 없이 들어가 있는 <섹스> 어쩌구 하는 책들은 마루야마 마사야의 책으로 보인다. 같은 마루야마 집안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신문기사가 '장난'이 아닌 이상 이런 무식하고도 무책임한 내용이 아무런 여과없이 일간지에 게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이런 게 우리의 평균적인 현실이라면 희비극적인 일이다). '일본은 없다'고 말하기 이전에 한국에는 입만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문제이다(과연 우리에겐 '한국의 마루야마'가 있는가?).

 

 

 

 

이러한 한일 철학/사상에 관한 몰이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관련서들이 더 많이 소개되고 읽힐 필요가 있겠다(찾아보니 금장태 교수의 <도와 덕>(이끌리오, 2004)이 다산과 오규 소라이를 비교한 연구서이다). 최근에 출간된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2007)는 그래서 눈에 띄는 책인데, 한겨레의 서평(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19266.html)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인들이 상급 무사인 사무라이가 되기 위해 따라야 하는 도라 할 수 있는 ‘무사도’가 있다. 충과 효의 덕목에, 스스로에게 엄해야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인자해야 한다. 사적 욕심을 버려야 하고 부귀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 조항들 가운데 ‘패배한 적에게 연민을 베풀어야 한다’는 내용만 제외하면 ‘선비의 도’라 불러도 별 무리가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이런 동질성의 계기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 성리학의 일본 전파를 꼽았다. 임진왜란 이전만 해도 일본 무사들은 주군에 대한 윤리적 충성의식이 높지 않았다. 주군과 가신들의 주종관계가 의리나 신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관계였기 때문이다. 무사에게는 주군을 바꿔 다른 주군을 모실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유학자 강항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에 성리학의 계통이 학립됐다. 이를 계기로 유교적 윤리인 인(仁)·충(忠)·효(孝)가 무사들에게 요구되는 규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강항에게 성리학을 배운 일본 근대 성리학의 시조 후지와라 세이카는 존왕론 주창으로 나아갔다. 천황의 역사를 성리학적으로 해석한 ‘미토학’ 태동의 지반도 성리학이었다. 미토학은 에도 막부 말기에 새로운 ‘천황중심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이념적 지주가 되었다고 지은이는 본다. 무사들이 ‘천황’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부를 타도하겠다고 나선 메이지 유신은 “성리학의 명분론을 빌린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무사정권 교체는 명분론과는 무관한 패권다툼의 결과였다. 

기사에서 언급된 사무라이들의 반란 혹은 '혁명'은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의 소재이기도 한데, 이 영화에서 그려진 사무라이상에 대한 유익한 비평은 아래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영화에서 주장하는 ‘사무라이 반란’은 일본에서는 ‘세이난(西南) 전쟁’으로 알려진 반란이고, 가쓰모토의 모델은 그 반란의 주모자였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입니다. 여러분 사이고 다카모리가 누구인지를 아십니까. 그는 메이지유신을 성사시킨 사쓰마, 조슈, 도사 3개 한(藩)의 하급 사무라이 중 사쓰마를 대표하는 이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은 폐쇄적 쇄국을 진취적 개국으로, 쇼군(將軍)중심의 봉건적 막부 정치체제를 천황 중심의 한 서양적 의회민주제로 개혁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그런 메이지유신의 핵심인물이 서양 문물의 홍수에 맞서서 일본의 전통을 지키려고 목숨을 받쳤다? 왠지 어색하지 않습니까.

사이고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의 핵심에는 ‘조선침략’이 놓여있습니다. 그는 일본이 서양열강과 맞서기 위해서는 문물이 뒤떨어진 한국을 공략해 식민지화해야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다 같은 사쓰마 출신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조슈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등의 반대에 부딪히자 사쓰마로 낙향합니다. 그러나 그를 추종하는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 지도자로 나섰다가 패배해 자결한 인물입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인격적 감화능력이 탁월해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그를 존경하는 일본인들이 많습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문구를 좋아했고, 일체의 사욕을 버리고 공리를 쫓았던 면모도 분명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이라는 혁명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는 시대착오적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메이지유신에 나섰던 이유는 ‘일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쓰마인’을 위해서였고 ‘사쓰마’가 일본 최고의 번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문에 일생을 마치는 순간에는 ‘사쓰마파벌’의 영수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글처럼 사쓰마는 오늘날 일본 사무라이의 원형을 세계에 수출한 곳입니다. 사쓰마의 다이묘가문인 시마즈 가문은 도쿠가와 막부성립기 때 줄을 잘못 서서 반 도쿠가와 편에 섰습니다. 그렇지만 번 전체가 똘똘 뭉친 단결력과 외교수완의 결과로 번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또 일도필살의 전투력으로 인해 도쿠가와도 건드리기 싫어했던 고슴도치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쓰마는 도쿠가와 막부시절에도 다른 번, 심지어 막부의 중앙관료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을 만큼 폐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함흥차사’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사쓰마로 떠난 파발’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서양인의 뇌리에 박힌 사무라이상도 이 사쓰마 산입니다. 사쓰마의 사무라이들은 1862년 에도(지금의 도쿄)를 방문중이던 주군의 행렬에 무례하게 끼어든 영국인 사업가 일행을 일본도로 참살했습니다. 격분한 영국이 사과를 요구하자 영국과 단독으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것이 ‘사영전쟁’입니다. 놀라운 것은 비록 일본의 한개 번으로 대영제국함대의 함포사격에 맞선 사쓰마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영국군에 유례없는 타격을 가했다는 점입니다. 영국군은 63명의 사상자가 난 반면 사쓰마측 피해는 1명 사망, 7명 부상이었다고 합니다. 영국신문들은 놀라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유럽인들에게 ‘일본 사무라이는 세다. 고로 잘못 건드리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라는 인상을 팍 심어줬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사무라이’운운하며 사쓰마를 영화의 무대로 삼은 것은 핵심에 다가섰다고 평할만합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또한 이 사쓰마의 ‘주군이 죽으라 하면 죽는다’는 식의 돌쇠형 충성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군부를 장악한 것은 대부분 조슈와 사쓰마 출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이지유신을 민주화와 개방화 혁명이 아니라 천황에 대해 충성을 다 받치는 배타적 군국주의 혁명으로 오도했습니다. 사이고야말로 이런 일본 골수우익의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동아일보 권재현 기자)

따라서 '성리학의 명분론을 빌린 혁명'이라고는 하지만 메이지 유신의 이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 성리학과 무사도, 혹은 '선비 철학'과 '사무라이 사상' 간의 차이에 조응하는 것은 아닐까? 한겨레의 리뷰를 마저 읽어본다.  

하지만 두 세계의 차이도 명확하다. 가장 두드런 예가 교육이다. 조선 선비들은 성리학의 이상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외부에서 이물질만 들어오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포교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사들은 늘 적을 상정해 만반의 대비를 했다. 조선선비 교육의 근본이 ‘학예일치’였다면 사무라이에게 학문은 무예의 보조적 기능에 불과했다. 선비가 글을 읽고 시를 읊을 때 사무라이는 학습 시간의 70%를 무예로 채웠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도 두 나라의 교육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초등학교엔 반드시 수영장을 설치해야 하고 수영 교습도 필수다. 중·고교에선 스포츠 동아리가 매우 활발하다. 2006년 여름 일본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고등학교 수는 전체 5400개교 가운데 76%에 이르는 4112개교다. 한국의 3%와 비교할 때 엄청난 격차다.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일본이 성리학에서 받아들인 가장 큰 부분은 ‘명분 쌓기’라고 규정했다. 일본은 이런 명분을 군사 행동의 정당화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성리학의 중심인 심성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일본과 일본인이 인간 심성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 한국인들은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대한 믿음을 비로소 가지게 될 것이다.”(강성만 기자)

 

 

 

   

한데, 우리에게 그런 심성론이 제대로 전수/학습되고 있는가, 란 의문을 문득 갖게 된다. 나부터도 퇴계의 <성학십도>나 율곡의 <성학집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조선 유학의 전통에 대해서도 교과서적 지식 외에 알고 있지 못하다. 이러면 공부가 '명분 쌓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사실 이런 깨달음을 전해주는 것은 일본이란 타자이다. 한국 철학의 자기인식이 일본 사상이란 타자를 경유해야 하는 이유이다. '퇴폐천국' 일본이란 이미지만으로는 부족하다...  

07. 07. 04.

P.S. 귀가길에 한 서점에 들러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2007)을 손에 들었는데, 이 책이 맞느냐고 점원에게 물어볼 뻔했다. 알라딘에는 분량이 472쪽이라고 돼 있어서 9,900원이라는 정가가 꽤 저렴하다고 생각했었는데(그래서 부담없이 구입하려던 것이었고) 웬걸 고작 220쪽 짜리 책이었다. 입력자의 착오로 보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뻥튀기'이다. 교정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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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04 12:49   좋아요 0 | URL
"마침 대학원 철학과에 '일본철학사'라는 과목이 개설되었었는데, '대학원의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의 이견으로("일본에 무슨 철학이 있냐?") 과목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 해서 '일본사상사'로 바꾸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일본에는 사상도 없다!") 결국엔 '일본문화사'로 낙착되었다는 것(철학과에서 웬 문화사?)."

하핫. 재밌습니다. 사실 철학계에서도 그렇게 말하죠. 일본철학은 없다라고. 일본을 무시하거나 폄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반면 한국의 경우는 세계적인 철학학회에서도 이미 '한국철학'이라고 지칭하고 있다고 하고요. 대부분은 중국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지만, 나름 독창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뭉뚱그려 중국철학이라 하지 않고, 한국철학을 그와 별개로 나누는 듯 합니다. 머머철학 앞에 나라이름을 붙일 수 있는 국가는 몇 안되지요. 이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도 될 듯 합니다.

최근 위에 올려놓으신 책들과 같이 한국철학에 대한 괜찮은 대중서들이 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몇 권 구입해 살펴봤는데 재밌더군요. :)

로쟈 2007-07-04 13:09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 하는 자화자찬이겠지요.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Japanese Philosophy' 항목이 버젓이 등재돼 있다고 합니다. 한데, 그렇게 대단한 걸(한국철학)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마루야마'도 변변찮은 한국철학사도 못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마늘빵 2007-07-04 15:24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그렇담 있는걸 애써 무시하거나 낮게 평가하는건가요. 음. 사실 일본철학이라고 할 만한 개론서나 어떤 것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주변에서 듣고, 또 책에서 보고 저는 그리 알고 있을 뿐이지요. 정말 일본철학이라는게 체계가 잡혀있다면 한번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아! 저 위에 일본근대철학사 라는 책이 눈에 띄는군요.